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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 로봇과 인간의 관계

한 스푼의 시간


오랜 벗들과 몇 년의 계획으로 외국여행을 떠났습니다. 베트남의 하노이와 하롱베이로 가는 길에 벗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이국의 풍경을 감탄하였고, 지천으로 보이는 열대과일을 먹고 마사지를 받으면서 웃음소리가 개울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제 오랜 버릇 중 하나는 여행길에 몇 권의 책을 챙겨가는 것입니다.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여행 가방을 무겁게 만듭니다. 이번에 챙긴 책 중 하나는 지난 달 독서모임에서 다루었던 책으로 다 읽지 못한 로봇시대 인간의 일입니다. 독서모임에서 4차 산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로봇과 컴퓨터가 일상화된 미래에 몇 가지의 직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어디에서나 학습할 수 있는 디지털 유목의 시대에 대학 교육은 필요한가?’, ‘로봇이 일상화되면 인간은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인가?’ 화제의 중심이 된 것은 로봇과 인간의 감정교환은 과연 가능할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식을 기하급수적으로 학습하여 인간을 압도하는 로봇이 인간의 감정에 대한 학습이 가능할까?’ ‘그 감정을 인간과 교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이 설왕설래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다룬 소설 한 권도 함께 읽었습니다. 구병모의 장편소설 한 스푼의 시간입니다.

 

이 소설은 세탁소에 살게 된 로봇 소년 은결이 유한한 인간의 시간 속 숨겨진 삶의 비밀과 신비함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내와 사별하고 세탁소를 꾸려가는 명정은 외국에 살고 있는 외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로봇 택배상자를 받게 됩니다. 외부의 자극을 데이터베이스화하며 움직이는 인간형 로봇이자 가사노동과 간단한 업무 외에 용도가 불분명한 샘플 로봇 은결,= 명정의 곁에서 세탁소 일을 돕습니다. 이 세탁소 주변의 이웃 아이들 시호, 준교, 세주의 일상을 함께 엮어가면서 그 속에서 은결은 데이터베이스 속에 오류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나타납니다.

 

봐라, 네 안에는 물리학과 생물학뿐만 아니라 화학 천문학까지 들어 있지. 너는 지금까지 사람이 밝혀낸 한도 내에서 우주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을 거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통돌이 세탁기 뚜껑을 열고 그 안에서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가루세제의 궤적을 내려다보며 명정은 그렇게 말한다. /p.184

 

소설 속에서 주인인 명정이 로봇인 은결에게 137억 년이 넘는 우주의 나이, 지구의 45억 년 나이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다고 일러주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벗들과 며칠을 아름다운 이국의 경치를 보며 짙은 향신료가 나는 음식을 먹는 행복한 시간이 내 인생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가를 질문해 보았습니다. 아마 길을 걷다가 길섶에 핀 어여쁜 한 송이 들꽃을 보며 그 향기에 취해 행복해 하는 시간과 같겠지요. 짧지만 아름다운 들꽃과 닮아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새벽의 공항에 내리자 한 친구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그대로 출근한다고 합니다. 어떤 친구는 오전 수업이 예정되어 있거나, 반차를 낸 직장에 가기도 하였습니다. 여고동창생인 우리들은 며칠간의 화려한 외출을 끝내고 다시 치열한 삶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치 긴 인생에 한 스푼의 세제를 풀리는 시간처럼 그렇게 짧고 소중한 시간을 우리 삶에 풀어내었습니다.

 

창밖으로 고마운 겨울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남녘의 가뭄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독감이 유행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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