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어려서부터 선생님을 꿈꾸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다. 꿈을 이룬 친구들을 축하해줬지만, 겪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며 위로를 건네야 하는 게 우리의 학교 현실이다. 친구들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모두를 괴롭게 하는 교육 환경을 바꾸는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 더웠나 싶을 정도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돌아왔고, 그와 함께 시작된 2학기도 어느 새 중반을 넘기고 있다. 파릇파릇한 신입교사가 돼 이번 2학기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첫 출근 날 다시 한 번 축하와 응원을 담은 문자를 보냈다. 퇴근 후 이어진 통화에서도 친구들은 선배 교사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얼마나 설렜는지를 설명하느라 2시간을 훌쩍 넘겨 수다를 떨었다.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를 통과한 친구들이 자랑스럽고, 또 더 많은 친구들이 얼른 교직의 꿈을 이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도서관에 파묻혀 선생님이 될 날만을 꿈꾸는 동기들에게서 이따금씩 괴롭다는 하소연을 들으면서 경쟁률을 눈이 아닌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육 담당 기자로서 교사들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녹록치 않을 테니, 잘 버텨"라며 이른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설렘과 당찬 포부로 가득한 친구들에게 겪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위로를 건네야할 만큼 우리 학교현장은 교사들에게 잔인하다. 선생님들을 취재하다 학교의 현실을 들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밀려드는 잡무, 생활지도의 어려움, 입시 경쟁 속에 시도조차 어려운 인성교육…. 특히 치열한 입시 경쟁은 교사에게 '스승'이 아닌 '학원 강사'의 역할을 요구하면서 젊은 교사들은 쉽게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녹록치 않은 교사로서의 삶 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는 서울의 한 중학교 선생님은 주기적으로 병원신세를 진다. 학교에서 생활지도부장을 맡은 그는 학교폭력 문제 등을 해결하느라 때로는 아이들의 친구, 부모 때로는 변호사, 경찰의 역할을 하는데다가 관련된 서류처리 등 잡무도 많다. 게다가 아이들의 꿈을 찾아주기 위해 각종 진로 체험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니 '저녁이 없는 삶'은 당연하고, 주말도 없이 365일을 본인의 몸을 돌보지 못한 채 보낸다. 헌신적인 교사의 표본과 같은 그지만 학부모들에게서는 보다 입시에 신경써달라는 불만도 들어야 한다. 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았던 '좋은선생님'이라는 시리즈 기사도 어느 새 1년 반째 이어오고 있다. 독하디 독하다는 신문사 사회부장의 눈에서 눈물을 뺄 정도로 감동적인 사연부터 창의력이 통통 튀는 수업을 하는 교사까지 학교 현장 곳곳에서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뛰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좋은선생님’에 소개한 선생님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선생님의 나이를 막론하고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는 점이다. 좋은 사례를 소개해 많은 선생님들이 이를 본받아 이 사회에 보다 좋은 선생님이 많아졌으면 하는 취지에서 시작한 시리즈였는데, 오히려 "어떤 직업에 반드시 희생이 따를 만큼의 엄청난 노력을 하라고 사회적으로 강요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교사들이 ‘열정’ 불태울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 필요해” '열정 노동'이라는 말이 청년들을 착취하는 화두로 떠올랐었다. 우리 사회는 '열정'을 이야기하며 너무 많은 것을 학교에 맡기고 선생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생님은 당연히 좋은 선생님이지만,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을 '나쁜 선생님'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선생님이라는 '사람'들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 모든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선생님들이 학교를 괴로운 정글이 아닌 즐거운 일터로 느끼고 보다 열정적으로 학교생활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문화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는 한 장학사가 잡무가 가장 많기로 악명 높은 방과후 학교 담당 교사들을 위해 '더공부'라는 엑셀 기반 서류 입력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화제가 됐다. 완전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엑셀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더욱 쉽고 간편하게 쓸 수 있다. 한 번의 자료 입력으로 수십 가지 서류를 자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더공부는 교사들이 서류보다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질을 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 이같이 교육당국의 작은 노력들이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혁신'이라는 구호가 넘쳐흐르고 있다. 그러나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제시하고 모든 것을 180도 바꾸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학교 혁신도 누군가 엄청 기발한 교육 정책을 내놔 모든 것을 다 바꾸는 것이 아닐 뿐더러, 그런 혁신은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갑작스런 변화는 혼란과 시행착오를 일으키고 또다시 교사들의 희생을 강요할 뿐이다. 진짜 혁신은 교육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할 교사들이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지원하고 믿어주고 투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사들이 현장에서 작은 일부터 실천해나간다면 거창한 혁신이 아닌 진짜 새로운 교육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 때까지 모두들 ‘좋은 선생님’으로서 힘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