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우리 동네에서 존경받는 선생님이셨다. 아버지의 출퇴근용 자전거 뒤엔 온통 학교 아이들의 책가방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아버지께서는 늘 기쁨에 찬 표정이셨다. 내 또래 아이들이 우러르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바로 우리 아버지란 사실은 내가 교직을 택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내가 발령을 받자 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선배로서 너에게 두 가지만 당부하마. 첫째, 항상 가르치는 사명감을 잊지 말거라. 의사가 치료를 잘못하면 환자 한명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지만 교사가 교육을 잘못하면 수천, 수만 명 학생들의 정신을 병들게 한단다. 둘째, 하루에 최소한 다섯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칭찬을 해라. 좋은 사제관계는 웃는 표정과 칭찬 이상 좋은 게 없단다.” 20여년 교직 생활 동안 한시도 아버지의 말씀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유진아, 너는 어쩜 그리 착하고 예쁘니. 네가 정성껏 닦은 칠판이라 글씨도 훨씬 잘 써지네”하면서 한명, 복도를 지나다가 장발을 한 남학생을 보면 “너 참 남자답게 생겼구나. 머리만 좀 단정하면 훨씬 좋겠는데, 눈에 총기도 있어 공부를 참 잘하겠는 걸” 어깨를 다독거리면서 마음속으로 두 번이라고 되뇌었다. 너무
전화가 왔다. "선생님! 헤어졌어요. 각오는 돼 있었지만…." 여자 친구와 장래까지 약속했다며 흥분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꽉 잠긴 그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짓누른다. 중학교 시절 수영 특기생으로 체고에 진학한 그는 다이빙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지역 봉사활동을 통해 나는 그의 후원자가 됐다. 걷고 싶다는 소망 하나만으로 전신마비 1급 장애를 견뎌온 그였다. '슈퍼맨 걷는 날'이란 특이한 그의 아이디에는 이런 절실한 바람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표정은 너무 밝고 오히려 봉사하러 나온 사람들을 웃게 만들곤 했다.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손가락 하나뿐인데도 컴퓨터를 잘도 더듬는다. 정보 사냥에 능해 세상사 돌아가는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눈물겨운 인생 역정을 세상에 알렸다. 방송국 후원으로 제자들과 함께 공사 현장에서 땀 흘리며 그를 위해 사랑의 집을 지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뿌듯한 감동의 물결이 일었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TV에 출연을 하고, 후원하는 까페가 생기고, 그를 염려하는 사람들과의 정기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중졸 학력이 전부인 그가 배움의 필요성을 절감한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