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추운 겨울이다. 날이 차다. 바쁠 때이다. 집보다는 밖에 있는 시간이 많다. 평일에도 늦고 주말에도 모임에 나갈 때가 종종 있다. 6살 아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적어 아쉽기도 한 때이다. 작년 겨울에 아들과 둘이서 갔던 과천의 과지초당(瓜地草堂)과 추사박물관이 생각난다. 작년 이맘때, 모처럼 주말의 휴일 어느 날, 5살 아들과 둘이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면 아이 엄마가 집안 정리를 하는 데 편리하다고 했다. 아이 엄마는 며칠 전부터 생각한 아이 방의 배치를 바꿀 심산이었다. 일종의 임무가 주어졌다. 그런데 집 밖은 날이 차고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 어디로 갈까. 봄가을에 자주 가던 집 근처 공원에서 장시간 아이와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실내놀이 시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기에는 비싸고 둘만 가기에는 마땅치가 않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과천의 과지초당과 추사박물관이었다. 과지초당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말년을 보낸 유적지이고, 추사박물관은 과천시에서 2013년 6월에 개관한 현대식 박물관이다. 추사박물관은 실내 공간이고 따뜻한 곳이었다. 입장료는 아주 저렴했고, 일요일의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단체 방문객이 없었던 날
숫자는 숫자다.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이 편리를 위해 사용한다. 사물을 추상 단위로 세는 데 용이하기에 인간이 지성의 능력으로 만든 기호이다. 양, 크기, 순서를 표시하는 데 이롭다. 1, 2, 3, 4, 5, 6, 7, 8, 9, 10. 앞의 수보다 뒤의 수가 많고, 크다. 혹은 앞의 것이 뒤의 것보다 먼저이고 우선한다. 손가락 개수와 같아서 10진을 사용한다. 10진수의 표기 방법은 바빌로니아, 이집트 등 상고 시대 고대 문명부터 있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중국의 표기법도 있지만, 아라비아인들이 쓰던 기호를 오늘날 널리 사용한다. 그런데, 숫자는 힘이 있다. 숫자가 특정 의미를 지니면 힘으로 작용한다. 오래전부터 숫자는 문명의 힘으로 작용했다. 예컨대, 숫자 10은 최초의 네 정수의 합(1+2+3+4=10)이다. 이 관계를 기하학적으로 나타내면 정삼각형이 그려진다. 서양의 문화에서 숫자로 세계의 질서를 파악하고자 했던 피타고라스학파가 이런 방식으로 숫자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테면 ‘10은 만물을 포괄하며 만물의 경계를 이루는 어머니이다’. 유대교의 전통에서도 숫자 10은 언제나 중심적인 의미를 지녔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신으로부터 받은 계명은
겨울이 다가오면 때때로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세한도(歲寒圖)’.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년)의 작품이다. 국보 180호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추사의 ‘세한도’는 1844년 제주도 귀양살이를 할 때 그의 제자였던 우선 이상적이 당시 청나라 수도인 연경에서 책을 구해 보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글과 함께 그림을 그린 선비의 문인화다. 세한도에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지성인의 ‘불멸의 정신’이 있다. 추위와 고통은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을 하게 만든다. 올해의 달력도 이제 한 장만 더 남은 시점에서 추사가 담고자 한 ‘세한의 정신’을 살펴보자. 소나무와 잣나무 각 두 그루 그리고 작은 집의 그림만이 아니라 추사의 발문(跋文) 속에는 인생의 혹한기에도 살아 있는 인문의 정신이 있다. 우선 추사가 발문에서 인용한 공자와 태사공 사마천 그리고 그의 작품을 보고 찬시를 적어주었던 청나라의 완원(阮元), 옹방강(翁方網) 등 16명 학자들의 정신이 있다. 또한 서예가 소전(素筌) 손재형의 안목과 의지, 태평양전쟁 때 공습으로 소실될 직전에 “선비가 아끼던 것을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잘 보존만 해달라”며 소전에게 작품을 대가 없이 건네준
가을 단풍은 곱게 붉고, 들판의 억새는 하늘거린다. 최근 서양 억새 중 하나로 알려진 분홍색의 핑크뮬리(Pink Muhly)에 대한 관심이 높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이 식물을 전국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생태공원 등에서 적극 옮겨 심으면서, 날씨 좋은 가을날에 많은 이들이 핑크뮬리 군락지를 찾고 있다. 때로는 예쁜 사진을 찍느라 군락지를 비집고 들어오는 행랑객으로 인해 핑크뮬리가 몸살을 앓기도 한다. 우리나라 토종 억새는 높이 1~2m로 핑크뮬리보다 조금 더 크다. 뿌리줄기는 모여 나고 굵으며 원기둥 모양이다. 잎맥 희고 굵다. 야산에 넓게 군락을 지으며 나는 억새는 가을바람이 불어 하늘거릴 때 그 흰색에 햇빛이 담기며 찬란한 분위기를 낸다. 가을 등산을 할 때 단풍만큼이나 반갑고 친근하기도 하다. 억새보다 조금 더 크면서 억새와 같은 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의 하나가 갈대이다. 갈대는 3m 정도까지 자란다. 갈대는 하천가, 도랑가 등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지만, 물흐름이 거의 없는 습지나 모래밭에 대규모로 자라난다. 낙동강 하류 가장자리를 따라 긴 군락을 이룬 갈대밭이 가을이 되면 장관을 이룬다. 갈대를 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은 햇살을 반사
