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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 2] 트라우마 시달리는 교사들, 생명이 위험하다 

“요즘 우리 과에 선생님들 왜 이렇게 많이 와?” 
최근 세상을 떠난 초등교사 자살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우리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안타까운 자살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공립 초·중·고 교원 100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초등학교 교사가 57명으로 가장 많았다. 고등학교 교사 28명, 중학교 교사는 15명이었다. 작년 기준 전체 교사 44만여 명 가운데 초등교사는 44%다. 그런데 극단 선택을 한 교사 가운데 초등교사 비율은 57%에 달했다.


교육 당국이 ‘원인 불명’으로 분류한 70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30명 중 절반이 넘는 16명이 우울증·공황장애로 숨졌다. 그다음은 가족 갈등(4명), 신변·질병 비관(각각 3명), 병역 의무(2명), 결혼 준비·투자 실패(각각 1명)로 분석됐다.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는 2018년 14명에서 2019년 16명, 2020년 18명, 2021년 22명으로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학생과 교사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가 6년간 2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13명), 부산(9명), 경북(8명), 충남(7명), 전남·전북(각각 6명), 강원·대구·대전(각각 5명), 울산·경남(각각 4명), 인천·세종(각각 3명)순이었다. 광주·제주·충북은 1명도 없었다.


사실 최근 수년간 학부모나 학생이 교사에게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일이 늘어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인식해왔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자체가 비밀 보장을 근거로 하기에 환자의 직업이나 신상 등을 노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별 통계가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최근 몇 년간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선생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마 정신과 의사들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제가 교사로서 부족해서 이렇게 상담까지 받다니” 
정신건강 문제는 업무 스트레스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존재이며,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안은 개인적 요소와 사회적인 환경이 복합되어 일어날 수 있다. 일부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가 기존의 정신건강 이력이 있었다면서, 마치 그로 인해 학교 시스템의 문제와 학부모의 갑질이 전혀 무관한 것처럼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기존에 정신건강 이력이 있으면 모두 개인 책임이고, 없으면 사회 책임이라고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증상이 심한 순서대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와 결단 그리고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어느 정도 있을 때 상담과 치료를 받으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는 사람은 이상하거나 미친 사람이라는 인식은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사람이 나약하고 의지가 부족하다는 인식은 존재하고 있다. 교사들은 정신적으로도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있기에, 도움을 받으면 나약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전처럼 학부모나 학생들이 존경심을 보이거나 예의를 갖추지 않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사는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기에 이런 스트레스에 대해서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기 업무에서 완벽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완벽하려는 것은 일종의 강박이다. 병원의 환자들도 사회적으로는 존경받아 마땅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의사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도 많다. 즉 정신과에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정신과에 가는 시기가 있고, 잘 살아가는 시기가 있는 것이다. 

 

“한번 오고 나면 끝인 손님이 아니라서”
카페에서 일하거나, 창구 업무를 보는 은행원,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 콜센터 근무자 등 대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진상을 겪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어떤 일을 하든 이상한 사람은 마주치기 마련이다. 다만 그 가해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냐 작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하루에 진료하는 28명의 환자 중 1명의 환자 및 보호자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필자를 괴롭히더라도, 그 환자를 업무시간 내내 대면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각각의 환자를 진료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동떨어진 시간이 존재한다.

 

반면 한 교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은 어떨까? 수업시간 내내 나를 가해한 학생을 대면해야 한다. 나를 가해한 사람이 보호자라면 그 가족을 대면하는 것인데, 당연히 안 좋게 오고 간 말이나 행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역시 다른 환자를 진료하다가도 그 생각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선생님들을 괴롭히는 학생 또는 학부모 1명 때문에 나머지 27명의 학생에게 할애할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은 어쩔 수가 없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카페·은행·병원·콜센터와 달리 업무시간 내내 트라우마를 유발한 근원을 지속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그 고충 때문에 교사들이 더 힘들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상호작용하므로, 교사의 정신건강은 개인의 건강을 넘어 학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교사라는 이유로 무조건 참아야만 하는 현실” 
 직접적으로 나를 힘들게 한 사람보다도 이를 도와주지 않고 방관한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는 경우는 흔하다. 은행 창구에서, 자기가 원하는 금리를 주지 않는다고 소란을 피운 손님이 있었다고 가정할 때 그 은행원은 불가능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고, 큰 소리에 억울하고 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더 화가 났던 것은 그 손님보다도 뒤에 앉아있던 팀장이었다. 전혀 도와주지 않고, “왜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처리를 못해서 지점에서 큰 소리가 나게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기 때문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다. 그나마 표면적으로라도 말려준다면 참으로 다행이다. 


교사들 중에 학부모나 학생의 갑질이나 스토킹을 경험하고도 마치 그것이 교사의 자질 부족이라는 식의 비판을 받은 경우도 흔하다. 같은 직업의 동료라고 해도 완전히 같은 상황에 놓이기는 어렵다. 내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을 해서 더 큰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하다 힘든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그 자리에서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힘든 일을 이겨내려면 속풀이를 하고, 서로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동료가 큰 도움이 된다.

 

직접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서로 들어주고 위로하는 것만으로 도움이 된다. 특히 관리자들은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감정을 억압해서 빨리 해결하는 것을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교사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견뎌내야 한다는 식의 태도는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 


세상 어느 곳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곳은 없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빨리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희망이 없다는 무망감(hopelessness)과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느낌인 무조감(helplessness)은 자살 위험과 큰 관련이 있다. 학생들은 교내 위클래스·관내 위센터 등을 이용하여 상담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학교폭력 등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이 수년간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교사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과 돌봄은 부족했다. 이제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면서 행정업무까지 도맡는 상황, 학교와 구성원 조직의 분위기나 특수한 문화에서 비롯되는 고충을 상담할 수 있고,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선생님들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한 것은 분명하다. 모든 관계에서 한쪽의 과도한 희생으로 간신히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결국 상처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선생님 감사하다는 말도 낮에만 하기 운동 
학부모들이 노력할 부분도 크다. 교사도 쉴 시간이 필요하고, 노동과 휴식이 분리되어, 근무 외 시간에는 업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 교사 자살 사건 이후로 괜히 학부모들이 주말에도 ‘선생님 감사해요. 저희는 선생님께 늘 감사하고 있어요’라는 문자를 보내서 선생님들이 답장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러니를 느꼈다. 조금 더 선생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면 근무시간도 아닌데, 그런 문자를 보냈을까 싶다. 결국 그것도 자기 죄책감을 교사에게 전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모도 교사도 완벽할 수는 없다.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다가 불완전함을 느끼면, 타인에게 이를 투사하고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자식을 키울 때 불완전한 부분을 똑바로 건강하게 바라본다면 괜히 남탓을 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잘못하는 그 부분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가정에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사랑과 교육을 교사에게 강요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께 연락하거나, 내 아이에게만 잘 하라고 따진다고 해서 아이가 잘 크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그런 양육태도가 훗날 부모에게 어떻게 되돌아올지 고민해본다면 답은 간단하다. 건강하고 행복한 교사가 결국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받으면서 학교 안에서 생활할 때 서로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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