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 청·장년층은 어린 시절 교과서를 통해 그가 공들여 만든 지도가 불태워지고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끝내 감옥에서 숨진 비운의 인물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조선을 헐뜯기 위한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여과없이 받아들인 결과다. 사실 김정호는 감옥에서 생을 다하지도 않았으며 그가 만든 지도 또한 불태워진 일이 없다. 오히려 자유롭게 궁궐을 출입하는 등 조정에서 내린 특권을 누렸다.
히스토리 채널은 이처럼 ‘진리’ 혹은 ‘절대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할 교과서가 한반도의 집권세력에 따라 왜곡돼온 진실을 밝히는 ‘다시 읽는 역사, 호외(號外), 교과서의 비극―교과서 왜곡의 역사’(진행 정운영·연출 최진수)를 27일(밤 12시, 재방 30일 오후6시) 방송한다.
방송은 일제시대를 거쳐 미국 군정 하에서도 교과서 왜곡이 벌어졌음을 증명한다. 1950년대 미 군정 시기 교과서 담당은 콜로라도주 출신이었다. 그의 치졸한 애향심 덕분인지 공교롭게도 우리 교과서에는 ‘오 수제너’ ‘올드 블랙 조’ 등이 대표적인 미국의 민요라고 기술됐고, 90년 이전
중등학교에 다닌 사람이라면 이같은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과서와 이데올로기’의 저자 노웅희씨는 미 시카고대·버클리대 학생들과 함께한 연수에서 이들 노래를 불렀다가 망신을 샀다고 방송에서 말한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그 노래가 어느 나라 노래냐”며 오히려 반문해온 것. 결국 이들 노래는 콜로라도 출신이라면 몰라도 미국인 대부분은 모르는 지방의 민요였던 것이다.
방송은 또 노태우 대통령 집권 직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란 설화가 교과서 집필진에게 수록해 달라고 의뢰된 사실을 통해 자신의 큰 귀를 정치적 이미지로 선전하려 했던 노 전 대통령이 교과서를 정치에 이용했음을 드러낸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1∼6차에 걸친 교과서 개편의 역사는 정권의 교체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미 군정시기인 54년에 1차, ‘5·16’ 쿠데타 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무렵인 63년에 2차, 유신개헌 이듬해인 73년에 3차, 전두환 대통령 집권 직후인 81년 4차, 노 전 대통령 집권시기인 87년에 5차 등의 교과서 개편이 이뤄졌던 것.
방송은 1∼6차 개편을 통해 아울러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이 각각 어떤 이름으로 교과서에 쓰였는지를 살펴 각 정권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