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방정환 등이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아동 노동을 금할 것을 요구하며 어린이날을 제정·선포한 지가 올해로 백 년이 됐다. 식민지 치하에서 ‘어린이 가치’를 일깨운 이 선포는 봉건적 차별에서 어린이를 해방하려 한, 근대적 선각을 보여 준 일대 사건이었다. 이로부터 한 세기를 지나오며 우리의 ‘어린이 가치’는 얼마나 진보했는가? 방정환 선생이 살아계신다면 오늘의 ‘어린이 현상’을 어떻게 비판했을까. 백 년 전 어린이날 선언의 본질을 시대 환경에 맞춰 알차게 구현해 왔는가. 부족한 점이 많았다.
백 년 전 인식에서 못 벗어난 우리
어린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데에 머물러 있다. 다분히 수동적인 관점에 기반한 ‘어린이 보호주의’다. 이는 어린이 가치를 소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래 한국 사회는 적극적이고 개방적으로 어린이 가치를 개발하고 그들의 발달과 성취를 도와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개혁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린이 가치’를 정면으로 감당하는 법과 제도, 정책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 가치’가 미래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의제라면 마땅히 법과 제도로써 추동해야 한다. 다른 정책이나 제도의 종속적이고 부가적인 위상으로 어린이 문제를 다루지 말고 어린이 가치에 정면으로 다가서야 한다. 어린이날을 맞을 때마다 일회성 행사나 이벤트는 무성하지만, 어린이 가치를 구현할 국가적 인프라 구축 노력은 미약했다. 여기에 우리의 반성이 필요하다.
어린이 문제를 보는 당국의 대국적이고 미래지향적 안목도 요청된다. 오늘의 어린이는 내일의 청소년이고, 이어서 나라의 주역이 된다. 너무도 자명한 이치임에도 이 상식을 놓친다. ‘어린이 현상’을 어린이의 문제로만 좁게 보고 접근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지금 여기’의 어린이 문제는 미래 한국의 지향과 연계돼 있다. 이점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어린이 문제’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교육 문제로만 치부하려는 인식은 극복돼야 한다. 어린이 문제는 그들의 문화, 그들의 보건, 그들의 복지, 그들 가정의 건강성, 그들 부모의 고용과 노동, 그들의 미디어 환경 등에 모두 결부되어 있다. 교육은 이들 영역과 상호 작용한다. 어린이 현상에 대한 정책적 관심도 마땅히 이들 모두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삶과 발달에 대한 종단 연구 필요
그런 점에서 학계와 교육계는 어린이 문제들의 삶과 발달을 상당 기간 추적 관찰하는 종단 연구를 늘릴 필요가 있다. 오늘의 어린이들이 장차 한국 사회 전반의 변화와 진화에 어떻게 호응하며 자기 세대의 가치를 구축하는지를 살핌으로써, 어린이를 위한 중장기 정책 개발의 토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노력으로 의미 있는 ‘어린이 문화’가 꽃 필 수 있다. 어린이들이 누리는 ‘어린이 문화’가 당당히 자리 잡고, 그 ‘어린이 문화’를 우리 사회의 다른 세대들이 함께 존중하는 경지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날’ 제정 백 주년을 맞으며,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미래 가치를 담은 ‘어린이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이는 어린이 가치를 부단히 혁신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적 의지와 국민적 관심이 더욱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