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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현의 낭만갤러리]  메리 카사트의 <편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1926)의 1891년 작품 <편지(The Letter)>는 책상에 앉은 여성이 편지를 부치기 위해 봉투를 봉인하고 있는 순간을 담은 판화 작품이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가늘게 느껴지는 흙 내음이 봄의 소식을 실어 나르는 2월이다. 한 해의 시작이 얼마 전이었건만, 졸업과 종업, 즉 배움의 마감이 있는 시기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마무리하느라 여념이 없고, 교실 안의 공기는 달라진다. 아이들은 들떠 있고, 교사는 바쁘다. 그사이 설렘과 허전함이 교차한다. 


한 해의 시작을 알렸던 1월의 결연한 다짐들이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 학교 현장은 다시 한번 ‘이별’과 ‘정리’라는 거대한 변화의 시간을 마주한다. 졸업장 위에 찍히는 붉은 관인, 아이들의 한 해가 기록된 생활기록부의 마지막 문장들, 그리고 정들었던 제자에게 건네는 짧은 편지까지. 2월의 교실은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거창한 선언보다 내밀한 진심이 필요한 이 시기에 멈춰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 미국 출신의 인상주의 화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1926)의 작품은 우리의 의미 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녀가 1891년 완성한 채색 판화 <편지(The Letter)>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교육자의 모습과 닮았다.

 

여성이 개척한 독자적 시선, 일상의 내밀한 진실
메리 카사트는 당대 여성을 향한 사회적 제약을 예술적 통찰로 승화시킨 선구적 예술가였다.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런던·파리·베를린 등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자란 그녀는 독일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한 지적인 여성이었으나, 당시 여성 미술가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은 혹독했다. 그러나 카사트는 에드가 드가의 초대로 인상주의 그룹에 합류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남성 화가들이 카페나 극장 같은 공적 공간의 화려함을 좇을 때, 그녀는 여성이 머물던 내밀한 가정의 공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을 주목했다.


그녀의 대표적인 색채 판화 연작 중 하나인 <편지>는 1890년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열린 일본 목판화 전시에서 받은 강렬한 영감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당시 서구 미술계가 일본 미술의 이국적인 소재에 매료되었다면, 카사트는 그들의 평면적인 구도와 과감한 생략법을 빌려와 현대 여성의 일상적이고도 진지한 고뇌를 담아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여성은 단순히 아름다운 관찰 대상이 아니라, 교육받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삶을 기록해 나가는 주체적인 존재였다. 


또한 메리 카사트의 <편지>는 현대 판화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카사트는 세 개의 금속판과 소프트그라운드1, 드라이포인트2, 아쿠아틴트 기법3을 조합하여 제작하였다. 판화라는 매체의 속성은 회화와 다르다. 붓으로 한 번에 그리고 끝내는 회화와 달리, 판에 조각도로 선을 새기고 새겨진 흔적으로 농담을 쌓고 색을 찍어내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아마도 마음을 담은 편지는 판화의 제작 과정과 닮아 있을 것이다. 금속판을 준비해 새기고, 잉크를 묻히고, 잉크를 닦아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새겨진 홈에 남은 잉크만이 인쇄되어 가는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카사트는 세 장의 판을 차례로 겹쳐 찍어서 작품의 복잡한 패턴을 만들었다고 한다. 작품 속 여성이 편지를 정성스럽게 쓰고 나서 봉하는 마지막 순간은 이러한 판화 제작 과정과도 잘 어울린다. 

 

정지된 찰나의 몰입, 선과 면이 빚어낸 마감의 미학
그림을 가만히 응시하면, 푸른색 줄무늬 드레스를 입은 한 젊은 여성이 책상 앞에 앉아 방금 다 쓴 편지를 봉투에 넣어 봉하는 순간임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차분하게 봉투를 봉한다. 이는 이전 예술가들이 다룬 여성에 대한 감성적인 묘사와는 다른 방식이다. 이 현대 여성은 품위 있고 집중력 있게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하지만 편지 내용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편지>는 세 개의 판을 사용하여 컬러로 인쇄한 작품으로, 네 가지 판본 중 네 번째 판본이다. 이 작품은 작가와 로로이 씨(프랑스, 1875~1900년 활동)가 공동으로 프린트하였다. 이 최종 판화에서 카사트는 초기 디자인을 변경하였다. 여기에 보이는 분홍색 상의는 그녀가 이전에 드라이포인트 기법으로 그린 ​​스모킹 패턴 위에 찍어낸 것이다. 정교한 패턴은 같은 용지에 세 개의 판을 연속적으로 인쇄하여 완성되었다. 


여성이 입은 코발트 블루색 드레스와 화사한 꽃무늬 벽지는 화면 전체에 화려한 리듬감을 부여하지만, 역설적으로 복잡한 패턴들은 여성의 정적인 자세와 대비되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여성이 봉투 끝에 입술을 대고 정성스럽게 봉인하는 이 정교한 동작은 한 해의 무수한 감정과 기억을 하나로 묶어내는 ‘마감’의 미학을 보여준다.


카사트는 일본 목판화 특유의 강한 윤곽선과 평면적 색채를 사용하여 관람자 시선을 여성의 손끝에 닿게 한다. 화면 우측의 비스듬히 기울어진 비서 책상(Secretary desk)은 관람자를 여성이 앉아 있는 좁고 내밀한 공간으로 깊숙이 끌어당긴다. 시점은 관람자가 여성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과감하게 왜곡된 사각형의 책상이 거리감을 더해주고 있다.


소음은 모두 사라진 듯 고요하고, 오직 편지를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만이 연결된 것 같다. 압축된 이 조용한 장면은 2월의 우리 공간과 닮았다. 학생이나 동료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를 봉인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계절의 설렘
당대 여성들에게 편지는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자신의 자아를 확장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카사트가 묘사한 여성의 얼굴에는 결연함과 동시에 애틋함이 서려 있는데, 이는 수신자에게 가 닿을 자신의 메시지가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될지 알고 있는 이의 표정이다. 2월의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작성한 생활기록부의 한 줄, 제자나 함께한 교사에게 건넨 짧은 편지 한 통은 삶에 중요한 기록이 된다.


2월의 ‘마무리’는 단순히 과거를 털어내는 일이 아니다. 카사트가 묘사한 여성처럼 정성껏 편지를 봉하는 행위는 지난 1년의 시간을 소중하게 갈무리하여 더 넓은 미래로 발송하는 작업이다. 2026년의 새로운 학기를 목전에 둔 오늘, 각자의 책상 앞에 앉아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는 모든 교육자에게 이 그림을 건네고 싶다. 당신이 정성껏 봉인한 그 따뜻한 진심들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언젠가 다시 읽히며 그들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2월,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고요한 마침표의 시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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