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날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모처럼 만의 비에 겨울가뭄이 해소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갔습니다. 걸어서 20분 남짓. 겨울이지만 차갑지 않은 날씨에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등교하여 강당으로 졸업생들과 재학생들, 학부형들이 앉을 의자를 2학년 아이들과 나릅니다. 비가 내리는 관계로 한 손엔 우산을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엔 의자를 들고 강당과 교실을 오가는 아이들의 얼굴이 해맑습니다. 조금은 귀찮을 터인데도 그런 표정이 없는 아이들을 보니 떠나보내는 선배들을 위한 아이들의 마음이 보입니다. 수정아 졸업 축하한다 강당의 의자를 정리하고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졸업생인 수정(가명)이라는 아이가 찾아와 인사를 합니다. 겉옷도 입지 않고 얇은 옷차림입니다. “선생님, 저 왔어요.”“수정이구나. 졸업 축하한다. 그런데 추운데 옷이 그게 뭐니?” “봄인데요. 안 추워요.” 춥지 않다며 피식 웃던 수정이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고맙다는 말을 합니다. “저 졸업하게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뭐가 고마워. 다 네가 참아줘서 한건 데. 암튼 너 졸업하는 모습 보게 되니 좋구나.” “아니에요. 안 도와주었으면 졸업하지 못했
"가장 축복받은 나라는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나라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영웅을 갈망하고 있다. 누군가가 특별한 인물이 나타나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단숨에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영웅은 시대가 만들지 그 사람이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영웅을 원한다. 아니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 영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영웅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각자 다른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나라를 구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부모형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영웅들의 영웅이야기를 한 책이 있다. 다. 이 책에는 24명의 스포츠 영웅, 전쟁 영웅, 노벨상 사상자, 예술가, 과학자,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남편과 형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 책에서 말한 영웅들이 전해주는 자신들의 영웅 중엔 위대한 업적을 남기거나 세상에 특별히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남은 자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준치가시. 책 표지엔 붓글씨체로 커다랗게 '준치가시'가 쓰여 있다. 그리고 그 밑엔 자신의 몸길이의 삼분의 일 정도나 되는 커다란 눈망울을 한 호기심 가득한 모습의 귀여운 물고기 한 마리가 자리 잡고 있다. 표지를 보다가 첫 장을 펼치면 '어, 이게 뭐야?'하는 반문을 하게 된다. 옅은 파랑과 보랏빛 수초 위로 아주 작은 녀석이 눈망울만 멀뚱히 뜬 채 어디인가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면을 자세히, 정말 아주 자세히 살펴보면 짧은 글귀가 쓰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준치는 옛날엔 가시 없던 고기." 백석 시인의 '준치가시'란 시를 모르는 어린이나 어른들은 정말 '이게 뭐야?'하는 반문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작은 웃음과 함께 하나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준치'라는 고기가 가시가 생기게 되었는가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그럼 '준치가시'란 시의 맛을 잠깐 보자. 준치는 옛날엔 / 가시 없던 고기. 준치는 가시가 / 부러웠네. 언제나 언제나 / 가시가 부러웠네. 준치는 어느 날 / 생각다 못해 고기들이 모인 데로 / 찾아갔네. 큰 고기, 작은 고기, / 푸른 고기, 붉은 고기. 고기들이 모일 데로 /
우리 주변엔 부모가 이혼하고 편부나 편모 밑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 때론 양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홀로 살아가는 아이도 있다. 겉으로 보기엔 밝고 예의도 있어 속에 아픔을 지니고 있다는 걸 모른다. 그러다 우연히 이야기를 하다보면 밝은 미소 속에 커다란 상처들을 조각조각 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부모의 헤어짐은 단지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별의 아픔은 당사자보다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그 아픔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깊은 상실감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면서 그 슬픔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꿋꿋이 이겨낸다. 