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04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
농촌 소외지역에서 근무하다 보니, 좋은 점도 있고 어려운 점도 있다. 좋은 점은 자연 친화적인 환경을 꼽을 수 있고, 어려운 점은 교통·문화·교육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100여 년이 가까운 역사를 가진 학교라 다른 도시지역 학교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사계절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학교의 큰 자랑거리다. 소외지역에서 학교도서관은 그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전형적인 독서교육의 거점이기도 하고, 휴식처이기도 하며, 문화센터이기도 하다. 때론 비상교실로도 활용하고, 도서관 활용수업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생업으로 너무 바쁜 보호자들은 아이들의 독서나 학습을 찬찬히 돌볼 여유가 없다. 그래서 학교의 역할이 더욱 크기도 하다. 대체로 독서력도 좀 낮은 편이라 처음에는 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 학교에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데, ‘동시 쓰고 시화 꾸미기’다. 우리 학교는 2009년부터 3~6학년까지 동시를 쓰게 하고, 그 작품을 시화로 꾸며서 학교 화단에 있는 스테인리스 액자에 넣어 전시하고 있다. 작품이 많을 때는 복도에도 전시하고, 학교 전자게시판에도 올려서 모두가 감상하고 있다. 6학년은 봄, 5학년은 여름, 4학년은 가을, 3학년은 겨울을 소재로 학교의 자연환경·학교생활·가정생활 등 다양하게 연결 지어 쓰도록 하고 있다. 동시 쓰기 수업은 도서관에서 이뤄진다. 보통 2차시로 운영되는데, 느린학습자가 많을 때는 3차시로 연장하기도 한다. 수업 운영은 다음과 같다. 사전 준비하기 ● 수업계획 세우기 수업계획은 학기 초에 미리 세워둔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미리 2차시로 담임교사와 협의하여 시간을 조정한 후 공지하고, 수업은 1~2차시를 연결해서 운영한다. ● 수업에 필요한 PPT 만들어 놓기 수업에 필요한 동시 쓰기 방법과 시화 꾸미기에 대한 PPT를 작성해 둔다. PPT를 미리 만들어 두면 학생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고 수업시간을 맞추는 데 유리하다. [PART VIEW] ● 수업에 필요한 자료 준비하기 수업하기 ● 4학년~6학년 수업: 수업 시기 _ 봄(3월), 여름(6월), 가을(9월), 겨울(11월) 우리 학교는 3학년부터 동시 쓰기와 시화 꾸미기를 해마다 2차시씩 하고 있기 때문에 4학년~6학년 학생들은 동시에 대한 이해와 동시 쓰기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어휘와 글감 선택하기, 운율 살리는 법, 행과 연 가르기 위주로 수업한다. 습작하는 동안 어휘 선택과 리듬감, 전체의 흐름이 잘 어울리는지, 은유와 직유의 방법을 적절히 사용하였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또한 여러 번 고치는 과정을 지루해하지 않도록 적절한 보상과 칭찬을 하였다. 가장 많이 고쳐 쓴 학생에게 그 노력을 칭찬하고, 간단한 간식으로 보상하기도 하였다. 유명한 시인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수정을 한다고 알려주었다. 이렇게 하니 퇴고의 중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마땅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동시집 서가에서 동시집을 하나 골라서 읽어보게 하거나, 국어사전을 찾아보게 한다. 학교의 자연물을 소재로 할 경우에는 도서관에 비치된 동물도감과 식물도감을 참고하여 그 특징에 대해 알아보게 한다. 완성된 작품은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는데, 학생이 원할 경우는 스스로 나와서 읽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교사가 읽어준다. 이때 시의 제목은 읽어주지 않고 본문만 읽어준다. 친구의 시를 감상하고 나서 제목 맞추기를 하니 2차시를 연이어 진행해도 지루해하는 학생이 없다. 시화 꾸미기의 경우 완성된 작품을 화면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생각하도록 하고, 미술적 요소를 가미한다. 시화 꾸미기는 작품과 감상자 모두에게 시적인 감성과 미술적 감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 3학년 수업: 동시 쓰기와 시화 꾸미기 초보 단계 3학년은 준비한 PPT를 보면서 동시 쓰기의 중요성과 방법에 관해 먼저 공부한다. 서가에서 동시집을 고른 후, 가장 마음에 드는 동시 1편을 선택해서 각자 낭독한다. 낭독을 해봄으로써 동시의 어휘와 리듬감이 우리가 쓰는 산문 문장과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경험치가 부족한 학생들은 시의 글감 선택도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계절과 연상되는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유목화하도록 하고, 각자 다른 소재들을 선택하게 할 때도 있다. 학생들이 습작하는 동안 교사는 시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어울리는지 확인한다. 자기가 쓴 동시를 글자 하나하나 짚어가며 소리 내 읽도록 지도하는데, 이것은 틀린 글자나 문맥이 이상한 것 또는 띄어쓰기가 잘못된 것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동시를 읽어보고 고쳐 쓰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은 필요하다. 포기를 쉽게 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많이 고친 학생들을 격려하고, 간단한 간식으로 보상하고, 가장 많이 고치고 다시 쓴 친구를 다 같이 격려하는 시간을 가진다. 고학년과 마찬가지로 동시 제목 맞추기 퀴즈를 잠깐 한다. 이렇게 하면 발표하는 학생에게 집중(경청)하고, 여러 가지 연상활동으로 이어져 학생들의 사고력을 높일 수 있다. 수업이 끝나갈 때는 포스트잇에 수업 참여 소감을 적도록 하며, 이것을 따로 모아서 코팅하여 학교 뜰 또는 복도에 전시한다. 업그레이드하기: 동시집 출판에 도전하기 오랜 세월 학교의 아름다운 전통인 ‘동시 쓰고 시화 꾸미기’ 수업을 도서관에서 해왔다. 학생들의 천진하고 아름다운 시화 작품을 전시만 하고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문집보다는 정식 동시집 출판에 도전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가능한 일이냐”면서 “너무 좋다고 기대가 된다”고 하였다. 출판 비용이 만만치 않아 단기간에는 어렵고 시간을 두고 결정해야 할 문제였기 때문에 동시집 출판에 필요한 사항들을 알아보고 계획안을 만들어 학교에 제출했다. 다행히 “학생들의 학력 향상은 물론 정서 함양과 바른 인성을 기르기에 아주 좋겠다”며 교장선생님은 흔쾌히 예산을 배정해 주셨다. 올해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 학년으로 참여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우리 학교는 소규모학교라서 동시집에 전교생 작품을 싣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직 한글 해득이 안 된 저학년이나 동시 쓰기를 무척 어려워하는 배움이 느린 학생까지 모두 참여시키기 위해서 저학년은 학급 담임이 동시 수업을 진행하고, 필요한 경우는 사서교사의 협력으로 학생들의 입말로 지은 동시를 채록하여 원고를 수집하기로 하였다. 정식으로 동시집을 출판할 계획인 올해는 동시 쓰기와 시화 꾸미기를 예년보다 조금 앞당겨서 10월 초까지 완료한 후, 10월 한 달 동안 독서동아리 부원의 협조를 얻어 학생 스스로가 동시집 기본 디자인에 참여할 예정이다. 또한 출판기념회도 학생 스스로 개최할 예정이다. 독서동아리 부원들은 벌써 관심이 매우 높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능력이 많다. 우리의 편견과 선입관을 버리면 얼마든지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 학교의 ‘동시 쓰고 시화 꾸미기’는 이미 지역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올해는 동시를 쓰고, 시화를 꾸미고, 전시하던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식으로 동시집을 출판함으로써 학생 개개인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또한 비봉초등학교의 아름다운 전통이 독서교육과 도서관의 역사로 남게 될 것 같다. 맺는 글 독서교육의 갈래는 매우 다양하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로 표현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그러나 동시집을 독서로 들어가는 입문서로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긴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림책도 좋지만, 동시집도 좋은 자료가 된다. 게다가 동시를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어휘를 익히고, 감성도 풍부해지고, 표현력과 상상력도 향상된다. 동시집 출판은 교육적으로 의미가 크다. 동시를 쓰고 동시집을 출판하는 것은 도서관이 지식의 보고라는 인식에서 더 나아가 지식 생산의 장으로 그 기능을 확대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독서력이 낮은 학생들도 독서력을 높일 수 있음은 물론 문예감수성 향상과 도전정신도 기를 수 있다, 출판 후에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학생의 삶에도 긍정적이다. 요즘 책 쓰기가 대세다. 책 쓰기를 하는 곳도 꽤 있다. 책 쓰기를 하는 학교에서는 사실 책이라기보다는 팸플릿 수준의 책 쓰기 기본을 익히는 것도 보았다. 짧은 시간 안에 책의 물성적 특성을 공부하기에 좋은 점도 있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완벽한 책으로서의 동시집 출판도 좋다고 생각한다. 소규모 학교에서는 동시 감상부터 동시집 출판과 출판기념회까지의 과정에 전교생이 참여하는 것도 좋다. 이전에 근무하던 학교는 규모가 커서 독서동아리 1년 프로젝트로 동시집 읽기부터 시작하여 동시 쓰기와 동시집 출판을 한 적이 있다. 학교의 형편과 사정에 맞는 다양한 방법을 선택하여 도전하기를 권한다.
