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부산동아공고에서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평화통일 기원 및 6.25 체험행사가 열렸습니다. 초청인사로 모신 국가 유공자 정봉옥(79)님을 비롯한 참전용사 4명의 6.25 참전 경험담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맘때가 되면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비참함과 우리의 각오를 말해보지만 갈수록 관심이 적어진다며 슬퍼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전쟁의 참상과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참전용사들은 전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학교 운동장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한반도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서 ‘태극기 흔들기’도 하고 ‘대한민국 만세’와 ‘평화통일 만세’도 외쳤습니다. 또한 학생들은 중앙 현관에서 개최한 6.25관련 사진 전시전을 둘러보고, 보리와 쌀을 섞어 만든 주먹밥을 시식하며 한국전쟁의 비참함을 몸소 체험하는 행사도 열렸습니다. 주먹밥을 들자 잠시 눈물을 비치시던 참전용사 할아버지는 주먹밥이 맛이 없다며 불평을 하는 학생을 잠시 나무라기도 합니다. 한 참전용사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자기들은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에 전쟁에 참가하여 겨울에 얼은 주먹밥을 씹을 수가 없어 핥아먹었다고
마지막 종례시간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이번에 실시하는 수련활동에 대한 내용은 부모님께 자세히 말씀드려 준비에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1학년 수련활동은 평소의 교장선생님 소망(?)대로 전학생이 지리산 정상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학교 생긴 이래 처음으로 시도하는 행사입니다. 지리산 정상까지는 너무 험난하고 요즘 학생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나 나약하게 자랐기에 불의의 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있을만한 문제점은 사전에 모두 점검하고 만약에 있을만한 모든 사고도 철저히 대비하여 한번 도전해 보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학생들은 개인별로도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기본적인 물품 외에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손전등과 우의도 준비했습니다. 학생들이 장난삼아 가져오기도 주류 등을 소지 하였을 시는 엄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우리 학교 동아공고는 부산에 있기에 이날 지리산 정상까지 가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합니다. 5월 29일 월요일 아침이 출발일입니다. 출발장소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하여 지하철 역 바로 앞에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가시자 출발장소에 학생들이
화창한 봄을 맞이하여 부산 동아공업고등학교(교장 김기수)에는 들꽃전이 열렸습니다. 중앙현관 및 야생화동산에서 열렸던 이번 들꽃전에는 우리 산야에 피고 자라는 앵초, 양지꽃, 동이나물, 금낭화, 꿩의 다리, 은방울꽃 등 200여종의 야생화가 전시되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 꽃 사랑모임 및 (주)서원유통 후원과 학생회, 학부모회, 교직원의 정성어린 관심으로 마련되었습니다. 특히 교내 야생화동산에는 일선 학교에서 보기 드문 우리 야생화 80여종을 심겨져 있습니다. 모두가 정성스럽게 가꾸고 보살핌으로서 환경감수성을 함양하고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우리 꽃의 아름다움과 아끼는 마음도 키웁니다. 이 장소는 일년 내내 개방되어 지역주민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오셔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들꽃전 행사 외에도 본관동에 (주)나비마을 후원으로 곤충표본 100종 700개체가 전시되었습니다. 로봇응용기계과의 지능형로봇체험장 운영되었습니다. 야생화 및 풍경 사진전도 있고, 생태탐사동아리에서 직접 제작한 학교 주변 식물 및 야생화 압화 전시도 있었습니다. 공작, 꿩 등을 사육하고 있는 동물원, 학생과 지역주민이 함께 가꾸는 농촌텃밭체험학습장 등도 개방되었
봄비가 옵니다. 비가 오면 흡연자들은 괴롭습니다. 요즘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가 없습니다. 흡연 장소에 벚나무가 아름답게 꽃을 피웠습니다. 비가 오니 흡연자들에게는 벚나무의 꽃을 즐길 형편이 못됩니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담배에 불을 붙이려니 힘이 듭니다. 궁리 끝에 우산을 나무에 묶었습니다. 발상은 좋으나 나무는 괴롭습니다. 오늘은 식목일입니다. 나무를 사랑합시다.
