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9,652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
능력보다 학벌이 중시되고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심화되면서 취업난을 겪는 청년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생생한 실습과 교육을 통해 취업과 창업의 꿈을 현실로 이뤄가는 곳이 있다. 바로 학교기업이다. 현재 학교기업을 운영 중인 학교는 대학 149, 고교 46곳이다. 기획 ‘꿈을 현실로, 학교기업’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학교기업을 찾아가 그들의 성공비결을 들어본다. 부천공고 ‘부공모터스’ 저렴한 가격과 높은 신뢰로 현장실습‧이윤창출 모두 잡아 시간당 만원 ‘셀프정비’ 인기 부천공고는 지난해 3월 교내에 학교기업 ‘부공모터스’를 개업했다. 전문 기술 인력의 지도하에 학생들이 직접 자동차 점검과 정비를 해주고 방문객 스스로 ‘셀프정비’도 할 수 있는 자동차정비소다. 월 평균 200여 대의 차량을 받고 있는 부공모터스는 실전 같은 실습교육에 더해 이윤까지 내며 학교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매출 실적도 1억 원을 넘겼다. 안항일 교사는 “교사들도 현장성을 기를 수 있고 학생들에게도 맞춤형 도제교육이 가능해졌다”며 “교과 중이나 방과 후 언제든 실습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자동차과 학생들은 부공모터스에서 연 100여 시간 정도 교과 중 실습과 인턴십 현장실습을 통해 기관정비, 섀시정비, 전기전자 정비 등 각종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박한웅(3학년) 군은 “학교 안에서 이론이나 모형실습을 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다양한 케이스를 보면서 고민하다 보니 실력이 금방 향상되는 것을 느꼈다”며 “셀프정비를 온 손님들과도 이런 저런 토론을 하면서 함께 배운다”고 밝혔다. 부공모터스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은 시간 당 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리프트를 사용할 수 있는 ‘셀프정비소’다. 간단한 엔진오일‧타이어 교체는 물론 부품 값이 비싼 외제차도 공임비 없이 스스로 수리할 수 있어 젊은 층 사이에 인기가 좋다. 본래 부천관내 교직원을 대상으로 운영했던 것이 입소문이 나 이제는 일반인을 비롯해 지방에서도 부공모터스를 찾아오고 있다. 안 교사는 “일반 정비소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셀프정비소 운영이 어렵지만 학교기업은 다양한 차량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 학생들 실습경험에도 좋기 때문에 적합하다”며 “셀프정비 중에도 학생들이 바로바로 도움을 주고 있어 고객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박현진 부공모터스 팀장은 “시중보다 30% 정도 저렴하게 수리할 수 있고 예방정비나 과잉정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객들이 신뢰한다”고 덧붙였다. 부공모터스를 방문했던 고객들의 만족도 조사 결과 서비스 만족도(94.5%), 작업 청결도 (83.3%), 직원의 태도 및 복장(91.7%)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실습을 경험한 학생들의 만족도 또한 매우만족(52.6%), 만족(42.1%)으로 높다. 학교는 실습생들에게 기술 숙달 수준에 따라 소정의 장학금도 차등 지급한다. 수익금을 바탕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학교 예산에도 부담이 없다. 물론 애로사항도 있다. 김문환 교장은 “일반 기업에 비해 영업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학교기업이 긴 생명력을 가지려면 정부 도움 없이도 자생할 수 있도록 판로개척, 마케팅 전략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셀프‧일반정비 이용을 위해서는 전화(032-610-7573)나 홈페이지(cafe.naver.com/suraeshop)를 통해 예약 신청하면 된다. 일반정비는 예약 없이도 방문 가능하다.
교사, 사랑주고 ‘사람’ 얻는 천직 부친 사고에도 “돕겠다” 찾아와 ‘마지막 추억’ 많이 남겨주고파 동교들에게도 “함께 맡자” 설득 많이 변하고 달라진 학생들… 물러서서 장점 찾고 칭찬해야 정년까지 곁에 있는다면 행복 졸업 제자들에 편지 보낼 생각 빨라진 사춘기…반항….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6학년. 교사들에게 6학년 담임은 피하고 싶은 자리다. 그런데 강산이 변했어도 세 번은 변했을 3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직 6학년 담임만을 고집해온 교사가 있다. 제자를 길러낸다는 사명감일까, 다른 교사들을 위한 배려일까, 과연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손준기(60) 경북 안동용상초 교사를 만나러 가는 길,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험난한’ 교직의 길을 택했는지 궁금증이 시종 머릿속에 맴돌았다. 6학년 3반 교실. 그는 마지막 6교시 수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손 교사는 매일 아침 학생들과 리코더 연주를 한다. 환영의 의미로 드라마 대장금 OST인 ‘오나라’를 들려줬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어디서 오셨어요?’ ‘왜 오셨어요?’를 연신 묻던 학생들은 손 교사의 지휘봉이 움직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연주에 집중했다. -학생들 리코더 실력이 상당하네요. “아침 특별시간마다 리코더 연주를 하고 있어요. 학생들 정서안정은 물론 음악의 즐거움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함인데, 이제 3곡 정도는 악보 없이도 연주할 정도로 발전했어요.” -6학년답게 드센 아이들도 있나요. “산만한 학생들도 있죠. 