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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교장이 알려준 ‘행복교육’ 답안지

김제 금구초중학교를 찾아서


지금은 창의력이 금
“예전에는 이곳에서 금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금구(金溝) 즉, 황금의 골짜기란 뜻이죠. 그런데 제가 와서 보니 지금도 금이 얼마든지 있더라고요. 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반짝이는 창의력, 바로 우리 시대가 원하는 금입니다. 그 빛나는 창의력이 이웃을 위해 바르게 쓰일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김판용 교장은 얼마 전 이 학교를 찾은 이준식 교육부 장관에게 멋들어진 인사말을 해 화제가 됐다.


자유학기제 모범학교로 꼽혀 이 장관이 전북에서 처음 찾은 곳이 금구중학교. 학령인구 감소로  많은 농어촌 학교들이 존폐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여기는 정반대로 학생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학생들의 창의력과 잠재 능력을 길러주는 독특한 교육방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전주 등 인근 도시에서 몰려오기 때문이다.


비결이 뭘까? 우선 금구중학교 자유학기제의 가장 큰 특징은 교과와 연계된 체험학습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오전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을 공부하지만, 오후에는 진로탐색과 예체능 교육,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갖는다. 교과 수업과 자유학기 활동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직접 체험하거나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살아있는 학습의 묘미를 맛본다. 


진로교육도 활발하다. 적성검사와 탐색, 미래설계 등 맞춤형 프로그램들인데 가장 눈에 띠는 부분은 ‘문화예술교육’, 책 읽기와 손편지 쓰기를 생활화 한 ‘금책 은글’ 등이 있다. 또 체육활동의 하나인 ‘금구 G 리그’, 미래 사진작가의 꿈을 키우는 ‘예술 꽃 씨앗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전개되고 있다.




“학교 가는 날이 기다려졌으면”
통합학교인 금구초중학교에는 학생이 중심 되는 인성교육 프로그램들이 유독 많다. 대표적인 게 어깨동무 사업. 지난가을, 김 교장은 학교에서 붕어빵을 구워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가졌다. 이름하여 ‘행복한 포장마차’. 선행이나 봉사활동을 한 학생들에게 하루 동안 붕어빵을 나눠주며 최고의 간식과 추억을 맛보게 한 것. 학교폭력을 예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김 교장은 “단 하루라도 학교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학생들이 동네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찍어주고 그분들의 일대기를 책으로 만들어 학교에 전시한 일은 지금도 근동에 화제가 되고 있다. 김 교장은 금구면 소재 33개 마을 이장들로부터 장수한 어르신들을 한 분씩 추천받았다. 그리고 학생 3~4명과 어르신 한 분이 팀을 이뤄 일대기를 쓰고 영정사진을 찍는 행사를 가졌다.  학생들이 직접 마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만나 지나온 발자취를 듣고 이를 글로 적어 책으로 펴낸 것. 학생들로 하여금 어르신들의 삶에 대한 감동과 존경심이 우러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둔 일종의 세대공감 프로그램이다. 손자뻘 되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한권의 책과 사진들, 어르신들에겐 최고의 선물이 됐다.


금구초중학교가 떠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학교로 탈바꿈 한데에는 교사들의 헌신이 원동력이 됐다. 방학이건 쉬는 날이건 학교에 나와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하는 교사들 열정이 빚어낸 결과다. 


“교사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생활에 보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교사들에게 삶의 가치와 즐거움을 안겨줘야 합니다.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과 함께 성장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죠.”


김 교장은 학교가 지나치게 과업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교사들에게는 단지 일하는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공간이 돼 버렸고 ‘열심히 일해 봐야 뭐하나’ 하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팽배해졌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무기력한 학교문화를 바꾸는 것이 교장으로서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교장에 임용되자마자 권위라는 외투부터 벗어던지고 교사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스스럼없이 교사들과 여행을 떠나고 맛집을 찾았다. 맑은 날 밤이면 별자리 촬영에 나섰고 방과후엔 향수 어린 아코디언도 함께 연주했다. 교사들 분위기가 달라지자 학교문화가 역동적으로 바뀌었다. 통합학교가 안고 있는 갈등과 우려도 씻은 듯 사라졌다.
    
교장실 대신 카페… 아이들에겐 놀이터
사실 금구초중학교를 처음 찾았을 때 교장실이 어딘지 몰라 잠시 당황했다. 대부분 중앙 현관에서 몇 발짝 걸으면 쉽게 보이는 곳. 그런데 복도를 아무리 둘러봐도 교장실이 안 보인다. 지나가던 학생에게 물어 찾은 곳엔 ‘금구카페’란 팻말이 달려있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교실 한 칸 쯤 되어 보이는 공간에 담소 나누기 편한 ㄱ 자형 테이블과 오밀조밀한 찻잔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실 삼아 들렀던 동네 커피숍 그대로였다. 카페 한편엔 온돌방을 옮겨놓은 듯한 놀이방이 꾸며져 있고 벽면을 따라 초등학생들이 읽음 직한 동화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구석에 놓인 오래된 갈색 책상과 컴퓨터만이 이곳이 교장실임을 알게 해준 유일한 물증(?)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몰려와 책도 읽고 숨바꼭질도 하고 데굴데굴 구르며 저랑 장난도 칩니다. 선생님이 오시면 제가 바리스타가 돼 커피도 대접하지요.” 김 교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 그곳이 교장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카페와 휴게실 겸 놀이방으로 꾸몄다고 한다.


학교의 명물이 돼 버린 ‘금구카페’, 이곳은 김 교장의 교육철학과 학교장으로서의 소신이 담겨 있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사실 교장실은 학교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곳 중 하나잖아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권위적인 책상과 묵직한 소파, 우중충한 공간, 그리고 학교에서 가장 높은 분이 계시는 곳 등…. 어쩌면 학교 구성원들에겐 호랑이가 사는 동굴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요. 저는 교장실을 모두가 부담없이 오는 공간으로 만들어 학교문화를 즐겁고 편안하게 바꾸고 싶었어요.” 그는 학교가 바뀌려면 교장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교장실을 개방된 쉼터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카페 겸용 교장실을 생각해 낸 것은 교감에 임용되고 나서부터. “교사 땐 몰랐어요. 그런데 막상 교감이 되고 보니 학생이나 교사 모두 학교생활이 너무 팍팍해 보이는 거예요. 사막 같다고나 할까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학교를 아름답고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죠.” 그는 학생들에게 공부하란 소리를 안 한다고 했다. 흔히들 공부하면 사람 된다고 하지만 사람 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 맞는 순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학생들에게 깨우쳐 주고 어떻게 하면 바른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학교로 전국에서 교육전문직과 교사들이 몰려온다. 일주일이면 3~4개 팀은 된다고 학교 측은 귀띔했다. 충북 증평에서 1박2일 일정으로 견학을 온 한 교사는 “교장 한 사람의 역량이 얼마나 학교 현장을 바꿀 수 있는지 실감했다”며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금구초중학교는지난 1912년 개교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학교다. 학교운동장에 수령 500년을 자랑하는 회화나무가 있을 만큼 유서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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