받아쓰기와 노트 정리 우리는 스마트기기가 사람 말 그대로 받아 적어주고, 녹음파일도 텍스트파일로 바꿔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와 달리 학생들이 수업내용을 그대로 받아쓸 필요는 거의 없어졌다. 그렇다고 하여 노트 정리할 필요도 없어진 것일까? 노트 정리란 그대로 받아 적는 활동이 아니라, 학습내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정리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의 인지발달단계에 따라 노트 정리가 기억력 향상, 개념 이해도, 수업 몰입도, 장기 학습효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 글에서는 ‘인출’이라는 관점에서 노트 정리의 효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출로서의 필기 고급 역량을 기르려면 배우는 개념과 원리 및 사실을 잘 이해하고 기억해야 한다. 배운 내용을 오래 기억하고 필요시에는 이를 능숙하게 회상할 수 있어야 분석력·비판력·적용력·창의력 등의 고급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뢰디거와 맥다니엘(Roediger and McDaniel, 2014)의 주장처럼 지식의 탄탄한 토대가 없는 창의력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나노로봇을 통해 뇌에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직접 다운로드할 수 있지 않는 한, 인간의 뇌는 스스로 노력을 통해 어렵게 배워야, 지식을 포함한 필요 역량을 기를 수 있다. 뢰디거와 맥다니엘은 학습효과 증진의 방법으로 ‘인출’ 개념을 제시한다. 인출이란 말 그대로 꺼내는 활동이다. 많은 교사가 수업 종료 5분 전에 모든 교재와 노트를 덮고 그 시간에 배운 내용에 대해 질문, 쪽지시험, 핵심 개념 떠올리기, 지식 활용 등의 활동을 하는데 이러한 활동이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뇌에서 꺼내도록 하는 인출 활동이다. 이렇게 할 때 새로운 대상을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재부호화하고 통합하면서 단단히 뿌리 내리게 할 수 있고, 쉽게 꺼내어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수업에 집중하도록 하는 효과도 크다. 뢰디거와 맥다니엘의 인출이라는 개념을 확장해 보면, 인출은 배운 후 꺼내는 활동을 하는 ‘사후 인출’만이 아니라 배우기 전에 꺼내는 활동을 하는 ‘사전 인출’, 그리고 배우면서 동시에 하는 ‘즉시 인출’로 나눠볼 수 있다. 사전 인출 _ 연습과 필기 사전 인출이란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거꾸로 수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쉽게 말하자면 학생들이 예습하도록 유도하는 활동이다. 사전 인출에 대비하는 것을 ‘사전 인출 연습’이라고 한다. 인출 연습이란 주어진 문제해결을 위해 자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떠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반복해서 교재를 여러 번 읽는 것보다는 읽은 내용의 요점과 궁금한 점을 노트에 적고, 노트를 덮은 후 학습한 내용을 떠올려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인출 연습은 뇌에 저장된 것을 필요할 때 꺼내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길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다. 사전에 작성한 노트는 수업 중에 꺼내놓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필기까지 한다면 학습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즉시 인출 즉시 인출이란 배우는 장면에서 즉시 꺼내는 활동, 쉽게 말하자면 노트 정리를 의미한다. 인출로서의 노트 정리는 눈과 귀로 들어온 정보를 뇌로 보내어 분석·정리한 후, 이를 손으로 보내어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대로 받아적는 것과는 다른 활동이다. 받아적기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주의가 분산되어 학습활동이 방해받을 수도 있다. 특히 아직 노트 정리에 미숙한 초등학교 저학년은 노트 정리나 받아적기에 애쓰느라 정작 내용 이해를 놓칠 수도 있다. 이를 근거로 노트 정리를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새로운 정보를 듣고 나서 메모나 복습 없이 두뇌에만 의존하면, 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가 주장한 망각곡선에 따라 며칠 내로 상당 부분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필기를 안 해서 집중을 높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학습내용의 기억 유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많은 연구의 결론이다. 노트 정리 효과는 학습자의 인지발달단계, 필기 방식과 능력, 교과목 특성에 따라 복잡한 상호작용을 보인다. 노트 필기는 단순한 정보 기록을 넘어 뇌 신경회로의 활성화 패턴을 변화시키는 고차원적 인지 과정이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적자생존(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노트 필기 훈련, 즉 ‘즉시 인출’ 연습을 지속적으로 하면 이는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향상에도 보탬이 된다. 손 필기와 디지털 필기 효과 분석 최근 10년간의 신경과학 및 교육학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손 필기와 디지털 필기는 각각 독특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연령별로 최적화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Blackwell, 2024; Hu, 2024; Ihara, 2021). 초등학생이 손 글씨를 쓸 때 전전두피질과 소뇌의 협응이 활성화되며, 이는 뇌의 감각-운동 통합 네트워크 발달을 촉진한다. 2024년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 연구팀의 fMRI 실험에 따르면 8~10세 아동이 손 필기를 하면 두뇌의 베타파 동기화 수준이 타자로 입력하는 경우보다 42% 증가하였다. 이는 주의력 조절능력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Hu, 2024). 2020년 미시간대 연구에서 고등학생 1,200명을 대상으로 한 3년간 종단연구 결과, 손 필기 노트를 사용한 집단이 디지털 입력 집단보다 논리적 오류 감소율이 27% 높았으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격차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Flanigan and Titsworth, Oct 2024). 하지만 의대생 대상 손 필기와 디지털 필기 비교 연구에서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Wiechmann and Edwards, 2022). 학습방식의 개인차 공부기술(2002)이라는 책을 낸 조승연은 노트 필기 무용론을 주장한다. 그는 예습을 통해 수업내용을 미리 학습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파악했다가 수업시간에는 필기 대신 그 부분 이해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는 손으로 필기는 하지 않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사전 인출, 즉시 인출, 그리고 사후 인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 학생들의 경우에는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이 수업시간에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필기를 할 때 학습효과가 더 크다. 손 필기보다는 디지털 필기가 더 익숙한 학생도 있다. 학생들의 개인차는 인정해 주되, 학습과정 중에 개인에 적합한 방식으로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은 꼭 길러줘야 할 것이다.
지난 4월 28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는 기자회견을 통해 저출생 대책을 제21대 대선 핵심 교육의제로 발표했다. 교직단체가 교사의 교육권 보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저출생 대책을 첫 번째 의제로 부각한 것은 얼핏 특이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저출생 문제 해결이야말로 교육기관으로서 학교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다. 그간 정부는 아이들이 더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교원 수는 감축해 왔다. 반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학교에 돌봄과 보육 기능만은 대폭 강화했다. 학교투자의 주요 기준이 수업과 생활지도를 중심에 둔 본연의 역할 지원이 아니라, 저출생 문제가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교육여건 개선 소홀 → 사교육비 증가 → 저출생 심화 악순환 끊어야 교원 감축 기조로 이어진 저출생 문제는 교단의 비정규직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고교학점제, 개별화 교육, 과밀학급 문제 등 교원 증원이 절실한 정책적 과제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학생이 줄고 있다는 이유로 교원 수요를 기간제 교원으로 임시 충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규 교원 대비 기간제 교원 비율이 급격히 올라가, 2005년 초·중·고교의 기간제 교원 비중은 3.5%에 불과했지만, 2024년에는 15.4%로 폭증하였다. 중학교는 21.9%, 고교는 23.1%에 달하며, 사립은 더 심각해 중학교 35.0%, 고교 36.0%가 기간제 교원인 상황이다. 저출생 문제에 따른 교원 감축 추세는 교육여건의 핵심인 학급당 학생 수 감축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총 21만 9,918개 학급 중 학급당 학생 수가 21명 이상인 학급은 15만 7,628학급으로 무려 전체의 71.7%이고, 26명 이상인 과밀학급도 7만 645학급(32.1%)에 달하는 등 과밀학급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한편 저출생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사교육비는 매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작년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1,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4.5% 증가했다. 초·중·고 전체 학생 기준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3만 4,000원으로 전년에 비해 5.8% 증가하였고, 참여 학생 기준으로는 55만 3,000원으로 5.5% 증가하였다. 초·중학생은 학교 수업보충이나 선행학습이, 고등학생은 학교 수업보충과 진학 준비가 주요 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교 수업만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방증하고 있다. 공교육에서 학생 개인에게 맞는 다양하고 충분한 학습과 진학 준비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사교육은 줄어들 수 있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 회복과 만족도 향상만이 저출생을 부추긴 사교육비 경감의 근본 대책인 것이다.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는 현재의 저출생 위기를 뒤집어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으니, 교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교원을 늘려도 학급당 학생 수를 획기적으로 줄여 교육환경에 대한 대대적 개선이 가능해짐을 생각해야 한다. 학생 수 감소를 핑계로 교육여건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다면 저출생의 원흉인 사교육비 문제를 잡기는 요원하다. 공적 돌봄 한계 … 가정 중심 양육과 학교 교육력 강화 병행 필수 여러 저출생 다큐멘터리에서는 대체 왜 2030이 아이를 낳지 않는지 파헤치고 있다. 그중 자주 회자하는 것이 학교 돌봄 문제이다. 부모들은 학교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학교 돌봄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여지 없이 아이들이 학원만 전전하게 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오래 생활하는 것을 버거워하고 집에서 지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타 시도에 비해 공무원이 거주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세종특별시의 경우 2015년부터 2024년까지 통계청 자료 기준 합계출산율이 가장 높다. 공공기관·공무원·교사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이 육아휴직을 비롯한 복무의 용이성과 고용 안정성, 경력단절 위험이 적다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학교를 비롯하여 ‘남이 대신’ 내 자녀를 돌봐주는 것은 저출생 문제의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부모임은 당연하고, 젊은 세대는 전전긍긍하며 타인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낳지 않는다. 공적 돌봄을 우선시하는 정책만 확대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를 이상적인 제안으로만 치부한다면, 저출생 문제의 탈출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녀를 부모가 직접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면 전 사회적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여건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고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다. OECD는 2024년 한국경제보고서를 통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정책 강화가 대한민국 최우선 과제임을 강조하면서, 단순한 아동현금수당이 아닌 보육의 질과 양을 개선하기 위한 종합적인 공공지출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늘봄학교가 주요 저출생 대책으로 국정과제로 추진됐지만, 서울 등 출산율이 낮은 지역의 참여율은 낮고 되레 출산율이 높은 지방이 참여율이 높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맞벌이 부부에게 의미 있는 정책일 수 있지만, 질적인 충분성과 출산율에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는 돌아볼 일이다. 오히려 학교에 돌봄 기능이 강화되면서 공간 부족, 학교행정과 민원 증가, 학기 초 적응활동교육의 어려움 등으로 학교가 정규교육과정에 전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분산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공적 돌봄을 무작정 확대하는 것보다 효과성이 입증된 결혼·출산·육아제도를 정비하여 사회 전반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출산율 제고의 방법이다. 특히 노동인력 지원, 세제 혜택 등 기업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혜택을 제공하여 ‘가정 중심 양육’ 정책 전환에 민간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방과 후 돌봄은 저출생 문제의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 불가피한 차선책이어야 한다. 교권보호, 행정업무 분리, 학교의 필수공익사업장 지정도 중요 학교가 여러 역할을 적당히 한다고 해서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학교는 교육기관으로 정체성을 명확하게 확립하는 것이 맞다.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그 교육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한다. 한국교총은 교육여건 개선과 연동한 저출생 대책과 함께 학교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공약도 제시하였다. 먼저 교권보호 9대 핵심 과제를 내세웠다. 1. 모호하고 포괄적인 ‘정서적 학대행위’ 개념 구체화 2. 무혐의 및 교육청에 정당한 교육활동 의견 제출 사안은 불송치 3.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는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인정 4. 학생 안전과 교사 보호를 위한 현장체험학습 제도 개선 5. 학교폭력의 정의를 ‘교육활동 중’ 발생한 사안으로 한정 6. 학교전담경찰관(SPO) 단계적 전 학교 배치 7. 교권보호위원회 교사 위원 비율 상향 8. 시도교육청으로 성고충심의위원회 이관 9. 학생·교원의 마음건강 증진 지원제도 정착 교육과 무관한 학교행정업무를 완전 분리할 것도 강조했다. 학교 외부기관으로의 이관 타당성이 높은 업무부터 우선 이관을 추진해야 한다는 방향성과 구체적인 이관 업무를 제시했고, 학교 밖 요인으로 유발되는 행정업무에 대한 과감한 규제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시도교육청의 비법정기구로 설치되어 있는 ‘학교지원전담기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인력과 예산 지원을 전폭 확대해야 함도 제시했다. 학교를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도 주요 교육공약이다. 교육공무직의 잦은 파업으로 학교현장에서 급식·돌봄 대란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는 차원이다. 장기 파업으로 인해 초등학생이 한 달 넘게 대체식을 받는 것은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학교를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면 보건·급식·돌봄활동에 대해 파업 시 대체 인력 투입이 가능해진다. 노동자의 단체행동권도 보장하면서 학생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낼 수 있는 대안이다. 교육현장의 염원이 정치에 적극 반영되길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 머지않았다. 대선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톡톡 튀는 교육정책을 발표하는 데 애쓰고 있다. 하지만 역대 정부마다 새로운 교육정책을 추진해 왔음에도 그에 대한 학교현장이나 국민의 신뢰도는 낮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과연 실험적인 제도가 부족한 것이 우리 교육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필요한 것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신경 써줄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다. 개별화된 관심과 맞춤형 교육으로 학습의 질을 담보하고, 학생의 정서를 배려하며,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극대화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교육여건의 획기적 개선으로 학교를 살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저출생 국가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차기 정부는 국정 운영에 있어서 교육을 사람 중심의 국가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학교현장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길 바란다. 교육을 통해 사회와 미래를 바꾸겠다는 철학과 실천의지를 지닌 대통령이 당선되길 소망한다.