가을 산은 축제다. 붉은 단풍의 축제가 한창이다. 자연이 만든 아름다움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축제의 장은 즐거운 곳이다. 그런데 어떻게 즐기는 것이 자연이 만든 축제에 어울릴까? 여럿 중에 정신의 활력을 찾는 즐거움이 가장 클 것이다. 정신의 활력을 찾는 방법은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는 것이다. 산책하며 사색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연을 벗하며 함께 해왔다. 그런 사람들에게 산은 특별한 감흥과 경험을 주었다.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지리산에서 은거하며 사색을 한 조선 중기 유학자 남명 조식의 말이다. 산과 벗하며 사람이 산과 닮아 간다. 단풍 축제에서 축제의 기획자는 자연, 산이다. 산이 축제의 장을 열었다. 그 축제의 장에 많은 사람이 모인다. 이들은 두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산책하며 사색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구경하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다. 산책하는 사람은 산속에서 단풍과 함께 걸으며 산이 만든 축제의 의미를 읽고 생각한다. 축제를 만든 단풍도 자세히 보면 매우 다양하다. 단풍을 만드는 대표적인 활엽수인 참나무도 갈참나무, 굴참나무, 물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등 우리나라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티탄족의 신이다.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이다. ‘먼저 생각하는 자’는 앞날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예지 능력을 갖고 있음을 함축한다. 그의 동생이자 판도라(Pandora)의 상자를 열고서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에피메테우스(Epimetheus)는 ‘나중에 생각하는 자’라는 뜻이다. ‘나중에 생각하는 자’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욕망에 충실한 행위 능력을 갖고 있음을 함축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을 만들고 사랑한 프로메테우스는 유일하게 신들의 ‘선물’을 받지 못한 인간에게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선물로 주게 된다. 그 일로 그는 제우스로부터 코카서스 바위산에 묶이고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게 된다. ‘불’은 인간의 ‘지혜’를 상징하며, ‘불’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곧 인간의 기술적 행위 능력을 말한다. 그 능력은 단지 주어진, 수동적 능력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 사고와 행위 능력을 상징한다. 그 능력의 위력은 다른 동물보다 신체적 능력이 취약한 인간이 세상 만물에 맞서 승리하고 자기보존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은 이렇게 시작한다. 수없이 많은 별들, 그중에서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헤면서 시인은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 그리고 어머니를 부른다. 그리고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을 이름과 낯선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의 이름을 부른다. 이 이름들은 모두 시인에게 오래되고 멀리 있어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사람들의 이름들이다. 시인이 기억하고자 하는 좋은 사람들의 이름은 멀리 있어 별빛으로 투영시켜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 별빛이 내리는 언덕 위에서 시인은 자신의 이름을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린다. 이름은 별빛에 잠시 반사되고 곧 사라진다. 시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좋은 사람을 기억하고자 했던 시인은 당대 식민 제국에서 좋은 시민이 될 수 없었다. ‘부끄러운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의 복선이 있다. ‘부끄러운 이름’으로는 밤하늘
백운거사(白雲居士). 흰 구름 속에 거처하는 은둔 선비라는 뜻의 이름이다. 평생 시와 거문고, 그리고 술을 매우 좋아해 스스로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라고 불렀던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호(號)이다. 세속의 삶이 혼탁하고 그 속에서 만족 됨이 없을 때 한번 쯤 이름표에 붙여보고 싶은 호칭이다. 9세에 시를 지어 신동이라 불렸던 이규보. 그러나 16세부터 응시한 사마시(司馬試)에 연달아 세 번이나 낙방했다. 그 후 22세에 실시한 사마시에 장원 합격하고, 이듬해 예부시(禮部試)에서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관직을 받지 못하였다. 당시 무신정권 하에 인재를 등용하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였다. 이규보가 태어난 후 2년인 1170년(의종 22년), 무능하고 안하무인이었던 문신에 화가 난 정중부, 이의민에 의해 무신난이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에 가난하여 무관자(無官者)로 남은 처지의 이규보는 25세에 개경 인근의 천마산에 은거하며 세상을 관조하는 시와 글을 지었다. 백운거사는 이때부터 이규보가 사용한 호칭이다. 세속으로부터 단절당한 불운이 문학사에 빛나는 글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고려의 문학정신을 높인 이규보