스에요시 아키코의 소설 에 나오는 열한 살의 소년 ‘요군’처럼 말이다. 어느 날 사랑하는 아빠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나가버리고, 이에 충격을 받은 엄마가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남은 아이들은 어떤 심정일까? 혹 세상에 엄마 아빠 없이 홀로 남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과 초초함 속에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돌아온다. 이 때 아이들은 돌아온 엄마를 바라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요군의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먹고 살기 위해 프리랜서로 여러 잡지사에 글
“햇살과 함께하는 감미로운 책읽기는,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스무 살 무렵, 내가 살던 집은 몹시 작고 내가 쓰던 방은 더욱 작았다. 그래도 동쪽, 남쪽, 서쪽으로 창이 나 있어 오래도록 넉넉하게 해가 들었다. 어려운 살림에 등잔 기름 걱정을 덜해도 되니 다행스럽기도 했다. 나는 온종일 그 방 안에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상을 옮겨 가며 책을 보았다. 동쪽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어느새 고개를 돌려 벽을 향하면 펼쳐 놓은 책장에는 설핏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책 속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면 얼른 남쪽 창가로 책상을 옮겨 놓았다. 그러면 다시 얼굴 가득 햇살을 담은 책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날이 저물어 갈 때면, 해님도 아쉬운지 서쪽 창가에서 오래오래 햇살을 길게 비껴 주었다." 스무 살의 이덕무의 모습이다. 서자로 태어나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스무 살 청년은 햇살을 따라 상을 옮겨가며 책을 읽는다. 반쪽 양반인 그가 세상 속으로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양반 축에 끼어 세상을 논할 수도 없었고. 평민 자리에 끼어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수도 없는 주변인인 그는 가슴 속의 답답함을 글
방학에 들어간 지도 일주일이 되어간다. 새해가 되면서 아이들은 문자를 통해 새해 인사를 해왔다. 졸업생도 있고 올해 우리 반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오늘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자 하나를 받았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허리 아픈 건 좋아지셨고요? 그런데 선생님 일 년 동안 제 이름 몇 번이나 불렀는지 아세요?" 아이의 약간은 도발적인 질문을 받고 잠시 멍해졌다. 그리곤 생각해보았다. 문자를 보낸 아이와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얼마나 불러주었는지.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돌아보니 어떤 아이는 여러 번 이름을 불러주었고, 어떤 아이는 겨우 몇 번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 문자를 보낸 아이를 떠올려봤다. 늘 조용하고 말이 없는 아이였다. 얼굴을 마주치면 슬며시 눈길을 피하기도 했던 아이였다. 그럴 때마다 "왜 눈길 피하니?"하며 말을 붙였던 아이였는데 오늘 뜬금없이 이런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아이의 문자를 받고 이런 답을 해주었다. "글쎄다 열다섯 번 정도.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답이 왔다. 그런데 그 답은 나를 '선생님은 나에게 너무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하는 힐책 같은 거였다. "아니에요
전쟁의 아픔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전쟁의 비극을 이야기하면 얼마나 이해를 할까? 실제 전쟁마저 무슨 한 편의 영화처럼 보여주는 현실 속에서 어린 세대에게 전쟁을 이해하라는 자체가 어쩌면 비현실적인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우리 현실 속에 존재하며 지금도 그 전쟁의 아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과 북녘 땅 고향을 가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 그리고 대를 이어 옹기를 구웠지만 팔리지 않은 항아리를 바라보며 옹기장이를 그만 둔 옹기장이의 삶과 가슴마다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밝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을 그린 책이 있다. 손호경의 솔뫼골 밤꽃 도둑이다. 이 책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상처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재우의 시선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재우의 할아버지 고향은 북녘이다. 전쟁 때 남으로 피난 와 감나무 과수원을 하면서 고향에 있는 할머니와 가족들을 그리워한다. 재우 아버진 농사짓기 싫어 서울 생활을 하다 재우의 교통사고와 함께 귀농을 하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늘 재