그렇지만 교사라면 어떤 학생이어도 안고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모두 소중한 존재잖아요, 힘들어도 품어야죠.” -33년 동안 6학년만 담임하셨다고요. 이유가 뭔가요.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들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시작됐어요. 보통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가장 많이 기억하니까요.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한해도 빠짐없이 해온 거라면 ‘의지’ 없이는 불가능했을 텐데, 계기가 있었습니까. “1993년에 1년 동안 허리 수술을 두 번 받은 적이 있었어요. 거동이 힘들어 고생했는데 학생들이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제 가방을 받아 4층 교실까지 들고 가줬어요. 제가 없는 동안 이반 저반 흩어져 담임 없는 설움을 당했던 아이들은 제가 다시 학교에 나온 것만으로도 행복해했죠.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반 학부모님들께서 수업이 끝나면 잠시라도 누워있으라고 교실에 이동식 침대까지 마련해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따뜻한 인정이 있던 시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시 학생‧학부모들에게 받은 감동이 6학년 담임을 지속하게 한 원동력이었던 거군요. “그 아이들을 졸업시키면서 약속을 했습니다. 6개월을 한결같이 출근 가방을 가져다주고 기다려준 덕분에 이렇게 건강을 되찾았으니, 앞으로도 선생님은 여러분 같은 6학년을 담임할 것이라고요. 그들에게 못다 갚은 은혜를 새로 맡는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주겠다고 약속했죠. 그때부터 더 확고하게 결심 했던 것 같아요.” -아름답네요. 그런데 23년 전의 6학년과 지금의 6학년은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사실입니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죠. 요즘 아이들은 이기적이에요. 자신밖에 모르고 손해나는 일은 조금도 안하려고 하죠. 그래서 선생님들이 6학년 맡기를 꺼려하는 것이고요. 해서는 안 될 말도 거리낌 없이 하는 아이들을 보면 돌아서서 비참함을 느끼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질 때면 참 힘들긴 합니다.” -‘6학년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전임 학교에서 제 별명이 ‘전입교사 훈련부장’이었습니다. 6학년 동료교사 선생님들이 붙여줬어요. 대부분 새로 오신 선생님들은 6학년을 맡게 되는데, 1년 후에는 모두 저학년 담임으로 내려가기를 희망하더군요. 제 애칭은 그렇게 오신 선생님들을 1년간 훈련시켜 다른 학년으로 보낸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선생님들이 기네스북에 올라야 한다느니, 책 하나 써야 한다느니 야단이었어요.(웃음)” -후배 교사들에게 해줄 말도 많겠네요. “늘 하는 말이 교사로서 내세울 수 있는 것 한두 개는 꼭 갖추라고 해요. 교사는 수업이 제일이잖아요. 수업이든 연구든 자기만의 전문 분야를 찾았으면 합니다. 저는 올해 학년 대표 공개수업 때도 제일 먼저 자원했어요. 후배 교사들이 감동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솔선수범하시는 편인가봅니다. “누구라도 맡아야 될 일이면 내가 먼저 하자는 주의예요. 나이 많다고 쉬운 일만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에 있어선 안 됩니다. 옆 반에도 경력 5년차 동료교사 두 분이 계신데 술자리에 앉으면 이런 얘기를 해요. ‘무척 힘든 거 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6학년 담임을 제일 많이 기억해 줄 것이다. 힘들지만 내년에도 같이 맡아서 해보자. 누구든 맡을 거 우리가 하자’고요.” -생각해보면 저 역시 6학년 담임선생님이 가장 많이 기억납니다. 남자선생님이셨는데, 소소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셔서 아이들이 참 많이 따랐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주로 리코더 연주와 고사성어‧옛 시조 읽기, 나의다짐 시간 등을 통해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겨주려 노력해요. 이런 활동을 귀찮아하고 무슨 도움이 되냐며 싫어하는 아이들도 물론 있죠. 그렇지만 먼 훗날 힘들 때 이 기억을 떠올리며 위안 받는 학생이 한 두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먼 미래를 보는 거죠.” -나의다짐 시간은 무엇입니까. “아침 수업 시작 전이나 생활하다가 한번 씩 ‘나의다짐’을 함께 읽는 겁니다. 문구는 이렇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소중한 내 자신을 위해 내 몸을 아끼고 보살피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몸이 소중하듯 친구의 몸도 소중하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긴 직선도 수많은 점들이 모여 이뤄졌듯 순간순간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반복해서 읽다보면 먼 훗날에도 어렴풋이 기억나지 않을까요.” 손 교사는 이런 이야기들을 엮어 교총이 제64회 스승주간을 맞아 개최한 교육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이런 행보는 이미 정평이 났다. 2010년에는 MBC ‘생방송 전국시대’에 주인공으로 소개되기도 했고, 2011년에는 ‘국무총리 모범공무원’으로 선정됐다. 수업연구도 열심히 한다. 그는 선도 교사 수업발표대회에서 5차례 입상했고 독서교육 실천사례 연구대회 1등급 2회를 비롯해 지금까지 각종 연구대회에 11차례 입상했다. -졸업한 제자들도 자주 만나시나요. “물론이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2001년~2005년 졸업생들과 10년 후 8월 15일 포항 실내체육관 ‘호돌이 탑’ 앞에서 만나자 약속했던 일입니다. 