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다 그렇대, 원래 그런 거래…"
9, 19, 29, 39, 49…. 나이에 '9'란 숫자가 든 해를 꺼리는 속설을 가리켜 '아홉수'라고 한다. 이렇게 아홉수가 든 해에는 유달리
힘든 일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첫 번째 아홉수는 아홉수가 뭔지도 모르는 아홉살에 찾아온다. 초등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에 불과한 꼬맹이들이 해결하기 힘든 고민이란 어떤
것일까.
70년대 경상도 어느 시골 마을, 아홉살짜리 백여민(김석)은 동네 물지게를 도맡아 나르는 사람 좋은 아버지와 공장에서 일하다 한쪽 눈을 잃은
어머니, 항상 꾸물대는 여동생과 함께 산동네에 살고 있다.
골목대장이면서도 항상 약자편에 설줄 아는 여민이는 나이답지 않게 의젓하고 속 깊은 소년이다. 그의 유일한 소원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애꾸라
놀림받지 않도록 색안경을 사주는 것. 여민이는 색안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무거운 '아이스께끼'통을 메는 것도, 동네 사람들의 잔심부름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 앞에 서울에서 전학 온, 눈부시게 하얀 스타킹을 신은 장우림(이세영)이 나타난다. 여민이와 짝이 된 우림이는 미국에서 살다왔다며
걸핏하면 잘난 척을 하고 다른 아이들을 무시해댄다. 그러나 여민이는 그런 우림이가 싫지 않다. 아니, 겉으로만 무뚝뚝할 뿐 번번이 우림이를
감싸고돌아 그를 짝사랑하는 금복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시간이 흘러 색안경을 사기 위해 여민이가 꽁꽁 숨겨둔 목돈을 가져온 날, 우림이가 똑같은 금액의 돈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생긴다. 여민이는
끔찍하게 하기 싫은 일, 엄마를 학교에 모시고 와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첫사랑, 방학숙제, 선생님의 벌, 엄마의 회초리, 예쁜 옆집 누나, 도시락 반찬, 그림 그리기 대회…. 이런 것들 때문에 울고 웃던, 이들이
세상 전부인 것만 같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아홉수가 처음이듯이 나이 아홉에 부딪치는 세상은 모든 것이 낯설다. 이성친구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처음이고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도
처음이다. 옆집 청년의 사랑과 실연을 지켜보면서, 깍쟁이 같기만 하던 짝꿍의 숨겨진 진실을 보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해간다.
아홉 때마다 찾아오는 인생의 고비는 다음 10년으로 넘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못 견디게 아프지만 어느 누구도 '성장통' 없이는
자랄 수 없다.
그래서 어른들은 지금도 똑같이 말씀하신다. "처음엔 다 그런 거란다. 원래 그런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