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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이다. 단풍도 절정이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청첩장도 연달아 날라온다. 토요일인 오늘 비가 내린다. 그런데 예식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오후 1시,또 하나는 오후 5시 30분. 앞에 것은 고교 동창이자 교직동료 아들 혼사이고 하나는 우리 학교 교직원이다. 중국에서 날라온 미세먼지 농도가 짙으니 하늘이 뿌옇다. 비가 내리니 그 비 그대로 맞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러나 기꺼이 예식장으로 향해야 한다. 예식장에서혼주와 결혼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하객들에게 직접 들려 주니 결혼의 뜻이 깊다. 앞서가는 결혼 풍속도다. 귀가하여 뒷베란다 일월저수지를 내려다 본다. 가을 풍광이 아름답다. 이 비가 그치면 이제 저 단풍도 이제 끝이라 생각하니 카메라를 잡는다. 8층에서 보는 풍경이 너무 익숙하여 19층으로 올라가 조망해 본다. 마치 낮게뜬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기분이다. 일월저수지. 방죽 둑에서 한 바퀴 돌면 1,900m이다. 빨리 걸으면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가까이 있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산책할 수 있다. 그러나 출퇴근이 정해져 있는 공무원이라 토요일이나 일요일밖에 시간이 없다. 일부러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일월저수지 일주길은 크게 넷으로 구분된다. 버드나무 길, 메타세콰이어 길, 벚나무 길, 중국단풍 길. 버드나무는 아직 초록이다. 그러나 낙엽은 진행되고 있다. 카메라를 바닥에 잡으니 바닥 낙엽과 60대 할머니가 보행기를 밀고 가는 장면이 포착된다. 산책길 옆 논과 밭을 보니 벼는 이미 추수를 끝냈다. 부지런한 농부는 커다란 배추 포기를 끈으로 묶어 놓았다. 김장김치의 재료가되리라. 함께 재배하고 있는 무우와 상추, 파도 잘 자라고 있다. 저수지 물이 차가운지 오리들도 뭍으로 나와 햇볕을 즐기고 있다. 야외음악당을 지나니 보식할 나무들이 누워 있다. 지금이 가을철 식목에 적기인가보다. 해마다 보았던 저수지의 부들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소시지처럼 생긴 것이 터지면서 흩어져 하얀 털이 날렸었는데…. 저수지의 생태계도 변하나 보다. 벚나무 길은 꽃이 개화한 봄이 절정이지만 가을 분홍빛 단풍도 보기에 좋다. 저수지에 검은색의 가마우지가 보인다. 이 새는 잠수능력이 뛰어나 한 번 잠수하면 어디로 나올 지 모른다. 텃새는 아닌데혹시 먹이가 풍부한 이 곳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방수로 쪽으로 가니 공사가한창이다. 저수지 개보수 공사다. 바닥을 레미콘으로 다지고 있다. 저수지 안전을 꾀하는 것인데 경기도의 경우 13곳 저수지를 140여 억원을 들여 공사를 펼치고 있다. 이 저수지가 195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는데 그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둑 위의 중국단풍길. 단풍이 아직 절정은 아니지만 좀 있으면 장관을 이루리라. 둑 아래 일월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가꾸는 행복텃밭.도시민들이 농작물을 가꾼다는 것은 행복의 시작이다. 도시학교에서농사 경험은 소중한 체험이다. 가까이 저수지가 있다는 것은 도시민에게 행복을 안겨준다.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은 인간의 심성을 치료해주기도 한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조선시대의 시(市)인 여주목(牧)에서 군(郡)으로 강등되었다가 118년 만인 2013년 9월 23일 시로 승격한 여주시 천송동 물가에 영릉의 원찰이었던 사찰 신륵사(神勒寺)가 있다. 이곳의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될 만큼 운치가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가 없고, 고려 말인 1376년에 나옹 혜근이 머물렀으며, 한때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자 영릉의 원찰로 보은사(報恩寺)라 불렀다. 이곳에서 입적하며 신륵사를 대찰로 만든 나옹선사는 무학대사의 스승으로 읽어볼수록 가슴에 와 닿는 ‘청산은 나를 보고’를 남긴 고승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생략 ~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도 몇 가지 전해진다. 미륵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고, 건너 마을에 나타난 사나운 용마를 인당대사가 신력(神力)으로 제압하여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곳에 조사당(보물 제180호),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보제존자석종(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 보제존자석종앞석등(보물 제231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 제1791호), 극락보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8호) 등 중요문화재가 많으며 구룡루, 명부전, 시왕전, 산신각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편액에 ‘봉미산신륵사’가 써있는 일주문을 지나 강변을 걸으면 조포(潮浦)나루터 표석에 1963년 10월 23일의 조포나루터 나룻배 침몰사고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륵사로 소풍 왔다가던 안양 흥안초등학교 5, 6학년 학생들이 탄 나룻배가 이곳에서 침몰하여 어린이 37명, 교사와 학부모 12명이 익사하였다. 세월이 약이라고 강물은 그때의 슬픈 사실을 모른 채 유유히 흐르고 한가롭게 표석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밝다. 입구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고 고단한 마음을 씻어내는 세심정이 맞이한다. 범종각의 내부에 사물인 법고, 목어, 운판, 범종이 걸려있다. 범종은 깨달음을 얻게 하고, 법고는 축생의 무리·목어는 물속 생명·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에게 석가의 진리를 전하는데 의미가 있다. 수령이 600여 년이나 되는 은행나무와 참나무 보호수가 높은 곳에서 키재기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볼만하다. 구룡루, 다층석탑, 극락보전이 나란히 있는데 누각 구룡루의 명칭은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물을 뿌려 목욕시켰다는 아홉 마리용에 대한 경전의 내용이나 창건설화의 승천한 아홉 마리의 용에서 따왔을 것이라 추측되고, 누대 밑의 높이가 낮아 통로의 기능보다는 정자로서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극락보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보물 제225호)은 왠지 균형미가 부족한데 기단에서 탑신부까지 전부 한 장씩의 돌로 이루어졌다. 돌의 재질이나 조각양식은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과 비슷하다. 극락보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8호)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경내에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기단 위에 추녀를 받치는 4개의 활주가 있어 금방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다. 수령이 500여 년 되는 향나무 주위에 산신각, 조사당, 명부전, 관음전 등의 전각이 있다. 그중 조사당(보물 제180호)은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신 건물로 규모가 작지만 균형이 잘 잡혀 아담하다. 불단 뒷벽 중앙에 나옹, 그 좌우에 지공과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조사당의 왼쪽에 북쪽 구릉너머에 있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긴 원구형부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34호)와 팔각형원당형석조부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95호)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원구형석조부도(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4호)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원구형부도로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조사당에서 오른편으로 산길을 올라가면 나옹선사의 입적과 관련된 석재 불교문화재를 만난다. 