매 해 10여 명의 제자들이 약속을 잊지 않고 나와 줬죠. 아직 학생들이라 밥값은 좀 썼습니다.(웃음) ‘선생님은 변하지도 않으시고 그대로네요’, ‘제가 결혼 할 때 꼭 주례 봐주셔야 해요’ 하며 분위기를 띄우던 제자들을 보면서 오랫동안 6학년 담임하기를 정말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보람되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버지께서 리어카에 사고를 당해 생사를 오간 적이 있었습니다. 안동병원에 입원하러 갔는데, 제자 녀석이 내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더군요. 남편은 신경외과 과장이라 아버지 수술을 담당해줬어요. 얼마나 안심되고 고맙던지…. 수술하다 피가 모자란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 여기저기 연락을 취해 밤늦은 시간에 포항에서 달려와 줬어요. 어찌보면 교사는 한껏 사랑을 주고 제자 이전에 ‘사람’을 얻는 직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교권이란 무엇입니까. “요즘 세태를 보면, 선생은 있으나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으나 제자는 없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선생님에게 교권은 가르칠 권리입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가 교권침해인데, 교사들에게는 제재 수단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타이르다 안 되면 세워 둔다든가 제재를 가하겠죠. 달리 학생들을 통제할 수단이 없어요. 만일 체벌이라도 하면 앞선 과정은 온데 간데 없고 체벌교사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때문에 잘못을 봐도 눈감아 버리고 자신의 책임을 다 하지 않는 교사들이 생겨나는 거죠. 보다 강력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엇나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저 역시 아직도 힘든 부분이긴 합니다. 교사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설 줄 알아야 해요. 그 자리에서 아이와 함께 흥분하면 안 돼요. 뒤로 물러서 느긋한 마음으로 생각해야합니다. 또 하나는 나무라기보다 장점을 찾아 칭찬해주면 도움이 됩니다. 저희 반에도 엇나가는 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종이접기를 잘 한다는 것을 알고 칭찬해줬더니 종이학 천 마리를 접어 제게 선물하기로 약속하더군요.” -정년은 얼마나 남으셨습니까. “3년입니다.” -승진 욕심이 없었던 건가요. “저는 예전부터 좀 별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승진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우리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죠. 아이들 곁에서 담임으로 교직을 마무리하고 싶었고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남은 교직생활은 어떻게 마무리하실 계획입니까. “정년까지 6학년 담임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전국에서 6학년 담임을 제일 많이 한 교사가 되지 않을까요? 우선은 아이들에게 더욱 다양한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줘야죠. 또 하나는 지금까지 가르쳤던 제자들에게 내가 먼저 편지 한 통 보내주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또 퇴임한 뒤에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엮어 책도 펴내는 게 꿈입니다.”
대전·충남·충북교총 합동 워크숍 대전·충남·충북교총은 20일 충남교총 회의실에서 ‘2016 대전·충남·충북교총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날 워크숍에는 대전·충남·충북교총 회장과 사무총장, 사무국 직원들이 참석해 시·도교총의 주요 사업을 공유하고 교총 회세 확장과 조직 강화, 교권 확립, 회원 관리 프로그램 활성화, 복지 증진 방안 등을 논의했다. 또 2016 단체교섭 진행사항, 한국교총 건의사항, 시·도교총 발전 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기교총 조직 강화 연수회 경기교총(회장 장병문)은 21일부터 1박 2일간 충남 부여에서 경기교총 회장단과 자문위원, 교사(원)회 운영위원, 시·군교총 사무국장 등 59명이 참석한 사운데 ‘2016년도 경기교총 조직 강화 연수회’를 개최했다. 장병문 회장은 인사말에서 “이번 연수회의 목적은 교총의 역량 강화 및 활성화를 통한 교총의 회세 확장, 힘 있는 경기교총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훈술 고문은 ‘경기교총의 변화와 발전 방향’을 주제로 강의에 나섰고 참석자들은 회세 확장을 주제로 토의,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교총과 서울교총이 서울시의회가 추진하는 고교 학원 교습시간 연장에 반대하고 나섰다. 시의회는 현재 오후 10시로 제한된 학원 교습시간을 고교생에 한해 오후 11시로 연장하는 내용의 ‘학원 교습시간 조정 및 학원 의무 휴업제 도입’에 대한 토론회를 26일 개최했다. 박호근 시의원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교생의 교습시간을 밤 10시로 묶어 두는 것은 조금 이르다는 의견이 많고 다른 시도교육청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현재 17개 시·도교육청 중 학원 교습시간을 오후 10시까지로 제한한 곳은 서울, 대구, 광주, 세종, 경기 등 5곳이다. 