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에서 시작해 쿠바를 한 바퀴 돌아 아바나로 돌아왔다. 그동안 관광지 찍고 다니느라 많이 지쳤다. 더위도 한몫했다. 이제 두 밤을 보내면 된다. 귀국 선물을 사는 일이 남았다. 숙소에서 쇼핑 상점들이 즐비한 곳으로 가려면 바둑판처럼 가지런한 동네를 지나는데 중간 즈음 널찍한 공원이 나온다.
공원 한가운데 자리한 정자 같은 공간에서 잠시 쉬려고 다가가는데 그 안에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평일 낮에 학교 안 가고 춤이나 추고 있는 비행 청소년인가’ 처음에는 색안경을 끼고 보았는데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춤 실력에 무대 가까이 다가가 버렸다. 눈으로 학생들의 춤을 감상하고 있는데 귀로 한국말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분명 BTS 노래였다. 인터넷에 쉽게 접속하기 힘든 쿠바에서 BTS 뮤직비디오를 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지 눈에 선했다.
리더로 보이는 아이는 심지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빠” 등의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영상을 찍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도 한국인을 만나게 된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서 BTS 굿즈를 사 가지고 왔더라면 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득 남았다.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가방을 주섬주섬 뒤적거려보는데 줄 만한 게 없었다. 쇼핑할 생각으로 빈 가방만 들고나온 터였다. 그나마 쓰던 국산 물티슈·볼펜·에코백 등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것들로는 성에 차지 않은 삼촌 이모 같은 마음이 밀려왔다. 결국 음료수라도 사 마시라고 용돈을 건넸다. 덥석 받을 줄 알았는데 까무러치듯 놀라며 괜찮다고 거절을 한다. 너희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공연에 대한 보답이라고 잘 설명했다.
진한 감동이 가시지 않은 그 날 오후. 쇼핑하러 나가는 길에 다시 그 공원을 지나는데 이번에는 태권도를 하고 있는 쿠바 아이들을 만났다. ‘TAEKWONDO’라고 적힌 하얀 도복을 입고 있는 쿠바 아이들이라니. 어린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한국어로 기합을 외치며 발차기를 하는 모습에 쇼핑을 잠시 잊었다.
아이 중에 유독 눈에 들어온 아이가 있었다. 6살 다니엘은 엄마에게 등 떠밀려 나온 듯했다. 기합도 발차기도 영 시원찮았다. 다니엘 옆에 계속 머물러 있으니 사범님이 다니엘은 오늘이 둘째 날이라고 했다. 체육관을 놔두고 왜 밖에서 연습하는 걸까. 바람이 시원해서 좋긴 한데 토실한 발바닥이 아플 것 같았다. 해맑은 표정으로 기합을 넣는 모습이 천사들처럼 보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과일을 한가득 실은 수레를 만났다. 쿠바 숙소에서 아침 식사 때마다 과일을 먹기는 했는데 정작 과일을 파는 곳을 본 적이 없었다. 흔한 과일을 신기해하는데 과일 장수는 아시아 사람들이 신기했는지 연신 질문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동행 중 한 사람을 붙잡고 살사를 추기 시작했다. 길 한복판에서 벌어진 풍경을 쿠바 사람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과일 장수 이름은 ‘카레’. 아시아 여자와 연애를 해보는 게 꿈이라고도 했다. 살사에 재미 들린 동행이 마침 카레와 길거리에서 춤판을 벌였다. 카레는 그녀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지만, 우리는 다음 날 아침 출국이었다. 두 사람 모두 많이 아쉬웠지만, 쿠바 여행의 대미를 길거리에서 장식한 것으로 만족했다. 우리는 서로 “앞으로 카레를 먹을 때마다 아바나 과일 장수 카레가 생각날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실제 카레를 먹을 때마다 그의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쿠바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이렇게 쿠바 사람들 속으로 훅 들어간 시간도 분명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