남들은 교사라고 하면 ‘방학과 칼퇴근’을 떠올리지만, 현실은 ‘말 안 듣는 학생과 과중한 스케줄, 방학엔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이다. 임용 시 기대감은 어느새 무기력감으로 변모한다. 동창모임에서는 전국 교사의 대변인이 되어있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고립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대들은 꽤 괜찮은 사람들이다. 교사에게는 나만 느끼고 있을지 모를 동병상련이 있다. 그래서 항상 대한민국 교사들의 정신건강을 기원한다.
“그저 선생님만 믿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주치의를 시작하면서 처음 듣기 시작한 이 말을 나는 지금도 여전히 듣는다. 부모가 아이를 입원시키면서, 아내가 남편을 입원시키면서 그들은 내 손을 꼭 부여잡고 강렬한 의지를 가득 담아 말한다. “그저 선생님만 믿습니다.” 의사라고 영원히 이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그저 선생님만 믿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저 아이를 맡기면서, 믿고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참 죄스러운 상황이다. 요즈음 선생님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뻔히 아는데, 거기에 책임감까지 추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학교 상황을 보면, 나는 바쁘고 힘든데 사람들은 그저 ‘의사니까…그래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하던 인턴?레지던트 때의 수련생활이 연상된다. 아마 교사의 마음도 비슷할 것 같다. 책임과 의무는 많고, 보상은 적고…. 하지만 사람들은 ‘교사니까…. 선생님이니까….’ 하면서 무관심하다.
기대와 실망, 안정과 고립 역설적이게도 교사는 선망의 직업이기도 하다. 매년 교사 임용고시 경쟁률은 수십 대 일을 넘어서고, 결혼 상대자로 항상 상위권에 랭크된다. 시절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교사에 대한 환상은 아직 식지 않았다. 청렴하고, 윤리적으로 선량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기대감은 교사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동창회나, 친목 모임에서도 ‘전국의 교사를 대변’하고 있고, ‘교사가….’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긴장한다. 그래서 교사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될 위험이 크다. 그들도 고단한 얘기를 털어놓고, 아픔도 나눠야하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큰맘 먹고 푸념하면 돌아오는 것은 ‘그런 건 교사의 소명’, ‘배부른 소리하면 안 된다’는 따가운 반응뿐이다. 결과적으로 교사는 안정됐지만, 그만큼 외로운 직업이다. 임용 시의 기대감은 어느새 무기력감으로 변모한다. 타성에 젖는 쪽으로 갈 것인지, 자기만의 동력을 돌려야할 것인지 갈등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소통의 부재, 무기력 & 중독 교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소통의 부재이다. 협업보다 개인 업무가 많은 교사들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가 않다. 그래서 젊은 교사는 젊은 교사대로 외롭고, 연배가 있는 교사도 소외감에 시달린다. 직장과 함께 성장한다든지, 업무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경우도 흔치않다. 매년 학생은 바뀌지만, 늘 그 또래의 아이들을 만난다. 교육은 사람농사라고 하는데, 정작 결실을 맺는 것은 지켜볼 수가 없다. 뿌듯함이나 보람은 상대적으로 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잔무는 더욱 많고, 보수는 약하며, 재계약의 압박으로 늘 긴장하는 계약직 교사들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늘 고독감에 노출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가운데, 자극은 늘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리닉을 찾아오는 교사들은 대부분 인생의 낙이 없다며 우울감을 호소하거나, 발전적이지 않은 즐거움에 빠져든 채 중독문제를 토로한다. 직종의 특수성 때문에 함부로 고민을 털어놓지 못해, 더욱 병을 키우곤 한다. 동료와 소통하는 기술은 점점 떨어지고, 약물과 알콜의 유혹은 점점 커진다.
교사의 마음 건강을 위한 조언 네 가지. 교사들에게 가장 먼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가 유능한 자원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사회적 기대와 이에 상응하는 의무감이 있는 데에는 그래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과도한 책임감에 짓눌릴지언정, 자신은 이미 치열한 경쟁을 치른, 꽤 괜찮은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들의 업무가 보람 없어 보이지만, 사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당신보다 훨씬 가치 없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야근을 한다. 두 번째는 교사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애환을 적어두라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상이지만, 남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교사는 상당히 특수하고, 독특한 체계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임용된 후 조직에 적응하는 데에만 1-3년이 걸린다. 선배 교사들의 애환과 일상생활은 후임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신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 글을 읽는 후배들은 교감하고 감동할 것이다. 세 번째, 가족 간의 소통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사회적 고립은 ‘사’로 끝나는 직업군의 숙명과도 같다. 소통이 원활치 않는 것은 모든 정신병리의 시작이다. 그리고, 사회적 고립의 끝은 결국 가족 내에서의 고립이다. 가족과 소통되지 않는데, 학생이나 동료교사와 소통이 쉬울 리 없다. 가족 구성원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그것은 교내 생활의 슬럼프를 넘을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네 번째,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남달리 신경 써야 한다. 결국 교사는 평생 본인보다 어린 사람들과 만나는 직업이다.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어야하는 대상과 나이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이는 상당히 독특한 스트레스이다. 세상과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느끼게 된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육체적 건강을 유지해야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실천하려면 의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올해 시작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더 힘들어 질 것이라는 점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우리를 힘 빠지게 할지언정, 우리를 좌절시킬 수는 없다. 교사에게는 나만 느끼고 있을지 모를 동병상련이 있다. 그래서 항상 대한민국 교사들의 정신건강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