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이하 “사학법”) 개정안이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30여 개에 육박하는 조항이 개정되거나 신설된다. 이미 빈사 상태인 사학의 자유에 또 하나의 치명타를 가하는 개정안이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지면 관계로 두 가지만 분석한다. 우선, 교원의 징계를 교육감의 뜻대로 할 수 있게 하였다. 기존의 교원징계 절차에서는 교내에 설치된 징계위원회의 징계의결이 가볍다고 교육감이 생각하면 교내에 설치된 징계위원회에서 재심의하도록 하고 있다.(이러한 교육감의 재심의요구 절차도 이전의 사학법개정을 통하여 도입된 사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교육감이 위촉하여 구성된 징계심의위원회(개정안 제62조의 3)에서 재심의를 하여 그 내용대로 징계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징계의결서를 보고받은(개정안 제66조 2항에 의해 사전보고를 의무화함) 교육감은 의결된 징계가 가볍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위촉한 위원들로 구성된 징계심의위원회의 재심을 요청하도록 학교법인에 강제하고(개정안 제66조의 2, 3항), 징계심의위원회의 의결 내용대로 학교법인은 징계해야 한다.(개정안 제66조 4항) 교육감의 징계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임원취임의 승인은 취소될 수 있고(개정안 제20조의 2 제1항 4호),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사립학교법 77조), 취임승인이 취소된 임원은 10년(현행은 5년) 동안 임원이 될 수 없도록 개정되었다.(개정안 제22조)
사학의 교직원 임면권을 교육감이 직접 행사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학교법인의 재심요청 등의 무의미한 요식행위를 하도록 하면서. 사립학교의 예산과 결산을 학교운영위원회의 자문에서 심의로 바꾼 것(개정안 제29조 4항, 개정안 제31조 3항)은 학교운영의 자율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학교법인의 재심요청은 무의미한 요식행위
자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 지식이나 학식을 가진 사람이 결정권자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다. 심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일의 내용을 논의하여 그 내용, 문제점과 대책, 방법을 심도있게 파악하는 것이다. 자문과 심의 모두 결정권자의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다수로 구성된 심의기구의 논의 결과를 결정하기 위해 의결이나 이와 유사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심의·의결이라는 용어에 더 익숙하다.
여기에서 개정안에서 사용하고 있는 심의가 의결까지를 포함하는가의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사립학교법의 등록금심의위원회의 권한이 단순한 심의인가, 심의가 심사·의결의 약자이어서 의결까지를 포함하는가의 여부를 둘러싸고 혼란이 있었던 사례는 이러한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1 개정안에서는 학교예산의 결정과 집행에 관한 조항에서 “학교운영위원회에 심의를 거친 후 이사회의 심사·의결로 확정하고 학교의 장이 집행한다”(개정안 제29조 4항 2호)라고 심의와 심사·의결을 병치하고 있어 형식적으로는 심의가 의결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의결이나 이에 준하는 행위가 행해져야 할 가능성이 크다. 공립학교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사항의 시행에 관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60조 1항은 “... 학교의 장은 운영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최대한 존중하여야 하며, 그 심의 결과와 다르게 시행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이를 운영위원회와 관할청에 서면으로 보고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상황인 “심의 결과와 다르게 시행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심의 결과가 있어야 하므로, 심의 결과를 결정하는 의결이나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 심의 결과는 (이와 다르게 시행하기 위해서는 운영위원회와 교육감에게 서면으로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다.
