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누명에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소송을 지원한 한국교총과 전북교총은 전북도교육청의 무리한 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김승환 교육감은 되레 항소 의지를 밝혔다.
지난달 25일 제자 성추행 누명을 쓰고 교육청의 조사를 받던 중 자살한 故 송경진 교사의 유족에게 법원의 판결문이 송달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가 지난달 19일 유족이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제기한 순직 유족 급여 지급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송 교사는 2017년 4월 한 학부모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면서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이후 학생과 학부모들이 추행이 아니라고 밝혀 경찰에서는 내사 종결 처분을 했다. 그러나 도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은 직권조사를 계속 진행했다. 8월 4일 징계위원회 개최 사실을 통보받은 송 교사는 5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교총은 2017년 사건 발생 이후 전폭적인 대응 활동을 펴 이번 판결을 끌어냈다. 교총은 사건 직후 도의회와 교육부에 감사를 촉구하고 하 회장 등 한국교총-전북교총 대표단은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을 항의 방문했다. 이후 교권사건 전문 변호사를 연결하고 소송비 전액을 지원했다. 교총은 이와 함께 유가족에 대해 위로 방문은 물론 위로금과 유자녀 장학금 지급 등의 지원 활동도 해왔다. <그래픽 참조>
이번 판결에 대해 교총은 29일 “뒤늦게나마 고인의 억울함이 풀리고 명예를 회복한 사필귀정의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하윤수 회장은 “도교육청과 학생인권교육센터의 무리한 조사, 징계 착수가 고인의 죽음에 중요한 원인으로 확인된 만큼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며 “특히 학생인권옹호관의 막강한 직권조사 권한 등에 대해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교총이 29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재판부는 송 교사와 유가족이 억울하다고 주장한 내용을 상당 부분 인정했다. 판결문에는 ‘망인의 자살은 학생인권교육센터 조사 결과 수업 지도를 위해 한 행위들이 성희롱 등 인권침해 행위로 평가돼 30년간 쌓아온 교육자의 자긍심이 부정되고, 충분한 소명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상실감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시했다.
애초 피해를 호소한 학생들의 경찰 조사 진술과 교육청에 제출한 탄원서에 ‘망인이 칭찬해주거나 다리 떠는 것을 지적하거나 수업 잘 들으라고 한 행동도 모두 만졌다고 적었으나, 망인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라는 취지의 내용이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그럼에도 학생인권교육센터는 피해 여학생들을 면담해 진술 내용을 확인하는 등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초기 진술서만을 근거로 판단했다’고 했다.
전국중등교사노조도 1일 입장문을 발표해 “이번 판결로 인해 뒤늦게나마 고인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풀렸기를 바란다”면서 “전북교육청의 책임 있는 모습을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과 교총 등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 교육감은 오히려 사과 대신 항소 요청을 했다. 김 교육감은 2일 취임 10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형사 문제에서 성추행 혐의가 없다 하더라도 징계법상 징계 사유는 똑같이 존재한다”면서 “무리한 조사가 있었다면 직권남용으로 기소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인사혁신처에 고등법원 항소를 요청했다”면서 “인사혁신처가 항소하는 경우 전북도교육청도 보조로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교총은 이날 김 교육감의 항소 의사에 대해 “교사의 억울한 죽음을 끝까지 외면하고 법원의 판결까지 부정한 김 교육감을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사과 거부와 판결 부정 행위는 또다시 고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가족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하 회장은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전북교총과 함께 소송 지원 등 투쟁을 끝까지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