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미국 대통령과 10대 소녀가 맞짱을 떴다.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매섭게 쏘아보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사진 한 장은 당시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로도 툰베리와 트럼프의 기후와 환경에 대한 설전은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다보스포럼에서 ‘나무 1조 그루 심기’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하면서도 환경운동가들을 향해서는 ‘과거의 바보 같은 예언자들의 후손’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툰베리는 그런 트럼프와 세계 지도자들을 성토했다. “우리들의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의 무대책이 시시각각 불길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70대 대통령과 10대 환경운동가의 설전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닌 인식과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당뇨병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한다. 당뇨병은 혈액 내 포도당이 높아져 소변으로 포도당이 넘쳐 나오는 질병으로, 치명적인 합병증을 동반한다. 말기 신부전이나 시력상실, 외상이 없어도 손·발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무서운 질환이다. 당뇨병은 국내 5대 사망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초기엔 증상이 없는 데다,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됐다 하더라도 체중감소나 다갈증, 다뇨증과 같은 통증 없는 증상으로 시작하다 보니, 상당수 환자는 당뇨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당장 아프지 않으니, 치명적 위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환경과 기후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7월 29일은 올해 지구가 재생해내는 생태자원을 모두 소비해 버린 날이었다. 국제환경단체 세계생태발자국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에 따르면 올해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은 7월 29일. 지난해 8월 22일보다 한 달 가까이 앞당겨졌다. 남은 5개월간 우리는 ‘생태적자’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그해 지구가 재생하는 자원의 양을 인류의 생태자원 수요량으로 나눠 그 비율을 1년 달력에 적용한 것으로, 1970년 12월 30일에서 1980년 11월 4일, 1990년 10월 10일, 2000년 9월 22일로 10년마다 한 달씩 빨라지는 추세다.
올해 국가별 생태용량 초과의 날을 살펴보면 미국은 3월 14일, 영국은 5월 19일, 한국은 4월 5일에 각각 주어진 일 년간의 생태자원을 모두 소비해 버리고 말았다. 전 세계 인류가 미국인이나 한국인처럼 생활한다면 인류에겐 지구가 4개쯤 더 필요하다.
그러나 지구는 하나다. 우리는 미래세대에 할당된 생태자원을 허락 없이 끌어다 쓰고 있는 셈이다. 70대 트럼프에게 10대 툰베리가 호통을 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미래세대에게 고리대금의 빚을 떠넘기는 몰염치한 행위를 멈춰야 한다.
2018년 3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세계자연기금의 ‘지구생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0년간 생물 종의 75%가 멸종했고, 무분별한 자원과 에너지 사용으로 기후위기의 속도는 가팔라지고 있다. 인간과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를 멈춰야 하듯, 우린 지구에 대한 학대를 멈춰야 한다.
기후변화는 미래세대의 ‘위기’
기성세대가 ‘현상’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기후변화는 미래세대의 ‘위기’가 됐다. 자본주의적 성장과 발전 그리고 편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양보받고, 모든 희생에 면죄부를 받았던 기성세대의 안이한 세계관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이제는 미래세대의 시간이다.
한국환경교사모임은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이었던 지난 7월 29일, 국가교육회의가 올해 발표할 ‘2022 개정 교육과정’에 현재와 미래의 청소년을 위한 기후행동과 환경교육을 반영하자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세계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물다양성의 감소, 자원과 에너지의 과다 사용으로 인해 기후위기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올해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18ppm에 도달했으며,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2015 파리협약을 기준을 따른다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예산은 고작 7년도 남지 않았다”라며 현재와 미래세대가 기후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교 환경교육을 제안했다.
세계의 교육도 기후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커다란 변화가 시작됐다. 핀란드에서는 환경과목을 선이수 9학점으로, 영국은 25개년 환경교육계획을 세웠다. 호주의 고등학교는 환경과목을 필수로 도입했고, 지난해 이탈리아는 초·중·고 주당 1시간씩 연간 33시간의 기후환경교육을 필수화했다. 캐나다에서는 2016년부터 탄소중립학교를 만들기 시작하여 2030년까지 학교 온실가스 80% 감축에 도전하고 있다. 올해 미국 뉴저지주에서는 유·초·중·고등학생 140만 명에게 기후환경교육을 필수 교육과정에 반영했다.
우리나라도 환경과목을 채택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2020년 기준으로 환경과목을 선택한 중학교는 6.6%, 고등학교는 21.9%에 이르지만(<표 1> 참조), 이마저도 고3 자습 편성이 대부분이다. 더 암담한 것은 전국 약 50만 명의 교원 중 환경교사는 34명뿐이라는 사실이다(<표 2> 참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DA)가 지난달 초, 한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했지만, 한국의 환경교육은 아직도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기후위기 교육은 단순히 학교만의 노력으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학교와 지자체, 유관기관 등 범사회적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이론만이 아닌 현실성 있는 사례를 기반으로 교과서를 개정하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환경 감수성과 기후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키워나가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참가국들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도 아래로 유지하되 1.5도를 넘지 않도록 했다. 탄소배출량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줄이지 않으면, 2040년에 지구의 기온 상승은 1.5도를 넘길 전망이다. 1.5도가 대수냐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몸의 정상체온에서 1.5도가 올라가면, 우린 고열로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지구온도 1.5도 상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고, 스스로 대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공동의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