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은 저마다의 시대적 배경을 안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남긴다. 주인공을 통해 각인된 행동의식은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시키고 자신의 가치관으로 정립하거나 일상에서의 행동지침으로 삼게 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이는 연령대에 따라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청소년들이 문학소녀, 소년이 되어 접하는 이야기는 이 땅에 정의를 세우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생을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필자는 작품 속의 한 인물에 대해 더욱 진한 그리움을 품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스페인의 작은 마을 라만차에서 돈키호테는 늙은 말 로시난테, 그의 시종 산초와 모험을 떠난다. ‘불의를 바로잡고 무분별한 일들을 고치고 권력의 남용’을 막아 ‘황금시대’를 여는 것이 여정의 목표였다. 그는 편력기사에 대한 책을 너무 탐독한 나머지 자신이야말로 이곳저곳을 떠돌며 정의로운 일을 하는 데 적합한 기사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돈키호테는 엉뚱한 행동으로 가는 곳마다 놀림을 당하고, 두들겨 맞으며 상처는 깊어지고 참혹한 몰골로 변해간다. 그럴수록 돈키호테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 끌어올려 모순된 세상에 당당히, 정의롭게 맞선다. 매번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도 그가 회복하려는 황금시대를 위하여 미친 듯이 돌격하는 돈키호테는 이 시대에 다시금 부활을 꿈꾸게 하는 인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돈키호테가 회복하고자 했던 황금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했다. “네 것과 내 것의 구분 없이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하는 사회, 먹을거리를 위해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되고, 정의는 강물처럼 흐르고, 샘물과 벌들과 떡갈나무 등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악덕이 없고, 여성과 고아, 가난한 사람도 존중받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바로 황금시대이고, 나는 억울함은 풀어주고, 비뚤어진 것은 바로잡아주고, 불쌍한 사람은 보호해주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뱉은 말을 바로 실천하는 행동가였다. 꼼수나 속임수는 없었다. 불의를 보면 돌격하고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언제나 당당하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곧장 움직인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승리다”라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가치 있는 삶에 대해 명상하고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의 모험담 중에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말들이 전해진다. “구부러진 쟁기의 무거운 쇠갈퀴도 우리들의 어머니인 대지의 자애로운 배를 가르거나 방문할 생각을 감히 하지 않았지요”라고 말하며 자연과 인간의 상보적인 생태계를 그린다. 산초가 영주가 됐을 때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산초, 자유라는 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것들 중 하나라네. 땅이 묻고 있는 보물이나 바다가 품고 있는 보물도 자유와는 견줄 수가 없다네. 자유를 위해서라면 명예를 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 만하고, 또 걸어야 하네.” 마지막으로 산초가 섬을 통치하러 가기 전에 “부자가 하는 말보다 가난한 자의 눈물에 더 많은 연민을 가지도록 하게.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의 편만을 들라는 건 아니네. 정의는 공평해야 하니까. 가난한 자의 흐느낌과 끈질기고 성가신 호소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자의 약속과 선물 속에서도 진실을 발견하도록 해야 하네”라고 통치자의 덕목을 강조한다.
모든 것이 혼탁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공동체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타자를 향해 무한히 열린 이타심의 소유자,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인 생태계 보전과 정의, 자유,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실천한 돈키호테를 청소년시절에 진동하던 개인적 감응으로부터 이제는 승자독식과 약육강식 사회에 철저하게 저항하는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호출하고 싶다. 그의 소신과 용기, 정의로움에 대한 인간적 그리움이 넘쳐 갈수록 그에 대한 상사병을 저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