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에서 비행기로 약 3시간 떨어진 곳. 뜨거운 화산과 차가운 빙하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섬.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묘한 느낌을 주는 아이슬란드를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계절, 6월에 다녀왔다. 아이슬란드는 북극권 바로 아래, 위도 60도 부근에 자리해 있어 엄격한 의미의 백야는 볼 수 없다. 대신 자정을 살짝 넘겨 일몰이 있고, 2시 정도에 일출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어두울 틈이 없다. 해가 아주 길기 때문에 빠듯한 일정을 세우더라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이 계절의 큰 장점이다.
아이슬란드 여행의 최적기는 5월~9월 사이의 여름이다. 겨우내 얼어있던 내륙지역(하이랜드)의 길이 열리고, 캠핑장을 비롯한 각종 시설이 오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 아이슬란드의 백미인 오로라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여행의 시작,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는 서울 도봉구 인구와 비슷한 33만 명이 거주하는데, 대부분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에 집중되어 있다. 아이슬란드 전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자, 수많은 현지 투어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레이캬비크에서 근접한 유명 관광지는 단연, 골든서클(Golden Circle)이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와 굴포스, 게이시르를 묶어 부르는 이곳은 아이슬란드에 간다면 꼭 봐야 할 필수 코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싱벨리어 국립공원(Þingvellir National Park)은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갈라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는 여러 개의 열하(fissure, 지각이 갈라진 틈)가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 열하들 중 실프라(Silfra)는 스노클링과 다이빙 등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굴포스(gullfoss) 역시 아이슬란드의 상징 같은 폭포로, 엄청난 양의 물이 협곡 아래로 떨어지는 2단 폭포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엄청난 소리와 물방울에 압도된다. 골든서클의 마지막 게이시르(geysir)는 간헐천이라는 영어 단어 geyser의 기원이 된 간헐천이다. 지금은 게이시르의 분출 주기가 엄청나게 길어졌지만, 대신 그 옆에 스트로쿠르(strokkur)가 자주 그리고 높게 물을 뿜어내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이 있는 레이캬네스(Reykjanes) 반도는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인 블루라군(Blue Lagoon)이 여기에 있고, 계란 냄새를 풍기며 땅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크리수비크(krysuvik) 지열 지대도 있다. 또한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을 연결하는 귀여운 다리도 만날 수 있다. 레이캬네스에서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Inside the Volcano 투어를 추천한다. 화산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언제 어디서 할 수 있을까. 가이드와 함께 2시간가량 용암지대를 걸어간 후 리프트를 타고 화산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지하 공간, 마그마 챔버에 둘러싸여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링로드를 따라 남부로
링로드는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감아 도는 1번 국도를 지칭한다. 링로드를 따라 아이슬란드 남부지방으로 향하면, 주요 명소로 알려진 각종 폭포·바닷가·빙하투어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레이캬비크에서 출발해서 비크(Vik)를 향해 가다가 잠시 옆으로 빠져 페리를 타면 헤이마에이(Heimaey) 섬까지 갈 수 있다. 헤이마에이 섬에는 1973년에 분화한 엘드펠(Eldfell)과 그 화산에 파묻혀 폐허가 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바로 뒤로 이동하면 화산재가 쌓인 형태의 화산인 엘드펠에 오를 수 있다. 발이 자꾸만 빠져 마치 모래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지만 많은 사람이 올라온다. 화산의 정상에 있는 작은 틈에서는 아직도 활화산의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다시 육지로 돌아와 링로드를 따라 이동하면 유명한 폭포들을 연속으로 만날 수 있다. 폭포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셀랴란드스포스(Seljalandsfoss) 폭포와 좁은 입구 속에 숨겨진 모습으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글리우프라뷔(Gljufrabui) 폭포에 감탄하며 몇 분 이동하면 비교적 넓은 폭의 폭포로 많은 유량이 떨어지는 스코가포스(Skogafoss)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아이슬란드에는 수백 개의 폭포들이 있는데, 이 세 개의 폭포만으로도 ‘폭포가 참 다양하다’는 걸 깨달을 정도로 각각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동쪽으로 더 이동하면 남부의 유명한 해안 디르홀레이(Dyrholaey)에 닿는다. 해변에 있는 높은 언덕인 디르홀레이에 올라가면, 작은 등대와 거친 바닷바람이 맞이한다. 가끔 바람에 차 문이 거칠게 열려서 고장 나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한쪽으로는 긴 직선의 검은 모래 해변을, 다른 한 쪽에서는 거대한 아치를 만날 수 있고, 그 아치 뒤로 레이니스퍄라(Reynisfjara)라는 이름의 검은 모래해변도 함께 볼 수 있다. 특히 레이니스퍄라에서는 주상절리도 볼 수 있고, 레이니스드란가르(Reynisdrangar)라는 작은 바위섬도 볼 수 있다.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비크(Vik i Myrdal)에서 히치하이커를 태우고 스카프타펠 국립공원으로 향하던 중, 당시 아이슬란드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퍄드라우르 글리우푸르(Fradrargljufur) 협곡을 찾아갔다. 화산재 등이 큰 홍수 때 퇴적되어 있다가 점차 깎여나가서 만들어졌다는 이 협곡은,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절벽 바로 위까지 접근할 수 있는 스릴이 있는 곳이다.