봄을 맞아 동아공업고등학교에서는 학교 숲 시범학교 워크샵 및 봄 식재 행사가 열렸습니다. '생명의 숲'에서 지원받은 나무와 '녹지사업소'에서 기증받은 야생화를 심는 날이었습니다. 우리 학교 숲 가꾸기의 지도 위원이신 대학의 조경학과 교수님도 오시고, 녹지사업소장님도 오셨습니다. 학부모님들도, 이웃주민들도 나무 심을 복장을 갖추고 학교에 오셨습니다. 우리 꽃에 권위자이신 ‘우리 꽃 사랑모임’회장님은 아침 일찍 오셔서 화단에 야생화 심는 작업을 도와 주셨습니다. 도와 주신다기보다는 혼자 일을 다 하십니다. 우리는 모심기하듯 줄에 맞추어 야생화를 심으려고 교직원이랑, 학생들이랑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멋이 나지 않는 답니다. 모을 것은 모으고 돌릴 곳을 돌린 후 주위 돌을 주워 군데군데 쌓아 분경화단을 만듭니다. 우리는 그저 지켜만 보면서 조수 역할만 합니다. 회장님이 심으면 하나의 예술품으로 다시 탄생합니다. 우리가 심는 일반적인 꽃밭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자기 생업을 제쳐두시고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하십니다. 모두들 자원 무료 봉사자들입니다. 본교는 신축교사로 이전한지 3년째 됩니다. 처음에는 산비탈에 큰 건물만 덩그렇게 있어 주위와 조화가 되지 않
토요일인 4일. 실업계 고등학교인 우리학교는 입학식 행사가 열렸습니다. 여기 남녘지방 부산은 봄이 성큼 다가와 날씨가 포근합니다. 언 땅도 녹아 촉촉하고 겨울 내내 앙상한 가지만 가지고 있던 나무들도 물오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학교 주위의 나무 가지들도 제마다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리나무는 벌써 병아리 주둥이만한 잎사귀를 내놓고 있습니다. 푸르름이 제법 눈에 띕니다. 개나리도, 진달래도, 벚나무도 가지 끝마다 꽃을 피울 준비로 부드러운 솜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날씨까지 푸근하여 올라오는 신입생과 학부모님들의 표정이 밝습니다. 신입생들은 윤이 반들반들한 새 교복을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올라옵니다. 게시판이나 현관에 부착된 학반 배정표를 보고 자기의 교실로 찾아갑니다. 선생님들도 오늘 새 학생을 맞이하기 위하여 교실청소, 게시판부착, 사물함정리 뿐만 아니라 전달사항, 주의사항, 1년 학반 운영계획, 수업계획 등을 구상해 놓고 미리 준비하고 있습니다. 입학식 시간이 다가오자 1학년 담임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맞이하려 교실 복도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교실에는 교과서도 미리 준비되어 있습니다. 생활지도부 선생님들은 일부 두발상태가 불량인 학생을 보고 곤
밸런타인데이인 2월 14일, 잠시 자리를 비운 중년의 남자인 김선생님에게 "사랑해요." "변함없이 사랑하는 당신의 생일을 함께 기뻐합니다." 리본에 글이 새겨진 꽃바구니와 케이크 하나가 교무실로 배달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20여 년 동안 우리 학교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모두들 밸런타인데이는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선물을 선사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알고 있었고, 이날 아침 여직원에게 초콜릿을 하나 얻어먹은 기억이 있는지라 일순간 야단이 났다. "아니? 이걸 누가 보냈지?" "오늘이 무슨 날이야?" 옆에서 답한다. "밸런타인데이잖아!" "그러면 생일은 또 뭐지?" 보낸 분의 이름을 보니 자주 듣던 사모님의 이름이었다. 우연히 오늘 남편의 생일이 밸런타인데이와 일치하였던 것이었다. 워낙 성실하고 정직한 분이라 한 점 의혹이 없을 텐데, 모두들 시샘이 나는지 좋은 상상력으로 한 마디씩 거든다. 주정뱅이였던 토스토예프스키가 을 쓸 때 하숙집, 전당포 노파 등 주위 배경을 그대로 둔 채, 노파를 죽였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냈듯이 소설을 써냈다. "아니야! 김선생은 아무리 성실하고 착해도 술을 좋아하잖아. 술집에 술값 바친 게 얼마인데! 이건 틀림없이 술
흔히 가장 큰 사막이라고 하면 사하라 사막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가장 광대한 사막은 실크로드의 남로와 북로 사이에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알려져 있다. 타클라마칸이란 말이 위그르어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란 의미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황량하고 넓은 사막이지만 고대로부터 실크로드란 이름에 걸맞게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 항상 있어 왔던 곳이기도 하다. 책 은 1895년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이 간 길을 ?아 저자인 브루노 바우만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여행한 생생한 기록이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오른 힐러리경에게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물었더니 "산이 있어 오른다"고 답했다. 만약에 저자인 바우만씨에게 살아 나올지도 모르는 사막을 왜 건너려하느냐? 묻는다면 그 역시 사막이 있어 건넌다고 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인생이란 살아있다고 꼭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의식을 가진 자는 한 번쯤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나는 산에 오른다든지, 사막을 건너든지 이것은 또 하나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인생 자체가 돌아 올 수 없는 길이듯 인생에는 색깔만 있을 뿐 답은 없다는 의미이