평생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공직자의 정년퇴직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국가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하여 「공무원임용령」 제42조 제2항에 따라 정년퇴직 예정 공무원에게 사회적응능력 배양과 퇴직 후의 삶을 보람 있게 설계할 수 있도록 공로연수제도(이하 ‘퇴직준비교육’)를 운영하고 있다. 근무지를 떠나 6개월에서 1년까지 교육받는 이 제도는 공직자가 명예롭게 퇴직하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도록 돕는 매우 의미 있는 정책이다. 교원만 배제되는 퇴직준비교육 제도 퇴직준비교육은 모든 공무원(현재 120만 명 추정)과 직업 군인이 대상이며, 정년퇴직을 앞둔 공직자는 이 제도를 활용하여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오직 교원만이 퇴직준비교육에서 배제된 채 정년을 맞이하고 있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에 위배될 뿐 아니라, ‘교원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사회적 지위를 우대해야 한다’라는 「교육기본법」 제14조와 ‘교원이 존경받고 긍지와 사명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2조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교원을 담당하는 교육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교원의 퇴직준비교육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 방학이 있어 퇴직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 방학은 학생이 계속되는 학업에서 벗어나 심신을 재충전하고 다음 학기의 학업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더위와 추위 또한 방학 결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방학은 학생을 위한 제도이지 교사의 휴식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다. 교육부는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에 방학 중 교원이 근무 장소 외의 시설 또는 장소에서 연수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 법에 따라 교원은 방학 중에 전문가로 존중받을 수 있는 다양한 연수를 받는다. 아니면 재택근무를 하거나 출근하는 것이 원칙이다. 실제로 방학 중에도 교장·교감·보직교사는 공문 처리, 시설관리 감독, 교육과정 수립 등으로 상시 출근하며, 상당수 교사는 법정연수, 다음 학기 수업 준비, 보충수업, 캠프 운영 등으로 근무한다. 방학은 근무의 연속이기에 방학 중 개인적인 여행을 가려면 별도의 휴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교육부가 방학을 근무의 연속이라고 인정하는 증거이다. 이처럼 방학이 근무의 연속임에도 방학 때문에 교원에게만 퇴직 준비 시간을 부여할 수 없다는 교육부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면에서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 퇴직준비교육은 단순한 실근무 기간에 따른 보상이 아닌, 장기간 공직에 헌신한 것에 대한 예우이자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제도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방학 때문에 실근무 기간이 짧아서 퇴직준비교육 시간을 주지 못한다면 재직 중 연가·병가·학습휴가·장기재직휴가·휴직 등으로 복무기간이 짧은 일반공무원 또한 퇴직준비교육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더욱이 교원의 정년은 62세로 일반공무원보다 오래 공직에 헌신하기에 오히려 실근무 기간이 적지 않음에도, 퇴직준비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것은 장기간 헌신한 교원집단에 불이익을 주는 명백한 차별 행위이다. 둘째, 퇴직준비교육은 정년 직전에 사회적응능력을 체계적으로 배양하기 위해 제공되는 교육이다. 매년 반복하는 방학 때문에 퇴직준비교육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신규 임용 시점부터 방학마다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주장이 된다. 나아가 방학으로 모든 교육을 대체할 수 있다면, 6개월에서 1년간 파견을 통해 전문성을 함양하는 교사의 학습연구년제도 방학으로 해결할 수 있으므로 불필요하다는 모순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방학은 교원의 역량개발을 위한 연수기간이자 근무의 연속이지 퇴직 후의 삶을 위한 준비시간이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셋째, 퇴직자의 사회적응능력 배양의 필요성은 일반공무원뿐만 아니라 교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일반공무원에게 사회적응능력 배양을 위한 퇴직준비교육을 제공하면서, 교원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은 교사에게는 퇴직 후 사회적응능력이 필요 없거나, 덜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교원 역시 퇴직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성공적으로 삶을 설계하기 위한 준비가 꼭 필요하다. 퇴직준비교육은 이러한 준비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며, 교원에게도 동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더욱이 교원은 ‘방학’이 있다는 이유로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18조의5 제1항 제1호에 따라 연가보상비를 받지 못해 연간 수백만 원의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또한 교원은 ‘수업 및 교육활동 등을 고려하여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수업일을 제외하여 실시하도록 한다’라는 「교원휴가에 관한 예규」에 따라 일반공무원과 달리 학기 중 연가 사용에 제약이 따른다. 근로자 중심의 시대에 연가 사용권을 제한받는 것은 큰 불편이다. 이처럼 방학이 근무의 연속임에도 휴가로 오해받고, 연가보상비 미지급, 학기 중 연가 사용 제한 등 방학에 대한 대가를 이미 충분히 치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학을 이유로 퇴직준비교육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차별을 반복하고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는 처사이다. ● 교원의 퇴직준비교육 제도 도입에 따른 ‘정원 및 예산 문제’를 제기하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금은 교육대학과 사범대 졸업자가 충분한 상황이므로, 퇴직준비교육 도입이 교원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 교육부가 걱정하는 것은 교원 부족이 아니라, ‘정원 증원’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초등 늘봄학교 운영을 위해 2,500명의 교사를 임기제 연구사로 파견하며 정원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교원정원 확보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정부 핵심 정책사업을 위해 교원정원을 늘릴 수 있다면, 수십 년을 헌신하고 영예로운 정년을 맞이하는 교원을 위한 정원 확보 역시 충분히 가능하며, 오히려 퇴직준비교육은 교원 임용 적체를 해소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 예산 확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행정안전부의 2023년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인사 통계’에 따르면 31만 3,014명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중 정년퇴직자는 5,596명(1.7%)이며, 이 중 퇴직준비교육을 받는 공무원은 4,293명이다. 이는 전국 시도교육청 소속 일반직 공무원 6만 8,244명과 경찰·소방·외무 등의 공무원을 제외한 수치이므로, 실제 퇴직준비교육 대상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한국교육개발원 KESS의 2023년 교육통계에 따르면 37만 4,741명의 초·중등교원 중 정년퇴직자는 4,658명(1.2%)에 불과하다. 교육부가 늘봄학교에 수천억 원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교사들을 위한 소규모 예산 배정조차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사들의 헌신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퇴직준비교육제도가 도입되어도 모든 정년퇴직 예정자가 퇴직준비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자에 한해 교육기회를 제공하기에, 실제 소요되는 예산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과 예산 확보가 어렵다면, 퇴직준비교육을 인센티브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장기간 보직이나 담임업무를 묵묵히 수행한 교사들에게 우선적으로 퇴직준비교육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보직 및 담임 기피 현상을 해소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 교원의 퇴직준비교육을 위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교육부는 ‘방학이 있는 교사에게 퇴직준비교육까지 제공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는 일반 대중의 시각을 고려할 때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앞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방학은 수업의 연장선이며 휴식이나 퇴직준비를 위한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퇴직준비를 위해 활용되어서는 안 되는 기간이다. 일반공무원은 장기재직휴가·학습휴가 등 새로운 휴가제도가 도입되어 휴가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수업과 생활지도를 병행해야 하는 교원은 수업 때문에 이런 휴가를 사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연근무조차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올해 7월부터 국가공무원의 사기 진작을 위해 장기재직휴가제도가 부활할 예정인 상황에서, 교원만 퇴직준비교육 대상에서 계속 제외된다면 더욱 심각한 차별 논란이 불거질 것이다. 교육부가 교원의 특수성을 간과한 채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면서 사회적 합의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책임회피와 다름없다. 교원의 헌신을 인정하고, 교원에도 퇴직준비교육 시간 보장해야 교육부의 ‘2024년 의원면직과 명예퇴직 현황’에 따르면, 2024년 한 해에만 7,467명의 초·중·고 교원이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교권침해와 학교폭력 등으로 인해 교직생활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정년을 채우지 않고 학교를 떠나는 교원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실하게 정년까지 근무한 교원에게는 그 노고에 합당한 예우가 반드시 필요하다. 교직에 헌신한 이들이 명예롭게 퇴직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교원공로연수법’ 제정과 같은 제도적 뒷받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평생을 교육에 헌신한 공직자로서, 퇴직을 앞두고 자신의 공직생활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교육부는 교원의 헌신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퇴직 준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교직에 대한 존중은 교육의 미래를 밝히는 첫걸음이며, 형평성과 공정성에 기반한 정책은 모든 공직자가 자긍심을 갖고 공직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이다. 공직에 헌신한 교원이 퇴직을 준비하며 보람 있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헌신한 교원의 마지막을 예우하는 것이 곧 교육을 바로 세우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크라스 지방의 카르스트 지형을 찾아 지리 교과서에는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녹아 만들어진다는 카르스트 지형을 다룬다. 카르스트라는 말의 어원은 슬로베니아 남부에 있는 크라스(Kras) 지방의 독일어식 명칭에서 유래하였다. 슬로베니아 남부지방에서부터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까지, 아드리아해를 따라 길게 펼쳐진 이 지역은 다채로운 지형 경관을 가진 여행 명소이며, 또한 중세 시대에 지어진 문화유산 속에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독특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또한 맑은 날이 많은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을 반영해 눈부시게 맑고 화창한 날씨의 영향으로 이미 많은 유럽인의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많은 지역이다. 이 여행은 크로아티아 남부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출발해 디나르알프스 산맥의 석회암 지대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카르스트 지형의 성지인 슬로베니아 남부 크라스 지방까지 이어지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는 아름다운 장소가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지형적 특징이 눈에 띄는 장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달마티아 지방의 하얀 도시들,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 달마티아 지방은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 연안을 따라 길게 펼쳐진 지방으로 보통 자다르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이어져 있다. 알프스산맥의 연장인 디나르알프스 산맥을 따라 석회암 산지가 일정한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으며, 일부는 섬이 되었다. 달마티아 지방에는 지리적·역사적 배경이 다른 도시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석회암이나 대리석을 이용해 도시를 조성하여 눈부실 정도로 밝은 인상을 주고 있다. 여행의 시작은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 두브로브니크이다. 15~17세기에 중개무역으로 번영했던 라구사 공화국이 자리했던 도시로, 당시의 건축물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스트라둔 대로의 바닥은 대리석 블록을 깔아두었고, 라구사 공화국 때부터 이어져 왔을 건축물들은 주황색에 가까운 붉은 지붕 아래에 하얀 석회암을 재료로 지어져 있다. 높은 곳에 위치한 요새에 오르면 붉은 지붕이 빼곡하게 들어찬 구시가지와 그 뒤로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반대편으로 가면 가파른 성벽 아래에 있는 바다를 볼 수 있고, 구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스르지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다. 산에 오르면 바다를 배경으로 성장한 두브로브니크의 위용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스플리트는 현재 크로아티아에서 자그레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아드리아해 연안의 역사적 요충지로 각광받은 도시이다.