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열’. 그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교육에 올인하게 만들었을까? 교육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열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재조명이 필요하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교육체제와 교육내용을 통해 우리 교육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보자.
우리 힘의 원동력, 교육 우리의 교육열은 누구나 공감할 만큼 대단하다. 세계 주요국 교육체제 평가 순위는 최상위에 해당되며, 세계로 진출하여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학생 수는 중국 다음으로 많다. 인원수 대비로 본다면 단연 최상위에 해당하는 결과이다. 뿐만 아니라 열악한 지리적·자연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생산 1위, 인터넷 인프라 구축 1위, 조선 건조 2위, GDP 세계 15위(1조1,975억$) 등 우리는 기적에 가까운 성과를 내고 있는 수많은 국가들이 닮고 싶어 하는 ‘교육모델’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대한 결과의 원동력은 ‘운’이 아니라 우리 ‘교육’임을 이구동성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이면 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야하는, 축구 한번 실컷 할 수 없는 ‘늘 불행한 아이들’에게 교육 1위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부끄러울 따름이라는 것을 말이다. 교육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열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재조명이 필요하다. 특히 교육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아이들에게 교육역사를 알게 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은 우리 교육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과거에 어떤 교육 체제에서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 살펴보고 토론과 논술의 과정을 통해 우리 교육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도록 한다.
역사 돋보기
+ 과거 제도 과거제도는 귀족의 권력 세습으로 인한 왕권 약화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고려 광종(958년) 때 처음으로 도입, 시행되었다. 이후 관료체제가 자리 잡아감에 따라 시험 방법 및 절차가 복잡해졌으며, 공민왕에 이르러서 성리학을 학문적 기반으로 한 시험 체제가 자리 잡게 된다. 유교를 창업 기반으로 삼았던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과거시험은 성리학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루게된다. 과거는 관료가 되기 위한 필수적 수단이었으나 사실상 교육을 독점했던 양반층에게 집중되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문과와 무과로 나뉘어져 실시되었으나, 문관 채용시험은 응시 조건이 훨씬 까다로웠다. 과거 시험은 귀족의 권력 세습을 막기 위한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음서제로 인한 권력 세습이 계속 이루어졌으며, 과거에 대한 응시 제한과 실제적인 교육 가능 계층의 제한 등의 이유로 과거는 또 다른 권력 세습으로 폐단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정 학파의 독점과 견제 등의 문제가 더해지고, 조선 후기 신분제의 동요와 함께 과거 시험의 부정이 심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