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후 1년간 4살짜리 손녀를 승용차로 유치원까지 실어다 주곤 하였다. 재잘거림이 즐거워서 옆자리에 앉혔는데 생각해보니 위험할 것 같았다. 뒷자리에 어린이 좌석을 마련하고 태우려 하니 막무가내로 고집하여 어쩔 방도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담임선생님께 이야기 드렸더니, 이튿날 이변이 생겼다. 앞자리에 타라고 아무리 달래도 손사래 치는 것이 아닌가. 담임교사의 말 한마디가 어린이에게는 큰 힘을 발휘한다.
온갖 지도방법에도 아이들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교사생활 십여 년이 지난 때였다. 2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후에 국립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로 전출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담임할 반이 없었다. 몹시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간간히 담임교사가 자리를 비울 때 대신 들어가기도 하였으나 그런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그러던 중 1학년 담임교사가 한 달간 출산 휴가를 얻게 되어 내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 분은 1학년 담임 경험이 많으려니와 학습지도방법을 비롯한 학급경영 능력이 뛰어나 동료교사와 학부모의 신망이 두터웠다. 아직 학교 풍토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내가 과연 버금가게 가르칠 수 있을까 심히 걱정되었다. 게다가 교육대학교 교육실습생 열 명이 배정되어 현장 실무실습 중이었다.
드디어 학급을 대신 맡게 된 첫날이었다. 예상을 넘어 상황은 딴판이었다. 아이들은 학습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나를 골탕이나 먹이려는 듯 서로 킥킥거리며 중구난방이었다. 마치 한동안의 억압에서 해방이라도 맞은 듯 의기양양해 날뛰었다. 온갖 지도방법을 동원했지만,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다. 당연히 교과진도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린 1학년을 호되게 꾸짖을 수도 없고, 교실 뒤편에는 교육실습생이 수업분위기를 참관하고 있으니 난감하였다. 학습지도방법이나 학생 통솔력이 교육실습생에게 시범역할을 못 해서 면목이 없었다. 이런 진땀 나는 과정을 한 달이나 헤쳐나갈 생각을 하니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학급담임’이란 용어 자체가 학생에겐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사흘쯤 지났을 때, 우연히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주의를 집중시킨 후 큰소리로 활기차게 말했다. “오늘부터 내가 1학년 1반 여러분의 담임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 말씀을 잘 듣지 않거나 다른 짓을 하는 사람은 불러내어 혼을 내줄 겁니다. 잘 따르는 사람은 크게 칭찬해 주겠어요.”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의아해하였다. 교실 안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어제까지도 망아지처럼 날뛰던 아이들이 순한 양이 되었다. 교육실습생 또한 신기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제야 교사의 권위를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담임교사의 위력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학급담임이란 용어 자체가 학생에겐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후, ‘학급담임교사’란 어휘가 뇌리에 자리 잡게 되었고, 교육행정을 수행하면서 하루가 아니라 단 한 시간이라도 담임을 대신하는 경우가 생기면, 교실에 해당 교사와 함께 올라가 ‘학급담임이 되었음’을 분명히 알려 주었다.
중·고등학교 학급담임이나 교과담임교사뿐만 아니라 대학교의 지도교수 역시 그 위력은 다름없다. 실력과 경험을 갖춘 교사라면 위력에 교권이 더하여 존경의 대상이 되고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교사는 전교생이 내 학급 학생이라는 신념으로, 학생은 모든 선생님을 우리 선생님으로 존경하는 학교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담임교사의 위력으로 교육에 임할 때, 학교는 참다운 배움의 전당으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