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1박 이상을 하는 부부여행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 부부의 경우, 1년에 2회 정도 국내여행을 한다. 그것도 방학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 그 영향을 받아 은퇴 후 관광학과에 입학한 나. 부부가 여행에 뜻이 맞을 것 같지만 여행 일정을 조율하기가 만만치 않다. 얼마 전에는 아내 혼자 천리포식물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얼마 전 1박2일 지리산 둘레길 여행을 떠났다. 서수원터미널에서 남원행 고속버스에 승차하니 3시간 만에 도착이다. 여기서 다시 3구간 출발지인 인월까지 시내버스를 이용 1시간 만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지났다. 전통시장 내에 뷔페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들어가는 재료가 10가지가 넘는다. 둘레길 탐방객들이 들리는 명소라는데 저렴한 식사비용에 시장기를 채울 수 있다.
지리산 둘레길, 워낙 유명한 길이지만 실제 와 보긴 처음이다. 이 둘레길은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3개 도(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21개 읍·면 120여개 마을을 잇는 285km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각종 자원 조사와 정비를 통해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環)형으로 연결한 길이다.
이 길은 총 22개 구간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 부부가 오늘 선택한 곳은 3구간으로 전북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를 잇는 20.5km의 지리산둘레길이다. 이 구간을 걷다보면 남원시 산내면과 함양군 마천면을 잇는 옛 고갯길 등구재를 넘어가게 된다. 제방길, 농로, 차도, 임도, 숲길 등이 골고루 섞여있고, 또한 제방, 마을, 산과 계곡을 고루 느낄 수 있다.
오후 2시 넘어 첫출발지 표지판이 설치된 인월교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출발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오가는 여행자들이 많지 않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 4명 정도 만났고 우리처럼 진행하는 사람은 황매암 입구에서 8명 정도 만났다. 둘레길에서 사람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이 워낙 뜸하니 아내가 혼자 중얼거린다. “평일에 혼자서 트래킹하기가 좀 무섭겠다”
이 둘레길을 걸을 때 여행자를 가장 반겨주는 것은 바로 장승형 이정표. 초행길이라 모든 풍광이 처음이라 새롭고 낯설다. 한참을 갔는데 이정표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바른 코스인지 아니면 코스를 벗어났는지 알려주는 것이 이정표다. 이정표를 만나면 반가움과 함께 붉은색 화살표 방향을 살핀다. 파란색 화살표 방향은 우리가 지나온 길이다. 길바닥에 이정표가 표시되어 있기도 하지만 변색되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중군(中軍)마을을 거쳐 황매암, 수성대, 배너미재를 지나니 장항마을이다. 이곳에서 400년 수령의 소나무 당산을 보았다. 당산 소나무는 지금도 당산제를 지내고 있는 신성한 장소로 천왕봉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리우고 있다. 장항교를 지나니 오후 5시다. 이제 매동 마을 숙소를 가야 한다. 아내는 민박집 아주머니와 여러 차례 통화를 했지만 숙소는 나타나지 않는다. 잠시 후 트럭 한 대가 나타나 우리를 태운다. 주인집 아저씨의 손님에 대한 배려다.
매동(梅洞)마을에는 40개가 넘는 민박집이 있다. 주민 대부분이 민박집을 운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레길 성수기는 여름철이라 하는데 이때는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머문 곳은 황토방, 아궁이에 장작을 때는데 방바닥이 설설 끓는다. 방마다 수세식 화장실 겸 세면장이 구비되어 있다. 방에는 TV가 있고 입구에 놓인 어항 속에는 피라미들이 헤엄치고 있는데 방안 습도 조절용으로 생각된다.
방에 짐을 푸니 주인아저씨(69)가 1.5리터 페트병 하나를 건네준다. 직접 채취한 고로쇠 수액이다. 이 고로쇠 수액은 우리가 여행을 마칠 때까지 소중한 식수와 에너지원이 되었다. 목을 축이기에도 좋고 뼈를 튼튼하게 해 주니 일석이조다. 이곳 민박의 식사값은 1인당 5천원인데 직접 채취한 여러 가지 나물이 한 상 가득 나온다.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생선구이도 나와 전라도 음식의 푸짐함을 알려준다.
이튿날 새벽녘 황토방 창문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시 둘레길 시작이다. 매동에서 우리의 목적지인 금계(金鷄)까지 약 12km다. 숲길, 마을길 등을 거쳐 상황마을 다랭이논을 보며 등구재를 넘었다. 이제부터 행정구역이 경남이다. 고개 하나를 넘었는데 마을 분위기가 다르다. 전북이 생동감이 넘쳤다면 경남은 고요한 느낌이다. 이곳 창원마을 주민들은 경제 수준이 높다는데 마을길이 모두 시멘트 포장길이다. 그러나 둘레길 여행자들에게는 이런 길이 피곤하기만 하다.
1박2일, 지리산 둘레길 3구간을 여유 있게 7시간 동안 걸었다. 지리산에서 좀 떨어져 마을 길을 걸을 때에는 천왕봉, 제석봉, 촛대봉, 노고단의 능선을 볼 수 있었다. 지리산에 들어갔을 때에는 새소리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숲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매동마을 민박집에서는 훈훈한 인심을 맛볼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모든 풍광이 새롭다는 것이었다. 여행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인생 추억을 만들어 준다. 여행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