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현장은 학부모 민원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는 「학교폭력예방법」(이하 ‘학폭법’) 제정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학폭법」 제정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입 과정에서 교육현장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초등학교 1·2학년 학생에게 중·고등학생과 동일한 절차와 기준을 적용한 점이다. 초등 저학년인 1·2학년은 신체적·정서적으로 아직 미성숙하다. 이렇게 아직 발달단계에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중·고등학생과 같은 학폭 절차를 적용하면서, 현실에서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반영하여 교육부는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최근 2026학년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학생에 대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 개최 전 ‘숙려기간’을 시범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학폭법」 제정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방증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물론 사안이 중대한 학교폭력(이하 ‘학폭’)의 경우 학폭위 개최와 엄정한 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학교에서는 경미한 사안이 다수이며, 이로 인해 학교의 업무부담은 가중되고 학생들 간의 관계 회복은 어려워지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미한 사안까지 학폭위로 이어지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 해답을 학부모 연수에서 찾고자 한다. 실제로 초등학교의 학폭 사안은 대체로 학부모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되어, 결국 학부모의 결정에 따라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에서 학부모가 「학폭법」의 목적과 절차, 경미한 사안에 대한 교육적 해결 가능성 등에 대해 정확히 이해한다면, 학폭위 개최까지 가지 않고, 화해나 대화를 통한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학교폭력 민원 예방을 위한 변화된 학교장의 역할과 학부모 연수의 중요성 및 학부모 연수 내용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변화된 학교장의 역할
최근 ‘코로나19’ 팬데믹과 ‘서이초 사태’를 계기로 학교장 역할에 대한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되었다. 논의의 한계상 이분법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과거에는 권위가 있는 학교장을 원했다면 이제는 나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주는 따뜻하고 자상한 학교장을 원하고 있다. 매슬로의 인간 욕구단계론1에 비추어 보면 현재 교사들이 학교장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2단계 안전 욕구의 충족, 즉 학부모 민원 등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리더십이다.
이처럼 학교장에게 주어진 시대적 책무는 더욱 막중해졌다. 물론 오늘날 학교경영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학교장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 구성원들에게 미래를 예측하여 미래를 대비하게 해 주는 서비스(service) 정신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학교장은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을 잘 관찰해야(see) 한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잘 살펴야 한다. 학교장은 학부모 민원이라는 파도가 오기 전에 그 징후인 바람을 감지하고 예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면, 이제 그것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조사해야(search) 한다. 다양한 서적과 다양한 사례 등을 조사하고 비교함으로써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셋째, 학교장은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solution)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교장의 중요한 존재 이유는 구성원들의 요구에 대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장은 항상 먼저 고민하고, 더 폭넓게 고민하고, 더 깊게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학부모 연수의 중요성과 학부모 연수 내용
● 학부모 연수의 중요성
초등학교에서는 여러 특성상 대부분의 학폭이 같은 반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일단 학부모가 학폭을 신고하는 순간, 담임교사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즉 담임교사는 학생을 교육하는 교수자, 생활 전반을 지도하는 생활교육 담당자 그리고 부모를 대위(代位)하여 학생의 일상생활을 관리해 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중립적인 학폭 사안의 조사자이자 처리자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물론 교사 스스로는 공정하고 엄정하게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부모가 이를 믿어주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랜 수사 경험을 가진 경찰과 검사가 사건을 조사하고 기소하며, 법원에서는 판사들이 3심에 걸쳐 재판을 진행한다. 이처럼 법률 전문가들이 조사하고, 기소하며 재판까지 담당하는 사건조차 그 결과에 대해 불복하는 이들이 연일 전국 곳곳에서 항의 집회를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학폭위 조치에 대한 학부모들의 전적인 수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학부모가 학폭위 개최를 요구하는 순간, 학폭은 더 이상 학생 간의 다툼이 아니라 어른들 사이의 감정적 대결, 이른바 총성 없는 전쟁(?)으로 변질된다.