보제존자석종(보물 제228호)은 선종과 교종을 통합해 불교의 중흥을 꿈꿨던 나옹선사의 사리탑으로 단층 기단 위에 2단의 받침을 두고 종 모양의 탑신을 올렸다.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는 나옹선사의 탑비로 1379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이색이 문장을 짓고 한수가 글씨를 써 역사적 가치가 크다. 보제존자석종앞석등(보물 제231호)은 8각 석등으로 보제존자석종 및 석비와 함께 세워졌다.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는 현재 비의 몸통에 균열이 많은데 대장각의 조성에 관한 기록이 적혀있다. 불경을 만들어 보관하기 위해 1382년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세웠던 대장각은 찾아볼 수 없다. 대장각기비각 밑에 있는 다층전탑(보물 제226호)은 아래로 남한강의 물줄기가 휘감아 도는 경치 좋은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쌓은 전탑이 많지 않은데 지붕돌이 몸돌에 비해 얇아 전체가 주는 인상이 날카롭다. 나옹선사가 열반에 들자 다비식을 했던 장소에 세운 전탑으로 이 전탑 때문에 한동안 신륵사를 벽절이라 불렀다. 신륵사에서 경치가 제일 좋은 곳에 위치한 육각정자 강월헌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사극 추노를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정자에 앉아 남한강 물줄기와 황포돛배를 바라보며 옛 사람들처럼 낭만과 풍류를 누린다. 정자 옆에 있는 삼층석탑(경기도유형문화재자료 제133호)은 암반에 건립된 3층 석탑이다. 나옹선사의 다비식을 거행했던 장소에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탑에 해당한다. 건너편의 강변유원지 선착장을 출발해 신륵사와 세종대왕릉을 연결하는 황포돛배에 올라 신륵사, 영월루, 여주보,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을 비롯해 자연경관유적 입암의 절경을 한눈에 바라보는 것도 좋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누구나 한 번쯤은 흥얼거려봤을 법한 이 노래의 주인공, 가수 윤형주 씨가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경기 기흥초(교장 이진건)의 로고송을 제작·기증해 화제다. 기흥초는 1일 전교생 예능발표회 ‘한마음 대잔치’에서 학생과 학부모, 주민을 대상으로 로고송 발표회를 열었다. “지난 3월 손주 입학식에 와서 학교 교가를 들었는데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노랫말이 아이들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교가와는 별개로 요즘 트랜드에 맞는 의미 있고 신나는 학교 주제가가 있으면 아이들 정서에도 좋고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직접 노래를 만들 결심을 했다고. 며칠 후 학교를 찾아가 제작 의사를 밝혔고 학교 측에서도 윤형주 씨의 ‘노래’ 기부를 대환영했다. 실제 기흥초는 1945년 개교해 역사가 깊은 만큼 ‘활기찬 고속도로’ 등 교가의 가사 중 일부가 다소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8개월에 걸쳐 두 종류의 가사를 만들어 학교에 전달해 의견을 받고 채택된 가사에 또다시 두 종류의 곡을 붙여 편곡·녹음해 학교에서 최종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는 전교생에게 음원을 들려주고 선호도를 조사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이들의 심성을 건강히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노래를 만들었다”는 그는 “노래를 부르며 친구에 대한 사랑,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 자신의 비전과 미래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멋진 가사와 밝고 명랑한 멜로디에 듣고 있으면 저절로 신이난다”는 임태희(3학년) 학생의 말처럼 그가 만든 로고송은 ‘좋아서 귀여워서 사랑스러워서 늘 함께 있고 싶은 친구들’, ‘세상을 움직이는 이 나라의 리더’ 등 활기차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사로 구성돼 있다. 5학년 최은 학생은 “우리 학교만의 노래가 생겨 자랑스럽고 기쁘다”며 “이 노래로 우리학교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윤수 교감은 “로고송이란 큰 선물을 받아 학교에 새로운 활력이 전달된 것 같다”며 “노래를 통해 학생들이 학교를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윤형주 씨는 “역사가 오래된 학교의 경우 간혹 교가 가사와 멜로디가 요즘 정서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후배·동료들과 함께 그런 학교의 교가나 로고송을 새로 제작해주는 재능기부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을밤이 깊어지는 것도 잊은 채 학생들은 꿈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달 25일 밤 경기 금곡중(교장 강기욱) 다목적실의 풍경이다. 금곡중은 25일 오후 7시부터 26일 오전 7시까지 ‘온밤 진로비전 UP 나의 꿈을 디자인 하다’ 행사를 실시했다. 참여를 신청한 학생 53명이 학부모, 선배 멘토, 지역 멘토 등과 함께 온밤을 새우며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프로그램은 총 3부로 진행됐다. 1부는 모둠별로 선배 멘토와 ‘꿈이 왜 필요한가’, ‘선배멘토의 꿈 실현과정’ 등을 주제로 꿈과 직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했고 2부는 와이즈멘토 학습멘토링을 통해 자신만의 학습 방법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3부는 ‘꿈을 요리하다’를 주제로 학부모와의 즐거운 간식 시간과 함께 친구들과 각자의 꿈을 발표하는 꿈나무 만들기 활동 등이 이어졌다. 금곡중은 졸업생을 섭외해 학급별 멘토로 정해 진로 특강 등의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국제변호사, 기업 대표, 교수, 병원 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을 보며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직업인의 자세, 진로 설계에 대한 마인드를 갖게 됐다. 올해 3회째 실시하는 온밤 행사에 모두 참여한 최아영(3학년) 학생은 “온밤 활동을 통해 나의 꿈을 찾아가고 있다”며 “점점 꿈에 가까이 성장해가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학기 중 기간제교사로 바꿔졌다고 생각해봐라. 문제될 거 없나? 담임선생님은 단순히 아이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들의 소질과 특성을 파악하고 꿈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잘못을 바로잡아주고 성장을 도와주는 멘토의 역할까지 한다. 그런데 학기 중에 바꿔진다면 바람직한가. 학기 중 어쩔 수 없이 기간제 담임교사를 써야 하는 경우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기간제 담임교사를 써야한다. 언론에 보도된 기간제 교사 담임 비율이 15%라고 하나 훨씬 높은 학교도 있다. 대다수 도시 학교는 여교사들이 몰려있다. 그런데 젊은 여자교원의 경우 산가, 육아휴직 등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공무원 육아휴직 기간도 확대 실시되었다. 그렇다고 아이 낳는 일자를 조사하는 것은 개인 신상과 인권의 문제이고 법적 보호를 받는 문제여서 쉽지 않다. 학교 관리자의 입장에서 휴가를 학생들의 학기와 동일하게 강요할 수도 없다. 그래서 중간에 기간제 담임교사로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연세가 많은 여교사들이 몰려있는 학교는 6학년 담임 기피현상이 심각하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6학년 아이들, 인권의 잣대로만 가르쳐야 되니 힘이 부쳐서 ‘6학년 점수’까지 주는 현상까지 생겨났다. 체육교육도 문제이다. 햇볕 내려쬐는 운동장에서 여성 교원들이 땀 흘리며 아이들과 체육 활동 할까? 여자라고 해서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여교사로만 이루어진 학교 아이들의 운동장은 조용하기만 하다. 운동장이 활기찬 학교를 만들기 위해 체육활동을 생명처럼 여긴 나의 학교는 체육교과전담을 4년째 실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교사로 해보지는 못했다. 남자 기간제교사를 채용해서라도 체육활동을 실시해온 것이다. 여교사 편중현상은 최근 발표한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와 무관하지 않다.