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일화에서 배우는 선생님의 눈
이탈리아의 열네 살짜리 소년 정원사가 당대 최고의 가문인 메디치가에서 정원 꾸미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소년은 다른 정원사들이 쉬거나 잡담하는 동안에도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소년은 일을 마친 후에도 화분마다 꽃무늬를 조각해 아름다운 정원을 더욱 운치 있게 바꾸어놓았다. 어느 날이었다. 소년은 늘 그렇듯 정원에서 혼자 남아 화분에 꽃무늬를 조각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마침 정원을 산책 중이던 주인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와 정원만 가꾸면 돈을 더 주지도 않는데 왜 조각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땀을 닦고 싱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이 정원을 멋지게 가꾸는 게 제 일입니다. 화분에 조각하는 것도 정원을 가꾸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이 일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
주인은 어린 소년의 대답에 감탄했고, 그의 손재주가 비범하다는 것을 알고는 그때부터 후원하기 시작했다. 소년 정원사는 당대 최고의 가문으로부터 후원을 받으면서 조각 실력을 키웠고, 마침내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조각가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미켈란젤로.
-조국 지음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48~49쪽에서 인용함.
내 곁에 와 있는 미켈란젤로를 위하여
똑같은 과제학습에도 학생들마다 보이는 자세가 다 다르다. 종이 위에 우리 교실을 꾸미기를 할 때였다. 공간지능이 발달한 영우는 건축 설계도를 방불케 하는 배치를 해서 깜짝 놀랐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덩치도 크고 발표력도 왕성한 아이다. 계속해서 자기만 시켜줘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아직은 책 읽기를 힘들어하지만 욕심만은 대단하다. 늘 질문하고 물어보며 내 시선을 자기 곁에만 묶어주지 못해 삐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교실 꾸미기를 할 때는 집중하느라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가진 재주를 발견하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했다면서 제대로 하지도 않고 들고 나오는데도 영우는 꼼꼼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놀이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레고를 가지고 집을 짓는 모습이 영락없이 건축가다. 날마다 집을 만들어가는 모양새가 특별하다.
10명의 아이가 가진 재주가 같은 아이는 한 명도 없어 보인다. 요즘은 탐색하느라 바쁜 3월이다. 다른 친구들이 가족놀이를 즐길 때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하는 연아가 있는 가하면, 블럭 쌓기에 몰두하는 아이, 퍼즐 맞추기에 여념 없는 민경이, 그림 그리기는 지루해 하지만 노래하고 춤을 추자고 늘 조르는 성연이까지 모두 다 다른 개성을 보여주는 아이들.
담임 선생님과 학교와 부모님은 그 모든 아이들에게서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하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글씨는 잘 몰라도 그림에는 천부적인 재주를 보이는 제자에게 "왜 너는 아직도 다른 친구들처럼 글을 읽지 못하니?" 라고 채근하는 부모나 선생님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책은 줄줄 읽는 아이가 그림을 그리자고 하면 재미없어하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타고 난 재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장미꽃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백합꽃이 되라고 해서는 안 됨을 깨닫는 일이 부모나 선생님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인간은 평생 공부해야 하는 존재다. 부모도 자녀들이 자라가는 속도를 앞질러가며 배워야 한다. 선생님이 공부해야 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세상은 초고속으로 변해 가는데 교육학 공부나 정교사 자격, 순위고사 합격증으로 교단에 서 적응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체를 보던 교실에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봐 줘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학부모와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의 권위까지 있어야 교사로서 출발선에 설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러고도 평생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공부하고 연찬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되는 자리가 교직이다. 그 때야 비로소 내 곁에 다가온 미켈란젤로들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