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아름다워도 보이는 건 껍데기일 뿐
혹시 남들 보기 그럴듯하게, '내 인생은 이 정도'라고 다른 이들 앞에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 내
허점을, 내 약점을, 내가 그동안 해온 거짓말을 한꺼번에 공격해댄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1950년대 프랑스의 한 시골 저택, 크리스마스를 앞둔 눈 내리는 아침은 여느 때처럼 작은 소동들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 집의 유일한 남자이자
가장이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집안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인다.
전화선은 누군가에 의해 끊어져버렸고 폭설로 인해 외부로 나가는 것도, 외부인이 집으로 찾아오는 것도 완전히 차단된 상태다. 결국 범인은 집안에
있다는 뜻. 아내, 여동생, 정부, 처제, 장모, 가정부, 큰딸과 작은딸까지, 지난밤부터 남자의 방을 다녀간 8명의 여인들이 모두 용의선상에
오른다.
여기까지의 줄거리만 놓고 보면 스릴러나 공포물쯤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진짜 영화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8명의 여인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동안 감춰왔던 다른 여인의 진실을 하나씩 하나씩 폭로한다.
그러고 보니 범행동기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동업자와 집을 나가려한 부인, 형부를 남몰래 사랑해온 처제, 사위의 돈에만 관심이 있는 장모,
가정부라고 속여온 젊은 애인,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나이든 가정부, 몇 년간 소식을 끊고 살다 갑자기 등장한 여동생, 친자식이 아닌
큰딸, 아니 추리소설에 심취해 있는 막내딸이 범인일지도 모른다.
동성애, 혼전 임신, 불륜, 도박 등 여인들이 감춰온 사연은 껄끄럽고 불편한 것들 투성이다. 아름다운 겉모습 뒤에 감춰진 온갖 난잡한 이야기들은
교양 있는 척 뻐기는 중산층의 위선을 사정 없이 벗겨버린다.
물 위에 우아하게 떠있기 위해 백조는 물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물장구를 쳐야 한다던가. '척하는' 껍데기를 벗은 여인들은 질투심 많고 탐욕적인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는 쓸쓸하다 못해 '정말 인생이 그렇게 허무한 것이냐'고 소리지르고 싶게 만든다.
"뒤늦게 사는 법 알았을 땐 이미 늦었지/그땐 합창 같은 통곡뿐/수많은 후회 한숨 이미 늦었지/수많은 행복 위한 수많은 노래들/수많은 눈물
기타곡에 실어보네/참사랑은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