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년전, 내가 맡은 4학년 2반에 김정숙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부지런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점심도 제대로 싸오지 못해 늘 마음이 아팠다. 그 때는 급식용으로 두부 모양의 빵이 보급됐는데 한두개 여유가 있게 나오는 날이면 서로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고사리 손을 흔들어댔다.
정숙이의 형편을 알고 난 뒤 나는 여유분을 따로 모아 하교할 때 따로 불러 책보자기에 넣어주곤 했다. 그게 고마웠던지 하루는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와 가정방문때 자기 집에 꼭 들러달라는 부탁을 하고 갔다.
얼마후 가정방문 기간이 됐다. 정숙이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이 떠올라 6학년 선생님 한분과 그 마을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서산에 걸려있었다. 선생님 두분이 이 마을에 찾아온 건 처음이라며 이장님이 댁으로 불러 후한 대접을 해주셨다.
마을을 떠나려 자전거에 오르니 정숙이 엄마가 내 윗양복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어주셨다. 사양해도 막무가내로 꼭 가져가야 한단다. 하는 수 없이 인사를 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 불빛은 침침하고 길도 서툴러 낭떠러지로 떨어질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하숙집에 도착해 자전거를 구석에 대고 나니 왠지 옆구리가 축축한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려오는 동안 정숙이 어머니가 넣어주신 달걀이 박살나 호주머니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불을 켜고 호주머니를 뒤집어보니 깨진 달걀껍질로 보아 4개인 듯했다. 우물가에서 씻은 옷을 걸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옷모양이 이상하게 변형됐다. 모양복을 찬물로 빨아댔으니 그럴 수밖에.
하는 수없이 나보다 훨씬 체격이 큰 하숙집 아들의 옷을 한 벌 빌려입고 학교를 가야했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들이 내 모습을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달걀 선물 덕분에 마음먹고 장만한 단벌 옷을 완전히 망쳐버려 다음달 월급으로 새옷을 장만해야만 했지만 가끔씩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