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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보석, 흑진주를 물에 푼 듯한 ‘바이칼 호수’

세계에서 가장 깊고 맑은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О́зеро Байка́л)’. 꽤 시간이 흐른 지금이지만, 여전히 바이칼에서의 기억들은 뇌 속에 착색된 안료처럼 뚜렷이 남아 있다. 바이칼 호수를 안고 있는 러시아의 면적은 17,100,000㎢로 남한의 171배, 한반도의 77배에 달한다. 만약 이 거대한 땅에서 ‘단 한 곳만 가볼 수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주저 없이 바이칼에 컴퍼스를 찍을 것이다.

 

바이칼로 들어가는 관문 도시,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는 우리나라보다 서쪽에 위치하며 표준시는 1시간이 늦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을 잘 조절해야 시간 낭비가 적다. 또한 이르쿠츠크 공항은 작은 축에 속하므로 입국 과정이 좀 번거롭다. 수년 전에 입국했을 때는 입국 심사 통로가 두 개뿐이었고,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입국하는 이들과 함께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마치 분주한 시각에 달랑 두 개의 계산대만 개방해 둔 대형마트 식품코너 출구에 있는 듯했다.

 


이르쿠츠크에는 위인들의 동상이 있는 ‘키로프 광장(Площадь Кирова)’, 우주인 유리 가가린(Юрий Алексеевич Гагарин) 기념정원, 정부청사 주변에 보이는 ‘영원의 불꽃(Вечный огонь)’ 등의 명소가 있다. 특히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의 파리’라고도 불린다.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해 프랑스까지 진격했던 장교들이 러시아 황실의 부패에 대항해 쿠테타를 일으켰고, 주모자들은 교수형에 나머지 사람들은 이곳에 유형(流刑)되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거리를 걷다 보면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 모형 같은 것들도 볼 수 있다. 또한 이 도시를 관통하며 흐르는 ‘바이칼의 눈물, 안가라(Ангара‽ )강’ 주변은 꼭 거닐어 봐야 한다. 강변 곳곳은 자연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현지 사람들이 물놀이, 낚시를 즐기거나  연인과 함께 강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정말 구석구석 낭만을 머금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N서울타워 철조망같이 연인끼리 사랑을 약속하고 자물쇠를 걸어 놓은 풍경도 보인다. 러시아든 한국이든 프랑스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만남을 통해 재미를 추구하며 관계를 엮어간다.

 


바이칼 호수의 심장, ‘올혼섬’
‘올혼(Ольхо́н)섬’은 바이칼호의 중심부에 놓여 있으며, 바이칼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이르쿠츠크에서 버스를 타고 여섯 시간가량을 달린 다음, 다시 20분 정도 배로 이동해서 들어간 중 볼일을 보기 위해 한 번은 휴게소에 들러야 한다. 내가 들렀던 휴게소에서는 ‘게르(Ger)’에서 커피를 팔고 있는 몽골인, 샤머니즘이 느껴지는 토템 폴(totem pole) 비슷한 구조물 등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장승같이 생긴 나무 구조물에 오방색(五方色) 줄이 묶인 모습은 우리나라의 ‘서낭당’을 떠올리게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올혼섬은 우리나라 샤머니즘의 시작점이었다고 한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이런 휴게소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출발 전 인솔자가 “올혼섬 탐방은 오지체험 같다”라고 힘주어 이야기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7시간 가까이 달려서 도착한 선착장에서 올혼섬행 배를 탔을 때 나는 바이칼의 물과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깊은 수심으로 인해 흑색에 가까웠던 호수의 물색…. 티 없이 검은 흑진주를 물에 풀면 이런 색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바이칼의 물을 떠서 그냥 먹거나, 조금만 가공해 바로 생수로 판매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은 과장됨이 없어 보였다.


