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밤새 배탈이 나 잘 먹지도 못했는데, 아침을 먹어야 할까요?"
지난 시월 셋째 주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며 아침을 먹고 있는데 폰이 울렸습니다. 그 전화의 주인공은 지금 대학교 3학년, 초등학교 4주간 수업 실습을 하고 있는 둘째 아이였습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강의를 받다가 교육 현장실습을 위해 일반 선생님과 같은 시각에 출퇴근하고 수업 준비를 하니 무척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2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 긴장감과 더불어 천성이 예민한지라 장이 탈이 난 모양이었습니다. 속이 비면 더 힘드니까 누룽지나 죽이라도 먹고 출근하고 병원에 꼭 가렴. 전화를 끊고서도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둘째는 남해에서 멀리 떨어진 공주의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원룸 생활은 지금 세대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앞서간 세대의 자취생활과 같습니다. 학창 시절을 겪어봐서 압니다. 학생일 때는 언제나 배고프고, 춥고, 돈이 모자라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통화에서 이런 말을 들었답니다. 마트를 지나가다 진열된 샤인머스캣을 보고 먹고 싶어 가까이 가보니 한 송이가 일 만원 가까이 되어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는 말이 제 엄마와 통화하는 도중에 새어 나와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우리는 빨리 주말이 다가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한 주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요. 그리고 금요일 아내는 월차를 내고 아이가 좋아하는 나물과 반찬을 준비합니다. 저는 퇴근 후 아내가 장 봐 온 더덕 껍질을 벗기고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드립니다. 두드릴 때마다 ‘어샤, 이 더덕구이 먹고 건강해져라. 아빠의 기를 여기에 쏟는다.’ 이렇게 더덕도 다지고 고구마 줄기 껍질도 벗기며 반찬 준비를 하니 어느덧 자정이 넘었습니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내일 아이를 보러 간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습니다.
다음 날 새벽입니다. 아내는 찹쌀, 밤, 콩, 조를 넣어지어 밥을 찬합에 담습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오늘 간다고 연락을 해야 할까 생각했지만 모처럼 늦잠이나자라고 출발을 준비합니다. 이렇게 세 시간 가까이 달려 공주에 도착합니다. 원룸 건물 아래서 전화를 합니다. 문 좀 열어 줄래. 아니 오시면 온다고 연락이나 주면 청소나 하지요. 볼멘 목소리가 들리다 이내 내려옵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이것저것 들고 방으로 들어섭니다.
조그마한 방안은 프린터 된 종이로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안 봐도 얼마나 힘들고 혼란스러웠는지 상상이 갑니다. 드디어 아내가 아이의 냉장고 문을 엽니다.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항상 전화하면 먹을 것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니만 이게 무슨 일이야? 라고 묻자 실습 기간 바쁘고 잘 먹지도 못하여 반찬을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의 얼굴은 피곤함이 물들어 있고 다크써클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그래, 힘들었나 보구나! 우리는 준비해온 밑반찬과 샤인머스캣, 쇠고기 장조림, 토란 나물을 냉장실에 넣고, 어제 하루 압력솥으로 고와 끓여 식혀 온 장엇국을 한 끼 먹기 편하게 포장한 봉지를 냉동실에 넣어 둡니다. 그래 달걀은 있니? 바빠서 장 볼 여가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럴 줄 알고 달걀도 한 판도 사 왔다. 바쁠 때 유용하더라. 이렇게 준비한 것을 넣어주고 더 머물고 싶었지만 부담될까 싶어 빨리 떠날 채비를 합니다.
내려오는 길입니다. 여느 때 보다 더 청명한 가을 하늘이 고속도로변에 내려앉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아이 생각뿐이었습니다. 문득 제가 대학생일 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나의 부모님,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막둥이로 태어나 처음 대학교 갔다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집 떠나 자취하면 머스마들은 술 먹고 때를 거르기 일쑤니, 속 버린다고 꼭 하숙해야 한다고 하시며 4년 동안 하숙을 시켜 주셨습니다.
85학번으로 그 당시 하숙비가 한 달에 8, 9만 원 이었으니 농촌에서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는 날품을 팔았고 어머니는 길쌈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두박근은 인대가 끊어졌고, 어머니의 앞니는 성한 게 없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허리가 휘었을는지 안타깝습니다. 또한 주말이라 집에 오면 어머니는 있는 것 없는 것 다 모아 진수성찬을 차려주시고 갈 때는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와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배웅 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흐르고 은공을 갚고 싶어도 이제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가을 어둠이 내려 젖은 저녁 불 꺼진 조용한 집으로 돌아옵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전화를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습니다. 아마 피곤해서 자는가 보다 하고 하루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모처럼 일요일이라 집 안 정리를 할 즈음 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야! 그래 속은 어때? 어제 엄마 아빠 가신 후 피곤해서 지금까지 자다가 일어났어요. 잘 가셨지요?"
아이는 엄마가 해서 두고 간 밥을 먹으니 꼴딱꼴딱 잘 넘어가고 반찬을 보니 식욕이 돈다고 하며 몸이 안 좋을 때 엄마 밥이 최고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 안심도 되고 고생한 아내도 고맙고 앞이 흐려집니다. 아마 이 세상 어느 부모도 다 똑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 실습 마치고 집에 와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가렴. 전화를 끊고 가을 하늘을 봅니다. 어제와 같은 가을 하늘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상큼하고 파랗게 다가섭니다. 그리고 아이가 실습을 건강하게 무사히 마치기를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