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50년 전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일이다. 대학생활에서 꿈을 펼칠 동아리활동으로 대학방송국을 선택했다. 방송에 특별한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해 보고 싶었다. 대학의 일반 동아리와 달리, 방송국과 신문사는 시험을 쳐서 뽑는다. 지원서를 내고 시험을 쳤다. 상식시험에서 이런 문제를 만났다.
‘빌리본 악단(Billy Vaughn Orchestra)과 벤처스 악단(Ventures Group)의 구성상의 차이점에 대해서 아는 바를 말해 보시오.’
‘빌리본’은 무엇이고 ‘벤처스’는 무엇인가. 낯설었다. ‘구성상의 차이점은’ 고사하고 일반적인 차이도 모르겠다. 촌놈 출신인 나는 열패감에 빠졌다. 방송국 시험이니까 그런 걸 묻겠지. 대학생들이 즐기는 팝 뮤직에 대해 어느 정도 감수성이 있어야 방송국 일을 할 거 아닌가. 이런 정도는 알아야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런 의도로 출제를 했을 것이다.
정답은 이러했다. 빌리본 악단은 관악기 중심의 구성이고, 벤처스 악단은 현악기와 타악기 중심으로 구성된 그룹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으쓱해졌다. 이 경박한 으쓱함이란 무엇일까. 내 문화적 결핍과 열패감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촌에서만 살다 서울에 갓 올라온 열아홉 살 시골청년이었으므로, 인터넷도 뉴미디어도 없던 시절, 그가 호흡해 온 문화는 얼마나 협소한 로컬리즘에 갇힌 것이었겠는가. 나는 시험에 떨어졌다. 하지만 운이 마냥 없지는 않았다. 추가모집에 다시 지원했다. 집념이 가상했을까. 나를 붙여 주었다.
대학방송국에서 나는 서양 대중음악에 대한 내 결핍을 보충하려고 힘을 썼다. 당시 유행하던 팝 뮤직, 라틴 음악, 샹송이나 칸쵸네, 영화음악 등등에 친숙해지려 했다. 그런 음악들로 학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어 보내고, 방송작품 경연대회에 출품도 했다. 촌놈의 문화적 열등감을 보상받으려는 무의식이 따라다녔던 것 아니었을까. 트로트(Trot)는 협소한 로컬리티의 대중음악이고, 팝은 세계 중심의 글로벌 음악이라는 이분법의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무렵에도 트로트는 넘쳐나고 있었다. 트로트는 지금보다 더 대중문화의 주류에 속했다. 이미자, 패티 김, 최희준 등의 가수가 정상에 있었고, 배호, 남진, 나훈아 등이 떠오르는 가수였다. 자유 지향의 신세대 가수들로 송창식, 조영남, 양희은 등이 다른 빛깔의 대중가요를 알리고, 트로트의 공간을 넓힌 조용필 등이 등장하던 즈음이다. 그러나 젊은 대학생들은 무덤덤하거나 무관심했다. 나도 그랬다.
요컨대 대학생들의 대중문화 의식에는 정통 트로트에 대한 선호가 비치지 않았다. 이를 문화적 사대주의라 비판한다면, 너무 경직된 내셔널리즘으로 되치기를 당할 건가. 혹시 그 무렵 대학생들이 모종의 문화적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트로트를 낮추어 본 것은 아닐까. 시골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내 동기생 160여 명 중 대학생이 된 사람은 대여섯 명이었으니, 대학생의 위상이 지금과는 달랐다. 아무튼, 트로트로서는 서운하고 섭섭한 자리에 있었다. 장르의 확장성이 필요하다는 지적과는 별개로, 트로트는 주류인 듯 아닌 듯 소외된 모습이 없지 않았다.
02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ROTC 장교로 군에 소집되었다. 소대장으로 나가기 전, 육군보병학교에서 16주의 고된 훈련을 받았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야전의 훈련도 강훈련이었고, 내무반(생활관) 생활도 엄중했다. 몸과 마음이 극도로 고단한 시기였다. 내 몸도 마음도 내 것이 아니라, 국가에 맡겨 관장되던 시절로 그 고단함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여기에 노래가 따라와 있었다. 다른 노래도 아닌 트로트가 따라와 있었다. 무슨 기획에 따라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자연스레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노래였다. 하기야 용산역에서 군용열차로 서울을 떠나오면서 이미 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을 함께 부르지 않았던가. 보병학교 훈련의 이런저런 모퉁이에서 트로트는 우리들 감정의 그림자인 양 따라붙는다.