현재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63조 3항은 “학교의 장은 운영위원회의 자문결과를 최대한 존중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자문사항에서 심의사항으로 바뀐 사학법 개정안을 반영하여 위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60조 1항과 유사하게 변경될 것이다. 그러면 사립학교의 예산과 결산에 관한 학교 운영위원회의 심의 결과와 이사회의 심사·의결 결과가 다른 경우 사립학교의 장은 이사회에서 의결된 예산안을 따를 수 있을까? 이사회에서 의결된 예산안을 시행하기 위하여 서면으로 운영위원회와 교육감에게 보고했는데, 교육감이 이사회에서 의결된 예산안에 운영위원회의 심의결과를 반영하라고 압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보고받은 운영위원회에서 반발한다면? 상당한 혼란과 이사회의 예산결정권 훼손이 있을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운영 실상을 고려하면 사립학교의 예산에 건학이념이 아닌 특정이념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을 반영하도록 강요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교원위원과 지역위원을 합치면 운영위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58조 2항), 아이를 맡기고 있어 을의 입장에 있는 학부모가 교원위원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건학이념과는 다른 특정 이념이나 집단의 이익에 경도된 교원들과 이에 동조하는 지역위원에 의해 이사회의 예·결산 결정권은 형해화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특정 이념집단의 사학 장악 길 터준 교육부
이렇게 문제가 많은 개정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늘 제시하는 이유는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다는 것, 사립학교에 부정이 많다는 것, 그리고 공교육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고등학교 교육이 무상교육으로 되면서 더 많이 원용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 재정지원의 본질을 오해(혹은 알면서 외면)하는 주장이다. 사립학교는 개인이 출연하여 시설을 만들고, 이용자인 학생의 수업료로 운영되는 학교이다. 운영비까지 개인이 출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운영비까지 개인이 출자해야 한다면 부자들의 가치관을 반영한 사립학교만이 존재하게 되어 다양한 교육의 제공이라는 사학의 존재 이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립학교에는 원하는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수업료를 책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이 결정의 적절성 여부는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평준화와 중·고등학교 교육의 무상교육에 사립학교가 동원되어 그 운영재원조달이 막히게 되었고, 이에 사립학교를 평준화와 무상교육에 강제동원한 정부가 그 운영재원을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것이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금의 성격이다. 사립학교에 문제가 있어 시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재정이 지원되므로 목적대로 적절하게 사용되는지의 여부는 확인해야 하지만, 이러한 성격의 재정지원을 이유로 다른 부분의 사학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사립학교에 부정이 많다는 주장2은 그 타당성과 이에 대응하는 처방의 적절성 면에서 인정하기 어렵다. 부정은 어느 나라 어느 집단에서나 있다.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정부규제를 받는 우리나라 사학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부정을 저지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사학에는 특별히 범죄성향이 높은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 말인가? 실제로 사립학교 감사에서 지적되는 사항의 대부분은 법인회계와 학교회계의 분리로 인한 복잡한 회계실무의 실수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부정행위라면 그 대응조치는 부정행위에 대한 예방과 그 적발 및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미 이러한 조치는 충분히 취해져 사학을 규제하고 있지만, 부족하다면 이 부분을 보완하는 사학법 개정이어야 한다. 부정행위가 많다고 교원의 인사권과 예산결정권을 박탈하는 것은 적절한 처방이 아니다.
사립학교가 공교육을 담당하므로 사립학교의 자유는 어느 정도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문제는 제한의 정도이다. 공교육기관으로서 교육의 내용과 질을 보장하기 위한 사립학교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그 규제는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 한정된다. 필요한 교과 기준, 교육시설 기준, 교원의 기준 제시 등은 필요한 규제이다. 그 외의 부분에서는 사학의 자율에 맡겨야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 공교육기관이라는 이유로 사립학교를 공립학교와 같이 규제해야 한다면 모든 학교를 공립학교로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렇게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사학의 자유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사학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세계 모든 국가가 명문의 규정이나 판례로 보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중요성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기본권이다. 공립학교에 의한 획일화된 교육의 폐해는 나치독일의 예에서 이미 확인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은 헌법에서 명문으로 사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면 이번 사학법 개정안의 위헌성 문제는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 할 것인가?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사학의 자유도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제한될 수 있는 한계에 관한 기준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헌법 제37조 2항)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권 제한의 한계에 관한 기준이 사학 자유의 제한에도 적용된다고 헌법재판소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을 개별사건에 적용함에 있어 법리를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기본권 제한의 문제이므로 “공공복리를 위하여 꼭 필요한 경우에 공공복리 증진의 필요성과 비례하는 제한이면서 그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가”의 여부가 올바른 기준이다. 그런데 사립학교가 공교육기관이라는 사실과 교육제도 법률주의에 관한 헌법 제31조 5항을 혼용하여 입법권 재량의 한계에 관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헌법 제31조 5항은 “ ...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교육제도의 법률주의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교육에 관한 법률이 헌법 제31조 5항을 위반하는가의 여부는 그 법률이 입법권 재량의 범위(지나치게 자의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등)를 벗어나는가의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사학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의 위헌성 문제에 이 기준을 혼용하여 “헌법 제37조 2항에 의한 입법한계를 벗어나 자의적으로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였는가의 여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것”3이라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즉, 필요성과 비례성의 기준이 아니라 입법한계를 벗어나 지나치게 자의적이지 않으면 합헌이라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렇게 잘못된 기준을 적용한 결과 사학의 자유를 제한하는 많은 사학법 개정이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되어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와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 결과는 다양성을 상실한 교육,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선택권의 상실, 공교육에 대한 불만족, 이로 인한 사교육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나 가족 간의 생이별을 감수해야 하는 조기유학 등이다.
헌법재판소는 사학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의 위헌성 판단 기준을 하루빨리 시정해야 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현재의 잘못된 기준에 의하더라도 이번 사학법 개정안의 상당 부분은 위헌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교직원의 임명권과 이사회의 예·결산 결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