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최근 4년 동안 학생,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5배 이상 급증하고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는 교사도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에서 지난 4년간 학생, 학부모에 의해 발생한 교권침해는 1만 6568건이나 된다. 2009년 1570건, 2010년 2226건, 2011년 4801건, 2012년 7971건, 그리고 올 상반기에만 3276건에 달했다고 한다.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유형은 폭언‧욕설(61.1%, 1만 2126건)과 수업방해(21.6%, 4287건)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은 학생이 야간에 교무실에 잠입해 오물을 투척하고 도끼를 놓는가하면 벌을 받는 도중에 담배를 피는 등 상상할 수 없는 교권침해가 학교에서 일어난다고 개탄했다. 지난달 1일 경북의 한 중학교 3학년 A(14)양이 교무실에서 교사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까지 했다. 이 학생은 다른 반 학생들의 옷을 빼앗아 무단으로 나갔다가 불려와 경위서를 쓰라고 하자 얼굴에 침을 뱉고 허벅지와 정강이를 걷어찼다. 부장교사는 전치 2주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 2012년 6월 경기도 일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담배를 피운 것 같으니 흡연 측정기로 측정해보자고 하자 교사를 발길질로 넘어뜨리고 주먹과 발로 폭행하고 침을 뱉었다. 국회 김세연 의원(새누리당)이 10월13일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교권 침해 현황 및 사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교사가 343명에 달했다.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교사 수는 지난 2009년 31명에서 2010년 45명, 2011년 59명, 2012년 132명 등으로 급증했다. 예전에 없던 교육현장의 문제, 김세연 의원이 지적한 학생인권조례 제정시기와 맞물린다는 지적도 틀리지 않지만 여교사 편중현상도 원인이다. 도시학교에 남교사로 부임하면 묻지 마 6학년, 묻지 마 체육교과전담이 되어야 한다. 남교사 수가 많으면 능력이나 적성을 고려하여 업무나 학년배정을 할 수 있는데 여성교원 편중현상이 워낙 심하기 때문이란다. 여성부와 여권신장 인권단체에서는 국회의원 정족수, 취업인력 등에서 남녀 차별금지법을 주장하지만 교직의 여성화야말로 성비 균형의 문제이다. 학기 중 기간제 담임교사를 써야 하는 문제, 학교폭력의 문제, 교원 성비균형이 있을 때 바람직하게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교직에서 남성의 비율을 높이는 정책은 교육 정상화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교직의 여성편중현상 완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도입해야 한다. 교원인사 정책 시 시군별 남교사 비율을 조정하는 정책 검토해볼 만하다. 또한 장기적으로 교원임용교시 남교사 정수를 배정하는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조선 왕조는 고려 왕조가 막을 내린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오랫동안 나라를 이끌었다. 500여 년의 역사를 지킨 조선 왕조의 무덤 119기를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왕릉(42기),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묻혀 있는 원(13기), 대군·공주·옹주·후궁·귀인이 묻힌 묘(64기)로 구분하는데 왕릉 42기 중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 왕릉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조선의 27대 왕과 왕비 및 추존왕과 왕비의 무덤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유적지로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큰 봉분과 많은 석물들이 엄숙한 분위기를 만든다. 또한 자연을 중시하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아 자연친화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조선 왕릉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능(陵)이 여럿이다. 그중 영릉은 3기나 있다. 바로 4대 세종의 영릉(英陵), 17대 효종의 영릉(寧陵), 21대 영조의 맏아들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진종의 영릉(永陵)이 그러한데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 세종의 능이 영릉을 대표한다. 세종대왕은 22세에 임금으로 등극한 1418년부터 1450년까지 32년간 재위하였다. 영릉(세종대왕릉)은 사적 제195호로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세계문화유산을 알리는 표석이 정문 입구에서 맞이한다. 정문에 들어서면 왼편에 야외유물전시장과 세종전, 정면에 훈민문, 오른편에 세종대왕상과 재실이 있다. 야외유물전시장은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시계·천상열차분야지도·자격루·관천대·측우기·혼천의·간의 등을 복원하여 야외에 전시하였고, 세종전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유물전시관으로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사용하거나 간행한 과학기구·악기·책을 진열하였고, 1970년 복원한 재실은 제관이 머물며 제사를 준비하던 집으로 담장에 조선왕릉 40기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현판의 한글에서 세종대왕의 숨결이 느껴지는 훈민문을 들어서면 물고기들이 노니는 연못(내연지)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맞이한다. 나무에 붉은색을 칠하여 신성 구역을 알리는 홍살문 앞에 속세와 신성한 지역의 경계역할을 하는 계류 위에 놓인 금천교가 있고, 홍살문을 지나면 정자각(丁字閣)과 왕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도가 길은데 길옆으로 넓은 잔디밭과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있어 운치가 있다. 참도는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돌길로 왼쪽의 혼이 다니는 신도(神道)는 높게, 오른쪽의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는 낮게 만들어져 있다. 정자각은 왕릉에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지은 ‘丁’ 자 모양의 집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 왼쪽 계단으로 내려와야 한다. 정자각의 왼쪽에 제례 음식을 데우고 준비하는 수라간, 오른쪽에 능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수복방과 영릉비가 서있는 비각이 있다. 영릉비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약력, 영릉을 옮긴 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다. 비문의 '조선국 세종대왕 영릉 소헌왕후 부좌'가 왕비가 대왕의 왼편에 묻혔음을 알려준다. 영릉은 오른편의 소나무가 늘어선 계단을 올라야 만난다.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 왕릉 중 최초로 하나의 봉분에 왕과 왕비를 합장한 능으로 국조오례의에 따른 무덤 배치가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둘러보면 멋들어진 낙락장송 앞에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삼면에 둘러놓은 곡장,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 설치한 봉분, 영혼이 나와 놀다 가는 혼유석,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쫓는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양과 석마 등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다. 원래의 영릉은 1446년에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헌릉의 서쪽에 미리 쌍실의 능을 만들었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이후 세조 때부터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주장이 있어 예종 때인 146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봉분과 장명등 사이에 있는 혼유석 2좌가 합장릉을 알린다. 능에서 바라보는 아래편의 풍경도 아름답다. 영릉에서 내려오다 노송이 만든 멋진 그림자를 만났다. 하지만 그림자는 모양과 크기가 수시로 변하는 허상이다. 500여 년의 역사를 완전한 형태로 묵묵히 증명하고 있는 조선 왕릉의 가치가 크다는 것을 멋진 그림자가 알려준다.