때때로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 그 끝을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마무리를 잘하지 못해 인생의 중대사를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 인생에서 일의 성공이나 학업의 완성도 결국 처음과 끝, 시종(始終)이 있을 터인데 우리는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까? 필자는 일전에 학술발표대회 참석차 중국 산동성(山東省) 취푸(曲阜·곡부)에 간 적이 있었다. 취푸는 유가사상의 발원지로서 공자의 고향이다. 한국에서 함께 간 일행과 함께 공자의 유적지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황제의 궁궐과 같은 위상을 지닌 대성전(大成殿)이 있는 공묘는 규모의 웅장함과 그 속에 담긴 오래된 역사적 흔적이 필자를 압도했다. 공묘에 들어서자 대성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러 단계의 석방(石坊)과 석문(石門)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주변으로 한나라 고조 유방 이래 역대 여러 황제가 공자를 숭배하며 제례를 봉행할 때마다 세운 건물들과 비석들이 즐비했다. 그중 필자의 눈길을 유독 사로잡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첫 번째 석방에 새겨진 금성옥진(金聲玉振)이라는 글씨였다. 마침 동행하던 유학을 전공한 선생님께 뜻을 물었다. 이 글씨는 음악에
“손으로는 물뿌리고 비질하는 방법도 알지 못하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담론한다(手不知酒掃之節 而口談天理).”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말이다. 실천 중심의 학문 정신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 말은 남명 선생이 1564년 9월 당대 학문의 종장으로 추앙받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에게 보낸 편지글의 한 구절이다. 구절의 의미는 이렇다. 일상에서 해야 할 것을 손수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에 목메는 당대 학문 세태에 대한 비판이다. 남명은 당시 이런 학문으로 이름을 얻고, 세상을 속이는 데 학문을 이용하는 학자들이 성행하는 학문 풍조를 도명(盜名)과 기인(欺人)이라는 말로 비판한다. 남명은 퇴계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런 세태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위의 말을 전했다. 남명의 말을 오늘날 우리 또한 귀담아들어야 한다. 남의 허물에는 서릿발처럼 매서우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말이다. 남명은 당시의 초급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소학(小學)』을 중요하게 배우고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제 손으로 물뿌리고 비질하는 등 일상에서의 실천을 중시하는 내용이
오늘날 우리는 카메라 기술에 의해 예술작품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직접 가지 않아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Mona Lisa)를 보고 감상할 수 있다. 사진을 통해서 말이다. 영국 작가 매리 루이스 드 라 라메가 지은 동화(플랜더스의 개) 속 주인공 네로가 루벤스의 그림을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장면에 우리가 슬퍼할 일도 없을 것이다. 카메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단면적으로 고정시키고, 그 이미지를 여러 번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사진은 카메라에 의해 재생된 시각적 이미지이다. 이러한 사진의 기능은 예술작품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 종교회화에서 드러나는 전통적 예술작품들의 신적인 이미지는 우리에게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런 작품들은 종교적 제의(祭儀)에 사용되었다. 회화사에서 근대라는 시대의 정신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예술작품의 제의적 가치는 쇠퇴하였다. 그러던 중 사진이 등장하면서 제의 가치는 완전히 밀려난다. 대신에 예술작품의 전시(展示) 가치가 전면화된다. 즉, 사진에 의해 제의 가치에서 전시 가치로 예술작품의 가치가 획기적으로 전화된 것이다. 이러한 예술작품의 시대적 변화를 예리한 지성을 통해 탐구한 사람이
