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은 무섭다. 역사에서 악명높은 인플레이션의 사례는 1914~1918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이다. 전쟁에 진 독일은 프랑스의 보복 감정이 담긴 베르사유 조약 아래에서 끔찍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1922년말 160마르크 하던 빵 한 조각이 1923년 후반에는 2000억 마르크가 됐다. 계란 한 개 값은 923마르크에서 3200억 마르크로 올랐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가 없었다. 그 결과가 히틀러와 나치였다. 조금 과장하면 인플레이션이 히틀러와 나치에게 권력을 주었고 유럽은 다시 제2차 세계대전에 빠져들었다.
지나친 물가상승…경제 '흔들'
코로나 팬데믹이 제대로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독일 사례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우리 나름대로는 심각하다. 연초만 해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저명한 두 경제학자는 다른 주장을 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 있는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인플레이션은 오지 않을 것이니 대규모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고 미 행정부에 권고했다. 반대로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는 대규모 부양책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년 반의 시간이 지나 래리 서머스의 예상이 맞았음이 드러났고,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즈에 자신이 틀렸다는 사과 아닌 사과의 글을 게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플레이션이 문제다. 금년 8월 초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22년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6월과 비교해서 6.3% 상승했고 전월에 비해 0.3%p 상승했다. 2012년 이후 지난 10년간 소비자물가상승률 평균 1.33%의 4.7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모든 물가상승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적정한 수준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어떤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다. 임금의 하방 경직성이라는 것이 있다. 임금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의 상대적인 생산성은 변화한다. 이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서는 상대적인 생산성이 높아진 활동의 임금은 상승하고 반대로 낮아진 활동에서는 하락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르기는 해도 쉽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상품가격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정도여서 상품가격도 같이 하방 경직성을 보인다. 이렇다 보니 물가변동은 0%에 머물지 않는다. 대체로 2% 정도의 물가상승이 임금 하방경직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본다. 각국 중앙은행도 2%를 중심으로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를 운용한다. 이 정도면 정책금리도 올리지 않는다. 이 정도 물가상승에서는 돈을 빌려 투자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자부담의 실질가치가 하락하고 제품가격은 상승하므로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지나친 물가상승은 기업의 원자재 가격과 최종 소비자의 구매 가격을 높여 수요를 억제하게 만드니 도움이 안 된다. 경제성장에도 좋지 않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수요 폭발
최근 소비자물가는 왜 이렇게 갑자기 상승하는가? 경제학은 가격의 움직임을 흔히 수요와 공급에 의해 설명한다. 수요측면에서 보면, 지난 2~3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총수요가 폭발한 것이 한 원인이다. 특히 서비스보다는 재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 즉, 외식보다는 집밥을 해 먹기 위한 식기구와 식재료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한 셈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운반 컨테이너가 부족해 항만이 곤란을 겪을 정도였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높이고 있다. 금리를 높이는 것은 시중에 풀린 돈을 환수하기 위한 방법이다. 대출금리가 낮으면 사람들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가고, 대출금리가 높으면 돈을 갚는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우리 돈으로 2,000조원이 넘는 1.9조달러의 부양책을 실시했다. 지난해 기준 미국 GDP의 7.3%에 해당한다. 이 자금은 총수요 증가를 부채질했다. 정책금리 상승은 이 풀린 돈을 다시 환수하기 위한 것이다.
공급 차질 일으킨 '전쟁'
공급 측면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파괴가 원인이다.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의 군사전쟁, 미국·유럽 대 러시아의 경제적 전쟁, 미·중 간 경제전쟁, 중국 주요 도시 봉쇄 등은 글로벌 공급망을 파괴하고 제약해 생산과 유통을 어렵게 하고 있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공급을 줄여 가격이 급등하고,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막히자 전 세계 식량 가격이 크게 올랐다. 또한 미·중 경제전쟁은 전 세계 공산품의 공급망에 균열을 낳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공급측 요인인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1873년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On War)에서 ‘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으며, 한순간에 전면전으로 치닫지도 않는다. 오랜기간 당사국 간 현실적으로 쌓인 불신이 전쟁의 원인이며 도덕적 잣대로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현재의 전쟁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그간 쌓여온 국가 간 불신과 관계의 불균형이 초래한 것이다. 문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공급망의 제약과 파괴는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래리 서머스는 불황에 빠지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잡은 성공적인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으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이자율 상승은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생산활동을 위축시킨다.
금융자산 가치하락..장기에 주목
인플레이션은 가만히 앉아서 현금성 금융자산 가치를 갉아 먹는다. 현금의 구매력은 하락한다. 채권의 실질가치도 하락한다. 예금의 실질 이자소득도 하락한다. 인플레가 지속되면 예금도 대출도 감소하여 중개 기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빌려주는 것보다 빌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 하지만 모두가 마찬가지여서 자금시장 자체가 위축된다. 장기적으로 주식의 실질가치도 하락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은 1948~2021년 평균 3.5%였는데, 1970년대는 7.8%였다. 주가지수 증가율은 1897~2021년 평균 7.7%였지만 1970년대에는 2.1%였다. 반면 원자재, 부동산을 포함한 실물자산의 시장가격은 오른다. 그래서 돈은 빌려주지 말고, 오히려 빌려서 실물을 사라는 말이 나온다. 주식의 가치가 단기적으로는 어떤가? 주식은 기업의 가치에 대한 청구권이다. 기업가치는 실물자산의 변동에 연동할 수 있다. 또한 인플레이션 아래에서도 기업은 이윤을 낳고 주식가치는 오를 수 있다.
금융자산의 가치가 하락한다고 해서 모든 금융자산을 실물자산으로 전환할 수는 없다. 전환 타이밍을 잡기도 쉽지 않고, 전환비용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기와 장기적인 측면을 모두 보아야 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정책당국은 이자율을 인상한다. 1970년대 후반에 인플레이션율은 15%였는데 정책금리는 20% 수준이었다. 유명한 볼커 룰이다. 정부가 매우 공격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기 시작하면 이자율 급등으로 부채유지 비용이 커진다. 그래서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주식은 주가가 빠지기 전에 팔고 주가가 빠진 상태에서 사야 한다. 다만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워렌 버핏도 모른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