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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교육시점 2] 초등 1학년 교실, 교육부장관만 몰랐나

학제개편 논란이 남긴 것 (2)

초등학교는 만 6세부터 만 11세의 아이들이 동일한 시간표에 따라 생활한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아이는 8시 40분~9시 등교, 40분 수업, 10분 쉬는 시간이라는 표준화된 학교생활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초등학교 생활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운영되던 놀이중심 감각통합 수업방식과 다르다. 20명 전후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책상과 의자에 40분 동안 앉아 공부하는 것은 만 6세 아동들에게도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휴직하는 부모들이 많고, 아이의 학교적응을 최우선 과제로 두는 것이다.

 

정부는 저출산의 주된 원인으로 사교육비와 경력단절의 부담이 크다는 조사를 근거로 입학연령을 1년 낮추면 사교육과 돌봄문제가 해소되어 출생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지만, 교육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생각은 다르다.

 

 

조기 사교육 가능성은 왜 몰랐을까

초등학교 1학년은 오후 1시 전후에 하교한다. 유치원·어린이집이 오후 3시~5시 사이에 하교하는 점을 고려하면 학부모가 느끼는 돌봄 부담은 크다. 연간 수업일수도 초등은 약 190일인데 유치원·어린이집은 210일~240일이어서 학부모가 체감하는 돌봄 부담은 더 무겁다. 맞벌이 가정은 학교 안에 있는 초등돌봄교실과 지역의 돌봄기관을 이용하는데, 현재 돌봄기관은 신청자 전부를 수용하지 못해 추첨이나 선착순으로 일부만 수용할 수 있다. 돌봄에 탈락한 아이들은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며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일명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 충분한 돌봄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 5세 입학연령 하향은 맞벌이 학부모에게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현재 초등학교 아동들의 돌봄 수요도 충족하지 못하는 형편에서 만 5세 아동의 입학으로 늘어나는 돌봄 수요 학생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돌봄교실은 학교수업만큼 관리되고 있지 않다. 만 5세 아동이 수업을 마치고 돌봄교실로 가면 그저 아이들을 붙잡아두고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만 5세 입학은 사교육의 진입연령도 함께 낮추게 될 것이고, 이른 나이에 경쟁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학부모들은 우려한다. 2017년 조사된 영·유아 사교육비는 연간 3조 7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2.7배를 뛰어넘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만 5세 아동의 초등입학은 더욱 가파른 사교육비 폭증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1. 실제로 지난 7월 29일 교육부의 입학연령 하향 발표에 발맞춰 스마트러닝 업체, 교육콘텐츠 제작 및 컨설팅 업체 등 교육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상승했다.

 

만 5세와 만 6세는 13~24개월의 차이가 난다

전교생이 같은 규격의 급식판과 의자를 사용하는 급식환경은 초1 학생들만을 위한 배려가 없다.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동일한 음식을 먹는 학교급식에 적응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힘든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은 유치가 빠지기 시작해 앞니가 없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깍두기나 단단한 과일을 못 씹어서 급식시간마다 매번 어려움을 겪는다. 교사는 아이가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는 음식을 챙겨야 하고, 편식하는 아이들을 달래고 타일러야 한다. 만 5세 아동의 개인차는 만 6세보다 커서 급식시간이 지금보다 2배 더 소요될 것이다.

 

게다가 1월생과 12월생의 차이는 현격하다. 그래서 1·2월에 자녀를 출산하려고 임신을 계획하기도 한다. 그만큼 같은 출생연도 안에서도 신체적·정신적 발달에 차이가 있는데 만 5세를 만 6세와 같은 학급에서 생활하게 한다면, 13~24개월 차이로 인한 당연한 학습결과와 또래관계 형성의 차이를 자신의 능력부족으로 여겨 자존감이 낮아지고, 학교활동에 소극적일 수 있다.

 

만 5세 아동과 만 6세가 함께 다니는 과도기도 문제지만, 그 이후 만 5세끼리 초등학교 1학년을 시작할 때도 문제는 여전하다. 1년 일찍 입학시키는 것은 학생으로 하여금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할 수 있고, 자발성·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으며, 조기 한글교육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자교육은 일찍 시작할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사실은 뇌과학 및 소아정신과 연구로 밝혀졌다. 문법과 철자를 익히는 데 사용되는 좌뇌는 7세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달한다. 그 전에 글자를 배우면 창의력·상상력을 키울 기회를 크게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뇌는 7세 이후 퇴보하기 시작하므로 영·유아기 아이들은 읽기교육보다 감각을 자극하는 활동이 적절하다. 우뇌 발달시기를 놓치면 비언어적 의사소통능력은 물론 창의적·직관적인 문제해결능력이 충분히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독일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유아기에 문자교육과 같은 인지학습을 강요하면 아동의 신체발달을 해친다는 이유로 조기입학을 허용하지 않는다. 발달상 학습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학습을 시작하는 것은 ‘공부란 억지로 하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줄 수 있고, 아이들은 불안과 우울감, 자존감 하락 등 심리·정서적 문제를 겪을 수 있다.