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자신이 은퇴한 후 거처로 사용할 궁전을 지은 것이 이 도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후 이 궁전은 방치되었고, 인근의 큰 도시인 살로나가 외적의 침입을 받자 그곳의 피난민이 이 궁전을 재건해 살게 되었다. 지금도 스플리트의 구시가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궁전 안에 지금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생계를 이어가는 공간이다. 궁전의 유적은 구시가지 내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마치 주민들이 유적과 함께 뒤섞여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궁전 내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호텔·식당·기념품점·의류매장 심지어 코인세탁방과 같은 편의 시설이 산재되어 있는데, 어떤 것들은 궁전의 유적 일부를 개조하여 이용하고 있다. 대리석을 이용한 눈부신 건축물만큼이나 유적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스플리트였다. 카르스트 지형의 지상 세계, 크르카 국립공원과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석회암의 주요 구성성분인 탄산칼슘은 하천과 지하수에 의해 녹는데, 이 탄산칼슘이 퇴적되면서 흐르는 강에 천연 댐을 형성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댐과 호수, 그리고 그 댐을 따라 물이 떨어지는 폭포가 만들어지며 환상적인 경관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유명한 장소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다. 플리트비체 외에도 조금 작은 규모로 알차게 볼 수 있는 장소가 또 있다. 크르카 국립공원은 스플리트와 자그레브 사이에 있는 도시 쉬베닉(Šibenik) 인근 스크라딘(Skradin)에서 갈 수 있다. 스크라딘에서 티켓을 예매하면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배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스크라딘스키 부크(Skradinski Buk)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폭포를 볼 수 있다. 탄산칼슘이 퇴적되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여러 갈래의 폭포가 몇 개의 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장면은 감탄을 지어내기에 충분하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크로아티아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국립공원이다. 면적이 매우 넓은데 그 안에 크고 작은 16개의 호수가 있는데, 크게 상부 호수와 하부 호수로 나뉘며 그 사이로 전기보트가 운행한다. 상부 호수는 잔잔한 호수와 함께 내려오다가 간간이 시원한 폭포를 마주하는 구간이다. 포토 스팟을 찾기는 좀 어렵지만, 카르스트 지형의 대자연 깊숙한 곳을 느끼며 천천히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구간이다. 이후에 전기보트를 타고 하부 호수로 내려오게 되면 호수의 규모는 조금 작지만, 눈에 띄는 폭포와 절벽이 많아진다. 특히 가장 아래쪽에 있는 벨리키 슬라프(Veliki Slap, 큰 폭포라는 의미)라는 폭포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폭포이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흐르는 코라나 강이 흘러 내려간 곳에 라스토케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약 10년 전 ‘꽃보다 누나’라는 예능에서 찾아가면서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다. 사실 이곳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속하지는 않지만, 앞서 두 국립공원처럼 탄산칼슘이 쌓여 만들어지는 호수와 폭포 위에 아예 마을이 형성되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 마을은 크지는 않지만 가볍게 산책하며 폭포와 작은 호수, 그리고 집 건물이 이루어낸 조화를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알고 보면 더 감동적인 지하 세계, 슈코챤 동굴과 포스토이나 동굴 카르스트 지형의 어원이 되었다는 크라스 지방에 들어섰다. 이 지역의 지형을 연구해 보고 이렇게 생긴 곳을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부르기로 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다채로운 지형이 있을지 기대가 되는 곳이었다. 이 지역은 지표를 흐르던 하천이 동굴로 숨어 들어가는 현상이 빈번하며, 그만큼 석회동굴이 많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는 지리 교과서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포스토이나 동굴이 있는데, 의외로 포스토이나 동굴은 아직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는 등재되지 않았으며 대신 슈코챤 동굴이 등재되어 있다. 슈코챤 동굴(Škocjan Cave) 탐방은 가이드 투어로만 진행된다. 투어가 시작되면 구덩이처럼 푹 파인 돌리네 안에 있는 동굴 입구로 향하는데, 가장 먼저 만나는 구간은 ‘고요한 동굴’이다. 완전히 메말라 성장이 끝난 구간으로 종유석과 같은 동굴 생성물이 있지만 한국의 석회동굴에서도 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게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넓게 탁 트인, 슈코챤 동굴의 하이라이트인 거대한 지하 협곡 구간을 만나게 된다. 유럽에서 가장 큰 지하 협곡으로 그 높이가 100m에 이른다. 엄청난 규모에 감탄하며 한참을 바라보니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동굴을 흐르는 강물이 동굴 안쪽 깊숙한 곳을 향해 흘러 내려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슈코챤 동굴은 지표를 흐르던 레카강이 지하로 흘러 들어가는 동굴로, 이 물은 이곳에서부터 34km 정도를 지하로 더 흘러가 이탈리아 동부에서 솟아나 2km 정도 길이의 짧은 강인 티미바 강을 통해 바다로 유입된다고 한다. 동굴을 나와서도 놀라운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동굴의 출구는 과거 동굴이었던 곳의 천장이 무너져 형성된 돌리네 속에 있으며, 인접한 다른 돌리네와 짧은 동굴을 추가로 관찰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을 볼 수 있는 동굴이라는 점을 알고 간다면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장소였다. 다음 찾아간 동굴은 포스토이나 동굴이다. 전체 길이는 24km에 달하며 개방된 길이만으로도 5km에 달하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긴 동굴이다. 관광을 위해 동굴 내에 미니 열차가 운행되고 있고, 이 열차 때문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유명한 동굴이다. 열차를 타고 찬바람에 떨며 들어가면 화려한 종유석·석순 등의 동굴생성물이 열차를 맞이한다. 열차에서 내리면 약 1.5km 정도를 가이드와 함께 걷게 되는데, 눈을 돌리는 곳마다 엄청나게 많은 종유석·석순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석회동굴에서는 독특한 모양의 종유석·석순 등에 이름을 붙이지만, 이 동굴에서는 아마 동굴 생성물의 수가 너무 많아서인지 종유석마다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포스토이나 동굴에서 차로 약 15분 정도 거리에는 프레드야마성이 있다. 이 성은 절벽에 붙어있는 모양이 독특한데 사실은 동굴 입구에 지어진 성이다. 이 지역의 영주였던 에라젬 루에거가 이 성에서 은둔해 있었는데, 이 성과 연결된 동굴을 통해 비밀리에 대피하거나 물자를 공급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성 자체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성과 관련한 스토리가 흥미를 더해주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다시 아드리아해 연안으로 오면, 중세 유럽 때부터 무역을 통해 발전한 작은 도시들이 있다. 크로아티아의 로비니(Rovinj), 슬로베니아의 피란(Piran)은 여행객에게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도시이다. 두 도시 모두 걸어서 돌아보는 데 부담이 없을 정도의 규모이면서, 소위 ‘엽서 같은 풍경’으로 도시의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예쁜 풍경을 자랑하여 여행객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는 도시이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는 앞서 소개한 곳들 이외에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혹하는 장소가 많다. 많은 사람이 좋은 풍경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여행을 선호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도 여행에 재미를 줄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여러분의 여행에도 그러한 재미가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중견 작가 서유미의 단편 토요일 아침의 로건은 어느 날 갑자기 뇌종양 판정을 받은 50대 중년 남자의 이야기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그는 벌써 4년째 토요일 아침마다 영어선생님 젤다와 2시간씩 비즈니스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로건은 그의 영어 이름이다. 영어도 늘고 회사에서도 승진해 미국 지사 발령을 앞두고 있는데 위기가 찾아온다.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삶이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행도 힘들 것 같다. 우선 젤다에게 영어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선뜻 말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소설은 로건이 결국 통보하기까지 4주 동안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일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로건은 왜 통보를 망설였을까. 수업하는 카페에선 한강에 있는 오리배들이 밧줄에 묶여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묶고 있는 밧줄을 풀면 오리배들은 어디로 떠내려갈까. 영어 수업을 그만두게 되면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그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리시안셔스 꽃다발 주문하지만 … 그런 로건이 회사 임원 식사 자리에 참석했을 때 장미 비슷한 꽃이 화병에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흰색·분홍색·라벤다색·노란색 등 다양한 색을 가진 꽃이었다. 여러 번 온 레스토랑이지만 꽃이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 ‘꽃들은 장미처럼 여러 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름은 알 수 없었다.’ 로건은 꽃 이름을 알고 싶어 휴대폰으로 꽃 사진을 찍어둔다. 토요일 아침, 그는 알람소리에 눈을 떴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후드집업을 걸치고 지하철역 근처의 플라워샵에 가서 미리 부탁해 놓은 꽃다발을 찾았다. 이틀 전 퇴근길에 꽃집에 들렀을 때 꽃집 주인은 그가 찍은 사진을 보더니 리시안셔스네요, 하며 연한 분홍색의 꽃 한 단을 꺼내 보여주었다. 레스토랑의 테이블에 있던 꽃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주인이 리시안셔스는 자른 상태에서 더 피지 않는 꽃이라며 수명이 긴 게 장점이라고 했다. 그는 얇고 부드러운 꽃잎을 보다가 꽃다발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로건은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젤다에게 줄 생각이었지만, 끝내 주지 못한다. 4주째 토요일에야 로건은 젤다에게 수업 중단을 통보한 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게’ 됐고, 비로소 마음이 아픈 것을 느낀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소설이었다. 작가는 토요일마다 소설 작법 수업을 한다는데, 수강생들에게 전범(典範)을 보여주듯 흠잡을 데 없는 소설을 쓴 것 같다. 4주간 영어 수업을 하면서 주인공이 본 장면과 느낀 감정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 감정과 겹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리시안셔스는 주인공이 몸의 이상을 안 다음 보이기 시작한 것 중 하나다. 소설에서 상당한 비중을 가진 소품이다. 아마도 중년의 위기에서 그제야 꽃이라는 생명 또는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한 것을, 이전과 다른 관심과 애정이 생긴 것을 보여주는 장치 아닐까 싶다. 리시안셔스, 장미와 카네이션 중간 느낌 소설에 나오는 대로 리시안셔스(Lisianthus)는 얼핏 보면 장미로 착각할 정도로 장미 비슷하게 생겼다. 장미와 카네이션의 중간 정도 느낌을 주는 꽃이다.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좋은 꽃말을 가져 결혼식 부케로 많이 사용하는 꽃이다. 물오름이 좋고, 절화(折花) 수명도 길어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꽃이라고 한다. 리시안셔스는 용담과의 한해살이풀로 원산지는 북아메리카다. 장미와는 꽃은 물론 줄기와 잎 모양에서 차이가 있다. 줄기에 가시가 없고, 잎은 마주나면서 타원형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 추천명은 ‘꽃도라지’이지만, 리시안서스·리시안사스 또는 속명인 유스토마(Eustoma)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홑꽃과 겹꽃이 있는데 겹꽃은 꽃잎이 겹쳐져 있는 모습이 터키 터번을 떠올린다고 터키꽃도라지라고도 부른다. 장미 비슷하게 생긴 절화가 하나 더 있다. 라넌큘러스(Ranunculus)인데 이 꽃은 이른 봄에 피는 꽃이라 그즈음에만 꽃집에서 살 수 있다. 원종은 선명한 황색으로 꽃잎이 5장이지만 원예종들은 겹꽃이 대부분으로 빨간색·노란색·주황색·분홍색·흰색 등 다양한 색이 있다. 꽃이 비교적 오래 가고 꽃잎이 많고 풍성해 젊은 층에 인기 있는 꽃이라고 한다. 라넌큘러스는 미나리아재빗과 미나리아재비속에 속하는 식물이니 국내에서 자라는 미나리아재비와 닮은 데가 많다. 한마디로 라넌큘러스는 미나리 같은 줄기에 장미처럼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이다. 라넌큘러스라는 이름은 라틴어 ‘Rana’에서 유래했는데 ‘작은 개구리’라는 뜻이다. 주로 연못이나 습지 등 습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라넌큘러스를 가장 쉽게 식별하는 방법은 많은 꽃잎이다. 얇은 꽃잎이 겹겹이 겹쳐 피는데 꽃잎 수가 300장이 넘는다고 한다. 주로 알뿌리로 번식하는 구근 식물이라는 것도 기억해 둘 만한 것이다. 요즘엔 초봄 길거리 화단에도 심는 꽃이다. 서유미 작가는 꽃과 나무 등 식물을 좋아하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그가 최근에 낸 소설집 밤이 영원할 것처럼엔 토요일 아침의 로건말고도 식물이 나오는 작품이 많았다. 육아로 자기 시간을 내기 어려운 주부와 학습지 방문교사의 생활을 그린 밤의 벤치엔 등나무와 전나무,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가정의 균열을 조용히 체감하는 하루를 그린 그것으로 충분한 밤엔 실내식물 스투키, 부유하고 선망받는 위치에서 내려와 별 볼 일 없던 친구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여성을 그린 지나가는 사람엔 벚꽃, 전 배우자를 독촉해 위자료를 받아내야 하는 여교수를 다룬 기다리는 동안에는 대표적인 실내식물인 스킨답서스가 나오고 있다. 또 표제작인 밤이 영원할 것처럼에서는 ‘좌천 아닌 좌천’을 당한 주인공의 심리적 충격을 벤자민고무나무로 표현하고 있다. 벤자민고무나무는 광택이 나는 작은 잎이 아름다운 관엽식물이다. 작가들의 꽃에 관한 관심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에 소설을 읽다가 마주한 꽃들은 팬지 등 화단 꽃과 야생화 위주였다. 