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도시에 재학 중인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은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26일 발표했다.
'고교 평준화 적용·비적용 지역 간 학업 성취도'를 비교 분석한 이 보고서는 2001년과 2002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중3 및 고1 각 1만 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학업 성취도 평가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지난 2월23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산하 교육개혁연구소가 발표한 논문 '고교평준화 정책이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실증 분석'과는 달라 주목을 끈다.
KDI는 비평준화 지역 학교가 평준화 지역 학교에 비해 학생들의 성적을 0.3 표준편차만큼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연구 역시 2001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한 '국가 수준 교육 성취도 평가 연구'에서 72개 중소도시의 고교 1년생 1560명과 고교 2학년생 1464명을 대상으로 성적 차이를 분석한 것이었다. 물론 차이는 있다.
KEDI는 01, 02년 2개년에 걸친 자료를 분석했고 KDI는 01년 자료만 분석했다. 평준화 효과에 대한 논란이 계속 거듭되는 것은 이렇듯 분석자료들의 통계수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두 연구가 내놓은 다른 결과를 비교 분석해본다.
*비평준화 고교서 성적 10% 올라
KDI 보고서= 이 논문의 핵심을 요약하면 평준화 고교보다 비평준화 고교에서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결론을 내기 위해 연구자들은 중소 도시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성적 차이를 비교했다. 2001년의 경우 평준화 고등학교 학생들은 -0.263만큼 표준점수가 떨어졌는데 비평준화 학생들은 -0.072만큼 떨어졌다. 0.3표준편차는 고1 때 성적이 상위 20%인 학생이 고2 때는 상위 10%로 오르는 정도의 효과라는 것이 KDI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최석진 본부장은 말한다. 비교 대상이 된 1학년 학생과 2학년 학생이 서로 다른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KDI는 2001년 6월 말 같은 날짜에 시험을 본 1학년생과 2학년생 성적을 비교했다. 최 본부장은 "연구 목적에 맞게 조사하려면 1학년 고등학생들의 성적을 조사한 다음 이후 제2기에서 같은 집단의 성적 변화를 봐야 한다"며 "이 논문은 표집 학생들이 다를 뿐만 아니라 속한 학교조차 다르다"라고 말했다. 정구향 연구위원도 "평준화 지역에서도 고교에 따라, 비평준화 지역에서도 고교에 따라 성적향상도는
0.3 표준편차보다 훨씬 큰 차이가 나는데도 보고서는 이를 무시하고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을 비교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KDI 교육개혁연구소 이주호 소장은 "패널 데이터(개인 추적 정보)가 아니라는 제약이 있을 경우 다른 나라 학자들도 추적 조사 없이 그냥 비교한다. 무작위로 뽑은 자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변수는 통제할 수 있다"고 반박, 서로의 주장이 엇갈렸다.
*평준화지역 학생 영어 점수 5점 높아
KEDI 보고서= 2001년도 학업성취도 결과를 보면, 중소도시에 재학 중인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은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 사이에 별다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비평준화 지역 학생의 상위권 점유율이 평준화 지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주목된다. 전체 집단 평균은
고교 1학년 학생의 경우 영어, 수학 등을 중심으로 모든 과목에서 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중3 학생의 경우 사회, 과학, 수학 등 일부 과목은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성적이 약간 좋거나 평준화 지역과 비슷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영어 과목의 경우는
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분명한 격차를 내며,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종혁 KEDI 학교제도연구실장은 "이번 연구 역시 KDI 연구와 마찬가지로 같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종단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평준화가 하향 평준화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과 사교육 등 교육환경을 감안하면 평준화 지역의 학력이 높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경제 발목잡는 장애물 vs 학력 영향 '미미'
평준화 정책에 대한 논란은 지난 30년 간 끊이지 않았지만 올해는 교육계와 경제계의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최근 들어 경제학자들이 교육 문제에 목청을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재정경제부는 평준화 제도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라고 지적해 왔다. 사교육비 문제와 해외 유학비 급증 문제 등을 교육 문제를 넘어 선 경제 문제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교육계에서는 평준화 정책이 학력 수준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자료들이 대부분이다.
가톨릭대 성기선 교수와 중앙대 강태중 교수가 2001년 발표한 논문 '평준화 정책과 지적 수월성 교육의 관계에 관한 실증적 검토'도 그 한 예이다. 이 논문 역시 KDI 연구와 같이 학년 상승에 따른 성적 변화를 살펴보고 있지만, 동일한 학생의 기간별 변화 추세를 추적한 종단 연구라는 점에서 KDI의 연구보다 우월하다.
논문에 따르면, 평준화 지역 1학년 학업성취도는 232점이었는데 3학년이 되면서 273점으로 올랐으며, 같은 기간 비평준화 지역 고교생은 219점에서 250점이 되었다. 점수 변화 폭이 평준화 학교(+41점)가 비평준화 학교(+31)보다 높다.
KDI 교육개혁연구소 이주호 소장은 "상충되는 연구 결과는 충분히 나올 수 있으며, 이 경우 연구자들이 보다 적절한 자료를 가지고 더 우수한 연구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구자들 간의 합의는 형성될 것"이라며 "올바른 공론(公論)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정부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성적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3월1일 KDI가 KEDI와 함께 수능 성적을 토대로 평준화,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성적을 실증 분석하겠다고 밝힌 경제계와 교육계의 상호 소통 노력은 현재까지 합의된 진행사항이 없는 상태다. 여기에 교육부가 정확한 근거자료 확보를 위해 10월 실시하려 했던 고1 학업성취도 평가마저 무산된 만큼, '평준화 효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