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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학교는 ‘민원 공화국’, “교사들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나”

이범희 서울양정고등학교 교장

“걸핏하면 제기하는 학부모 민원 탓에 교사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나 하는가. 어쩌다 학교가 ‘민원 공화국’이 됐는지 모르겠다.” 이범희 서울양정고등학교 교장은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조금만 불만이 생겨도 득달같이 교육청으로, 학교로 민원을 들이민다”며 “교사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학교의 권위도 함께 추락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최근 열기를 더해가는 시·도교육감 선거와 관련해서는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직선제를 하다 보니 인기 영합주의로 흐르고 초·중·고 교원들의 출마가 사실상 불가능해 교수들의 잔치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감을 선거로 뽑는다는 것은 우리 현실에 적절치 않다”며 “교육감을 임명제로 전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되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도입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지난해 3월 서울대 교수를 정년퇴직하고 모교인 양정고 교장에 취임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퍼듀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로봇학회 회장을 지낼 정도로 로봇공학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 권위자이다. 양정고는 1905년 5월 개교한 대한제국 최초의 민족사학. 지금은 서울 시내 손꼽이는 자율형사립고로 자리매김한 명문 고교다.

 

현재 서울 시내 자사고교장협의회 고문으로도 활동하는 이 교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강조한 수월성 교육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는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온갖 규제에 묶인 자사고들이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일반고로 투항하는 일이 벌어졌다”면서 “조희연 교육감이야 속으로 흐뭇했겠지만 수월성 말살 교육은 정부가 할 짓이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 다음은 이 교장과 일문일답.

 

윤석열 당선인 등장으로 교육정책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어떻게 전망하나.

“딱 두 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먼저 정책 입안 시 현장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듣고 전문가 의견도 소중하게 듣겠다고 하더라. 사실 문재인 정부에서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임명되는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 당시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많은 교수들이 그랬다. 우리가 이럴진대 교육부 공무원들은 얼마나 좌절했겠나. 각 분야 전문가를 중시하겠다는 윤 당선인 말에 기대가 크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장점을 살려 선출직을 차지하는 것이야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교육부장관만큼은 전문가를 등용했으면 좋겠다. 정치하는 사람치고 전문가는 없다.”

 

자사고 교장으로서 감회가 남달랐을것 같은데.

“‘교육은 다양성과 수월성을 겸비해야 한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에 박수를 쳤다. 이제 교육이 제대로 되겠구나 싶었다. 자사고와 외고, 과학고는 수월성 교육기관이다. 소위 특목고라고 불리는데 여기는 억압할 게 아니라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특별 지원책을 강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그래야 미래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수월성 교육이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자사고는 부활될 것으로 보나.

“자사고 일괄 폐지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이 제기돼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2025년 모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토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사문화될 것으로 본다.”

 

문재인 정부는 왜 자사고 폐지에 골몰했을까.

“사회주의적 포퓰리즘 때문이다. 자사고 폐지를 놓고 여론조사를 하면 20명 중 19명은 찬성한다. 그러니 교육감이건 국회의원이건 표에 이득이 되니까 자사고 폐지에 열을 올린다. 모두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일방적인 보편성 교육만 강조했다. 심지어 직업교육에서도 수월성 교육을 없애 버렸다. 예전의 명문 직업계고교들이 지금은 모두 몰락하거나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상고나 공고생들이 서울대 등 유명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거의 봉쇄됐다. ‘반수월성 교육’ 정책은 직업교육의 전문성까지 후퇴시켰다.”

 

지난해 일부 자사고들이 일반고 전환을 선언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재정난이 제일 크다. 예컨대 우리 학교는 신입생 정원이 420명이다. 이중에서 사회적배려대상자를 20% 뽑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인원을 채울 수 없다. 결원의 상당수가 여기서 나온다. 이로 인해 한 해 등록금 손실액만 십 수억 원에 이른다. 웬만한 자사고는 재정난을 견딜 수 없다. 몇몇 자사고들이 백기투항한 데는 이런 요인이 크다. 아마 조희연 교육감은 속으로 흐뭇했을 것이다. 참으로 집요하고, 교묘한 자사고 죽이기 정책이다. 그런데 이러면 교육도 망하고 나라도 망한다.”

 

서울대 교수에서 자사고 교장으로 변신했다. 1년 정도 해보니 어떤가.