학년말 종업식을 앞두고 교무실은 분주하다. 새 학년 업무분담에서부터 아이들과 마무리학습정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생활기록부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생활기록부 마무리작업을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아이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생활기록부 담당 선생님이 부른다. “생활기록부에 누락된 부분 확인하고 넣어주세요.” “등본상의 기록과 같은데요.” “아빠가 살아계시면 아빠 이름하고 생년월일 넣어야 해요. 돌아가셨으면 ‘사망’이라고 쓰고요. 우리 아이들은 너무 많이 빠졌어요.” 담당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결손 가정이 많아선지 생활기록부에 아빠 성함란이나 엄마 성함란에 이름과 생년월이 빠진 아이들이 한 반에 여섯 일곱 명은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모가 살아계시면 넣어주는 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확인해서 기록해달라는 부탁이다. 우리 반에는 네 분의 이름이 빠져있다. 그 중 두 분은 세상을 떠났고, 두 분은 이혼. 두 아이에게 배경설명을 해주고 아빠 성함과 생년월일을 묻자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러면서 마지못해 알려주며 꼭 넣어야 하냐며 반문한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끝내고 생활기록부 마무리 작업을 막 마치자 전화벨이 울린다. 그 중 한 아이의 엄마다. 그러면서 조
눈 오는 날은 동심으로 돌아간다. 던지고 피하고 넘어지면서 깔깔깔 웃다보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저절로 사라진다. 그래서 눈싸움은 싸움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놀이다. 아이들의 신선한 웃음소릴 들을 수 있는 청량음료이다. 그리고 함께 하는 어른도 동심으로 빠져들게 한다.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 이런 젼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홇배이셔도 마침내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 하니라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듧자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쑤메 뼌한킈 하고져 할따라미니라"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열에 열이 세종대왕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것을 들어온 우리는 한글이 세종대왕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지었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아니 한 적도 없을 것이다. '세종어제 훈민정음'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훈민정음은 세종이 지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헌데 이런 생각에 의문을 품고 써내려간 소설이 있다. 북한에서 평양사범을 졸업하고 교육자로 일하고 있다고 하는 박춘명의 소설 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아닌 집현전의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전제하여 글을 진행하고 있다. 거기에 집현전의 학자들 중에서도 성삼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만들었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무얼 했는가? 소설에서 세종대왕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표현할 수 있는
“나 속상해 죽겠어요. 정말 이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어제 그 장학금 때문에요. 어제 퇴근 무렵 아이 엄마가 전화해서 장학금 자기가 쓸 테니 아이한테 돌려보내라고 했잖아요. 안 된다고 했더니 교장실로 찾아와서 달라고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이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들 보기도 염치없고요.” 옆자리에 앉는 고 선생님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한숨을 푹푹 쉬며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한다. 장학금 문제 때문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한 달 전, 외부에서 장학금 50만원을 주겠다며 한 학년에 한 명씩 추천해달라기에 고 선생님 반 아이를 추천했다. 50만 원이면 작지 않은 돈이라 대부분의 담임들이 자기 반 아이에게 장학금을 주려고 한다. 그런데 고 선생은 자기한테 양보해달라며 아이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는 2학년 들어 수업료를 한 번도 내지 않았다. 그래서 1학기 때도 보태어 수업료 내라며 장학금을 주었는데 써버렸다 한다. 행정실의 독촉도 있고 해서 이번에 나온 장학금을 아이한테 주어 밀린 수업료를 내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어제 장학금을 받아 오자 아이 엄마가 쓸 때가 있다고 바로 아이한테 돈을 가져오라고 했다 한다
