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그 사람의 신분이 되었다. 주住야말로 의衣와 식食을 능가하는 위치로 등극했다. 그러다보니 현대인들은 집의 노예가 되었다. 죽기 살기로 돈을 모아서 집을 산다. 생존을 충족시키기 위한 집으로부터 출발하여, 신분을 나타내는 집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실로 다양하다. 집은 볼 만한 구경거리이다. 필가가 백가기행百家紀行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여기에 있다. /저자 서문 중에서
이 책에는 ‘돈으로서의 집, 신분으로서의 집’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장성 축령산 자락에 있는 한 평의 집부터 경주 최 부잣집과 같은 명부(名富)의 집, 경남 지수면의 의부(義富)의 집, 차를 마시는 다실(茶室) 등이 작가의 지론인 ‘가내구원(家內救援)]의 의미로 소개되어 있다.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청운 조용헌 선생의 글을 무척 좋아한다. 매주 월요일이면 신문에 연재되는 그의 칼럼을 읽는 것이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사주, 풍수, 한의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당호는 다문재(茶文齋)이다. 십여 년 전 이사하면서 이름을 지었다. 차를 마시며 글을 쓰려는 의지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멀리 합포만이 보이고 집을 나와 오 분 정도만 걸으면 무학산 학봉과 마주할 수 있고, 고운 최치원이 거닐었던 산책길이라는 점을 생각하였다. 여기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사람의 마음이 참 중요한가 보다. 집 이름을 짓고 엽서나 편지 끝에 ‘다문재(茶文齋)에서 보냄’이라고 열심히 사용하다가 사는 일에 바빠 잊고 있었다. 그러다 후두둑 벚꽃비가 내리는 오후 베란다에서 봄 풍경을 바라보다 순간 깨달음이 일었다.
‘아, 이 집 이름이 다문재(茶文齋)였지!’
몇 권의 책을 출간하고,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계속하였고, 작은 독서모임을 만들어 책읽기의 즐거움을 함께하고 있다. 나를 공부하도록 도움을 주신 것이 집이 아닐까? 당호의 의미조차 모르면서 작은 아파트를 향해 꿈을 이야기한 것을 성주께서 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곁에서 따듯하게 힘든 나를 일깨워 주셨으리라.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강마을은 분홍 복사꽃과 흰 자두꽃이 눈부신 봄 풍경을 보여준다. 봄이 농익어 있다.
『조용헌의 백가기행』, 조용헌 지음, 디자인하우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