“지난해 11월 서울 시내 자사고들이 신입생을 뽑는데 9천 명 정도가 지원했다. 이중 6천여 명을 뽑는데 모두 컴퓨터 추첨으로 선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월성 교육하겠다는 학교에서 학생을 뺑뺑이로 뽑는다는 게 말이 되나. 이건 국가가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고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입전형에서 꼭 필요한 게 학생부인데 여기에 경시대회 입상실적이나 영재교육 프로그램 이수실적을 쓰지 못한다. 학생부조차도 ‘하향평준화’시킨 것이다. 게다가 수능도 쉬워졌다. 약간의 변별력이 있기는 하지만 대학입시도 뽑기로 전락한 느낌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단언컨대 답은 노(NO)이다.”

 

자사고 정체성이 많이 퇴색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름은 자율형사립고인데 ‘자율’이 없다. 뭐가 자율인지 모르겠다. 학생선발권도 없고 교사들의 처우를 달리할 수도 없다. 부장수당도 일반고와 같은 월 7만 원, 담임수당은 월 13만 원으로 꽁꽁 묶여 있다. 등록금도 마음대로 못 올린다. 공립학교와 다를 바 없는 자사고라면 차라리 일반고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선생님들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사고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사고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교수생활을 했다. 양국의 교육을 본 소감은.

“미국이 세계 1등 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은 교육의 힘이다. 우리로 치면 초·중·고교에 해당하는 K12부터 대학교육까지 치밀하고 치열하게 교육한다. K12에서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그 학생의 특성을 정확하게 기록해 이를 토대로 잘하는 아이들은 월반을 허용하는 등 수월성 교육을 제대로 한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집대성된 추천서를 입학사정관들이 면밀히 검토해서 판단한다. 또 미국의 대학들은 교육에 열정을 쏟는다. 학생들은 잠 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무섭게 공부한다. 반면 우리 대학들은 연구에만 집중한다. 교수들도 교육은 등한시한다. 교육 없는 대학교육은 사상누각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교육감이 누가 되느냐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교육감을 선거로 뽑는다는 건 적절치 않다. 인기 영합주의로 갈 게 뻔하다. 교육감은 임명제가 바람직하다. 교육부장관이 임명하되 철저하게 자치권을 보장, 마음껏 일할 수 있게 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징계하면 된다. 그래야 유·초·중등분야 전문성과 행정력을 갖춘 초·중·고 교장선생님이나 혁신적인 분들이 교육감이 될 수 있다. 교육감 선거가 왜 교수들의 잔치가 돼야 하는가.”

 

교육부 폐지도 여론의 관심사다. 어떻게 생각하나.

“교육은 백년대계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따라서 중앙정부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부처를 폐지하는 것은 반대다. 다만 교육부의 역할과 기능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너무 많이 간섭하고 통제했다. 고등학교 이하 업무는 교육청으로 완전히 이관하고 대학에도 자율권을 충분히 줘야 한다. 미국의 경우 교육부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딱 세 가지다.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어떻게 하면 잘해줄까, 학생복지를 어떻게 잘할까, 그리고 직업교육에서 수월성 교육을 어떻게 잘할까 등이다. 우리 교육부도 이런 역할에 역점을 둬야 한다.”

 

교육부와 과학기술부 통합에 대한 생각은.

“과학기술과 교육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교육은 상대방이 있는 것이고 과학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 둘을 묶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MB 때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어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인수위가 검토하는 모양인데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학교장으로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요즘 학교는 민원공화국이다. 걸핏하면 교육청에 전화해서 항의하고 민원을 제기한다. 이를 처리해야 하는 교사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미국의 경우 학부모가 학교에 직접 민원을 제기하는 법이 없다. 불만이나 시정요구가 있으면 먼저 학교 PTA에 이를 제출하고 거기서 학부모 위원들이 사전에 검토한다. 그리고 민원이 타당하다고 판단될 때 학교나 교육당국에 이를 전달한다. 개인적 이익을 위한 민원 등 부적절한 것은 모두 이곳에서 사전에 걸러낸다. 우리는 학교건 교육청이건 일단 항의부터 하고 본다.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의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다. 얼마 전 한 학부모가 학교업무에 도움을 줬다고 생색을 내면서 이런저런 요구를 해왔다. 그래서 “교육자하고 딜(거래)하려 들지 마라”고 단칼에 거절했다. “우리 학교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학교로 전학 가라”고 강하게 말했다. 비록 힘없는 교장이지만 학부모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야단친다. 언제부터 선생님은 ‘선생’으로 학부모는 ‘학부형님’이 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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