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은 24회째 맞는 장애인의 날이었다. 해마다 장애인의 날이 되면 각계 각층에서 기념행사를 갖고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관심들을 표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이 심하다. 장애인 편의시설 미비 등으로 장애인 삶의 질도 취약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이번 제17대 국회에 심한 지체부자유자와 시각장애인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앞으로 장애인 문제가 제도적으로 개선되고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보다 제고될 것으로 기대한다.
근래 정부에서는 특수교육대상 학생에 대해 완전 무상 교육을 실시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취업 기회를 확대하기 위하여 장애인 고용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 가족이나 우리 특수교육 관계자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서벽지와 시설에 있는 장애아이들 중 상당수가 아예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또한 장애인 자신이나 가족들은 장애에 대한 수치심과 열등감 때문에 한사코 장애를 감추려고만 하고, 비장애인들의 편견 때문에 장애인들의 삶은 여전히 어렵고 고달프기만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기 얼굴이 다르듯이 그 능력도 천차만별 다양하다. 천재가 있는가 하면 중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쳐도 읽고 쓰고 셈하기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이 세상에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같은 천재들만 모여 있다면 과연 살기 좋은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은 능력의 우열에 따라 차별받을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능력이란 단지 생활의 수단일 뿐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일부 영역의 능력은 미약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발전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 그 가능성을 찾아내서 제대로 키워 준다면 그들 역시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염원하고 있는 복지 사회의 이상은 그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무도 소외당하지 않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즘 들어 여러 가지 영역에서 훌륭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그 능력을 악용함으로써 사회를 어지럽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정작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는 행위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닌, 능력이 출중하다고 인정받는 일부 사람들이 자행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장애인들 중에는 심한 장애, 그리고 주위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인간 승리자가 된 분들이 참으로 많다. 헬렌 켈러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중증 장애인인데도 80평생을 장애인과 소외받는 이웃들을 위한 숱한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수많은 저술과 강연 활동은 보통의 정상인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였다.
밀튼은 맹인인데도 불후의 명작 '실락원'을 남겼고, 베토벤은 청각 장애인이면서도 훌륭한 명곡을 창작했다. 청각장애 화가인 김기창 화백은 우리 미술계의 거목으로 우뚝 서있다. 우리나라 최초 맹인 박사 강영우씨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는 현재 미국의 연방 정부 복지담당관(차관급)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일리노이대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대구대에서 오랜 동안 강의도 했던 그는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유머를 지닌 분이다.
나는 그 분의 강의를 몇 학기 동안 들으면서, 장애인이면서도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항상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에 더 큰 감동과 매력을 느꼈다. 애인은 결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키가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듯이 다만 어느 영역의 일부 능력이 조금 미약하고 불편할 뿐이다.
장애인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불쌍한 사람으로 동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다. 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장애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장애인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 대해 보다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