유럽 2위의 국립공원, 바트나요쿨 국립공원
아이슬란드의 동남쪽에 있는 스카프타펠(Skaftafell)은 유럽에서 가장 큰 빙모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면적이 우리나라의 작은 도 정도의 면적이기에 한눈에 볼 수 없는이 거대한 빙모(ice cap)는 사실 바트나요쿨 국립공원(Vatnajokull National Park)이라는 유럽에서 면적 기준 2위의 넓은 국립 공원 중의 일부이다.
스카프타펠은 빙하에 직접 접근하여 올라 가볼 수 있다. 스카프타펠에 집결해서 장비를 받아들고 버스로 이동한 후 걸어가면 드디어 빙하를 직접 대면하게 된다. 그런데 빙하투어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작은 임시다리를 건너야 빙하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빙하가 너무 녹아 유량이 많아지면서 다리가 떠내려 가버린 것.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대기는 길어졌지만 그래도 빙하는 올라갈 수 있었다. 스카프타펠의 빙하는 깨끗하지 않고 거무튀튀한 부분이 많은데, 이는 빙하가 쌓이는 동안 가끔씩 화산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빙하와 화산재가 쌓여 때가 탄 느낌의 빙하를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어쩐지 가이드가 우리를 자꾸만 돌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실제로 그랬다. 아까 떠내려간 다리는 복구되지 않았고, 우리는 모두 차가운 강물에 발을 담그고서야 빙하에서 나올 수 있었다.
스카프타펠에서 45분 정도 이동하면, 아이슬란드 필수 명소인 요쿨살롱(Jokulsarlon)에 도착한다. 강이 막혀 생긴 호수에 작은 빙산이 떠 있는 모습으로 유명하고, 또 그 얼음이 바다로 흘러가 파도를 맞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올해는 요쿨살롱에 빙산이 별로 들어오지 않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왜 아이슬란드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실감나게 해준다.
여기에서 북부지역으로 6시간에 정도 이동하면 미바튼(Myvatn)이란 거대한 호수가 있다. 이 호수를 기준으로 북부 바트나요쿨을 볼 수 있다. 북부 바트나요쿨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비행기 투어를 이용하는 것. 2시간짜리 슈퍼 투어를 이용하면 스카프타펠 빙모의 북부지방은 물론, 그 영향으로 만들어진 여러 지형을 하늘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혼자는 태워주지 않기 때문에, 2인 요금을 지불하고 경비행기 투어를 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말은 이런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경비행기는 미바튼 호수를 출발하면서, 호수 안에 있는 가짜 분화구(pseudo crater; 용암 분출 없이 수증기 폭발로 생긴 분화구)를 본다.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지금도 활동하는 분화구인 아스캬(Askja)를 보고, 다시 북쪽으로 이동해 유럽에서 가장 파워풀한 폭포라는 데티포스(Dettifoss), 퇴적
물이 쌓여있다가 말발굽 모양으로 깎여나간 독특한 모양의 지형인 아우스비르기(Ásbyrgi) 위를 누비고 다닌다.