 

해외연구들에서도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문자교육을 하면 부작용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노르웨이에서는 5~6세에 읽기를 시작한 아동이 7세에 시작한 아동보다 읽기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연구보고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조기교육을 경험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학습부진이 될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핀란드·독일·영국·이스라엘 등 많은 교육 선진국들은 7~8세 이전 아이들의 문자교육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EBS <극한직업>에서 취재한 초등 1학년 교사

아이들은 공간지각력 발달이 완성되지 않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학교 안에서 길을 헤맨다. 학교건물은 대부분 1970년대에 지어져 증축을 거치다 보니 구조가 복잡한 곳이 많다. 만 6세 아동들도 보건실과 방과후교실 위치를 찾기 힘들고, 친절하지 않은 학교구조에 적응하기 어렵다. 리모델링 없이 이대로 만 5세가 입학한다면 학교환경은 두려운 공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교하는 일도 첩첩산중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방과후 스케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학교 후문으로 다니는 아이가 정문으로 나가게 되면 어떻게 집으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만 6세 아동에게도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을 익히는 것이 힘들다. 더군다나 아이들마다, 요일마다, 방과후 스케줄이 각양각색이다. 교사가 아이들을 하나하나 확인해서 후문으로 가는 아이들, 정문으로 가는 아이들, 방과후교실로 가는 아이들,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 지역아동센터로 가는 아이들, 돌봄교실로 가는 아이들 따로따로 구분해서 순차적으로 데려다주는 훈련이 거의 1년 내내 이뤄진다. 왜 초등 1학년 교사를 EBS <극한직업> 프로그램에서 취재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원격수업으로 전환될 때마다 1학년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는 일로 학교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아이는 혼자 집에 갈 수 없는데 학부모님은 회사에 있거나 곧장 자녀를 데리러 오지 못해 난감했던 일이 많았다. 만 5세 아동이 입학한다면 난처한 상황들은 더 많이 벌어질 것이다.

 

초1 학생들 가운데 부모와 떨어지는 것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만 5세라면 분리불안을 더 많이 느낄 것이고, 복통·두통을 호소하며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달래야 하는 일이 자주 생길 것이다. 만 6세 아동 중에는 배변훈련이 안 된 아이들도 더러 있다. 교사는 여분 옷을 미리 교실에 준비해두어야 한다. 학생이 배변 실수를 하면 교사는 샤워기도 없는 화장실에서 서둘러 뒤처리를 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부모에게 연락해야 한다. 교사가 자리를 비운 교실에서 나머지 아이들은 기다려야 한다. 만 5세 아동이 입학한다면 이런 상황이 빈번할 것이다.

 

만 5세가 입학하는 영국은 한 학급에 담당교사가 3명이고, 식사지도 및 운동장 안전지도를 하는 관리안전요원이 따로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만 5세 입학에 대한 교원 수를 고려하기는커녕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올해 1천여 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교원감축에 나섰다. 또한 입학연령 하향정책과 함께 발표된 첨단분야, 특히 반도체 관련 인력을 늘린다는 교육부 정책은 경제성장에 교육을 종속시키고, 학생을 민주시민으로 기른다는 교육 본연의 목표는 보이지 않는다. 만 5세 입학연령 하향은 학생을 산업시장에서 판매되고 거래되는 미래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시장만능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도출된 정책으로 읽혀진다.

 

‘교육청 패싱’으로 이뤄진 만 5세 입학연령 하향정책

단체생활의 교육효과와 아동발달단계를 고려할 때 만 5세가 적절하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문제는 신중한 검토와 현장 조사, 공론화 없이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국가 책임제로 교육의 출발선부터 격차를 해소한다는 의도를 실현하려면 만 5세의 발달단계를 고려한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졌어야 했다. 만 3세~5세 누리과정에서 만 5세를 분리하여 유아학교로 운영하거나, 국·공립유치원 수가 부족하다면 초등학교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도 타진해볼 수 있었다. 또는 현재의 6-3-3-4 학제개편을 축소하고 그에 맞춰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문제도 함께 논의 선상에 올렸어야 했다. 물론 학생들이 대학 4년을 보내고 바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느라 학교에 적을 두고 오래 머무는 현실을 보면 학제개편은 다양한 영역의 사회문제와 보조를 맞추어 진행되어야 한다. 이번 발표를 두고 시·도교육감들은 ‘교육청 패싱’이라고 비판했지만, 교육의 최전선에서 만 5세를 마주할 일선의 교사들이야말로 철저히 무시되었다.

 

교육부는 과거에 비해 요즘 만 5세 아동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발달이 빨라져서 1학년에 입학해도 괜찮을 것이라 했지만, 이에 대해 실제 연구로 입증된 근거가 없다.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신체발달이나 학습능력은 향상되었을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사회성·도덕성 발달이 학교에 다닐 만큼 준비가 되었는지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조기입학생은 2011년 4,089명에서 점점 줄어 2021년 537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만 5세 아이들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거나, 학교적응이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을 추적 조사한 근거자료 없이 1년 일찍 보내 1년 일찍 졸업시키겠다는 정책에 한숨이 나온다.

 

더욱 염려되는 문제는 따로 있다. 2025년부터 입학하는 만 5세 아동은 코로나19가 발생한 2019년에 태어난 코로나 베이비들이다. 뇌 발달은 영·유아기에 급속도로 성장하여 생애 초기 경험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출생부터 3세까지 부모와 애착관계를 건강하게 맺고 안정적인 돌봄을 받아야 성장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회복탄력성이 만들어진다. 2025년 만 5세가 되는 아이들은 생후 3년을 오롯이 코로나19 펜데믹과 함께 보냈다. 따라서 아이들이 인지적·심리적·정서적인 면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아이들을 중심에 두지 않은 교육정책은 환영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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