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인에게 검증된 경기를 살리는 방법은 크게 2가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입니다. 미 연준(Fed)은 금리를 2단계나 내렸습니다(굳이 예정에 없는 회의를 열어 더 극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금리(이자율)가 내려가면 A씨는 대출을 받아 미용실을 개업합니다. B기업은 공장을 신설합니다.
그만큼 소비가 늘고 이는 곧 누군가의 소득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부동산 열풍이 불 수 있어서 이렇게 기준금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사실 더 내릴 금리도 거의 없다). 결국, 방법은 재정정책. 국가(정부)가 돈을 더 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 방법은 2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재정을 확대하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니 그게 그거라는 겁니다(Crowding-Out Effect).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정부 재정은 세금, 다시 말해 국민이나 기업의 주머니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재정을 확대하면 당장 가난한 곳에 돈이 들어가고, 세금은 나중에 부자가 더 내야 합니다(우리 급여생활자, 자영업자의 절반은 이미 1년에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그러니 재정지출이 늘면 중산층과 부자들의 부담이 커집니다. 반대로 시중에 돈을 풀기 위해 세금을 덜 거두면(감세) 부자나 대기업이 먼저 이익을 봅니다. 그런데 감세를 주장하는 분들은 이 말을 잘 안 합니다.
또 하나 단점, ‘재정건전성’이 훼손됩니다. 나라 곳간이 부실해집니다. 더이상 국민에게 세금을 거두기 어려운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돈을 꿔옵니다. 우리 후손들이 언젠가 갚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국채를 누구에게 발행하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누가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는가?).
정부 부채 이해하기
우리 일반부채(정부 빚)는 800조가량 됩니다(우리 정부의 한 해 예산이 500조 원가량 되니, 대한민국이라는 식당이 한 해 매출이 5억 원이라면 식당 운영을 위해 낸 빚이 8억 원 정도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87.5%를 우리 기업이나 국민이 갖고 있습니다(2018 회계연도 일반정부 및 공공부문 부채 실적/기획재정부). 다시 말해 우리 정부가 10년, 20년 후에 우리 국민이나 기업에 빚을 갚는단 뜻입니다. 이는 1) 우리 기업이나 국민의 부가 정부에 돈을 잔뜩 빌려줄 만큼 매우 커졌다는 뜻이고, 2) 나중에 빚을 갚으면 그 돈이 다시 우리 국민과 기업에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나랏빚(정부부채를 의미한다. 국민의 가계부채와 다른 개념이다)은 적을수록 좋습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 우리만큼 또는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인구 5천만 명이 넘는 나라 중에는 다섯 나라밖에 없다) 대부분이 천문학적인 나랏빚을 각오하고 재정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형편이 넉넉해 재정을 확대하는 게 아닙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모두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80%에서 200%(일본)를 넘습니다. 우리는 41% 정도입니다(사실 미국은 답이 있다. 달러를 찍어내면 된다).
올 1분기 우리 경제는 이미 -1.4%의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만약 올해 우리 경제가 -1% 역성장을 한다고 가정합시다.
그것은 1) 우리 국민이 1년 우리 국토 안에서 100조를 소비하다가, 99조만 소비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입니다. 2) 다시 말해 우리 소득이 100조였는데 99조로 줄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 국민 A 씨가 1년에 1억 원을 벌다가 소득이 5,000만 원으로 줄었다면, 누군가는 4,950만 원을 더 벌었다는 뜻입니다. B 씨가 1,000만 원을 벌다가 올해 직장을 잃어 한 푼도 못 벌었다면 누군가는 990만 원을 더 벌었다는 뜻입니다. 소득재분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재난기본소득을 어떻게 줘야 할까?
세계 각국은 아주 간단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현금이나 바우처를 직접 국민에게 주는 겁니다. 논란은 ‘국민 모두에게 줄 것인가, 아니면 몹시 어려운 계층을 찾아 더 줄 것인가’로 요약됩니다. 당연히 어려운 계층에게 먼저, 또 많이 지급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그 기준을 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무급휴직으로 직장을 떠나야 하는 직원의 급여 80%를 정부가 석 달간 대신 지급하기로 했다고 가정한다면, 그 직원은 어디까지 포함할까요? 정규직? 무기계약직? 연봉 계약직? 파견직?
이 기준을 정하고 나면 이제 그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영세 상인을 월 매출 1,200만 원 이하로 가정하고, 이들 사업자의 가족 종사원까지 1인당 5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다면, 일주일에 두세 번 와서 가게를 봐주는 큰형수님은 대상에 넣을까요, 말까요? 그 조사는 누가 어떻게 하나요? 가게주인이 가족 종사원이 7명이나 있다고 하면 어떡하죠?
그래서 나온 게 기본소득식 지원입니다. 일단 전 국민에게 다 지급하고, 나중에 세금을 다시 거두면 결국 고소득자는 지원받은 금액의 대부분, 중산층은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다시 내게 된다는 겁니다(세금은 비정한 세상을 건널 수 있는 위대하고 간단한 방법이다). 논란 끝에 우리도 4인 가족 100만 원 정도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이렇게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기본소득 논의의 시작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면 안 될까? 하는 고민이 전 세계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물론 막대한 예산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아동수당이나 어르신들 드리는 기초연금 같은 다른 복지수당을 모두 합쳐서, 기본소득으로 매월 모두에게 지급하자는 논의입니다. 가난한 사람, 중산층, 부자 가리지 않고 매월 일정액이 지급되는데, 이렇게 부자에게 지급된 돈은 물론 소득 구간별 과세로 다시 회수되는 구조입니다. 그 돈이 가난한 사람에게 긴급생활자금이 되고, 중산층에겐 여가나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입니다.
경제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누군가는 또 넘어지고, 누군가는 또 낭떠러지에 설 것입니다. 국가는 소중한 재정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 결정해야 합니다. 위기는 격차를 더 키울 겁니다. ‘나라의 부가 어느 정도 커졌다면 국가가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나눠줄 수 있을까?’ 기본소득 논의는 이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멀고 먼 꿈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