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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영원의 시간, 그 경계에서 만난 바람꽃

- 이순원의 『은비령』-

꽃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을 나타낼 때 꽃이라는 말을 붙여서 사용하였다. 화용월태(花容月態)란 꽃처럼 아름다운 미인을 나타내는 말이다. 꽃은 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영예와 소망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문학에서도 많은 문인들이 꽃에 매료됐다. 작가 이순원이 생각하는 은비령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멈춘 영원의 공간이며, 환상적인 치유의 공간이다. 그 곳으로 가는 여정을 통해 바람꽃 같은 그녀 선혜와의 사랑에서 소금 짐처럼 느껴지는 친구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은비령에서 나와 선혜에게 별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처럼 은비령은 시간이 멈추어버린 그 곳으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담당하게 묘사하는 것이 더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느껴지는 이순원 작가의 필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현실에서 많은 제약을 가진다. 함께 공부를 하던 내 친구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발표되었던 1990년대의 삼십 대의 나에게 친구의 아내와의 사랑은 주변의 시선 그리고 자신 속에서 용서받기 힘들어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그녀의 모습 속에 있는 바람꽃을 찾아낸다. 눈과 얼음을 뚫고 피는 바람꽃은 독을 지니고 있다. 여리여리한 모습 속에 슬픈 운명을 가진 바람꽃 그녀를 만난다.
 
친구와 함께 있던 그녀를 처음 본 것은 4년 전 운전면허시험장이었으며, ‘은비령’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는 행시 합격하여 집사람이라며 바람꽃을 연상시키는 그녀를 나에게 소개시켜 준다. 봄볕처럼 따뜻한 그와 그녀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는 차가운 격포에서 사고로 전도양양한 젊은 목숨을 잃고 남겨진 그녀는 직장에 나가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바람을 만난다.


‘은비령’은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 버린 영원의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아내와 별거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 ‘나’와 그런 나의 지나간 기억 속에 죽음의 이미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친구와 그 죽은 친구를 잊지 못하고 있는 친구의 아내 ‘선혜’, 그의 아내인 바람꽃 같은 ‘선혜’를 만날 때면 둘이 만나도 셋이 함께하는 듯 느끼는 그가 찾아간 곳은 그를 처음 만난 곳, ‘은비령’이다.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한 공간이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찾아간 신비로운 공간으로 표현된다.

 

별에겐 별의 시간이 있듯이 인간에겐 또 인간의 시간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행성이 자기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 돌아오는 공전 주기를 가지고 있듯 우리가 사는 세상 일도 그런 질서와 정해진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25백만 년이 될 때마다 다시 원상의 주기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25백만 년이 지나면 그때 우리는 다시 지금과 똑같이 이렇게 여기에 모여 우리 곁으로 온 별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길에서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을 다 다시 만나게 되고, 겪었던 일을 다 다시 겪게 되고, 또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을 다시 겪게 되는 거죠.”

 

청년의 사랑보다는 영원의 시간 속에서 우주의 시간과 별의 시간을 견디는 그런 사람을 꿈꾸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저 북쪽 끝 스비스조드라는 땅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있답니다. 높이와 너비가 각각 1백 마일에 이를 만큼 엄청나게 큰 바위인데, 이 바위에 인간의 시간으로 천년에 한번씩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날카롭게 부리를 다듬고 간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 바위가 닳아 없어질 때 영원의 하루가 지나간답니다.” 


영원의 하루에 대한 설명을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을 함께 견주어 이야기한다. 별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나와 선혜의 운명은 바람꽃이 시들지 않고 부러지듯 이별의 예감하고 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짐이 일상적인 사람들에게 영원의 시간을 이야기하며 그 시간을 견디는 사랑조차 아름답게 느껴지는 클래식 같은 이야기를 읽는 향기로운 겨울 아침이다.
 
『은비령』, 이순원지음, 더스타일,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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