왜 '대구'일까? 잡히기는 부산이나 거제에서 많이 잡히는데 하필 대구인가? 이름이 궁금했다. 붉은 플라스틱 물통을 가득 채운 대구를 보면서 물옷으로 무장한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아주머니, 고기 이름이 왜 대구입니까?” “입이 커서 대구 아입니꺼.” “아하, 클 대(大)자, 입 구(口)자, 입이 커서 대구(大口)구나?” 그런데 막상 가까이서 고기를 보니 생각보다 입이 그렇게 크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아주머니, 대구는 입이 커서 대구라는데 맞습니까?” “아니예, 대구는 워낙 커서 입이 큰 건 맞지만 다른 고기에 비해서는 별로 큰 것도 아닌데요. 보이소. 별로 아입니꺼.” “그럼, 왜 대구일까요.” “클 대(大)자는 맞을 것 같은데 다음 것은 나도 모르겠네요.” 아주머니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여 어느 것이 옳은지는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돌려야겠다. 가덕도 앞바다에는 12월에 대구가 대량으로 잡힌다. 부산과 경남의 경계에 있는 용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덕도 가는 배의 선착장이 있었던 곳이다. 김해공항에서 차로 20분 가량 떨어진 곳이다. 진해시 소속이다.지금은 앞 바다를 메워 새로운 항만을 만들고 있다. 지금도 이름
"아무리 먹을 게 없다 손 치더라도 이것도 음식이라고 먹냐?" 변소에서 갓 퍼 올린 듯한 역한 냄새, 생각만 해도 아찔한 암모니아 냄새가 가슴에 스민다. 한 점이라도 먹고 나면 먹자마자 토할 듯한 느낌, 자리가 자리인지라 뱉지도 못하고 한 점이라도 삼켰더라면 아마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식중독으로 쓰러질 듯한 예감. 이쯤하면 맛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홍어맛이다. 독립 운동하는 셈치고 몇 점 입에 넣어 보기로 한다. 도저히 씹지는 못하겠다. 꿀꺽 삼킨다. 아무 탈이 없다고들 말들은 하지만. '그들은 이미 어릴 적부터 천한(?) 음식에 적응이 되어서 그렇지!' '그런 말 다 믿다가 저승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마다 개인차가 얼마나 큰데.' 특히 속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아마 내일은 무사히 출근하기 힘들겠다는 예감이 든다. 내 생각에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기적같이 아무 탈이 없다. 보통 속이 좋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라면, 그 전날 술이라도 한잔하면 다음날 변소를 들락날락. 그런데 이 썩은 음식을 먹었는데도 속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저 평온하고 편안할 뿐이다. 그쯤 되면 이 음식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정말
영화 은 끝이 났어도 아직 그 다음의 혁명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유대인의 역사는 끝없는 유랑과 고난의 역사이다. 샤일록이 만들어 지는 것도 이 고난의 역사 때문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4천년동안 유대인은 끊임없이 유랑을 강요하는 반유대주의자를 만나 저항한다. 유태인들의 독립왕조는 기원 전 1세기에 로마가 팔레스타인지역을 정복함으로써 완전히 소멸하였다. 유태인들은 바로 이 로마의 치하에서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유일신을 모시는 독특한 종교를 지닌 유태인들은 로마가 이를 인정해주지 않자 이에 대항하여 기원후 70년과 135년에 두 차례의 커다란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힘으로 밀어붙이는 로마는 철저한 유태인 탄압정책으로 대응해 나갔다. 유대인은 줄기차게 저항하였다. 그리하여 저항하는 자는 몰살당하고 살아남은 자는 고향에 머물지 못하고 세계 각처로 유랑을 떠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태인들은 어디에서건 자기들만의 독특한 공동체와 문화를 형성하여 현지인들과 융화되지 못하고 갈등을 겪는다. 그들은 남의 땅에 살면서도 끝까지 자기의 종교의 버리지 않았고, 선민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 똘똘 뭉쳐 살았다. 자연 그들은 토착민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토
