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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 읽기- 춘래불사춘

신갈나무 투쟁기

남녘의 봄꽃은 처연하게 아름답습니다. 희고 붉은 매화 꽃잎은 하롱하롱 지고 있고, 붉은 동백은 붉은 꽃송이가 뚝뚝 떨어져 내립니다. 봄꽃이 무수히 피었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마음밭에 새싹조차 내밀지 못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합니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시절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절기로는 분명 봄이지만 봄 같지 않은 추운 날씨가 이어질 때 쓰입니다. 좋은 시절이 왔어도 상황이나 마음이 아직 여의치 못하다는 의미로 지금의 상황에 잘 어울립니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은 전한시대의 미인 왕소군을 소재로 지었다고 합니다. 왕소군은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궁녀로 절세의 미녀였다고 합니다. 원제는 후궁들이 많아 일일이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화가에게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하여 마음에 드는 후궁을 낙점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궁들은 뇌물을 주면서 잘 그려주도록 간청하였는데, 왕소군만은 뇌물을 주지 않아, 모연수는 그녀의 얼굴을 매우 추하게 그려 바쳤으므로, 황제는 왕소군을 곁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흉노족의 왕 호한야(胡韓耶)가 한나라 궁중의 여인을 왕비로 달라고 원하자, 황제는 추녀로 잘못 알고 있던 왕소군을 그에게 주기로 한답니다. 왕소군이 흉노로 떠나는 날, 처음 왕소군을 실제 보게 된 황제는 격노하여 모연수를 죽여버립니다. 졸지에 말도 통하지 않는 흉노에게 시집을 가게 된 재주와 미모가 출중한 여인 왕소군은 가는 길에 서글픈 심정을 금에 담아 연주하였는데 구 처연한 아름다운 모습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날개짓하는 것을 잊고 떨어졌다고 하여 '낙안(落雁)' 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몸이 야위어 허리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이는 가느다란 허리 때문만은 아니라네.

 

우리나라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신갈나무가 새로운 숲의 주인으로 자라는 이야기를 다룬

『신갈나무 투쟁기』는 봄이 왔지만 봄같지 않은 시기에 읽은 책입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나무의 관점에서 쓰여져 있습니다. 살떨리는 삶의 현장과 치열한 숲의 투쟁사를 중심으로 나무의 일생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몸의 일부는 그 무지한 놈들에게 자선해야만 했다. 베풀고 사는 생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누가 그런 말을 하는가. 나무에게 잉여란 얼마나 힘겨운 투쟁의 산물이던가. 남의 일에 그리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남의 재산이라 너무 쉽게 말하는 경향이 낳은 위선이다. 그저 남의 일이니까 쉬운 말로 생태계 부양능력이라고 하는가. 먹고사는 곤충이 건강해야 새들이 건강하고 그래야 생태계가 건전하게 유지된다고 하던가. 나비가 날아드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무리는 또 누구인가. 한 마리의 나비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식물이 먹히고 또한 얼마나 많은 식물이 공포에 떨었던가. 차라리 건전한 생태계란 무수한 희생으로 이루어진다고 정확하게만 말해 주어도 나무에게는 위안이 될 것이다. p.235~236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고 느끼지만, 봄숲은 나무와 풀들이 그들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새로운 계절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수한 봄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우리를 간섭하고 힘들게 하는 바이러스라는 존재도 사라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까지 자연에 순응하는 신갈나무처럼 나를 갈무리하며 주변을 배려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두 건강한 새봄되시기 바랍니다.^^

 

『신갈나무 투쟁기』, 차윤정 진승훈 지음, 지성사, 2008(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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