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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나의 삶은 동그라미일까, 세모일까?

'언어의 온도'에 체온을 재보다

가을 덕분인가 봅니다. 아침 독서 시간, 똑같은 시각에 아침독서를 시작하는 몇몇 아이들 속에서 독서의 기쁨으로 어느 순간 차분한 감성으로 변해 있는 아이들과 나의 모습.  나는 자연의 산물이니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는 몸의 신비에 놀라는 중입니다. 오늘 아침 읽은 책 중에서 나누고 싶은 대목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어야 맛있듯, 좋은 글귀도 나누어야 맛있으니까요.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던 세모


옛날 옛적에 세모와 동그라미가 살았습니다.

둘은 언덕에서 구르는 시합을 자주 했는데

동그라미가 세모보다 늘 빨리 내려갔습니다.


세모는 동그라미가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달라지기로 했습니다.

동그라미를 이기기 위해

언덕에서 끊임없이 구르고 또 굴렀습니다.


어느새 세모의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어졌습니다.

이제 동그라미와 비슷한 빠르기로

언덕길을 내려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구를 때 잘 보이던

언덕 주변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고,

구르는 일을 쉽게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세모는 열심히 구른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겉모습이 거의 동그라미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세모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234~235쪽에서


결코 길지 않은 몇 문장 속에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글은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읽어도 이해하고 금방 깨닫는 글이라고. 할 수만 있다면 쉽게 쓴 글이 좋은 글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어려운 낱말을 쓰지 않고도,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뇌세포를 한 순간에 감전시키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글을 읽고 한참 생각에 빠졌습니다. 내 삶이 혹시 동그라미를 흉내 내는 세모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멋있는 자리, 그럴 듯한 모습을 탐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 가을 내내 깊은 숨 몰아쉬며 화두로 삼을 질문하나 건졌습니다. 좋은 책은 질문 하되 가르쳐 주지 않는 책입니다. 이 책이 몇 달째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쉽게 읽혀지나 생각하게 하는 책인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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