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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영어 절대평가 이전에 필요한 것은

올 치러지는 2018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영어 절대평가가 시행된다. 이는 영어교육의 변화를 일으키는 정책 결과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외국어고와 국제고 폐지를 공언하면서 영어 사교육을 둘러싼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입시에서의 중요성 감소로 영어교육 비중을 줄이는 것과 국경 없는 IT시대 세계 공용어로서 영어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학부모들은 방황하고 있다. 입시뿐 아니다. 취업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토익, 토플 등 국제 공인 영어능력평가시험도 공공기관을 필두로 한 블라인드 채용의 여파로 등등했던 위세가 전만 같지 않다.


이러한 정책변화가 우리 교육에서 영어교육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수능 영어는 이제 90점을 넘기는 게 지상과제다. 100점과 90점의 10점 차보다 90점과 89점의 1점 차가 훨씬 중요하다. 영어가 늘 100점인 극소수의 최상위권 말고는 절대평가로 바뀌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자신이 수능에서 90점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비율이 과연 어느 정도가 될까를 예측하면서 학생 개개인에게 불안감은 지속된다. 이를 지켜본 학부모 심정은 “분위기만 어수선할 뿐이지 입시 영어에 목을 매야 하는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학교 교사들도 고민은 마찬가지이다. 지금 주어진 학교교육 교육과정 운영 만으로 수능의 수준에 도달할 수가 있는가에 의문을 갖고 있다.


수능 영어는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높은 난이도로 이미 악명 높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우리학교 발행)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50분간 풀어야 하는 수능 영어 읽기 지문에는 통상 4,000단어 내외의 단어가 등장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 수준의 글을 분당 130~200단어의 속도로 읽어야 하는 수준으로, 미국 고교생들이 읽는 교재와 비슷한 난이도다. 물수능이든 불수능이든 학교 교과과정과 시험 난이도 사이에는 이처럼 엄청난 격차가 있고, 이 격차는 사교육이 아니고는 메울 수 없는 구조다.


영어 몰입교육(영어로 다른 과목들을 가르치는 것) 도입으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영어교육 열풍의 정점을 찍었던 이명박 정부 이래, 영어교육 정책의 무게중심은 외고 입시에서 지필고사 폐지(2010),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2014) 등 사교육 부담 경감으로 옮겨졌다. 초등생이 수능 영어와 토플 시험을 치르고, 원어민 같은 영어발음을 위해 유치원생에게 혀 설소대 제거 수술을 받게 했던 10여 년 전의 풍경을 떠올리면 지독했던 한국 사회의 영어패권에 균열이 가고 있는 건 환영할 만한 현상이다. 또,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영어실력과 이렇다 할 상관관계를 보여주지 못했던 각종 영어능력 지표들이 힘을 잃으며 그 지위가 격하되는 추세다. 도무지 질 줄 모르던 ‘영어권력’에 마침내 그늘이 드리는 조짐이다.


영어 사교육 억제 정책은 영어학원 폐업률에서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8월 25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유ㆍ초ㆍ중ㆍ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회화와 토플 등 영어 공인시험 준비 교육을 하는 어학원은 2009년 1,213개였던 것이 올 7월 현재 837개로 7년 반 사이 476곳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반면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과목을 가르치는 서울시내 입시, 검정 및 보습학원은 2009년 7,538개에서 2017년 7월 현재 7,906로 362곳이 늘어났다. 교과 영어를 가르치는 입시학원은 늘어나고 다른 어학원들은 대거 줄어든 것이다.


증가하는 학원 폐업률의 원인으로는 학령기 인구 감소가 흔히 지적된다. 서울시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내 학령 인구는 2010~2016년 사이 초등학생 21%, 중학생 30.4%, 고등학생 22.4% 줄어들었다. 하지만 입시 보습학원이 1.6% 늘어난 것은 인구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내용이 바뀌었을 뿐 입시용 사교육은 여전히 왕성한 모습이다.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과 형식이다. 절대평가가 실시된다고 해서 학습 부담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절대평가에 걸맞은 내용과 형식의 변화가 논의돼야 하는데, 점수 반영 방식만 바뀌었다. 가장 시급한 건 영어 교육과정을 정비하는 것이다. 수능과 교육과정 사이의 이 막대한 격차를 줄이지 않으면 절대평가든 상대평가든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평가해야 하는지 부터 정리하고, 사교육 없이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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