인간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행복을 달성할 수 있는 삶의 현실적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현대에 돈은 여러 다양한 삶의 현실적 수단을 확보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다. 그래서 돈을 더 많이 획득하는 것 즉, 소득을 늘리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한 가장 일반적인 척도가 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소득의 증가가 행복을 증진 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의심을 달지 않았다. 개인의 소득이 늘어나면 삶의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예산을 늘릴 수 있기에, 더 많은 효용을 충족시켜 행복한 삶의 척도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이든 국가든 소득을 늘릴 것이 경제 정책의 주된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에 의문을 제시하는 하나의 역설적인 이론이 있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 그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였던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 교수가 1974년에 처음 주창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른다. 이스털린은 소득의 증가가 행복의 척도를 결정한다는 기존의 경제학의 신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
≪올랭피아(Olympia)≫는 《풀밭 위의 점심 Le Déjeuner sur l’herbe》과 함께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대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술사에서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문을 연 가장 뛰어나고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다. 아마도 미술 사조 중에서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것을 꼽으라면 인상주의일 것이다. 에드가 드가,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등 인상주의 화가들이 마네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마네는 정작 인상파에 속하길 꺼렸지만,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런데 인상주의가 처음 시작한 시점에 이 새로운 화풍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대중적인 인식은 오늘날과는 정반대였다. 특히, 마네의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당대의 기존 미술 평단 및 대중들의 평가절하는 건전한 비평을 넘어서 야유와 조롱으로까지 이어졌다. 비너스와 같은 여신이 아닌 당대 여성을 누드화로 그린 작품의 주제나 대상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가 하면, 심지어 마네가 미술기법의 기본도 모르는 아마추어라고
“오늘 하루 플라스틱 없이 보내보세요”. 세계 환영의 날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말이다. 매년 6월 5일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이다. 세계 환경의 날은 1872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제정하고, 그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이때 설치된 유엔 산하 기구 유넵(UNEP, 유엔환경계획)은 매년 세계환경의 날을 맞아 그해의 주제를 선정 발표하는데, 지난해 주제는 ‘플라스틱 공해 극복(Beat Plastic pollution)’ 이었다. 인류의 역사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하듯이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며 문명의 발전을 이끄는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재료에 주목하여 구분한다면 현대의 시대는 ‘플라스틱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플라스틱은 거의 모든 도구 제작에 사용되고 있으며 반도체 소자, 디스플레이, 자동차 내장재 등 현대의 첨단 문명을 만드는 혁신적인 제품에 플라스틱이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이 가장 흔히 사용되는 영역 중 하나는 음식의 저장과 보관이다. 냉장고를 열어 보라. 각종 음식이 플라스틱 용기 또는 캔과 유리병
미디어는 매체이다. 외래어를 그대로 써도 의미가 통하니 우리는 대체로 ‘Media’를 그대로 ‘미디어’라고 쓴다. 한글로 번역되어 쓰는 우리말은 ‘매체’이다. 우리말에서 개념어에는 한자가 대체로 들어 있어서 말의 뜻을 살펴보려면 한자어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매체’는 ‘媒體’다. 어원을 살펴볼 때, ‘매체’는 ‘연결하여 전달하는 어떤 것’이라는 뜻을 갖는다. 연결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을 만나게 한다는 것이고, 전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을 수행하는 어떤 구체적인 물체들은 매체라 할 수 있다. 이런 매체 중에서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주로 언어의 형태로 연결하여 전달하는 것을 의사소통 매체라고 한다.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이 오늘날 대표적인 현대 의사소통 매체이다. 우리가 대체로 ‘미디어’라고 하면 위에서 예로든 매체를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의사소통 매체도 있다. 전화도 매체이다. 전화는 음성언어로 연결된 소통 매체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의 말소리를 연결하여 소리에 담긴 뜻(음성언어)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말소리를 전달하지 않고도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