고전이란 누구나 내용은 알지만 읽어보지는 않는 작품이라고 했던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영화화한 은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내용은 대충 안다. 대중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고리대금업자의 대명사인 샤일록에게‘1파운드의 살점을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명판결로 정의를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처한 남자를 살려낸 재치있는 판결 정도만으로 알려져 있기에 사건의 배경에 대해 깊이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듯하다. 때는 1596년, 유럽 해상 무역이 한창이던 시대에 물의 도시 베니스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역으로 인한 금융자본이 몰려든 베니스는 욕망과 사랑, 증오와 분노가 뒤섞여 현장감이 넘치는 도시였다. 봉건시대에서 초기자본주의체제로 진입하던 베니스는 아직 거래원칙을 완전히 체계화하지 못한 관계로 이상과 현실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베사니오(조셉 파인즈)는 아름답고 부유한 상속녀 포시아(린 콜린스)의 사랑을 얻으려고 절친한 친구 안토니오(제레미 아이언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재력가이지만 당장 빌려줄 현금이 없어 난감해하던 유력자 안토니오는 친구 베사
옛날에도 늘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산다. 현재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양 바삐 뛰어다니다 보면 하루가 간다. 생각해 보면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온다. 영도다리를 지나 부산의 관문, 오륙도가 저 멀리 보이는 산허리를 돌아서면 한국해양대학교 들어가는 입구에 동삼동패총전시관이 있다. 영도 하리 바닷가에 자리 잡은 부산박물관의 동삼동패총전시관을 둘러보면 ‘우리가 참으로 까마득한 옛날로부터 기나긴 여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감회라면 감회랄까, 그런 느낌이 든다. 석양까지 비치면 더욱 그렇다. 패총이란 우리 조상들이 조개를 채취하여 먹고 버리고, 먹고 버리고, 한없이 버려 산처럼 쌓여있는 유적지가 아닌가? 마치 무덤처럼 쌓였다 해서 조개 무덤 혹은 조개무지라고도 부른다. 단지 그것뿐인데 나는 놀랐다.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일, 이년 먹고 버린 것이 아니다. 일, 이십년도 아니다. 7천 5백 년 전부터 3천 5백 년 전까지 무려 4천년을 먹고 버린 것이다. 그게 바로 내 눈 앞에 비록 조개껍질이지만 쌓이고 쌓여 역사로서 전시되어있다. 나는 이렇게 오랜 기간을 한곳에 모여 있는 인간의 흔적을 본 적이 없다. 단지 책으
학생들이 모금함을 들고 교실로 다닙니다. 무엇을 위한 모금일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경로 위안 잔치’를 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예외는 아닙니다. 학생들이 모금함을 내밀면 꼼짝 못합니다. 모두 학교 경비나 스폰서를 받아 치를 수도 있으나, 학생들의 자발적인 성금이라 더욱 빛이 납니다. 경로잔치는 노인만을 위한 잔치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의 독립과 국가방위, 나아가 경제 발전의 주역이었던 노령세대에 대한 존경의 표시입니다. 보훈과 공경의 정신을 함양하고, 불우이웃에 대한 자발적 위무와 실천적 봉사정신을 배양합니다. 경로효친 의식 확산을 통한 가족적인 미래 복지국가 구현에 기여케 하여 스스로를 풍요롭게 합니다. 부산광역시교육청 학교 숲 가꾸기 연구학교인 동아공업고등학교(교장 김기수)가 2005년 10월 13(목)일부터 10월 16일(일)까지 개최되는 ‘송천(松泉) 가을 들꽃전’과 함께 15일에는 경로 위안 잔치를 치릅니다. 노인 분들에게도 들꽃전을 구경시켜 드립니다. 들꽃전에는 가을철 우리 산야에 피고 자라는 용담, 바위솔, 해국, 솔채꽃, 투구꽃 등 120여종의 가을꽃이 전시됩니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꽃사랑모임 및 (주)서원유통
시골 동창회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기에 만나서 몇 마디만 나누면 누군지 대충 다 압니다. 떨어져 있는 우리 형제들도 모두 같은 학교를 나왔기에 시골 동창회에 가면 모두 만납니다. 그 중에서도 동기생들의 만남이 제일 반갑습니다. 조그만 학교라서 몇 십 년만에 만난 동기라도 금방 알아봅니다. 이제 만나면 옛날에는 수줍어서 말도 못 붙이던 여자 동기생이 대뜸 나에게 질문하는 게 “너희 형님, 잘 있니?” 입니다. “네가 우리 형님을 어떻게 아니?” 시골 학교는 보통 남녀공학에다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같이 다니므로 한 동네에 살았더라면 친구뿐만 아니라 오빠, 동생, 부모님들까지 대충 압니다만 이 친구는 같은 마을에 살지도 알았는데 우리 형님을 압니다. “너희들은 꼬맹이라 같이 놀지 못하고 주로 너희 형님들 하고 놀았다 아이가!” 그때는 가난한 시절이라 여자 아이들은 학교를 한두 해 놀고 늦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기에다 여자 애들은 빨리 성숙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랑 놀지 않고 형님들이랑 놀았나 봅니다. 옛날에는 여자들은 상급학교로 진학할 기회가 적었기에 시집도 빨리 갔습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은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