세종대왕릉 영릉(英陵)과 효종대왕릉 영릉(寧陵)은 한글 이름이 같은데다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자락의 좌우에 자리하고 있어 세종대왕의 영릉만 기억하기 쉽다. 세종대왕릉을 돌아본 후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며 산책길을 걸으면 가까운 곳에 꾸미지 않아 순수하고 소박한 효종대왕릉이 있다. 효종대왕릉인 영릉(寧陵)은 조선 17대 임금인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쌍릉으로 세종대왕릉과 함께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 효종대왕은 북벌이라는 큰 꿈을 이루지 못한 채 41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였지만 대동법 실시와 화폐단위 개혁은 물론 양란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바로잡는 기틀을 마련한 업적 또한 작지 않다. 효종대왕은 16대 임금인 인조의 차남으로 맏이인 소현세자가 급작스럽게 죽자 세자로 책봉되어 1649년부터 1659년까지 재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아버지 인조는 청나라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세 번 찧는 굴욕을 당하였다. 당시 봉림대군이었던 효종대왕도 이듬해 형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잡혀가 청나라에 8년간 머물렀다. 이때 청나라에 원한을 품게 되어 왕위에 오른 후에는 김집, 송시열, 송준길 등 청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신하들과 은밀히 북벌 계획을 수립하였다. 매표소를 지나면 시골마을의 양반주택을 닮아 빗자루를 든 하인이 문을 열고 반갑게 맞이할 것 같은 재실(보물 제1532호)이 입구에 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왕릉의 재실 가운데 원형이 잘 보존되고, 건물의 공간 구성과 배치가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집안에 수령 300여 년으로 수형이 좋은 회양목(천연기념물 제459호), 수령 500여 년의 느티나무 노거수, 키가 큰 향나무가 있어 재실의 역사성을 높여주는데 한몫한다. 홍살문에서 능을 바라보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호위하듯 감싸고 있다. 비교적 거리가 짧은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속세와 신성한 지역의 경계가 되는 작은 개울 금천(禁川)이 흐른다. 정자각과 비각 뒤편으로 인선왕후릉이 가깝게 보인다. 정자각에는 신이 오르는 신계(神階)가 있고, 신계 첫 계단 양쪽에 태극무늬를 새긴 석고(石鼓)가 있다. 이곳의 정자각 주위에 제사 음식을 만들고 제기에 나누어 담는 수라간, 능을 지키고 제수를 준비하는 수복방, 효종의 영릉비가 서있는 비각 등이 있다. 효종대왕릉은 세종대왕릉과 달리 정자각 옆 수라간을 지나 왼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정자각 뒤편으로 가면 왼쪽에 사각형의 석함이 있다. 이것을 예감 또는 망료위라고 하는데 제례가 끝나고 제례음식을 치울 때 축관이 축문을 불태워 묻는 곳이다. 효종대왕릉 영릉(寧陵)은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가 아니라 아래위로 배치한 쌍릉으로 풍수지리적 이유 때문에 상하열 자리에 왕릉과 왕비릉을 조성했다. 이런 쌍릉 형식을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라 하는데 효종대왕릉 영릉이 조선 최초다. 석물의 배치가 똑같은데 왕릉의 봉분에만 있는 곡장이 두 능이 한 영역 안에 있음을 알려준다. 왕릉과 왕비릉 모두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다. 원래는 효종대왕이 승하한 1659년에 건원릉 서쪽 산줄기에 능을 조성하였다. 그런데 1673년 병풍석에 틈이 생겨 광중에 빗물이 스며들었을 거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능을 옮겨야 한다는 천장론이 불거지자 현재의 위치로 입지를 정하고 능을 열어보았다. 물이 들어온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영릉은 천장하고 이에 연루된 자들은 면직을 당했다. 영릉 천장 다음 해에 인선왕후가 승하하여 효종 왕릉 아래에 인선왕후의 능을 조성하였다.
주말을 맞아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사진 찍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은 늘 신선하고 가슴이 설렌다. 오전 여덟시. 서산을 떠난 우리의 애마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9시30분쯤 서울 갈림길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오토크루즈 컨트롤을 시속 100킬로미터로 설정해놓고 끊임없이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산야를 흥미롭게 감상한다. 유난히 습하고 무더웠던 여름이 이곳 강원도 접경으로 들어서자마자 이미 저만치 뒷걸음질을 치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세상은 온통 가을색으로 가득하다. 아, 좋다! ‘좋다’는 말 이외에 또 어떤 형용사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핸들을 잡은 손은 가볍고 엉덩이는 들썩여진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풍광이 바뀔 때마다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그랬다. 강원도로 가는 길은 정말 산세가 수려하다. 칼날 같은 능선과 능선이 겹쳐지며 푸른 녹음을 만들어내고 그 녹음은 다시 뭉게구름이 되어 능선을 타고 피어오른다. 산들은 녹음의 구름이요 녹음의 양탄자다. 겹쳐지고 포개어진 산세는 다시 하나로 흐르고 흘러서 영월로 집중된다. 세상의 그 어떤 솜씨 좋은 화가가 저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청량한 강원도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여행객은 불현듯 신선이 되고 시인이 된다. 일찍이 조선시대 송강 정철 선생은 강원도와 금강산의 풍광을 일컬어 중국의 ‘여산(廬山)’보다 낫다 하였거늘,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처음’이란 단어는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첫사랑이 그렇고, 첫 출근이 그렇고, 첫 만남이 그렇다. 하루를 여는 신 새벽의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신선함이 코끝을 간질인다. 과연 영월은 어떤 모습으로 이처럼 설레는 여행객의 마음을 충족시켜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차는 이제 문막 IC로 접어들고 있다. 연꽃잎처럼 이어진 산봉우리 사이로 흰 운무가 춤을 춘다. 운무는 푸른 봉우리만 외로이 남겨놓고 아득히 멀어져간다. 하지만 이내 또 한 무리의 운무가 야금야금 봉우리들을 먹어치운다. 숨고 도망치며 숨바꼭질을 반복하던 산봉우리는 이제 흰 구름으로 가득하다. 어느 것이 하늘이고 어느 것이 봉우리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문득 조선시대 이매창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걸어서 백운사에 오르니 절이 흰 구름 사이에 있네 스님이여, 저 흰 구름을 쓸지 마소 마음은 흰 구름과 함께 한가롭다오. 잠시 여주휴게소에 들러 유부우동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나 드디어 영월군내로 들어섰다. 제일먼저 큼지막한 돌에 “하늘이 내린 살아 숨 쉬는 땅! 강원도”라 새겨진 이정표가 우리를 반긴다. 시원하게 뚫린 이차선 도로를 따라 우리의 거침없는 진군은 계속된다. 이름 모를 산야초들이 아기자기하니 정겹다. 단종께서도 이 길을 걸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비감이 어린다. 숙부에게 왕위를 강탈당하고 천리 길을 걸어 영월로 오던 단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우리 같은 범인의 경지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착잡한 심정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랬는지 영월 땅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경치가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역설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 부부는 한가로운 길섶을 골라 잠시 차를 세우고 가녀린 구절초 한 송이를 말없이 바라본다. 이름 없는 들꽃이지만 저 처연한 자주색의 자태가 단종을 추모하는 듯하다. 어떤 꽃들은 울고, 어떤 풀들은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그랬다. 영월은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단종에 대한 충심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과연 충절의 고장답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드디어 청령포의 너른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강 건너 저 곳이 바로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머무르던 곳이라고 한다. 비극의 현장답지 않게 원경으로 보기엔 참으로 수려한 풍광이다. 비취빛 강물이 둥그런 원을 그리며 유배지를 감싸며 흐르고 또한 단종이 머물렀다는 적소주변을 빽빽한 장송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단종에 관한 비극적인 사건만 없었다면 천혜의 휴양지라 해도 손색이 없겠단 생각이 든다. 아내와 나는 우선 다른 관광객들을 따라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청령3호’라 쓰인 나룻배에 올랐다. 배를 모는 사공이 말하길, 적소(謫所)까지 가려면 삼면이 깊은 강물에 둘러싸여 이 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다고 한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초행길인 모양으로 전국 각지에서 골고루 모여든 듯하다. 배가 움직이자 이내 푸른 강물이 뱃전을 위협한다. 처음에 하찮게 생각했던 강물이었는데 막상 배가 물살을 가르자 꽤나 수심이 깊어 보여 사뭇 공포심이 인다. 정말 배가 없었다면 오도 가도 못하는 천혜의 고도인 셈이다. 그때 아내가 손에 들고 있던 새우깡 하나를 물속에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라미들이 순식간에 새까맣게 몰려든다. 저 물고기의 조상들은 단종의 용안을 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숙연한 생각이 든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천만리 떨어진 낯선 고도에 갇혀 바람과 구름과 새와 물고기만을 친구로 삼으며 하루하루 사약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단종의 공포가 떠오른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 푸른 산 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恨)은 끝이 없구나. 두견새 소리 끊긴 새벽 묏부리에 달빛만 희고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는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슬픈 하소연 어이 못 듣고 어찌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듣는가. - 단종의 어제자규루시(御製子規樓詩) - 청령포에 들른 자, 그 뉘라서 통곡하지 않으리. 아내의 손을 잡고 청령포를 걷는다. 발걸음을 내딛자 땅속 저 깊은 곳에서 단종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 556년 전의 비극이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어린 소년 단종이 흰 두루마기를 입은 채 어소주변을 걷고 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한양에 두고 온 아리따운 아내(정순왕후)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길가에 핀 야생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종은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북받치는 설움에 통곡하는 것이리라.