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조용히 교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선생님, 저 영서 엄마입니다. 이쪽은 영서 아빠고요.” 그 순간적 나는 직감했다. 우리 반 말썽꾸러기 영서가 바르게 잘 자랄 수 있겠다는 것을.
우리 학교는 4월부터 2주간 학부모 상담이 시작된다. 학부모와 마주하며 상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학급에서 다소 말썽을 일으키는 학생의 부모님과 상담은 그 부담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부모님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상담을 꺼리시기 때문에 상담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영서 부모님께서 상담에 응하신 것이다. 게다가 두 분이 함께…. ‘참, 다행이다’ 싶었다.
영서는 학습 능력은 우수한 편이었으나, 늘 불만이 많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다. 연필이 책상을 조금만 넘어가도 수업 시간에 짝에게 소리를 지르고, 지나가다가 몸을 조금만 스쳐도 씩씩대는 등 친구들에게 사소한 문제로 화를 내고, 짜증 부리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교실에서 괴성을 질러 모두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마치 늘 화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맞아요, 선생님. 영서가 집에서도 그래요.” “몇 년 전부터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동생을 가만 놔두지를 않아요. 엄마, 아빠에게 신경질도 늘었고요, 할머니 말씀도 안 듣고…”
좀 놀라웠다.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학교에 들어와서 이상해졌다’며 자녀의 문제행동을 인정하기 꺼려하는데, 영서 부모님께서는 자녀의 단점까지 솔직하게 말씀하시며 담임교사인 나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영서는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 사이의 첫 손주로 태어나 온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첫째들이 그러하듯이,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비뚤어진 행동이 점차 많아졌다고 한다. 부모님 모두 맞벌이를 하시면서 이런 영서의 마음을 헤아리실 겨를이 없었고, 오히려 영서가 동생을 잘 돌보지 못한다고 꾸중을 하셨던 모양이다. 영서도 아직 여덟 살짜리 아이일 뿐인데…. 아마 감당하기 힘들었는가 보다.
학부모 상담을 마친 후, 영서의 문제행동들이 하나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영서를 바라보는 눈빛과 말투가 달라지니, 어느 때부터인가 영서가 내 주변을 맴도는 일이 많아졌다. 영서의 사나웠던 눈빛은 점차 부드럽게 바뀌고 있었다. 영서도, 부모님도, 나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이게 벌써 작년 일이다.
“선생님, 저 영서 엄마입니다. 영서 아빠하고 또 같이 왔습니다.” 올해는 영서 담임도 아닌데, 일 년 전처럼 영서 부모님은 함께 나를 찾아오셨다. 달라진 영서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으셨단다. 하지만 단언컨대 영서의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부모님이시다. 일 년 전 두 분이 함께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부터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말하기 부끄러운 자녀의 허물까지 드러내시며 진심으로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시는 모습에서 영서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이 지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서는 요즘도 학교에서 간혹 마주치면 웃음 가득한 얼굴로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즐거워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이 순간만큼은 내가 선생인 것이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