그런데 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 보면 고무나무 같은 실내식물, 리시안셔스 같은 절화, 플루메리아 등 해외식물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서유미 소설집이 이런 패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학교현장은 학부모 민원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는 「학교폭력예방법」(이하 ‘학폭법’) 제정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학폭법」 제정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입 과정에서 교육현장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초등학교 1·2학년 학생에게 중·고등학생과 동일한 절차와 기준을 적용한 점이다. 초등 저학년인 1·2학년은 신체적·정서적으로 아직 미성숙하다. 이렇게 아직 발달단계에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중·고등학생과 같은 학폭 절차를 적용하면서, 현실에서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반영하여 교육부는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최근 2026학년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학생에 대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 개최 전 ‘숙려기간’을 시범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학폭법」 제정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방증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물론 사안이 중대한 학교폭력(이하 ‘학폭’)의 경우 학폭위 개최와 엄정한 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학교에서는 경미한 사안이 다수이며, 이로 인해 학교의 업무부담은 가중되고 학생들 간의 관계 회복은 어려워지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미한 사안까지 학폭위로 이어지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 해답을 학부모 연수에서 찾고자 한다. 실제로 초등학교의 학폭 사안은 대체로 학부모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되어, 결국 학부모의 결정에 따라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에서 학부모가 「학폭법」의 목적과 절차, 경미한 사안에 대한 교육적 해결 가능성 등에 대해 정확히 이해한다면, 학폭위 개최까지 가지 않고, 화해나 대화를 통한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학교폭력 민원 예방을 위한 변화된 학교장의 역할과 학부모 연수의 중요성 및 학부모 연수 내용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변화된 학교장의 역할 최근 ‘코로나19’ 팬데믹과 ‘서이초 사태’를 계기로 학교장 역할에 대한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되었다. 논의의 한계상 이분법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과거에는 권위가 있는 학교장을 원했다면 이제는 나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주는 따뜻하고 자상한 학교장을 원하고 있다. 매슬로의 인간 욕구단계론1에 비추어 보면 현재 교사들이 학교장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2단계 안전 욕구의 충족, 즉 학부모 민원 등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리더십이다. 이처럼 학교장에게 주어진 시대적 책무는 더욱 막중해졌다. 물론 오늘날 학교경영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학교장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 구성원들에게 미래를 예측하여 미래를 대비하게 해 주는 서비스(service) 정신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학교장은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을 잘 관찰해야(see) 한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잘 살펴야 한다. 학교장은 학부모 민원이라는 파도가 오기 전에 그 징후인 바람을 감지하고 예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면, 이제 그것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조사해야(search) 한다. 다양한 서적과 다양한 사례 등을 조사하고 비교함으로써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셋째, 학교장은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solution)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교장의 중요한 존재 이유는 구성원들의 요구에 대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장은 항상 먼저 고민하고, 더 폭넓게 고민하고, 더 깊게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학부모 연수의 중요성과 학부모 연수 내용 ● 학부모 연수의 중요성 초등학교에서는 여러 특성상 대부분의 학폭이 같은 반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일단 학부모가 학폭을 신고하는 순간, 담임교사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즉 담임교사는 학생을 교육하는 교수자, 생활 전반을 지도하는 생활교육 담당자 그리고 부모를 대위(代位)하여 학생의 일상생활을 관리해 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중립적인 학폭 사안의 조사자이자 처리자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물론 교사 스스로는 공정하고 엄정하게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부모가 이를 믿어주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랜 수사 경험을 가진 경찰과 검사가 사건을 조사하고 기소하며, 법원에서는 판사들이 3심에 걸쳐 재판을 진행한다. 이처럼 법률 전문가들이 조사하고, 기소하며 재판까지 담당하는 사건조차 그 결과에 대해 불복하는 이들이 연일 전국 곳곳에서 항의 집회를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학폭위 조치에 대한 학부모들의 전적인 수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학부모가 학폭위 개최를 요구하는 순간, 학폭은 더 이상 학생 간의 다툼이 아니라 어른들 사이의 감정적 대결, 이른바 총성 없는 전쟁(?)으로 변질된다. 실제로 경미한 학폭 사안일수록 학생들은 이미 화해하고 예전처럼 잘 지내고 있는데도, 학부모들만 열심히 싸우는 상황이 다수 연출된다. 이런 경우 학폭위 조치가 결정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그 과정에서 결국 가·피해 관련 학생 모두 심리적·정서적으로 상처를 입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경미한 학폭 사안은 처벌 중심이 아닌 화해 중심의 접근이 훨씬 더 실질적이고 교육적으로 효과적이라는 점을 학부모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연수가 매우 중요하다. ● 학부모 연수 내용 1) 「학폭법」의 성격과 특성 학부모들은 자녀가 학폭을 당했을 때, 가해학생에 대한 신속하고 강력한 처벌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녀를 사랑하는 학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학폭법」은 일반 「형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법체계와 철학을 가지고 있다. 즉 「형법」은 피해자의 직접적 보복을 막고 국가가 형벌을 부과하는 처벌 중심의 법이다. 반면에 「학폭법」은 「형법」과 달리 당사자 모두가 학생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처벌보다는 교육적 선도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법의 성격으로 인해 학폭 처리 과정과 처리 속도, 조치 결과들이 가·피해학생의 학부모가 기대하는 바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평소 학부모 연수를 통해 「학폭법」의 제정 취지, 철학과 성격, 특성 등에 대해 학부모들에게 정확히 안내할 필요가 있다. 2) 「학폭법」의 절차, 예상 조치와 그 효과성 학부모 연수에서는 학폭 처리의 전반적 절차와 소요 기간, 그리고 사안별로 예상되는 조치 내용을 사례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학폭 조치가 실질적인 교육적 효과로 이어지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학부모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2학년 학생이 학폭위에 회부되어 조치를 받게 되는 경우, 대부분은 가장 낮은 수준인 ‘1호 서면사과’ 조치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어린 학생들에게 있어 공식적인 사과문이 실제로 얼마나 의미 있을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많은 경우 진심 어린 반성보다는 단순히 어른들의 지시에 따라 글자를 따라 쓸 뿐이다. 더욱이 학폭위가 개최되면 저학년 학생들에게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줄 수 있고, 예기치 못한 정서적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알려주어야 한다. 따라서 학부모 연수에서는 이러한 제도적 현실과 그 한계를 충분히 설명하고, 조치의 실효성보다는 관계 회복과 재발 방지를 위해 교육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3) 내 자녀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 찾기 학부모 연수에서는 모든 학부모에게 언제든 내 자녀도 가해·피해학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즉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학폭을 바라볼 필요성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일반적으로 그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면 처벌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학생의 성장과 회복을 지원하는 교육적 접근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학부모에게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연수에서는 첫째, 단순히 가해학생에게 강한 처벌을 하기보다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둘째, 학폭을 당한 자녀가 겪은 두려움이나 불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 셋째, 학폭을 교육적 접근과 장기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 자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적 접근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 이 문제 상황마저도 자녀가 더 성숙하고 더 성장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 이러한 교육적 관점이 장기적으로 자녀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학부모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 교사를 동반자로 인식하도록 하기 학폭이 발생하면 일부 학부모는 학교와 교사를 ‘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자녀의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학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궁극적인 목적이 내 자녀를 잘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최선의 전략이자 최고의 전략은 교사와 학교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선생님, 우리 아이가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선생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등은 교사를 단순히 ‘문제의 처리자’가 아니라 ‘문제해결을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로 존중하는 접근이다. 이러한 태도는 교사를 신뢰하고 전문가로 인정해 줌으로써 교사의 전문성과 역량을 교육적으로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학부모 자신도 문제의 제기자, 귀찮은 민원인이 아닌 교사와 함께 자녀의 성장을 도모하는 협력적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와 같은 신뢰 기반의 협력적 관계, 동반자 관계는 자녀에게 가장 건강한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학부모에게 충분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자리 잡은 경신고등학교. 올해로 개교 140주년을 맞은 우리나라 대표적 민족학교로 꼽힌다. 설립자는 연세대학교 전신 연희전문을 세운 언더우드 박사. 1885년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경신고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언더우드 학당은 당시 배고픔에 시달리는 고아들을 데려다 교육했다. 이후 1905년 교명을 경신으로 명명하고, 본격적인 교육활동에 나선다. 경신학당을 통해 배출된 인재들은 일제 치하에서 큰 빛을 발한다. 임시정부 부주석인 김규식 선생을 비롯해 도산 안창호, 3·1운동 당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정재용 선생, 민족 대표 33인의 한 분인 이갑생 선생 등이 대표적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경신고 학생과 졸업생 등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우다 68명이 전사했다. 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참전유공자 탑이 경신고 교정에 세워져 있다. 이들 외에 우리나라 학계·정계·경제계·문화예술계·체육계 등에서 걸출한 리더들을 키워내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자리 잡았다. 유석창 건국대 설립자, 강성모 전 카이스트 총장, 차범근·박항서 축구선수 등이 모두 경신고 출신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 김동리 선생은 경신고에서 교편을 잡고 후학을 가르쳤다. 경신고의 가장 큰 자랑은 선생님 지난 140년 동안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인성교육과 함께 학문적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써온 경신고의 저력은 전통만이 아니다. 최고의 교육환경과 우수한 교사들의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신고만의 강점이다. 학생들이 학습하는 교실은 물론 강당·체육관·운동장 등은 모두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있다. 5만 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은 학생들에게 쾌적한 학습공간을 제공한다. 학교 운동장은 인조잔디로 잘 갖춰져 있고, 체육관은 서울 소재 고등학교 중에서는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들을 위한 헬스장도 마련돼 있다. 이 학교 교사 중 미스터코리아 출신이 있어 학생들에게 체계적인 훈련이 가능하다고 한다. 급식실도 깨끗하고 여유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해 학생들이 가장 사랑하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경신고는 또 체계적인 학습지도와 우수한 교사진을 바탕으로 국내외 명문대학에 많은 학생을 진학시키고 있다. 