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59년만에 남북교원 750여 명이 금강산에서 만났다. 설레임과 서먹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김정숙 기념 휴양관 운동장에서 마주한 그들은 '반갑습니다' '반갑습네다'를 연호하며 정감 어린 눈빛을 교환했다.
비록 이산가족 상봉 장면 마냥 눈물바다가 연출되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불행한 역사를 뒤로하고 이젠 버젓이 내 동포 교육자를 북녘 땅에서 만날 수 있고 지금 만나고 있다는 감격에 벅차 했다.
대회 당일인 19일 행사는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진행됐는데 한 여름의 따가운 햇볕을 넉넉한 양의 구름들이 가려주어 하늘도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교육자 통일대회'가 개회되고 북측 대표의 연설이 시작되면서 고령 교원들 사이에서 '어 이게 아닌데…'하는 불만스런 표정이 나타났다.
누군가 혼자말로 '정치적인 주장은 하지 말아야지' 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조용히 하고 한 번 들어봅시다'하며 제지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대회장에 노골적인 반미 구호는 없었지만 '우리민족끼리' ' 자주통일'을 강조하는 현수막 일색이었다. 정작 우리가 염원하는 '평화통일'이라는 구호는 없어 한 쪽으로 다소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북측 대표의 연설 중에 자주와 반미는 같은 개념이라는 말도 튀어 나왔다. 그러나 대회장의 열기를 싸늘하게 식힐 정도는 아니었고, 참석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데 이만한 억지 소리도 못 참겠는가.
그러나 남측이 생각하는 자주통일의 개념과 북측이 주장하는 자주통일의 개념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험케 했다. 공식행사가 끝난 후 남북교원들은 점심식사, 공연참관, 체육유희, 저녁식사, 그 이튿날 삼일포 등반까지 함께 역사적인 해후를 즐겼다. 호형호제하는 이도 있었고 음악교육에 대해 토론하는 이도 있었고 북한의 개방과 미국을 배제한 민족공조 문제를 놓고 논쟁을 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북 지도부와 핵 문제에 대한 비판 발언은 금기사항이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해도 59년만에 만난 남북교원들은 할 얘기가 너무 많았다. 편향적인 정치적 구호가 출렁된 공식 대회에는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남북교원이 무릎을 맞댄 충분한 대화의 시간은 정말 좋았다.
귀경 버스 안에서 남측 교원들은 아직 멀었다는 반응과 북한도 많이 달라졌고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이 엇갈렸다. 어떤 이들은 남북관계에서 우리 정부가 더 경직돼 있다는 다소 엉뚱한 소리를 해대기도 했다. 대체로 북한 교원들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데 대해서는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번 행사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그런 대로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데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윤종건 교총 회장은 18일 대회 연설을 통해 남북 교육자대회의 정례화를 제의한데 이어 19일 만찬회장에서는 김영도 교육문화직업동맹 위원장에게 내년 대회는 평양에서 개최하자고 거듭 제의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추진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번 대회로 남북 교육자 교류의 물꼬는 터졌다.
시작이 반이다. 남북 교육자 교류가 확대되는 만큼 우리가 그토록 소망하는 평화통일과 자주통일의 날이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기 전 이미 한 해 500∼600만 명의 교류가 있었고, 현재 중국과 대만의 교류 인원도 한 해 2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에 비해 남북 주민 교류는 금강산 관광을 주로 해 한 해 20만명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교류 확대를 위한 노력이 평화통일을 위한 길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교류 확대란 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이번 남북교육자 행사에서 보듯이 현재 남북 교류는 북 체제에 대한 비판을 삼가야 하는 등 일정한 침묵을 담보로 하는 것이어서 불안스럽다.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성숙된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우리 체제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고 상대방 체제에 대한 비판은 금기된 가운데 진행되는 기간이 길어지면 부지불식간에 왜곡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류 확대를 위해 남과 북이 그리고 우리의 내부에서도 공평하게 남북체제의 실체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