실제로 경미한 학폭 사안일수록 학생들은 이미 화해하고 예전처럼 잘 지내고 있는데도, 학부모들만 열심히 싸우는 상황이 다수 연출된다. 이런 경우 학폭위 조치가 결정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그 과정에서 결국 가·피해 관련 학생 모두 심리적·정서적으로 상처를 입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경미한 학폭 사안은 처벌 중심이 아닌 화해 중심의 접근이 훨씬 더 실질적이고 교육적으로 효과적이라는 점을 학부모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연수가 매우 중요하다.
● 학부모 연수 내용
1) 「학폭법」의 성격과 특성
학부모들은 자녀가 학폭을 당했을 때, 가해학생에 대한 신속하고 강력한 처벌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녀를 사랑하는 학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학폭법」은 일반 「형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법체계와 철학을 가지고 있다. 즉 「형법」은 피해자의 직접적 보복을 막고 국가가 형벌을 부과하는 처벌 중심의 법이다. 반면에 「학폭법」은 「형법」과 달리 당사자 모두가 학생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처벌보다는 교육적 선도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법의 성격으로 인해 학폭 처리 과정과 처리 속도, 조치 결과들이 가·피해학생의 학부모가 기대하는 바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평소 학부모 연수를 통해 「학폭법」의 제정 취지, 철학과 성격, 특성 등에 대해 학부모들에게 정확히 안내할 필요가 있다.
2) 「학폭법」의 절차, 예상 조치와 그 효과성
학부모 연수에서는 학폭 처리의 전반적 절차와 소요 기간, 그리고 사안별로 예상되는 조치 내용을 사례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학폭 조치가 실질적인 교육적 효과로 이어지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학부모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2학년 학생이 학폭위에 회부되어 조치를 받게 되는 경우, 대부분은 가장 낮은 수준인 ‘1호 서면사과’ 조치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어린 학생들에게 있어 공식적인 사과문이 실제로 얼마나 의미 있을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많은 경우 진심 어린 반성보다는 단순히 어른들의 지시에 따라 글자를 따라 쓸 뿐이다.
더욱이 학폭위가 개최되면 저학년 학생들에게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줄 수 있고, 예기치 못한 정서적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알려주어야 한다. 따라서 학부모 연수에서는 이러한 제도적 현실과 그 한계를 충분히 설명하고, 조치의 실효성보다는 관계 회복과 재발 방지를 위해 교육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3) 내 자녀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 찾기
학부모 연수에서는 모든 학부모에게 언제든 내 자녀도 가해·피해학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즉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학폭을 바라볼 필요성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일반적으로 그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면 처벌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학생의 성장과 회복을 지원하는 교육적 접근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학부모에게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연수에서는 첫째, 단순히 가해학생에게 강한 처벌을 하기보다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둘째, 학폭을 당한 자녀가 겪은 두려움이나 불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 셋째, 학폭을 교육적 접근과 장기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 자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적 접근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 이 문제 상황마저도 자녀가 더 성숙하고 더 성장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 이러한 교육적 관점이 장기적으로 자녀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학부모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 교사를 동반자로 인식하도록 하기
학폭이 발생하면 일부 학부모는 학교와 교사를 ‘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자녀의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학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궁극적인 목적이 내 자녀를 잘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최선의 전략이자 최고의 전략은 교사와 학교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선생님, 우리 아이가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선생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등은 교사를 단순히 ‘문제의 처리자’가 아니라 ‘문제해결을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로 존중하는 접근이다.
이러한 태도는 교사를 신뢰하고 전문가로 인정해 줌으로써 교사의 전문성과 역량을 교육적으로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학부모 자신도 문제의 제기자, 귀찮은 민원인이 아닌 교사와 함께 자녀의 성장을 도모하는 협력적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와 같은 신뢰 기반의 협력적 관계, 동반자 관계는 자녀에게 가장 건강한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학부모에게 충분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