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나라들 중 하나인 몰도바. 그동안 비자 받기가 까다로워 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무비자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쉽게 들어가게 됐다.
몰도바에 가면 누구나 간다는 오르헤이 마을. 많은 사람이 키시나우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곳인데 이틀 밤을 머물게 됐다. 지난 겨울, 다른 사람들처럼 서너 시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좋아서 이번엔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오르헤이 수도원을 오르다 보면 사람 키만 한 십자가를 만난다. 지나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손을 올리거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오늘은 뭉게구름 때문인지 모두가 순례자처럼 보인다.
오르헤이 수도원에 들어섰다. 수도사님 눈에 아시아 사람이 신기했는지 말을 걸어오신다. 손녀가 한국 노래와 한국 언어에 푹 빠져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손녀가 알려준 ‘할아버지’라는 단어도 조금 어눌하지만, 기억을 해내셨다. 이 먼 곳에서 한국을 이야기하게 될 줄이야. 마침 가방 안에 한국 북마크가 있어 손녀에게 전해달라고 수도사님께 건넸다.
수도원에서 강변에 있는 마을로 내려왔다. 강 쪽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갔다. 마침 어머니 생신을 맞아 대가족이 모여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이미 분위기는 달아올라 있었고,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을 정겹게 맞아주었다. 음식과 함께 술도 나눠 마셨다. 그리고 시작된 춤판. 우리 강강술래처럼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만들어 뱅뱅 돌았다.
40도 보드카를 연신 들이켜고도 전혀 취하지 않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와 동행들은 한두 잔에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 집에 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우리의 힘든 모습을 눈치 챈 생일 주인공. 어머니께서 내일도 날이니 먼저 가서 쉬라며 길을 내주었다.
자리를 뜨려는데 내일 저녁 식사하러 오지 않겠냐는 부부의 제안을 받았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의 집이 있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아이들 무리. 키시나우에서 단체로 오르헤이 구경을 온 학생들이다. 아시아 사람을 처음 보는지 20~30명 되는 학생들이 줄을 서서 우리와 사진을 찍었다.
다음 날 저녁 식사 자리에 갔다. 테이블에 빈 곳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음식이 차려졌다.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튀긴 음식이 맛있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자주 먹는 옥수수빵도 있었다. 어디를 가나 노란 옥수수빵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오르헤이 집집마다 걸려 있는 옥수수를 보면 이 지역 사람들의 옥수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온 마음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마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할머니가 자기 집에도 꼭 들렀다가 가라며 부탁을 하신다.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 댁에 가보니 정정하신 85세 할아버지와 함께 사셨다. 음식으로 가득 찬 지하 창고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신다. 그리고 오르헤이 포도로 담근 와인도 한 병 주셨다. 이분들도 한 해 동안 농사지은 걸 잘 모아뒀다가 자식들이 오면 하나씩 하나씩 풀어주는 듯해 보였다. 두 분이 드시기에 엄청난 양의 음식들이었다.
오르헤이 수도원만 보고 갔더라면 이 마을 사람들의 정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여유를 가지고 며칠 머물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여행을 와서 현지인들에게 받은 융숭한 대접만큼이나 추억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다시 몰도바에 오더라도 오르헤이에서는 며칠 머물며 동네 사람들 여행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