나머지 12개 교육청은 학원 운영 제한 시간을 다르게 지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교총과 서울교총은 즉각 입장을 내고 “학원 교습시간 연장은 ‘섣부른 변경’으로 충분한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교총은 “지난 2009년 헌법재판소는 학원 심야 교습 제한에 대해 학생의 수면시간과 휴식시간 확보,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 완화 등을 이유로 합헌 결정을 한 바 있다”며 “이같은 내용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서울은 전국에서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는 특수한 교육 현실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서울이 43만 6000원으로 가장 높았다. 다른 중소도시는 25만6000원, 광역시는 27만 2000원, 읍면지역은 14만8000원 순이었다. 학원의 일요일 영업을 금지하는 학원 의무 휴업제에 대해서는 “풍선 효과, 관리·감독의 어려움, 자녀교육 선택권 침해 등 논란과 갈등이 예상되는 만큼 사회적·교육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5월 26일 오전 7시부터 순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인문학 강좌가 에코그라드 호텔에서 있었다. 안찬수 강사(시인,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사무처장)는 ‘책 읽기, 도서관, 지역사회’라는는 주제로 인도의 독립운동가요 정치가인 간디의 힌두스와라지를 화두로 하여 자치, 독립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핵심은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주인이 될 것인가. ‘책을 읽어라’ 가 아닌 우리가 주체가 되어 ‘책을 읽는다’이다. 이어 우리 나라가 지방자치를 실시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자치가 이뤄지고 있는가를 질문으로 이어갔다. 이러한 문제는 책 읽기와 무관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우리가 질문하는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책을 좋아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책을 읽을까요?’라는 질문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래 전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왜 우리는 대학을 가는가’에서 당혹스러운 대목을 봤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회의 폐막 기자 회견장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만 질문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그런데 기자 회견장을 가득 메운 한국 기자 중 어느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다. 한국기자의 질문이 없어 결국 기회는 중국 기자가 가져갔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두려움 앞에 패기와 열정을 잃어가는 사람들, 더 이상 치열하게 사고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많은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 보고 교육의 혁신을 이루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한국이 지목되는가 하면, 모든 사람들이 선만의 대상인 변호사, 의사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사례로 지난 16일 미국 대형 법무법인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는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를 고용해 법대를 갓 졸업한 초보 변호사가 하던 일을 맡게 했다. 로스는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으며, 1초에 10억장의 문서를 검토할 수 있다. 아마존은 AI인 ‘알렉사(Alexa)’가 적용된 주방용 로봇과 비서 로봇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 구글은 AI가 쓴 연애소설을 최근 공개했다. 그림을 그리는 AI ‘딥드림’은 추상화를 그려 그중 29점을 지난 2월 9만7000달러, 한화로 약 1억1600만원에 팔았다. 멀지 않아 인간이 담당하던 정보수집, 검색, 분석, 이를 통한 결론 도출 및 비교적 깊이가 낮은 사고력을 이용한 분야는 모두 AI의 몫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의 학교는 ‘질문 없는 학생’을 키워내고 있다는 지적이 이미 있었다. 정부, 국가기관 등의 간담회에서는 이른바 ‘사전 질문지 작성’이 성행하고 있고, 기업 최고경영자의 조찬 모임이나 국제 콘퍼런스 행사장에선 토론 없는 생명력 잃은 발표자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일상이다. 진정한 인재는 자기가 던지는 큰 질문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하여 답사하고, 독서하고 훈련하는 자세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이런 해답을 찾아가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인재이다. 인간이 AI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기계를 이길 수 있는 건 집약적 정보 검색, 분석을 뛰어넘는 파괴적 상상력과 영성적 직관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 사고하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나리오 없는, 살아 있는 토론 문화가 정착돼야 할 것이다. 인간을 능가하는 스마트한 기계를 통제하기 위해선 알고리즘화 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인간의 사고력이 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독서가 필수이다. 