미바튼 호수 인근에는 바트나요쿨 국립공원에 속하지 않지만 화산과 관련된 경관을 볼 수 있다. 크라플라(Krafla) 지역에는 거대한 지열발전소를 볼 수 있다. 링로드를 타고 여행하다가 계란 냄새에 홀려 찾게 되는 흐베리르(Hverir) 지열 지대에서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회색으로 변해 땅이 그을리고 녹아버리는 모습, 심지어 땅이 부글부글 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인근에 있는 미바튼네이쳐바스(Myvatn Nature Bath)는 레이캬비크 인근의 블루라군와 같은 야외 온천이 있다. 이곳은 사람이 많지 않아 보다 쾌적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서부를 달리다
아이슬란드 북서부에는 커다란 반도인 웨스트피오르드(Westfjords)가 있다. 링로드에서 벗어나 있어 찾아가기 어렵지만, 숨겨진 보석 같은 지역이다. 문제는 거리와 도로 상태이다.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아쿠레이리(Akureyri)에서도 6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곳이며, 겨울에는 도로마저 눈에 덮여있는 날이 많아 여름에나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도로는 자갈로 포장되어 있는데, 아마도 겨울엔 눈에 덮여있으니 아스팔트로 포장해서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지도에서 볼 때는 멀지 않아 보이지만, 길고 좁은 만인 피오르(fjord)를 따라 운전하면 길이가 상당히 길어지는 데다, 그 길들이 모두 자갈길이어서 진동과 소음이 심해서 운전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웨스트피오르드에서 제일 싫어하게 된 말이 ‘Gravel Road Ahead’였을 정도. 그러한 피로를 이겨내고 웨스트피오르드까지 오면 숨겨진 보석들을 찾을 수 있다. 아이슬란드를 상징하는 새인 퍼핀(puffin)이 많이 산다는 라트라뱌르그(Latrabjarg)를 갈 수도 있고, 여러 단에 걸쳐 폭넓게 떨어지는 폭포인 딘얀디(Dynjandi)도 있다.
웨스트피오르드 남쪽에는 스나이펠스요쿨(snaefellsjokull)을 품고 있는 스나이펠스네스(snaefellsnes) 반도가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에서는 화산·용암이 흘러내려와 만든 지형들을 바다와 함께 볼 수 있어서 마치 제주도 바닷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맑은 날, 국립공원 안의 도로를 따라 느긋하게 이동하다가 보이는 표지판마다 따라 들어가 구경해도 좋을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커큐펠(Kirkjufell)과 커큐펠포스(Kirkjufellsfoss)이다. 폭포와 산이 함께 나오게 사진을 찍는 것이 포인트로, 많은 사진작가 및 여행객에게 인기가 있다. 또 하나 바튼스헬리르(Vatnshellir)라는 용암동굴(lava tube)에 들어갈 수 있는 투어도 있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덜 부담되는데, 각자 헤드랜턴을 장착하고 가이드를 따라 이동하면서 구경할 수 있는 투어이다. 옛날 농부들이 물을 구할 수 있었다는 이 용암동굴 안에는 다양한 형상의 자연 조각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스나이펠스네스를 나와 레이캬비크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랭요쿨(Langjokull)에 만들어진 인공동굴로 들어가는 ‘Into the Glacier’라는 이름의 투어에 참가했다. 이 인공동굴은 연구 및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실제로 빙하 무게에 눌려서 납작해지고 있는 동굴의 모습과 빙하가 움직이면서 갈라진 틈인 크레바스의 안쪽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에필로그>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나려면 필요한 준비물이 많다. 날씨 변화가 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물가가 비싸 음식을 사기 부담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며, 한국처럼 숙소에 구비된 물건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준비물보다도 꼭 권장하는 건, 같이 여행할 동반자이다. 혼자 여행해도 아이슬란드를 온전히 누릴 수 있지만, 사진 밖에 있는 멋지고 아름다운 장면을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