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아내의 고운 얼굴. 어린 아들을 두고 차마 눈을 감지 못하던 아버지 문종. 그리고 어여쁜 누나 경혜공주. 여기가 궁궐인가 착각하여 눈을 부릅떠보면 다시 섬이다. 이 넓은 백사장에 사람은커녕 단종의 마음을 알아주는 돌멩이 하나 없다. 그렇게 하루 종일 섬 안을 배회하던 단종은 어둠이 청령포를 깜깜하게 먹어치운 다음에서야 비로소 처소에 든다. 낮은 그럭저럭 지내왔지만 이제 찾아올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는 밤은 어찌 지낸단 말인가. 절대고독의 상황에서 슬픔과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는 단종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소 안에서의 단종의 생활은 서민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1457년 임금에서 노산군으로 낮추어진데다가 죄인의 몸으로 유배형까지 내려졌으니 지존의 존엄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주방시녀와 침방시녀만이 단종을 지켰으니 그 불편함이 오죽했으랴. 어소주변을 배회하다보니 일반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 눈에 띈다. 어소주변을 감싸고 있는 낙락장송들이 마치 사람이 절을 하는 모양으로 어소를 향해 굽어 있었다.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니 소나무들이 모두 단종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인공적으로 전혀 손을 대지 않았는데 나무들 스스로 굽어진 것이라고 하니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한낱 미물인 식물도 단종의 원통함에 공감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소주변에서 몇 발자국을 걷다보면 하늘을 찌를 듯이 기립해 있는 인자한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바로 그 유명한 ‘관음송’이다. 언뜻 보면 두 그루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한 뿌리의 한 나무이다. 세조 2년인 1456년에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모습을 지켜보며 슬픈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볼 관(觀)’과 ‘소리 음(音)’ 자를 따서 관음송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19m 크기로 청령포의 많은 소나무 중에 단연 으뜸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한 시간 여를 청령포에 머물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옥녀봉과 선돌을 가기 위해 다시 ‘청령3호’에 올랐다. 옥녀봉과 선돌에 가면 단종의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안내인의 친절한 설명에 아내는 어서 가자며 나를 채근했다. 아내의 채근하는 모습을 보며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나를 지켜주는 아내와 딸.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사실은 아내와 딸이 나도 모르게 뒤따라와서 내가 주저앉고 싶을 때 내 어깨를 주물러주거나 부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 그들의 사랑을 나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우리 인간은 한없이 어리석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정작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물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고 가족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좀 없으면 어떠랴.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일지라도 가족 간에 화목하지 못하고 갈등이 심하면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영월 여행을 통해서, 또 단종의 생애를 통해서 나는 하루하루 생명의 위협 없이 편안히 살 수 있다는 것과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곁에서 마음껏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인지를 깨달았으니 참으로 귀한 여행인 셈이다. 오늘밤에는 아내와 함께 영월의 아늑한 객관에 누워 밤이 새도록 슬프도록 아름다운 영월의 역사와 사랑과 그리움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10월의 막바지인 30일부터 31일까지 이틀간 순천 팔마종합운동장에서 전라남도 학생종합체육대회가 있었다. 이번 대회는 2014년도 소년 체천을 대비한 1차 선수 선발전을 겸하여 실시한 것으로 초등학교 6학년과 1,2학년이 함께 하는 대회였다. 광양여중의 경우 2학년 선수가 없는 상태에서 1학년과 광양서초등학교에서 입학하게 될 6학년(강은영, 김수현, 정하연, 제인선, 강민지)이 팀을 구성하였다. 1차전은 장흥대덕중과의 대전에서 3대 0으로 가볍게 이기고, 2차전은 순천여중과의 대결이었다. 순천여중과는 2대 1로 이긴 성과를 이루었지만 역시 2학년 선수가 없는 연유로 다소 위축되어 팀이 1대 1의 경쟁을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조가 이김으로 1학년(김혜미, 서현조, 이세희)과의 팀 구성을 잘 이루어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학교에서 진로 교육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진로 교육을 전담하는 부서와 전문 교사 제도가 만들어졌다. 교육부에서 현직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한 후 진로진학상담교사로 발령을 내고 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진로 수업을 하고, 학교의 진로 교육을 기획하고 실천을 한다.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에서부터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 교육을 한다. 학생들의 적성 검사, 개인별 포트폴리오 작성, 진로 탐색 프로그램 운영, 직업 현장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진로 교육을 소홀히 했다. 오직 진학에 치중했다. 그것도 맹목적으로 명문대 진학에 목숨을 걸었다. 다행히 최근 학교에서 진로 교육이 활성화되고 있다. 비중도 크게 다루고 있다. 교육부의 주도 하에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진로 교육 강화를 위해 중학교 1학년 성적은 고입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계획까지 두고 있다.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따라서 진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한 개인이 미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현실적이다. 사회적으로도 입시위주의 교육을 해소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균형 있게 양성 공급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도 기대가 크다. 그러나 현재의 진로 교육은 섬세하게 고민해 볼 것이 있다. 지나치게 직업 교육에 비중을 두는 것은 아닌가. 취업전문가이자 파라슈트의 저자인 리처드 볼스는 우리는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세상을 가장 긴 안목으로 내다본 피터 드러커도 현대와 같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10년 후를 내다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변화처럼, 현재 유망 직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는 시점이 되면 없어질 수 있다. 아울러 새로운 직업이 엄청나게 많이 생겨나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섣부른 직업 체험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IMF 위환 위기 이후 직업에 대한 생각이 많아 달라졌다. 직장이 우리 삶 전체를 흔들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최근 청년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너무 눈앞에 현상에 얽매이게 된다. 일부 학교에서 취업 현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선배의 취업 강연을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진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안정성, 미래 유망성 등의 터널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다. 고등학교에서 전공 선택을 서두르게 하는 것도 걱정이다. 꿈을 만들기도 전에 전공 학과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것은 입시 제도가 그렇게 부추기고 있다. 저학년부터 진로와 관련된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이 대학 입학에 유리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학과 선택을 일찌감치 하고 거기에 맞춰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진로와 관련된 독서도 하면 유리 하다고 한다. 이렇게 지속적인 활동이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제 등의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준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는 말이 있다. 직업을 볼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봐야 한다. 낯선 것을 보았을 때 내 생각이 만들어지고 호기심이 생긴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로 예측 불가능한 삶을 산다. 하나의 길로 가는 것은 어리석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야 한다. 진로를 빨리 결정하는 것보다 나를 채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스스로 방황의 길을 가야 한다. 방황이 있어야 삶의 면역력이 생기고, 근본적인 나를 찾을 수 있다. 방황하는 가운데 나를 들여다보고 그 관찰을 통해 나의 모습을 만난다. 어차피 우리 몸속에서 적성이라는 씨앗이 있다면 빨리 찾기 위해서 짓눌릴 필요가 없다. 외부의 강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찾은 적성은 자칫 우리의 참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씨앗이 튼튼히 싹을 틔우도록 내면을 살찌우는 것은 어떤가. 그렇다면 방황을 통해 토양을 기름지게 해야 한다. 방황의 퇴비가 쌓인 내면에서 생명처럼 자라는 적성의 씨앗을 발견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교육이 성공했던 요인도 있지만, 실패한 면도 있다. 그중에 아이들의 삶에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관여하는 측면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진로 안내도 어른들의 입장에서 하고 있다. 진로 선택을 채근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나가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유망 직업보다는 꿈을 찾아다니도록 해야 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뜨겁게 할 수 있는 꿈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꿈을 찾는 일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혼자서 힘겹게 찾아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꿈, 행복한 꿈이 만들어진다.