매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최상위권 대학과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은 물론 일본 와세다 대학 등 해외 유명 대학에 다수의 학생이 진학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에는 서울 지역 의과대학에도 4명의 합격생을 배출했다. 이러한 괄목할 진학실적은 맞춤형 진학상담 및 특성화된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한 데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 교사들의 열정이 가장 큰 원동력이다. 한지민 교장은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경신고의 가장 큰 자랑은 선생님들”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하느냐가 그 학교의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이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고 내 자식처럼 아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한 교장은 학교생활기록부만 보더라도 학생 개개인의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정성껏 작성하고 있다며 수시 전형에서 경신고가 특히 강점을 발휘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지도하는 동아리활동, 만족도는 최상 자율학습시스템 또한 잘 갖춰져 있다. 학생의 니즈에 맞게 방과후학교가 편성돼 있고, 학년별 자율학습실 구축을 통해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이 운영된다. 방학 중에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과 자율학습시스템의 연계를 통해 학습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동아리활동은 국내 어느 고교에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로 우수하다. 컴퓨터·로봇·전자·공학 등에 특화된 공학 아카데미는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매주 토요일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지도한다. 산업현장의 최고 전문가들이 직접 가르치는 동아리활동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최상이다. 일본어 동아리는 국내에 거주하는 일본 원어민들이 직접 와서 학생들을 지도한다. 이들은 단순히 언어교육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일본 유학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경신고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학교다. 그러다 보니 찬양과 말씀, 그리고 채플 프로그램을 통한 기독적 인격을 갖춘 인재 양성에 주력한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봉사활동이 유독 많은 것도 기독적 인격을 강조한 학풍 탓이다. 서울 시내 유명 교회인 새문안교회와 총동창회의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매년 진행하고 있는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 탐방 프로그램도 학생의 큰 호응을 받는다. 140년 전통의 민족사학 서울 경신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문고로 오늘도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인터뷰] “교장 선생님 저도 태워 주세요” 한지민 경신고 교장 “‘엄마, 학교에서 지하철역으로 등교 미니버스를 보내 준대요.’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녀석 말에 무슨 복인가 싶었어요. 반신반의하며 다음 날 아침 정해진 장소로 가니 정말 미니버스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전기사분이 예비 소집일에 뵈었던 교장 선생님이셨어요. 깜짝 놀랐죠.” ' 한 학부모가 서울시교육청 게시판 ‘칭찬합시다’에 올린 글이다. 매일 아침 등굣길에 학생들을 11인승 미니버스로 학교까지 태워다 주는 교장이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한 것인데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학교가 언덕배기에 있다 보니 원거리 통학생이나 몸이 불편한 학생들을 위해 교장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지민 서울 경신고 교장. 그는 매일 아침 7시부터 7시 50분까지 정릉과 혜화동 일대를 서너 차례 왕복하며 학생들을 실어 나른다. “우리 학교는 공동학군이어서 멀리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역에서 학교까지 오는 길이 제법 되거든요.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등굣길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죠. 마침 서울 시내 한 교회에서 기부받은 미니버스가 있어 이걸 이용해 아침마다 학생들을 태워 주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한 교장이 운전하는 미니버스로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줄잡자 30~40여 명. 등굣길 미니버스는 학교까지 오는데 교통이 불편하거나 몸이 아픈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행여 지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학부모들도 마음이 놓인다. “남학생들이라 무뚝뚝해요. 그래도 이런저런 학생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제겐 귀한 시간입니다. 수학여행에 대한 의견이나 체육관 시설 보수 등 소통 창구가 되기도 하죠.” 아침마다 학교 일대를 초시계처럼 서너 바퀴 돌고 나면 힘이 들 때도 있지만, 늘 즐거운 마음으로 학생 승객들을 맞는다고 한다. “어떤 친구들은 나중에 성공해서 꼭 은혜를 갚겠다고 합니다. 그런 말 들으면 기특하고 뿌듯하죠.” 한 교장은 교장으로 있는 동안 등굣길 운행을 계속할 마음이다. 일반 선생님들이야 아침조회부터 너무 바쁘니 교장이 나서서 아이들을 라이딩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우리 학교 건학 이념이 기독적 인격입니다.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할 줄 알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고마운 일들을 하잖아요. 제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가 너무 두렵다는 그는 “자신의 조그만 봉사가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갑질과 직장 내 괴롭힘의 관계 우리나라의 2022년 연간근로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평균 연간근로시간인 1,752시간보다 149시간 더 길었다.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게 된다. 가족보다 오히려 직장 동료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그렇기에 직장에서의 불화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그중에서도 직장에서 나의 위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과의 문제는 저항이나 거절이 어려워 더욱 힘들다. 이런 이유로 「근로기준법」은 2019년 1월 15일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조항을 신설하게 되었다. 사립학교 교직원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이므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근로기준법」에 따라 처리할 수 있다. 공무원의 신분을 갖는 국공립학교 교직원은 「국가공무원법」이나 행동강령 등이 특별법으로 적용되므로 「근로기준법」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직접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관련 법에 따라 이와 유사한 어려움을 심사하는 고충처리 시스템이 존재하고(「국가공무원법」 제76조의2, 「교육공무원법」 제49조), 많은 시도가 조례로 교육현장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예컨대 서울특별시교육청 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관한 조례). 한편 교육현장과 공공분야에서는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법적 용어보다 ‘갑질’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한다.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2018. 7. 16.)’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었고, 직장 내 괴롭힘의 법제화 이전부터 생겨난 용어다. 갑질과 직장 내 괴롭힘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갑질 _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2018. 7. 16.)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상대방(乙)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甲)이 권한을 남용하여 을에게 행하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 • 직장 내 괴롭힘 _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직장 내 괴롭힘이 법에서 명확히 정해진 용어라면 갑질은 특히 공공분야 공무원 등의 법적 의무를 토대로 파생된 개념에 가깝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의 고통이나 근무환경 악화라는 결과가 필요하지만, 갑질은 그와 무관하게 부당한 요구나 처우를 하는 행동 자체가 갑질이 된다. 나아가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갈등에 관한 것이라면 갑질은 그런 제한이 없다. 그 때문에 학교와 외부 업체 사이의 문제도 갑질로 문제 될 수 있다. 즉 직장 내 괴롭힘보다 갑질의 범위가 더 넓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실무적으로는 특별한 구분이 없이 사용되는 일이 많고, 교육현장은 대표적 공공분야의 하나이므로 ‘갑질’이라는 용어로 통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갑질 사건의 처리 절차 이처럼 갑질이 법제화된 용어는 아니어서 구체적인 진행 절차에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만 관계부처 합동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해 전체적인 시스템은 공통된 부분이 있다. 이에 따르면 기관장은 갑질 근절 전담직원을 지정해야 하고, 감사 등 부서를 통해 갑질 피해신고 지원센터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교육청의 경우에는 감사관실을 통해 ‘행동강령위반 신고센터(갑질 신고)’를 운영한다. 갑질 피해를 당한 사람은 위와 같은 전담직원이나 신고센터를 통해 신고할 수 있고, 이때 관할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될 수 있다. 이후 담당 부서의 주도하에 사실관계 조사가 진행된다. 사실관계 조사 방식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은데, 실무상 특별장학의 형태로 현장조사가 이루어져 피해자와 가해자, 목격자나 관계자의 진술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조사된 내용은 조사 담당 기관의 갑질심의위원회 판단을 거치는 것이 권장되는데, 갑질심의위원회가 법정기구는 아니어서 필수적이지는 않다. 해당 사안이 갑질로 판정되는 경우, 그 정도에 따라 경한 수준이라면 행정지도(컨설팅·연수 등), 행정처분(주의 또는 경고), 심한 수준이라면 가해자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범죄에 해당하는 정도이고 피해자가 별도의 고소 등을 하지 않았다면 수사의뢰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갑질 인정을 근거로 손해배상 청구 등의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 판단 결과 갑질이 아닌 것으로 결정된다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불복방법이 설명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갑질 처리 절차와 별개로 「교육공무원법」 제49조에 따른 고충심사위원회의 신청은 여전히 가능하므로 이를 고려해 볼만하다. ‘우월적 지위’의 의미 학교장과 평교사의 관계라면 그 자체로도 우월적 지위가 인정될 것이다. 교사 사이의 관계라면 담당하는 보직이나 교직 경력이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형태가 워낙 다양하므로 우월적 지위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학교 내에서 교사와 행정실 직원 사이의 갑질 문제라고 해보자. 한 직종이 반드시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갈등이 벌어진 구체적 상황이 무엇인지, 담당하는 직무와 직장 내 영향력은 무엇인지, 연령과 정규직 여부 등의 요소를 검토해 판단되어야 한다. 또한 이례적이겠지만 피해자의 직급이 가해자보다 낮은 상황도 상정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몰려다니며 특정인을 비방하는 상황이라면 수적 측면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갑질 인정에 관한 사례와 판단 기준 검토 갑질의 유형과 형태는 다양할 수 있고, 하나의 사안에서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문제 되는 경우가 많다. 아래에서는 갑질 여부의 판단이 특히 어려운 사례들과 판단을 위해 검토되는 요소들을 살펴본다. ● 정당한 업무 지시와 갑질의 구별 상급자가 하급자의 보고에 대해 보완을 계속하여 요구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라면 갑질이라 할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부서의 팀장과 같은 지위는 부서원에게 업무에 대한 독려나 지시를 할 수 있는 업무상 권한이 존재하며, 해당 업무를 위한 것으로 폭언이나 별도의 부적절한 행위를 하도록 한 바가 없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상급자의 판단이 법령이나 지침 등에 따라 재량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거나 업무 처리 방법에 대한 견해의 차이라면 그 과정에서 불만이나 불이익을 받았다는 감정을 발생시켰다고 하여 그 자체로 부당한 처우가 있었다고 보긴 어려워 보인다. 실제 유사한 사례들에서도 갑질 인정에 대해 보수적으로 판단한 것들이 많다. ● 부당한 인사나 업무상의 불이익 판단 기준 그러나 상급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더라도 지나치게 부당한 인사나 업무상의 불이익이 과도한 경우에는 갑질에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업무 분담에서 다수가 담당하던 일을 특정 직원 한 명에게 편중시키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담당하던 업무에서 배제하는 행위 등이 있겠다. 물론 하급자에게 일이 많아지는 등 불이익한 결정이라고 그것이 곧장 갑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정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결정 과정의 투명성(하급자에 대한 의견 청취, 기관 내부의 회의 등 절차를 거쳤는지 등)을 토대로 갑질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게 될 것이다. ● 질책 과정에서의 고성이나 욕설 등 부적절한 언행의 갑질 해당 여부 당연히 갑질로 인정되기 가장 쉬운 사례이고, 많이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단순한 갑질을 넘어 모욕죄 등 범죄를 구성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부적절한 언행이 언제나 갑질이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판례와 사례들에 따르면 당사자들의 평소 관계, 업무와 관련된 질책인지, 발언 당시의 상황,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발언의 수위(욕설이나 비속어 사용)는 어떠한지에 따라 세부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다.
