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 최한기를 처음으로 이정우 교수의 철학 강의에서 들었다. 우리도 서구의 니체에 버금가는 철학자가 있다고 하며 혜강의 기학(氣學)에 대한 소개와 그의 우주론과 과학적 세계관은 당시로는 지나치게 앞서간 철학자였다고 하였다. 서구의 철학이론을 좇아가며 공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가진 이러한 철학적 자산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기(氣)’를 연구한 사상이라는 말에 즉시 인터넷 서점에서 최한기의 『기학(氣學)』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하였다.
그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여름과 가을 내내 『기학(氣學)』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하였다. 도올 선생의 서문을 보고, 그의 충고대로 뒤편에 수록된 손병욱 교수의 ‘기학해제’를 읽고 도전하였다. 『기학(氣學)』의 본문은 점점 읽기가 벅차서 읽다가 접어두고 한참 쉬었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하였다. 어느새 새해를 맞이하였다. 나의 책 읽기는 더디고 이해 속도는 더 느리다.^^ 그러나 매력적인 용어들이 나를 빠져들게 한다.
혜강 최한기는 『기학(氣學)』을 통하여 우주의 본질은 '이(理)'가 아니라 '기(氣)'임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기는 일종의 생명 에너지로서 끊임없이 운동한다. 그가 역동적인 기를 궁극적인 본체로 보게 된 것은 서양과학에 힘입은 바 크다. 그가 서구의 천문학 서적을 통해서 알게 된, 지구가 자전(自轉)하면서 동시에 공전(公轉)한다는 사실은 최한기의 우주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최한기에게 있어서 이는 기를 주재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기의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리 내지 법칙으로 기 속에 내재되어 있기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탐구의 대상이 된다. 『기학』에서 "기는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본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이 말은 "생명의 기운이 항상 움직여서 두루 운행하여 크게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활(活)이 신기의 생명성을 가리킨다면, 동(動)은 신기의 운동성을, 운(運)은 순환성을, 화(化)는 변화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활동운화를 보여주는 것이 우리 인류가 살고있는 지구라고 본다.
헤강은 『기학』의 일차적인 목표는 기가 그 본성을 발휘하여 제대로 활동운화하도록 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표는 통민운화(統民運化)이다. 이로써 이상사회인 대동사회(大同社會)를 구현하는 것이다.
새해, 다시 혜강의 책을 펼치며 그의 생각을 따라간다. 기학(氣學)이란 기의 배움으로 혜강이 말하는 기(氣)는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우주 어느 곳에도 무형의 사물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모든 현상도 유형적 근거 위에서 설명되어야 하고 이러한 유형의 기(氣)는 끊임없이 활동하는 활동운화의 법칙 속에 있다. 그러면 나의 존재 역시 이 우주 속에서 끝없이 활동하는 것이 아닐까? 밤하늘의 눈 부신 별빛도 그 자체로 끊임없이 활동운화하는 모습이리라.
봄처럼 따스한 겨울의 막바지에 화단의 흙들이 푸석푸석하다. 그 사이로 다정한 기운에 활동운화하는 씨앗과 나무의 기(氣)가 움직일 것이다. 이제 봄은 생동하는 기(氣)가 만개한 모습으로 나에게 성큼 다가설 것이다.
『기학』, 최한기 지음, 손병욱 역주, 통나무, 2008(재개정 증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