얼마 전 한 지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지인은 달항아리에 대한 느낌을 전율이라고 표현했다. 일본의 한 전시관에서 달항아리를 마주하는 순간 그 친구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신비함에 빠져 30여분을 그 자리에 서서 그 달항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다. 달항아리에 대한 어떤 것이 그렇게 만들었냐고 묻자 그 친구는 '완전한 비움, 순진무구함, 어떤 완벽함 그리고 신비로움' 뭐 이런 표현을 빌려 말을 했지만 달항아리라는 것을 한 번도 듣지도 구경도 못한 나에겐 그 말들이 그저 귓전을 윙윙거리고 맴돌고 가는 바람소리처럼 들렸었다. 그러다 이번에 그 달항아리를 다시 한 번 듣게 되었다. 아니 보게 되었다. 이우복의 라는 책을 통해서다. '옛 그림의 마음씨'라는 예쁜, 아닌 정겨운 이름 속에서 내가 감상한 것은 많은 그림들과 그 그림을 그린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옛 선인들의 영혼과 손끝에서 피어난 도자기의 순수였다. 그리고 난 글을 따라가다가 예의 그 달항아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달항아리를 보고 큰절을 하다 회색빛 어스름 무렵에 서 있는 것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 항아리 사진을 바라보며 "이게 정말 그 친구가 3
지난 10월 20일, 교육부는 교원평가 추진일정을 확정 발표하면서 2008학년도부터 평가를 전면적으로 실시한다고 했다. 헌데 교원평가 추진 일정을 확정 발표하는 시간에 교육부는 ‘교원평가 공청회’를 하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공청회가 끝나기도 전에 교원평가 추진일정을 발표하는 성급함과 조급함을 보였다. 공청회도 문제이다. 공청회라 하면 해당 당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터인데 그러지 못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 시도교육청에서 동원된 관료들이고 공청회장에 들어가려는 일부 교사들은 입장을 못하게 막았다 한다. 왜 그들은 당사자들의 의견수렴이 없는 공청회를 개최하고 진행할까. 혹 명분을 쌓기 위한 공청회는 아니었나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큰 병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 병’이라고 한 적이 있다. 건물 하나를 짓고, 다리 하나를 놓더라도 주변 환경이나 여건을 도외시한 채 빨리 완공을 해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칭찬받았다. 그렇게 지은 건물과 다리가 뒤에 어떤 문제가 야기될 것인가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훑고 지나갔다. 형식적인 공청회나 의견수렴으로 말이다. 그럼 우리나라의 교육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교육도 그 조급
“나도 딸이 있지만 내 딸도 그럴까봐 걱정이 돼요.” “왜요. 무슨 일 있었나요?” “지난 일요일 우리 집 가게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밥 먹으로 왔는데 어찌나 입이 걸던지 듣기가 민망했거든요.” 몸이 안 좋아 자주 가는 한의원에 치료 받으러 갔을 때 간호사가 날 보고 한 말이다. 그 간호사의 남편은 식당을 운영하는데 쉬는 날이면 남편의 가게에서 일을 도와준다고 했다. 그날 삼십여 명쯤의 여고생들이 밥을 먹으러 와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들을 주고받았는데 그 간호사에겐 무척 거북할 정도로 듣기 싫었다 한다. 요즘 아이들의 언어행태를 보면 두세 마디에 한 마디씩의 욕설 비슷한 게 들어간다. 아이들 세계에선 그저 단순한 대화의 형태이지만 나이가 좀 든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굴 뜨거운 말들도 많다. 학교에서 얌전히 공부만 한 아이들도 저희들끼리 만나 대화를 하는 걸 보면 욕설이 다반사로 흘러나오는 걸 볼 수 있다. 그런 아일 보고 ‘너도 그런 욕 하니?’ 하고 물으면 옆에 있는 아이들은 무에 그리 신나는지 ‘얘, 엄청 잘해요. 안 하는 척 하는 거예요.’ 하고 일러바친다. 요즘 부모들은 자신의 아들 딸은 행동이 바르고 욕설 같은 건 안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
우리 사회에 인터넷 문화가 일반화 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우표가 붙은 편지가 사라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때 수많은 연인들이 사랑의 감정을 듬뿍 담아 밤새워 고민하며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부쳤던 편지. 전화가 일반화되었을 때도 말로 하지 못했던 마음 속 이야기들을 수줍게 한 땀 한 땀 써내려갔던 기억이 새롭다. 군대에 가서 훈련병 시절 입었던 사복을 집으로 보내며 그리움과 눈물로 써서 보냈던 편지. 사랑하는 엄마 아빠도 아닌 '아버님 전상서'로 시작되는 편지를 보내면서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달았던 시절도 이젠 희미한 추억으로 흔들거림을 본다. 그 사랑받았던 편지가 멀어지면서 어느 때부턴가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잘 살게 되면서 가난한 시절 애환을 함께 했던 보리밥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되듯이 우표가 붙은 봉투에 또박또박 주소를 눌러 쓴 편지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물씬 안개처럼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 그 속엔 전자우편으로, 전화로, 문자로는 묻어나지 나지 않은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이가 보내온 편지 한 통 선선한 가을바람이 산들산들 창을 타고 넘어오는 오후. 노랗게 익어 까치밥이 되어 가고 있는 교정의 감을 바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