광양중동중(교장 김한호)은지난달 31일 교육부 요청 전라남도교육청 지정 생활지도 연구학교 연구 보고회를 가졌다.이 보고회에는 동부지역인 순천, 여수, 광양, 구례,고흥, 보성,장흥 지역교사 50여명이 참여와 교육연구정보원 윤길준 연구사와 도교육청에서 임석관으로 장병호 장학관이 참관한 가운데 성대히 이뤄졌다. 현재 우리 나라의 학교교육은 지식 습득교육에 치중한 나머지 학생의 정서발달과 인성함양이 미흡하다는 판단 아래, 학교 교육환경이 취약계층, 소외계층, 한 부모 가정 학생의 비율이 높고 주거 환경도 열악하다. 이에 '실천 위주의 인성교육 프로그램 적용을 통한 인성 함양 방안'이라는 주제로 1년가 연구를 추진하였다. 학교의 이러한 요인으로 학생들의 자존감이 낮고 긍정적인 사고가 미흡하므로 학생들의 낮은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올바른 인성교육을 기르기 위하여 학교생활을 통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생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함으로 정체성을 높이고 성취감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 구성과 학교의 주 활동인 학교수업을 통하여 교과교육을 통하여 어떻게 인성교육을 실천할 것인가를 연구한 것이다. 장병호 장학관은 교육감의 격려사를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옳은 말보다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나와 또 다른 나인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해와 협력이 곧 변화의 힘이며, 참다운 인성이다. 우리가 맡고 있는 교육은 오늘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20년, 30년, 나아가 100년 앞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배려와 나눔, 공동체 예절 등 인성이 바탕이 된 인간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하여 얻은 결론으로 첫째,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교과별 인성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통하여 전 교사가 인성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과서 내용 분석을 통해서 인성 요소를 추출하여 수업을 통해 지도한 결과,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고, 바람직한 인성이 함양되었다. 둘째, 또래상담 프로그램을 통하여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도와주고, 학업 성적, 교우 관계, 이성 관계 등 또래들의 고민과 문제를 함께 모색하여 해결함으로써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셋째, 체육, 예술 분야의 동아리 프로그램은 사전 수요조사를 하여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동아리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동아리 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공감, 소통, 긍정, 자율 등 인성교육 덕목을 실천할 수 있었다. 넷째, 학생 자치회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행사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친구, 선·후배 간에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월별 행사 중 반별 스포츠대회를 통하여 협동심과 책임감이 강화되고 공감과 소통의 장이 형성되어 바람직한 인성이 함양되었다.
전남 광양여중은 10월의 마지막을 교사를 위한 마음 치유 음악회로 장식하였다. 이는 요즘처럼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힘들고 다인수 학급에 1천여명에 가까운 교육공동체인 대규모 학교가 갖는 선생님들의 마음은 매우 지쳐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치유, 내지는 회복의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1학기를 마무리하면서 개최한 힐링 음악회가 선생님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2학기 바쁜 일정에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출연자는 세한대학교 이광일 교수의 그리운 마음 외 1곡을 비롯하여 독일 카셀 음대를 졸업하고 룩스 앙상불 단원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은주, 첼리스트 김채연, 전남대 대학원 재학중인 김보나씨의 해금연주, 순천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이신 박두규, 그리고 본교 음악교사로 피아노 전공인 노경희, 김희정 선생님이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올 해 광양여중에 부임한 공광재 교사는 이번 음악회를 통하여 “ 교사 스스로가 기획한 좋은 음악회를 가까이 접하면서 자신이 마치 왕족이나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 소감을 밝히면서 다른 학교들도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학교생활에 지친 선생님들의 마음이 회복받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꿈과 끼를 키우는 2013 충북진로직업교육축제가개최되었다. 지난달 29일부터1일까지 충청북도교육과학연구원과 한림디자인고등학교에서 개최된 이번 행사는 충청북도내 상업계 12개교, 공업계 9개교, 농업계 4개교, 가사계 1개교가 참가하였다. 특성화고 920여명의 학생작품 684점과 68명의 교사작품 등이 전시되었고, 중학생 생활기술 경진대회, 특성화고 실무능력 경진대회, 장기자랑 한마당 등 경연대회가 이루어졌다. 또한 특성화고의 다양한 예비창업동아리 체험, 특성화고 취업박람회, 직업교육 정책 토론회가 개최되어 특성화고의 우수성과 비전을 지역 중학생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진로검사 및 상담, 릴레이 진로교육 특강을 통하여 충북의 직업교육의 위상을 한단계 더 성숙시킨 행사가 되었다. 행사 관계자는 특성화고의 이미지를 전환시키고, 지역 학부모와 중학생들에게 특성화고의 교육 내용을 알리고,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특성화고의 이미지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며, 매년 개최되는 이 행사로 인해 특성화고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고 하였다.
대전 신도심 지역에 위치한 대전외삼중은 28개 학급을 가지고 있는 중소규모학교이다. 이 학교의 학부모들은 교육에 대한 열의와 관심이 높은 편이나 다수가 맞벌이인 관계로 학교에서 실제적인 진로·인성을 포함한 좀 더 활발한 교육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지적호기심이 강한 편으로 본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학생참여 중심의 수업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 외삼중은 자유학기제 운영모형으로 학생참여중심의 교육활동, 진로체험을 강조한 ‘학생선택프로그램중점모형’을 선택하였다. 이를 위해 선택프로그램의 반 구성은 수요자 희망을 위주로 배정하였으며, 교과연구회를 중심으로 교과별지도계획과 평가모형 등을 수립하였다. 교과연구회는 1학년 교과수업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으로 2, 3학년교사를 주축으로 하여 구성되었으며, 1명의교사가 1개 이상의 다양한 교수학습모형을 개발하게 하여 교과별 자료를 구축하였고, 교과지 도내용과 연관된 평가방법의 수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교육과정편성시, 효율적인 자율과정(진로활동, 선택프로그램, 동아리, 예체능교과) 운영을 위해 자율과정을 오후시간에 배치하고 블록타임수업이 되도록 구성하였다. 선택교과의 개설은 교사협의를 통해 1학년교과중 도덕, 과학, 수학교과를 제외한 국어, 사회, 기술가정, 음악, 미술, 체육, 영어교과에서 시수를 약1시간정도 감축하여, 특정교과에서의 희생을 동반한 수업시수감축이 되지않게 하였다. 또한 시수를 감축 한과목과 관련된선택교과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교과와 연장선상에서 체험수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여 학력저하에 대한 학부모의 우려를 낮췄다. 선택수업의 질관리를 위한 일환으로 외부강사를 활용하며, 외삼중 교사와 팀티칭수업을 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진로의 경우, 외삼중에서는 진로체험이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진로포트폴리오형식의 ‘드림스케치’를 활용하고 있다. 학생들은 진로체험전계획서를 작성하고, 체험후에는 활동보고서 작성을 통해 체험을 마무리하고 있다. 진로체험시 학생 안전관리 지도부분은 전문교육을 받은 학부모 진로코칭단과 외삼중교사가 협력하여 학생들을 인솔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또한 자유학기제가 학생들의 진로역량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학교 시행전후로 진로심리검사를 실시하였으며, 검사결과를 근거로 비슷한 유형의 학생모둠을 구성하여 집단상담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관리하고 있다. 몇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과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교수학습모형과 평가모형을 만드는 것이다.v1학년 교과수업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으로 2, 3학년교사를 주축으로 하여 구성되었으며, 1명의교사가 1개 이상의 다양한 교수학습모형을 개발하게 하는 것이 주목할 만한 것이라 보인다. 둘째, 학부모들의 학력저하에 대한 우려를 불식한 점이다. 시수를 감축 한과목과 관련된선택교과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교과와 연장선상에서 체험수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셋째, 선택수업의 질관리를 위한 일환으로 외부강사를 활용하는데 자유학기제 원취지에 의하면 가능한 현재의 교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넷째, 외삼중에서는 진로체험이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진로포트폴리오형식의 ‘드림스케치’를 활용하고 있는데 기존의 커리어넷의 마이 커리어나 에듀팟을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섯째, 자유학기제가 학생들의 진로역량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학교 시행전후로 진로심리검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연구학교 인근의 더른 중학교와 비교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한다. 연구학교를 하기위하여 비교학교가 있어야 할 것이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우수학생의 공직 진출확대와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안정행정부가 지난 8월에 실시한 ‘지역인재 9급 수습직원 선발시험’ 행정직(회계)에 본교 출신인 강소희(20세, 여)양이 최종합격했다. 강소희양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지난해에 합격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꾸준히 공무원시험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특성화고에 입학하여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며 많은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며 합격소감을 밝혔다. 2012년에 도입한 지역인재(9급) 추천채용제는 학력보다 실력 중심의 인재 등용을 위해 안행부가 지난해에 도입하였으며, 전국 273개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우수학생 752명이 1차 필기시험(국어, 영어, 한국사), 2차 서류전형, 3차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하게 된다. 최종 합격한 강소희양은 내달 안전행정부의 수습직원으로 등록되어 내년 3월부터 수습근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리고 6개월간 수습근무를 거쳐 근무성적이 우수할 경우, 9급 공무원으로 정식 임용된다.