섬에 도착한 다음 나는 일행들과 함께 일명 ‘꿀꿀이차’라고 불리는 ‘우아직(UAZ 39625)’을 타고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평원을 질주할 수 있었다. 중간에 다른 일행이 탔던 차에 기름이 떨어져서, 임시로 다른 차의 기름을 나눠 넣어야 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숙소까지 신나
게 달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평선이 계속 이어지는 풍경 속에 시원하게 뻗은 길이 매력적이었다. 만약 자동차로 세계 일주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몽골 고원과 더불어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길인 듯했다. 이동중에는 승용차로 나뭇짐을 끌고 다니는 현지인들도 보였는데, 아주 색다른 자동차 문화였던 것 같다.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하기 힘든 곳
일행과 함께 올혼섬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산책을 나왔던 시간은 저녁 9시경이었다. 그러나 낮이 거의 20시간 이상 이어지는 북반구 고위도 지방의 여름이었기에 태양은 여전히 사방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올혼섬에서 바라본 바이칼호의 풍광은 정말이지 그 속에 묻혀버려도 모를 만큼 장관이었다. 어딘가의 해변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물맛은 짜지 않았고 누군가가 공들여 만들었음직한 모래성은 가히 예술에 가까웠다. 나란히 서서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들과 해변에 설치된 러시아식 사우나 ‘바냐(ба́ня)’를 즐기던 이들의 모습은 서서히 지는 해의 역광을 맞아 실루엣으로 그려지고 있을 때가 저녁 11시였다. 그리고 자정이 넘어가서 어두워졌을 때 나는 다른 나라에서 왔던 여행객들과 함께 캠프파이어를 즐겼다. 남미에서 온 이들은 기타에 춤을, 우리 한국인들은 보드카로 건배하며 아리랑을 합창했다. 그렇게 올혼섬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바이칼을 겨울에 방문할 경우 맑은 얼음이 가득한 호수의 절경을 볼 수 있지만, 해가 떠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 단점이다. 게다가 겨울의 시베리아는 매우 춥다. 실제로 ‘오이먀콘(Оймяко́н)’이라는 도시의 겨울 기온이 평균 영하 50℃ 이하인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추위이다. 바이칼은 여름에 방문해야 호수에서 보트를 타며 경관을 즐길 수 있고, 여기에서 잡히는 연어과 식용 생선인 ‘오물(омуль)’ 구이를 먹어볼 수도 있다. 당연히 한국어 ‘오물’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며, 바이칼의 대표적인 먹거리이다.

 

 

욜로츠카 캠핑호텔’, 러시아 전통주거를 접하다 바이칼 호수를 뒤로하고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온 다음 앙가라 강가에 있는 ‘욜라치카(ёлочка) 캠핑호텔’에서 일정의 후반부를 보냈다. 이 호텔은 러시아 전통가옥의 특성을 잘 반영한다. 침엽수림의 타이가 지대인 이곳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재료는 통나무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전통가옥도 통나무로 만들어진다. 나는 자작나무로 가득한 이곳 정원에서 피톤치드를 마시며 삼림욕을 한 다음, 강 옆의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강물에 뛰어들어 냉수 마찰 하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했다.
 

​저녁 식사로는 러시아 유목민들의 전통요리인 ‘샤실리크(шашлык)’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보드카도 먹어보았다. 요리들 대부분이 기름기가 좀 많은 것을 제외한다면 우리나라 음식들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현지 음식에 적응이 힘든 사람이라도 큰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을 법했다.

 

바이칼의 출구, ‘리스트비얀카’
‘리스트비얀카(Листвя́нка)’는 바이칼호수 투어의 마지막에 들르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바이칼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체르스키(Че́рский) 전망대’와 근처의 ‘딸찌(ТАЛЬЦЫ) 민속박물관’을 방문했다. 특히 딸찌 민속박물관에서는 장인들이 직접 공예 활동을 한다. 나는 여기서 500루블 가까이 되는 거금을 들여 러시아의 대표 수공예품인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를 구매했다. 지금도 간간이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마트료시카 안의 인형을 모두 꺼냈다가 다시 넣어보곤 한다.

 

 에필로그

러시아에 대한 인식은 바이칼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사실 세계지리 교과서 속 바이칼은 한 줄의 문장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담수호를 직접 경험하고 나니, 알량한 지식에 집착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지식을 초월하는 존재 앞에서, 마음속의 모든 선입견이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지금이라도 바이칼 앞에 서서 감정과 이성의 무장해제를 경험하고픈 이들이 있다면, 이참에 이르쿠츠크행 항공권을 예매하자. 분명 상상 이상의 것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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