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거림을 잠시 멈춘 채, 숨을 고르다보면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지냈지만 사실은 ‘인생의 0순위’여야 할 것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평범한 시간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한 것이다’는 혜민 스님의 화두에 ‘너무 당연해서 간과해버린 소소한 행복감’이 소중해졌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평범한 일상에서의 진짜 행복을.
“엄마는 내편이 아닌 것 같아요. 용기내서 말했는데…. 별거 아니라고, 내가 너보다 더 힘들다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자살위험도가 꽤 높았던 학생은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절박한 고통스러움도, 끈질긴 괴롭힘도 없다고 했다. 그저 ‘사는 게 재미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무척 당황스러운 맞닥뜨림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의 행복을 빼앗아갔을까? 혼돈에 빠져들었다. 나의 사고체계가 오작동 하던 중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게 되었다. 가슴에 팍, 꽂힌 한 구절. 고개가 끄덕여지며 오작동은 멈췄다.
우리의 삶은 특별한 시간보다 평범한 시간들이 더 많습니다. 은행에서 순서표를 뽑아 기다리고, 식당에서 음식 나오길 또 기다리고,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오면 문자를 보내고…. 결국 이 평범한 시간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특별한 행복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행복이란 소소한 곳에서 나온다. 일 년 365일 말썽을 더 많이 부리고 날 괴롭히는 녀석들이지만, 아침 일찍 씨익 웃으며 건네주는 캔 커피에 행복해지고, 체육대회에서 줄다리기를 이겨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줄을 당기는 모습을 보면 또 뿌듯해지고, 수업시간에 지적받아서 서로 으르렁거렸다가도 복도에서 “쌤~”하고 달려와 장난치는 모습에 그저 신이 나지 않던가. 특별한 날인 스승의 날에 받는 이벤트와는 또 다른 행복감이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범한 시간들 속에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추억거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살아가는 가치와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받고 싶었을 것이다. 상처받고, 자신감을 잃어 불안한 아이들에게 ‘누구나 다 그렇게 사니까, 지금을 참아내면 특별한 행복감이 올 거야’라는 격려 아닌 격려가 오히려 더 짐이 되지 않았을까. 나도 아이들도 ‘너무 당연해서 간과해버린 소소한 행복감’이 필요했다. 내 삶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진짜 행복.
내공 섞인 ‘화두(話頭)’, 보이기 시작하는 인생의 ‘0순위’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론 잘 안 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마음 매뉴얼’이다. 휴식·관계·미래·인생·사랑·수행·열정·종교 등 총 8강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각 장에는 짤막짤막한 글귀들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담겨있다. 제목 그대로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다보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지냈던 것들, 소홀히 했던 것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생의 0순위’여야 할 것들이….
친구, 가족, 동료, 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 수행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당신을 존경하면 뭐하나요? 바로 내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면 말이에요.
5~6줄 정도의 짧지만 강력한 글귀들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가슴 깊은 곳까지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스님이 조용히 던지는 내공 섞인 ‘화두(話頭)’는 힘들고 지칠 때 위로받고 힐링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 나 스스로 치유의 방법을 깨닫게 한다. 책 중간중간에 삽입된 이영철 선생님의 몽환적 일러스트 역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더 갈고 닦아 앞으로 나가라고 채찍질하는 자기개발서’보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마음수양서’를 권해주고 싶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세상도 나를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을 항상 응원합니다’라는 혜민 스님의 조용한 울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