전남교육연구정보원(원장 박광춘)은 지난달 30일 10시부터 연구정보원 강당에서 2013학년도 학교평가 후속 컨설팅 연수를 실시하고 초,중, 고 컨설팅 위원 55명에게 위촉장을 전달하였다. 1995년 교육개혁 이후 학교교육의 질 개선과 책무성 강화를 위해 도입된 학교평가는 2000년부터 교과부의 위탁을 받아 한국교육개발원 주관으로 국가수준의 학교평가가 시행되었고, 2004년부터 시도수준의 학교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전라남도교육청의 경우 2012학년도에 3년주기 3차년도가 마무리 되고 2013학년도는 학교 자체 평가가 강조되는 방향에서 평가가 시작되는 해이다. 따라서 모든 학교가 평가 대상이며 공개는 1/3만 하게 된다. 2012년도에는학교자체 평가와 서면평가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그 결과 우수교에는 지원금이 차등 지급되었으며 표창을 하였고 후속컨설팅이 이뤄졌으나, 올해는 학교 자체 평가만 실시하며 지원금이 없고 전문적 후속 컨설팅이 확대될 예정이다. 이에 컨설팅 요원의 전문성 향상을 위하여 한국교육개발원 박승재 연구위원의 강의와 컨설팅 기법에 대한 실습이 이뤄졌다.
병설유치원 활용 교육비 부담없어 생활태도 판단해 초등처럼 유급도 네덜란드는 유아교육이 초등 교육과정에 포함된다. 공교육만으로 유아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에 따로 자녀들을 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교육비를 쓸 필요가 없다. 유아들은 만 4살 생일이 되면 집 가까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때부터 2년간의 유아교육과정(Groep 1, 2)이 진행된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유아교육 2년을 포함해 모두 8년으로 구성된다. 이런 유아교육을 위해 각 초등학교는 이들 유아들을 교육시킬 수 있도록 교실 안팎에 놀이시설, 운동시설 등을 잘 갖추고 있다. 학생들을 보호하기위해 들어가는 입구는 초등학교 교사(校舍)와 구분돼 있다. 일종의 병설유치원 형태인 셈이다. 출입구가 따로 있고 초등 고학년 학생들이 유치원 교육시설로 올 수 없도록 독립된 공간을 보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유치원 교육의 특징은 유아의 첫 학교생활이 바로 사회생활의 기초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협동, 양보, 질서를 지키는 교육이 중요시되고 있으며 언어나 숫자, 외국어 공부는 전혀 시키지 않는다. 특히 독서의 중요성과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친구에게 양보하는 법, 차례를 지키는 법, 교통 교육 등이 강조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초·중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유급제를 활용해 경우에 따라 1년 더 배우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언어나 숫자, 외국어 등 교과수업은 전혀 하지 않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이 학교생활 중에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노는지, 놀이시간에 서로 양보하는지, 교실에서 다른 친구들을 잘 도와주는지 등 유아의 생활태도를 자세히 관찰하고 생활기록부(rapport)에 남겨 학기말 유급을 결정한다. 유급적용대상은 친구에게 양보하지 않고 극도로 이기적인 행동을 보인다거나 교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등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유급 결정은 교사에게 맡겨지는데,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교사의 전문적인 판단에 따르는 편이다. 이처럼 유치원에까지 유급을 적용하는 이유는 유치원 교육이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을 배우는 기초교육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철저하게 기본을 잘 배우지 못하면 앞으로 본격적인 초등학교 교육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 성인이 된 후의 사회생활에도 지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언어나 숫자 교육은 따로 시키지 않지만, 아이들을 위한 기초체육, 음악·미술 교육, 독서 활동은 진행한다. 이런 수업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된 공교육인 만큼 교원자격을 갖춘 교사에 의해 이뤄진다. 네덜란드 학부모들은 별도의 교육비 부담이 없는데다가 자격과 전문성을 가진 교사에게 어린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유치원 공교육에 만족해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3·4세 누리과정을 도입했지만 여전히 공립보다는 사립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여서, 아직도 유치원 교육비가 매달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이 넘게 들어간다. 유치원교육의질도 시설과 교사에 따라 크게 차이를 보여, 일부 사립유치원의 경우 치열한 입학경쟁 진풍경까지 벌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도 이제 유치원교육의 진정한 공교육화를 위한 방안을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과외금지도 효과 없어 영어사교육 극약 처방 북경시 2016년 대학입시 개편안이 어제 발표 됐기 때문이다. 입시 총점 750점 중 150점을 차지하던 영어 비중이 100점으로 대폭 축소되고 ‘어문’으로 불리는 국어과를 150점에서 180점으로 증가했다. 입시안 발표 다음 날 제109고교 1학년생 곽모 군은 학교에 갈 의욕이 도무지 나지 않는다. 유치원 때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해 13년 동안 계속했다. 초등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영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5학년까지 매주 두 번씩 영어 학원을 다녔다. 6학년 여름방학에는 3000위엔(한화 60만원)을 들여 집중수업을 받기도 했다. 끊임없이 영어를 공부한 덕에 곽 군은 영어를 가장 잘했고 대입에서도 영어로 등급 상승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번 입시개혁은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같은 반 최모 군은 개혁에 찬성하는 편이다. 최 군 역시 유치원 때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해 학원을 다녔고, 중3 때는 심지어 시간당 300위엔(한화 6만원)이 드는 가정교사를 불러 주당 4시간씩 1년 동안 개인교습을 받았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이었던 최 군은 과중한 사교육비 지출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다 흥미를 잃어 영어가 취약 과목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발표된 대입 개혁안은 베이징시의 학업부담 경감 정책의 일환이다. 베이징은 중국대륙에서 입시 경쟁이 가장 치열한 지역 중 하나로, 초등학교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없어진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학교 간 격차가 심한 베이징시에서는 아직도 일부의 소위 명문중에 학생선발권을 부여하고 있다. 공식적인 시험은 치를 수 없는 대신 학생들의 ‘영어와 수학 능력’을 선발 기준에 포함하고 있다. 학교마다 평가기준이 다르기는 하나 각종 수학과 영어경시, 해당 학교들이 사교육기관에 위탁해 실시하는 선발시험, 사회일반의 영어·수학능력시험 결과 등이 대부분이다. 