어머니 생각이 나면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 신세영의 ‘전선야곡’, 두고 온 고향 생각이 짠하면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 떠나온 연인과 실연의 추억이 다가오면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불렀다. 야전 전술훈련에서 돌아와 장비를 정비하는 시간 틈새로도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배호의 ‘안녕’이었던가. 중대가 기동하는 야간 특공 담력 훈련장 별빛 아래서 잠시 소대별 노래자랑도 했다. 패티 김의 ‘서울의 찬가’도 섞여 있었던가. 보병학교 대연병장에서 체육대회를 하던 날은 종일 응원가를 불렀는데, 그것 역시도 트로트 가수 양미란의 ‘당신의 뜻이라면’이라는 노래였다.
트로트는 병영생활의 요소요소에 숨어 있다가 우리와 조우했다. 아니, 우리 안에 그토록 많은 트로트가 내장되어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이러는 우리는 누구인가. 대학 4년 동안 대체로 서양풍의 대중문화에 젖지 않았었던가. 음악 또한 서양 팝 음악에 기울어 지내지 않았던가. 이런 개방적 감수성은 나름 엘리트 의식을 지닌 데서 오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ROTC는 다시 선발된 사람들이니, 그런 의식이 더했을 수도 있다.
그런 우월적 의식 안에는 모종의 열등감이 함께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촌놈 흔적 지워버리기’의 모색이 그런 방식으로 드러난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이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가 대학에서 누린 노래문화는 트로트 지향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심신이 고단한 병영의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자기를 위로하는가. 팝송은 간데없고 트로트는 무한하게 현신한다.
03
대중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미디어 생태의 변화가 불러온 사회변화(social change) 현상이다. 트로트의 위상도 달라졌다. 얼마 전만 해도 초등학생이 공식 무대에 나와서 트로트를 부르는 것은 금기의 일종이었다.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좋은 노래를 두고, 굳이 성인들의 세속 가치가 지배하는 ‘유행가’를 부르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공공연한 장소에서 공식적으로 트로트를 부르는 모습이 별 저항감 없이 등장한다. 유력 방송사들이 어린이를 트로트 가수로 선발하고 출연시킨다. 대중은 그 방송 콘텐츠를 즐기고 소통한다.
이러한 변화에 어떤 평가를 부여하느냐에는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중문화에 대한 개방적 허용이 대중사회의 일반적 이해로 나타나는 것,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보수적 관점으로의 회귀보다는,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대해서 선제적 관심을 가짐이 온당하다. ‘학교 밖 문식성(literacy) 교육’이나 ‘학교 밖 음악교육’ 같은 의제들이 그런 인식을 보여 준다. ‘학교 밖 교육’에 대한 관심은 그것이 ‘학교 안 교육’과 어떤 상호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하느냐에 다가섬으로써 우리 교육의 탈근대 노력이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트로트를 ‘유행가’라 했다. ‘유행가’란 중립적 용어 같지만, 트로트에 대한 폄하의 뉘앙스가 없지 않다. 말 그대로, 유행가란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노래라는 뜻이리라. 그러니까 유행가(트로트)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고전 클래식과는 다른 음악이라는 것이다. 또 있다. ‘유행’이란 세상 시류(時流)에 통하는 것일진대, 세상 시류에 따라, 또는 세상 시류를 반영하는 노래가 유행가라는 점이다. 요컨대 고상하지 못하고 통속적 노래라는 인식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분야 종사자들을 ‘딴따라’라고 낮추어 불렀지 않는가. 물론 클래식 종사자들에게는 쓰지 않는 말이다.
요즘 트로트의 부상을 주목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해 본다. 하나는 성(聖)과 속(俗)의 이분법적 구분이 유연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거룩한 것’과 ‘통속적인 것’ 그 자체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양자의 구분이 억압적이거나 폭력적이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모든 이분법적 인식이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우리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상대적 가치를 인식하는 문화적 진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얼마간 가지고 있는 트로트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성찰하게 된다.
다른 하나의 생각은, 트로트가 재도약을 누리게 된 점에 있다. 트로트는 자신의 음악적 본질에 더하여 다른 음악 요소들을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의미와 효과를 창출하였다. 여기에 이 시대가 호응하였다. 트로트가 보이는 융합의 노력은 악곡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트로트를 연출하는 공연문화의 차원에서도 시대적 진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르를 넘어서려는 노력(Beyond Genre)이 문화의 진화를 부른다. 우리가 고수해 온 교육의 장르들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