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내 눈앞에 나타나
2020년 겨울, 코로나19 때문에 주말에도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는 어느 심심한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맥주 한 캔에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 하염없는 시간을 달래고자 했지요. 우연히 모 방송국이 제작한 <2050 생존의 길> 다큐멘터리를 본 후 ‘코로나19가 그저 스쳐지나가는 전염병으로 끝나지 않을것 같다’는 경각심과 함께 ‘다양한 생명과의 공존을 위하여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사회문제들이 ‘기후 위기’ 앞에서는 별것 아닌 우스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광명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교육연구회 선생님 한 분이 2021년 1학기의 공부 주제를 ‘환경’으로 잡아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꺼냈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원인이 인간이 파괴한 지구의 생물다양성과 긴밀히 맞닿아 있는데 방역으로 인하여 오히려 일회용품 사용 증가 등 환경적으로 우려될만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철저한 방역교육을 넘어서 재난의 시대가 도래한 근본적 원인에 대해 성찰하고, 기후 위기 세대들에게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가르칠 것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냐”고도 했고요. 그렇게 ‘환경과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주제로 1학기 공부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과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다
공부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일단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환경과 관련된 서적과 영상을 통하여 기후 위기와 환경문제에 대해 무엇이든지 알아보고 공부해 보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는 편리함을 추구했던 기존의 생활을 조금 접어두고 공부한 환경주제에 따른 생태적 삶을 체험하고 실천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배우고 실천한 내용을 반 아이들과 나누고, 연구회에 와서 수업이야기나 교실이야기를 펼쳐보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들과 가장 먼저 접한 주제는 ‘유해 화학물질’입니다. 영화 <다크워터스>는 인류의 99%를 중독시킨 화학물질인 PFOA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환경 변호사가 거대 화학기업인 듀폰에 맞서 환경오염 문제를 파헤치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PFOA는 프라이팬·에어프라이기·콘택트렌즈·아기 매트까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유용하게, 다방면으로 쓰이고 있는 물질입니다. 논란이 되었던 미국에서는 사용금지가 되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되는 화학물질이라고 하네요.
그런 것들을 알고 나니 ‘환경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유해 화학물질을 조사하여 신체에 안전한 선택을 하고, 이어 기업의 윤리적 변화와 책임을 요구하는 ‘공동 행동’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든 환경문제가 다 그렇겠지요. 화학물질 공부를 하고 세상을 다시 보니, 집안에 가득한 화학제품들을 어서 치워버리고 싶어졌습니다. 연구회 선생님들과 함께 각 가정의 화학제품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들은 가지고 있는 화학제품을 소진하면 ‘EM세정제·천연 고체비누·샴푸바·린스바·천연방향제·천연수세미’ 같은 천연제품으로 대체 구매했습니다.
학급 어린이들과도 기후 변화 이야기를 꽤 많이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다른 나라는 지구온난화로 피해를 많이 보는데, 우리나라는 그나마 제일 피해를 안 보니까(중위도지방) 다행이다’라고 반응했습니다.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점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와 피해를 받는 나라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살기 어려운 국가는 탄소를 적게 배출함에도 힘이 없어 더 많이 고통받고,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강대국들은 기후 위기를 자본으로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말하고 덧붙였습니다. “내가 한 행동으로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죽는다면, 삶터를 잃어야 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모르니까, 내가 아니니까 미안해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이들이 지구를 지킨다. 지구야, 사랑해!!!
우리 반 아이들이 지구를 지킨 이야기를 이제부터 조금 더 해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요즘 선생님이 하는 환경공부와 살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며, 환경에 대해 어떤 것들을 더 배워보고 싶은지 물어보았습니다. 물론 그 전에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프로젝트 수업의 틀을 짜 놓았지요.
주제 마인드맵을 하던 중,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포스트잇도 쓰레기잖아요. 이거 필요한 만큼만 잘라서 써도 돼요?” 그 질문이 얼마나 기특하던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면지를 사용하지 않고 포스트잇을 나눠준 저의 결정이 살짝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좋은 생각이에요. 포스트잇 잘라서 써도 돼요.” 그 아이의 말을 들은 우리 반 몇몇 아이들은 하나의 포스트잇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포스트잇이 아까우니 한 포스트잇에 의견을 하나만 적지 말고 자신의 의견을 모두 적어 내자는 제안도 나와서 그럼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습니다.
평소에는 공책 한 장에 몇 글자 안 적고 다음 장을 사용하던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포스트잇을 아끼기 시작하자 종이를 마구 쓰던 아이들도 친구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래서 배움은 ‘나와 너’가 있어야 하는가 봅니다.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환경문제에 대하여 조사학습을 한 후, 내용을 발표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발표를 듣던 ‘야구맨’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가 “아, 나는 커서 국회의원 돼야겠다. 국회의원 돼서 환경법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옳지. “야구맨아, 커서 국회의원 되는 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게다가 환경법을 만들다니 야구맨이 꼭 국회의원이 됐으면 좋겠어. 근데 커서 말고 지금 국회의원 돼볼까?” “네!!!” 목청이 찢어지는 아이들의 대답 소리. 그렇게 우리 ‘지혜네 노랑꽃집’(우리반 이름입니다)은 ‘환경 국회의원’을 뽑게 되었습니다.
블라인드 공약 투표를 통해 뽑힌 6명의 환경 국회의원들은 교실의 환경법을 만들고,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머리를 모았습니다. 국회의원 선거 공약 중 제일 많이 나온 것이 ‘한 가정에 반려식물 하나를 지원하겠다’였습니다. 이 공약은 아이들에게만 맡길 수 없을 것 같아 선생님이 도와주겠다 했지요. 법을 만들면 정부에서 식물을 지원해 주겠다고요. 국회의원들은 ‘정부는 한 가정당 반려식물 하나를 지원한다’라는 환경법 조항을 만들었고, 덕분에 우리 반은 1인 1식물을 키우고 있답니다(사실 원래 계획에 있었어요).
지면상 여의치 않아서 다 싣진 못하지만, ‘노랑꽃집 아이들’은 환경을 지키기 위해 ‘식물 키우기, 하루 하나씩 친환경 생활 실천하기, 재활용하기, 생활용품 만들기, 실천 일기 쓰기, 학교에 포스터 그려 붙이기, 아나바나 알뜰장터 하기’ 등 아이들의 빛깔로 지구를 사수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노력이 지구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 공생의 씨앗을 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