한국교총은 6·3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이재명 제21대 대통령에게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교권 강화를 1순위 교육정책으로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교총은 4일 이 대통령 당선 관련 논평을 내고 “대통령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대한민국과 교육의 발전을 이루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정파·이념을 초월해 현장 교원들의 목소리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교권을 보호하고 학교를 살리는 대통령이 돼 달라”고 덧붙였다. 이는 교총이 지난달 스승의 날을 맞아 전국 교원 61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당시 교원들은 대통령의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소통과 화합’을, 가장 우선 추진해야 할 교육정책으로는 ‘교권 보호’를 1순위로 각각 응답했다. 특히 최근 제주도의 한 중학교 교사가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사망하는 ‘제2의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교권 붕괴, 생활지도 무력화 상황이 더 이상 계속되면 안 된다는 것이 교원들의 바람이다. 이 대통령의 교육 공약이 교권 강화인 만큼 시급하게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 교총의 입장이다. 이와 함께 다른 공약인 교원의 과도한 행정업무 경감 등도 조속하게 추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교총은 “아동복지법 등 현행법 개정 통한 정서학대 개념 명료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 제기자 처벌 강화가 시급하다”면서 “교원의 비본질적 행정업무 분리·폐지도 새 정부를 꾸리는 즉시 강력히 추진해 달라”고 전했다. 정규 교원 증원을 통한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제를 실현 등 ‘교총 대선 교육공약 10대 과제’를 국정운영의 핵심과제로 삼아줄 것도 요구했다. 또한 새 정부의 교육정책 이행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으로 교육을 본질이 아닌 경제논리로 바라보는 것, 교육을 이념 투영·실현의 수단으로 삼고 학교를 실험장화 하는 것, 교육을 정치 도구로 삼아 대증적이고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남발하는 것, 교원을 개혁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등을 꼽았다. 이는 이전 정권에서 ‘필패’로 연결됐던 문제들이다. 교총은 “인적 자원뿐인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결국 교육이 바탕이고, 그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을 수 없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며 “선생님을 지키고 학교를 살리는 교육대통령이 돼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이 대통령의 핵심 교육공약 키워드는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다”라며 “학생에게 미래를 꿈꿀 교실 환경을 만들어주고, 교원에게는 소신을 갖고 열정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마련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강조했다.
경기 신장초(교장 최진성)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간의 자연스러운 연계를 위해 ‘유·초 연계 교육’을 본격적으로 실시하며, 그 첫걸음을 6월 2일 ‘유치원과 초등학생의 첫 만남의 날’로 시작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1학년 학생들이 유치원 동생들을 직접 교실로 초대해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며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유치원 아이들은 1학년 형, 누나에게 궁금한 점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고, 1학년 학생들은 이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학교생활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한 유치원생은 “형이랑 누나가 궁금했던 걸 알려줘서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보였고, 또 다른 아이는 “다음에는 수건돌리기 놀이를 하기로 약속했어요. 우리 유치원 너무 좋아요”라며 즐거운 소감을 전했다. 이번 첫 만남을 계기로 신장초는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놀이, 그림책, 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한 연계 프로그램 ‘놀이로 잇기’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의 자연스러운 전이를 지원하고, 입학 초기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유·초 연계 교육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유아와 초등학생 간의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따뜻한 교육 공동체 형성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최진성 교장은 “개정 누리과정과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연계한 ‘공동 이음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즐겁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안타깝게 숨진 제주 교사 추모제가 열린 지난달 30일 경기도 수원의 한 중학교에서 50대 교사가 수업 중 학생에게 야구방망이로 폭행당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한국교총은 2일 입장을 내고 “이 사건은 교권 침해를 넘은 범죄행위”라며 “우선 교육청은 제자로부터 폭행당해 중상을 입은 교사와 충격을 받았을 학생들이 조속히 치유·회복되고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지원하는 일부터 해달라”고 촉구했다. 교총은 지난 4월 충북의 한 고교생이 학교장과 교직원 등을 흉기로 공격하는 등 최근 교원 폭행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교육부가 5월에 발표한 ‘2024학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원 상해·폭행 피해 건수만 518건으로 하루 평균 1.4건에 달한다. 교총은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 이후 교권5법이 개정되는 등 제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체감할 수 없는 수준이며, 심각한 교권 침해에 대해서는 학교폭력과 달리 학생부에 기재하지도 못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대책 마련을 위해서 교권 침해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지난해 정년을 채우지 않고 교단을 떠난 교원 수가 9194명에 달하고, 지난 스승의날 교총 교원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0.7%가 저연차 교사 이탈 현상이 ’심각하다‘고 답한 바 있다. 교총은 후속 교권 보호 대책으로 ▲상해·폭행, 성추행 등 심각한 교권 침해 사안에 대해 학교폭력과 동일하게 학생부 기재 ▲스쿨폴리스(SPO) 1학교 1인 이상 배치 의무화 법안 마련 ▲교육활동 중 교원 폭행에 대해 가중처벌하는 교원지위법 개정 ▲교권 보호와 안전한 학교 환경 조성 위한 예산 및 인력 지원 확대 ▲교권 침해 예방을 위한 학생·학부모 대상 교육 프로그램 강화 등을 요구했다. 특히 지난 4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교원지위법 개정이 시급히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정안은 교원 폭행 및 상해 행위에 대해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동진 교총 교권강화국장은 “교원에 대한 폭행은 심각한 범죄행위이자, 회복 불가능한 교권 침해”라며 “교원 상해·폭행 시 가중처벌하는 법 개정안에 대해 교원의 99.3%가 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경기교총(회장 이상호)도 성명서를 내고 “더 이상의 교사 폭행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상호 회장은 “반복되는 폭력과 위협 속에서 교사들의 교육활동이 위촉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로도 이어진다”며 “단순한 사후 대응이 아닌, 교권 침해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행정적·제도적 역량의 집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와 EBS는 사교육에 대한 인식 전환과 자기주도학습의 효과성을 홍보하기 위해 4월 한 달 간 디지털 소통 플랫폼인 '함께학교'를 통해 온라인으로 개최한 결과 474편의 작품을 접수해 15편의 수상작을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분야별 대상에 학부모(에세이)·교원(포스터)·학생(네 컷 만화)이 각각 받았다. 수상자에게는 태블릿 컴퓨터, 무선이어폰 등 다양한 경품이 제공된다. 에세이 분야 우수작에는 조기 유아 사교육 과정에서 불안을 겪은 자녀를 위해 가족들이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배움을 놀이처럼 배울 수 있도록 조력한 사례, 틀에 갇힌 사교육 대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의성과 자기주도성을 회복해 간 사례, 학원 대신 도서관과 공교육 플랫폼을 활용하며 자기주도적으로 학습을 이어간 사례 등이 선정됐다. 포스터·네 컷 만화 분야 우수작들에서도 과도한 사교육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다수 나왔다. 공모전 분야별 수상작은 누리잡지(웹진)인 ‘행복한 교육(교육부)’ 및 ‘학부모 온(On)누리’와 '함께학교'에 탑재된다. 또한 대국민 대상 사교육 인식 제고를 위해 공익광고 및 EBS 홍보물로 제작될 예정이다. 장미란 교원학부모지원관은 “이번 공모전을 통해 학생·학부모·교사 모두가 ‘스스로 배우는 힘’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과도한 사교육에서 벗어나 자기주도학습 중심의 건강한 학습문화가 조성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산교총(회장 강재철)은 지난달 30일 부산교총회관 회의실에서 20~40대 교사 20여 명으로 구성된 미래청년위원회 발대식을 가졌다. 미래청년위는 개방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지향하며 교육 현장의 문제 해결, 교권 보호 및 교육혁신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운영진은 성현종 위원장(해강초)을 비롯해 지구별로 황정희(학사초)·박세형(동명초)·고유선(옥천초)·이민제(오륙도초) 부위원장과 위원으로 구성됐다. 미래청년위는 ▲젊은 교사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부산교총의 혁신적 이미지 제고 ▲실질적 교권 보호 및 학교현장 개선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교육혁신 모델 제시 ▲지속 가능한 젊은 교사 네트워크 구축 및 운영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강재철 회장은 인사말에서 “미래청년위 출범은 역동적인 부산교총을 상징한다”며 “젊은 교사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현장 의견과 정책을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종 위원장은 발대식 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교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젊고 활기찬 부산교총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 보장하라!”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하라!” “실질적 민원 대응 방안 마련하라!” “교사의 실질적 보호대책 마련하라!” 지난달 30일 오후 제주 교원들이 제주교육청 앞마당에 모여 한목소리를 냈다. 제주교총을 비롯한 새로운학교제주네트워크, 실천교육교사모임, 전교조 제주지부, 제주교사노동조합, 좋은교사운동 제주모임 등 6개 교원단체는 이날 공동으로 ‘제주 ㅇㅇ중학교 추모제’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제주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1000여 명의 교원이 참가해 추모의 마음을 모았다. 추모제는 추모의례, 추모공연, 추모영상, 추모사, 유가족 낭독, 참가자 발언 등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선배 교사라고 밝힌 한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님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옆에서 대신 위로해 주고, 학교 업무로 힘들어하면 도와줄 일이 없냐고 챙겨주었던 선생님이었다”며 “힘듦과 아픔과 상처에 고인 눈물을 미리 나누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유족 대표는 낭독문을 통해 “모든 사정들을 밝히고 선생님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시길 바란다”며 “순직 인정과 그에 따른 처벌이 있을 수 있도록 사회가 많이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호소했다. 서영삼 제주교총 회장은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그 죄책감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며 “선생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더 나은 교육 환경과 존중의 문화가 반드시 자리잡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참석자들은 도교육청에 마련된 분향소를 향해 묵념과 분향을 하며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지난달 22일 숨진 채 발견된 고인은 중3 담임으로서 학생 지도와 관련해 민원 전화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교총 등 교육계는 ‘제2의 서이초 사건’이라는 판단하에 철저한 조사·수사와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고 있다. 또 이날 1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동 추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학교 공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교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고, 학생이 떠난 뒤에도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존재가 바로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교과, 교사, 평가 방식에 집중할 뿐, 정작 그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하지 않았다. 이제는 시선을 돌려야 한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를 함께 성장시키는 조용한 교육자다. 공간도 하나의 교육자로 인식 환경심리학과 교육을 위한 공간 연구는 공간이 학습자의 인지, 정서,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협업형 테이블로 교실 배치를 바꾼 미국의 한 사례에서는 학생 간 상호작용이 37% 증가했으며, 핀란드의 학교에서는 조명과 소음 환경을 조정한 후 수업 집중도가 24% 향상됐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효과를 본 경우가 나타났다. 복도 폭을 넓힌 학교는 학생 간 마찰이 줄었고, 개방형 교무실을 도입한 학교는 교사 간 협업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공간은 교육의 물리적 조건을 넘어서 문화와 철학을 구현하는 구조로 작용한다. 대전광역시교육청은 학교 공간을 하나의 교육자로 인식하고, 교육과정과 철학이 공간 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 재구조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자율성과 시민성을 기르는 공간, 교사 간 협업이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조성된 학생자치회실은 민주적 참여와 의사결정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동아리실은 자율 탐구와 프로젝트 학습을 지원하는 창의적 실습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복합 활동이 가능한 예드림홀은 교과 간 경계를 넘나들며 학생 개개인의 진로와 역량을 확장하는 장이 되고 있다. 실제 사례에서도 공간 변화는 곧 교육 변화로 이어졌다. 기존 도서관을 협업 중심의 활동 공간으로 전환하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업하며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간만으로 학생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물리적 조건에 문화·철학 구현 공간은 교육행정과도 밀접하다. 수업을 위한 스마트보드 설치에 전기 배선이 미비하면 수업은 시작조차 어려워지고, 채광이 부족한 복도는 갈등의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 교육은 철학이지만, 철학은 구조가 있어야 실현된다. 공간은 교육정책이 구체화되는 물리적 도면이며,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기본 조건이다. 