과외지도를 받지 않은 공교육만으로 이런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분위기에 초등 저학년 때부터 학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이징시에서는 학생들의 학업부담 경감을 위해 해마다 과외금지령을 내렸지만 입시제도가 존재하는 한 상황은 심각해지기만 했다. 이에 시는 근본적인 대책으로 고입, 대입에서 영어 점수 비중을 대폭 축소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에 앞서 베이징시는 올 2006년부터 해마다 사회인들을 상대로 진행해오던 ‘베이징시 영어능력시험’이라 불리는 영어고사를 금지시켰다. 많은 유명 중학교에서 이 시험의 3급 이상을 입학조건으로 요구하는데 그 난이도는 대학원 입학 영어 수준에 해당한다. 그래서 영어능력시험을 정지시켜 초등학생들의 영어학습 부담을 경감시키고자 한 것이다. 지난달 베이징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개혁안을 발표했다. 고교 입시 영어과 비중을 120점에서 100점으로 줄이고, 이중 50점은 듣기 시험으로 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대신 중국어과는 120점에서 150점으로 점수 비중을 높였다. 대입개혁안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베이징 이외의 지역에서도 분분히 대입개혁정책을 발표해 영어의 비중을 줄였다. 산둥성에서는 대입 영어의 듣기시험 부분을 없앴고, 쟝쑤성에서는 영어과 시험 자체를 없앴다. 영어는 장기간에 걸쳐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간주됐다. 대입 750점 중 150점을 차지했고, 대학원 입시, 학위수여, 국가 공무원시험, 대학교수 승진 등 거의 모든 자격시험에서 영어성적은 당연한 조건으로 요구됐다. 때문에 이번 개혁으로 중국에서 영어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베이징시 교육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영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영어를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원래 지위로 되돌려 놓자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많은 재력, 시간과 정력을 쏟았는데 갑자기 시험제도 개혁을 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은 어떻게 되냐”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영어 교사들은 “입시 개혁보다는 교수법 개혁에 힘을 기울여 영어의 실용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원주도 교육개발원조 모델 학교설립·교육봉사·아동결연 지난 15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91km 떨어진 깜뽕츠낭시 쓰레쁘린 마을에서 ‘깜뽕츠낭 꿈의 학교’ 기공식이 열렸다. 캄보디아 학생들을 위한 학교지만 학교를 세우는 것도 운영하는 것도 한국 교원들이다. ‘깜뽕츠낭 꿈의 학교’ 설립은 대한민국 교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캄보디아학교세우기모임’ 주관으로 추진되고 있다. 노장권 천안청수고 교사가 2007년 교육봉사 현장에서 학교가 부족한 캄보디아의 열악한 교육을 알리면서 모임을 결성하게 됐다. 현재는 전국 유·초·중등 교원 중심으로 회원 14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학교세우기모임은 2008년부터 캄보디아 저소득층 아동 결연 운동을 시작해 72명의 아동을 지원하다 기금이 쌓이면서 학교를 세워주자고 의기투합하게 됐다. 이렇게 설립한 학교가 2011년 프놈펜에서 35분 떨어진 쁘랙농 마을에 설립한 쁘랙농초등학교다. 학교세우기모임은 회원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을 모아 설립비용을 마련하고 2009년 부지를 확보했다. 2010년에는 퇴직교원인 최광현 전 충남 염작초 교장과 심혜숙 전 충남 도솔유치원 원장이 현지로 가 학교설립 사업을 이끌었다. 현재 쁘랙농초는 두 두 교원의 관리 아래 유치원에서 초등5학년까지 약 70명과 10여명의 교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세우기모임은 이런 성공적인 활동 모델을 인정받아 외교통상부 비영리민간단체가 됐고 두번째 학교인 ‘깜뽕츠낭 꿈의 학교’를 설립할 때 ‘캄보디아 낙후지역 어린이 교육지원사업’으로 안전행정부의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 대상에 선정돼 7300만원을 지원받았다. 퇴직교원의 헌신적인 교육봉사와 현장교원 중심의 교육개발 사업의 성공적인 모델을 확립한 데 이어 민간단체와 정부가 협력하는 교육개발사업을 이끌어낸 것이다. 쁘랙농초에 이어 깜뽕츠낭 학교도 퇴직교원이 설립 사업과 학교 운영을 맡게 됐다. 깜뽕츠낭 학교 교장을 맡은 김영근 전 청주분평초 교장은 “과거 대한민국이 문맹과 기아에서 허덕일 때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에 학교와 병원을 세워 문맹과 질병에서 우리를 건져준 결과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성장했다”며 “그 고마움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았는데 그 사랑의 빚을 갚고 싶다”고 밝혔다. 김 교장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문맹률 높은 세계 최빈국들 중 마지막 열정을 불태울 곳을 찾고 있던 중 캄보디아학교세우기모임에서 교장을 맡아달라는 청이 있었다”며 “현지 주민들과 주정부도 관심이 큰 만큼 기대 이상의 교육서비스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깜뽕츠낭 꿈의 학교’는 유치원에서 초등 3년까지 학생 450명을 선발해 내년 10월부터 개교한다. 추후 매년 한 학년씩 교육과정을 늘려 초등 고학년과 중·고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학부모와 현지 주민을 대상으로 문맹퇴치 사업과 직업훈련교육도 병행키로 했다.
10명 중 4명 반년 내 그만둬 취업 질 개선 대책 주문 마이스터고, 특성화고의 취업유지율 하락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취업률 경쟁보다는 취업의 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교육부 확인감사에서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올해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졸업생의 취업추이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전국 21개 마이스터고 졸업생 3372명 중, 졸업 당시 3191명(94.6%)이 취업했지만 8월에 취업률은 85.2%로 9.4%p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당시와 같은 직장을 다니는 취업유지자는 2614명(81.9%)으로 577명(18.1%)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특성화고 졸업생의 취업유지율은 좀 더 나빴다. 전국 26개 특성화고 졸업생 6041명을 분석한 결고, 졸업 당시 3154명(52.2%)이 취업했지만 8월에는 취업률이 33.3%로 18.9%p나 하락했다. 졸업 당시와 같은 직장을 다니는 취업유지자는 1651명(52.3%)으로 1503명(47.7%)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겼다. 유 의원은 “특성화고 취업유지율이 작년보다 더 심각하고 1회 배출한 마이스터고도 20퍼센트 가량이 첫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며 “취업률 성과 홍보에 급급하기 보다는 취업의 질 개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일반학교 특수학급 졸업생의 올해 취업유지 현황도 분석한 결과, 취업자 672명 중 14.7%(99명)가 취업상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특수학교 졸업생 취업자 308명 중에서도 24.7%(76명)는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