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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

신영복의 '담론'

마산 앞바다가 보이는 무학산 자락에 드디어 매화가 피었습니다. 꽃샘추위 때문인지 설이 지나 꽃 몇 송이를 피워올렸습니다. 매화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을 서성였습니다. 이제 저는 봄이라고 딱 정해버렸습니다. 제가 정한 엉뚱한 규칙 중 하나가 매화차를 마셔야 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찻잔에 피어나는 꽃송이를 보고 코끝에 스치는 맑은 향내는 행복한 봄을 마중하는 절차입니다.

 

2월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를 엮은 『담론』입니다. 스물일곱의 신영복은 육군 중위로,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이었습니다. 1968년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간첩’이 되었습니다. 대학의 독서회와 서클 세미나를 지도한 것으로 구속됩니다. 통일민혁당 사건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습니다. 1988년 감옥에서 20년 20일을 보내고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합니다.

 

이 책은 동양고전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읽어내는 탈근대 담론과 세계의 인식,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 나아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자기성찰을 다루고 있습니다. 선생은 모든 담론의 중심에 사람을 두고 있으며, 사람 간의 관계를 통한 이야기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관계의 확장을 통해 일어나는 변화와 창조의 가능성에 중점을 주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공부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가슴에서 발로 가는 가장 먼 여행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니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든다고 역설합니다. 책을 읽으며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저에게 매운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봄 햇살이 쏟아지는 여행길에 만난 노오란 수선화처럼 가슴 벅찬 책 읽기였습니다.

 

공부는 한자로 ‘工夫’라고 씁니다. ‘工’은 천(天)과 지(地)를 연결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夫’는 천과 지를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人)이라는 것입니다.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입니다. 갑골문에서는 농기구를 가진 성인 남자로 그려져 있습니다. 인문학(人文學)의 문(文)은 문(紋)과 같은 뜻입니다. 자연이라는 질료(質料)에 형상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이 한다는 것입니다. 농기구로 땅을 파헤쳐 농사를 짓는 일이 공부입니다. / 공부는 살아가는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공부해야 합니다. p.18

 

우리는 가슴이 울먹울먹해지는 사연부터 진한 사색의 향기가 가득한 부분들을 담담하게 낭독하였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읽은 구절들에 대해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펼친 페이지마다 밑줄이 빼곡합니다. 선생께서 감옥에서 보낸 엽서와 붓글씨에 대해서도 참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시대를 일깨우는 스승의 글을 읽을 수 있어 무척 행복하였습니다. 물론 저희는 사적 모임 6명을 잘 준수하였습니다. ^^

 

『담론』, 신영복 지음, 돌베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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