우리는 교육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공간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교사와 교재를 넘어, 교육을 가장 오래 기억에 남게 만드는 것은 공간이다. 공간이 교육의 실천자이자 철학의 구조화된 언어가 되는 순간, 진정한 의미의 ‘교육다운 학교’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최근 수원지방법원 항소심에서 특수교사가 몰래 녹음된 증거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 판결은 단순히 한 교사의 법적 구제에 그치지 않는다. 바로 교육 현장, 특히 통합학급을 이끄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결정이다. 통합학급 담임교사로서, 그리고 한 아이의 부모로서 필자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 한명 한명의 특성과 필요에 맞춰 세심하게 지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학부모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모두가 행복한 교실을 만들기 위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불신에 경종 울린 법원 판결 통합학급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공간이다. 이 안에서 교사는 학생 안전과 발달을 위해 때로는 단호한 어조로, 반복적으로 지도해야 할 때가 있다. 이는 결코 감정적 학대가 아니다. 학생의 올바른 성장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활동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교실에서는 몰래 녹음 등으로 인해 교사들이 불안감과 자기 검열에 시달려 왔다. 일부 발췌되거나 맥락이 왜곡된 녹음이 법적 분쟁의 단초가 되면서, 교사들은 학생 지도를 주저하게 됐다. 이로 인해 교육 본질이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교육의 전문성과 교실의 특수성’을 사법부가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통합학급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신뢰’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의 신뢰와 소통은 교육의 출발점이자 완성이다. 통합학급 교사는 학부모와의 정기적인 상담, 학생 개별 특성에 맞춘 맞춤형 지도, 그리고 동료 교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모두가 안전하고 존중받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학부모 대부분도 역시 학교와 교사를 믿고, 어려움이 있을 때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선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불법 녹음과 같은 불신의 문화가 학교 현장에서 사라지길 바란다.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믿고, 학생 성장과 행복을 위해 힘을 모으는 교육 공동체가 돼야 한다. 특히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위축되지 않고, 모든 학생이 존중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요구된다. 전문적 교육활동 인정해야 더불어 교육 당국과 사회도 교사들이 법적 부담 없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서학대 개념의 구체화, 교권 보호 제도 강화, 특수교사 증원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교육 현장은 감시와 불신이 아닌 신뢰와 소통, 협력의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교사, 학부모 그리고 장애인 가족으로서의 이 세 가지 시선이 한데 모여, 모두가 행복한 통합학급, 모두가 성장하는 학교를 만들어가는 신뢰의 문화가 더욱 굳건해지길 바란다. 우리 교사들도 우리 아이들이 존중과 배려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학교가 신뢰와 소통의 공동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23년 서울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 당시 전국의 교원들은 거리로 나와 “다시는 동료 교사를 잃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그 결과 교권 추락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어졌고, 이른바 ‘교권5법’이 통과돼 많은 교원에게 작은 위안을 주기도 했다. 반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절박함을 마음 한구석에 쌓아두었다. 그렇게 약 2년의 시간이 지난 2025년 현재, 또다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올 1월 제주교총이 수여하는 ‘2040모범교사상’을 받았을 만큼 열정을 갖고 교육에 임하던 제주의 한 중학교 교사에게 비극이 닥친 것이다. 교육계는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해당 교사가 학생 지도와 관련해 민원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넘어 분노마저 일으키고 있다. 고인의 휴대전화와 SNS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빼곡하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최근 식사도 하지 못할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제주교육청과 수사기관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수사를 통해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 악성 민원이 확인되면 교육청은 즉시 악성 민원 제기자를 고발 조치해야 할 것이다. 왜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것일까. 학교 현장에서는 교권5법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지난 3월 교총이 전국 유·초·중등 교원 611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교권5법 시행 후 교권 보호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79.6%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수업 방해 등 학생 문제행동이 감소했냐는 물음에도 86.7%가 ‘감소하지 않았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제주 교사 사망에 교육계 비통 2년 전과 비교해 그대로인 현실 교육이 희망 되는 대책 시급해 이는 실제 통계로도 나타난다. 2023년 9월 교육감의 교원 대상 아동학대 신고 의견 제출제도 시행 이후 전국적으로 1일 2회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발생하고 있다. 이중 교육감이 정당한 교육활동·생활지도라고 의견을 제출(69.8%)해도 신고를 받은 교사 중 72%가 검찰에 송치된다. 학부모의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로 인해 교원이 장기간 수사를 받는 상황을 막자는 취지가 무색할 따름이다. 여기에 학교 민원대응팀은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 식으로 대응을 미루고, 교육부가 약속한 학교 온라인(소통) 민원시스템 구축도 아직 요원하다. 이러다 보니 출입 절차를 무시하고 교무실에 들이닥친 학부모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을 때 두렵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것이다.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포괄적인 정서학대 범위를 명확히 하는 아동복지법 개정,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및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원을 보호할 수 있는 교원지위법,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 교육 당국은 학교민원대응체계 실태를 전면 파악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약속한 민원 시스템을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원을 보호하고, 학교가 사법기관이나 수사관이 아닌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교총을 비롯한 교원단체들은 다음 달 1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동 추모 집회를 연다고 한다. 이들은 선생님을 지켜야 학교를 지킬 수 있다는 절박함을 광장에서 목놓아 외칠 예정이다. 거리에서 ‘선생님도 사람이다’ ‘더 이상 선생님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 달라’ ‘학생들을 가르치다죽지 않게 해달라’는 외침이 반복되는 교육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 교육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
“학교 내 민원 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신속히 마련하겠다.”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제주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6일 언급한 내용이다. 이날 이 대행의 입장은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5·31 교육개혁 30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나왔다. 이 자리는 5·31 교육개혁 30주년을 기념해 당시 개혁 방안 마련에 참여한 교육계 원로들과 함께 개혁의 의미와 성과를 되짚고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이명현·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이영탁 전 차관 등 당시 교육개혁위원회 참여 인사다. 개혁의 성과보다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한 애도의 뜻을 먼저 표해야 했던 이날 이 대행의 모두말언은 5·31 교육개혁 30주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지켜본 이들의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했다. 5·31 교육개혁의 부작용 중 하나가 교권 추락이기 때문이다. 이번 제주 교사 사망 사건은 중학생 생활지도 과정에서 가족의 지나친 민원 제기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물론 5·31 교육개혁 방안은 초·중등교육, 고등교육, 직업·평생교육, 디지털화 등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 구조 재설계에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그러나 장기 목표보다 단기 목표에 급급했고, 개혁 주체인 교원을 개혁 대상으로 삼아 동력 확보에 한계점을 노출하는 등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정부는 개혁 방안을 통해 교원에게 경쟁을 강조하며 헌신을 요구했지만 연구실 확충, 연수 지원 등 그에 걸맞은 환경 조성과 교육여건 마련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예산상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인데, 이러한 교원의 ‘찬밥 신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원을 정책의 대상자이자 공급자로, 학생·학부모를 수요자로 단순하게 나눈 것 또한 공급자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식의 지나친 시장주의적 접근이라는 평이다. 이에 대해 재화 생산 과정으로서 기술이 아닌 교육 특수성에 기인한 효과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육활동의 특성상 단기적 효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간과 되는 등 불분명한 평가 요소에 따라 기존의 교육활동이 왜곡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최근 학부모 등이 학교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교권이 추락하는 등 문제가 커진 이유도 여기서 시작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개혁 방안을 마련할 때 이와 관련한 대책을 세세하게 마련하지 못한 나머지 개혁과 개악이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대행의 ‘제주 교사 사망 사건’ 언급 역시 개혁의 후유증이나 다름없는 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교총 등 교육계는 교육개혁을 교권 강화 등 교원정책의 전향적 개선을 우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성철 교총 정책본부장은 “교사가 소신을 갖고 열정으로 교육할 수 있는 교실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어떠한 교육개혁도, 미래 청사진도 공염불일 뿐”이라며 “교사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교권 보호, 비본질적 행정업무 완전 분리.폐지, 처우 개선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2시20분경 인천온라인학교(인천 부평구) 3층 강의실, 우리나라 서해 최북단 백령도 소재 백령고 3학년 학생 10여 명이 대형 모니터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박세진 교사의 ‘일본어2’ 수업을 받기 위해 약 200㎞ 떨어진 곳에서 원격으로 입장한 것이다. 학생들은 박 교사의 지도에 따라 ‘원피스’, ‘최애의 아이’, ‘명탐정 코난’ 등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역할을 맡아 각자의 대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얼굴은 표정 하나하나 잘 살필 수 있었고 발음 역시 또렷하게 들렸다. 먼 거리에서도 주고받는 내용이라고 여기기 어려울 만큼 원활히 진행됐다. 2년 전 개교 당시에는 간혹 네트워크상 문제가 생겼으나 꾸준한 성능 개선으로 그런 일은 이제 거의 없다. “○○야 억양을 좀 더 넣는 것이 좋겠어.” “○○야 학기 초보다 발음이 훨씬 좋아졌다." 올 3월부터 백령고 학생들을 온라인으로 만나고 있다는 박 교사는 학생들과 꽤 친한 듯했다.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러가며 피드백을 주는 모습은 한 교실 내 수업을 방불케 했다. 온라인 수업이라 일방적 강의로 이뤄질 것이라는 선입견은 날아갔다. 온라인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역할은 ‘담임교사’, 교실에서 학생을 담당하는 역할은 ‘관리교사’다. 둘의 호흡이 잘 맞아야 효과적인 교육이 가능하다. 이날 김채연 관리교사(백령고)는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학생 옆에서 충실히 지원하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섬 지역의 한계 때문에 배울 수 없었던 내용을 수업 시간 안에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게 됐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자신감도 도시 학생 못지않다. 관광 분야 진로를 목표로 정한 안희수 학생은 “섬이라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는 데다 학교에서도 과목 개설이 안 된 상황이었지만 이제 가능해졌다. 진로와도 연계할 수 있다”며 “최근에는 온라인학교가 마련한 오프라인 행사 ‘온마음 리더십 프로젝트’에도 참석하게 돼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온라인학교로 발령받은 후 수업 준비에만 집중하면서 소외된 지역의 학생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조정임 인천온라인학교 교감은 “교사들은 대면수업 못지않은 온라인수업을 만들기 위해 늘 고심하는 중”이라며 “학급마다 ‘온라인 담임교사’로 책임감 있게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온라인학교는 인천갈산초의 4층 규모 별관 중 1~3층을 사용하며 8개 강의실을 운영 중이다. 교사는 기간제 포함 총 20명으로, 32개 학교 2003명 학생(중복 포함) 대상으로 68과목 116강좌를 소화하고 있다. 매일 ‘풀’로 돌리지만 강의실과 교사 부족으로 모든 신청을 다 받지 못한다. 다행히 조만간 4층까지 사용할 수 있어 강의실 6개 정도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교사 추가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목마다 편차가 심해 일부의 경우 채용 공고를 6차까지 냈음에도 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섬 지역 등 지역적 한계에 놓인 학생이라면 단 1명에게 필요한 강좌라도 개설한다. 교사자격증이 없는 시간강사까지 문호를 개방해 정식교사와 코티칭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홍지연 인천온라인학교 교장은 “교육당국의 전폭적 지원, 교사들의 열정 덕분에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다”며 “더 많은 학생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학교란? 학교에서 개설이 어려운 과목을 방송‧정보통신 매체 등을 활용한 시간제수업으로 원격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각종학교로, 17개 시·도의 공립 온라인학교(세종 9월 1일 개교 예정 포함)가 고교학점제 선택과목 등을 지원하고 있다. 신소재·신성장 산업 등 과목 수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 과목들을 개설하거나, 관내 고교에서 개설하기 어려운 과목을 요청받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소인수 선택 등으로 개설이 어려운 과목, 특색있는 교육과정 지원을 위한 과목, 산간‧도서벽지 등 교원 수급이 어려운 소규모학교의 신청을 받아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