결국 그런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가 미래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사고력의 싸움에서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수저론’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직업, 경제력 등으로 본인의 수저가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이 말은 작년부터 취업이 어려운 젊은이들이 자조적으로 하면서 공감을 많이 얻고 있다. 즉 자신은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해 ‘흙수저’라는 것이다. 반면 부모의 직업이 좋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자녀들은 취업 등의 걱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격이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상상을 해 보면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은 어떤 수저를 가지고 태어났을까. 왕족이었으니 당연히 금수저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종대왕의 아버지 태종은 조선 건국의 주역이면서 홀대를 받았다. 결국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태종은 조선 건국 공신들과 대립하며 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때가 세종이 네 살이었다. 태종은 왕의 자리에 오르면서 신권 정치의 도전을 받았고, 이를 누르고 왕권 중심의 정치 체제를 확립했다. 그 중에는 처남들의 공이 컸다. 민무구, 민무질은 모두 태종의 비 원경왕후의 동생들이자 세종의 외삼촌들이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태종은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 이들을 견제했다. 급기야 어린 세자를 통해 권세를 탐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유배 후 사사한다. 6년 뒤에도 동생인 민무휼과 민무회도 같은 길로 보냈다. 이 과정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극렬하게 대립했을 것이다. 이때 세종은 11살이었다. 부모님이 왜 싸우는지 충분히 알 나이였다. 부모님의 갈등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왕위에 오른 아버지 태종은 궁녀들과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된다. 어머니 원경왕후는 꿈에 그리던 중전의 자리에 올랐지만 사랑을 잃어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 문제로 싸우기 시작했다. 태종은 조선 임금 중에서 후궁 제도를 정착시켰다. 명분은 중전 한 명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왕실의 번창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태종이 여색을 가까이 하는 천성을 무시할 수 없다. 태종은 후궁 제도를 도입하고 합법적인 외도를 한다. 조선 역대 왕 중에 비빈을 제법 많이 둔 임금이 태종이다. 어린 시절 세종은 아버지에 의해 외삼촌을 잃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부간 갈등도 세종을 우울하게 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아내 소헌왕후 심씨의 부모에게 역사의 칼날이 닥쳤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던 그해 12월에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던 장인 심온이 사약을 받았다. 심온의 부인 즉 세종의 장모는 천인으로 전락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세종이 왕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위가 왕에 오르고 딸이 왕비가 되었기에 심온의 가족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이런 사이에 세종의 부인 소헌왕후는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왕후의 지위가 위태로웠다. 세종은 더 이상의 참사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종은 소헌왕후를 극별이 대했다. 자녀도 8남 2녀를 뒀다. 이는 조선 역대 왕 중에 정실 사이에 가장 많은 자녀를 낳은 임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세종과 소헌왕후가 금실이 좋았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세종이 아내를 지키고자 했던 의도가 있다. 처가가 역적으로 몰린 상황에서 자녀라도 많이 낳는다면, 비로서의 내조도 인정받고, 왕실의 안정에 공이 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세종은 요즘 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을까. 맞다. 왕실의 자식이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하지만 세종의 어린 시절을 보면 금수저가 아니라, 흙 묻은 금수저라고 해야 한다. 세종은 순탄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험난한 길을 걸을 때 세종도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세자 책봉도 왕의 자리에 오른 것도 예고되지 않고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여타 세자들은 서연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준비를 하지만 세종은 그것이 없었다. 세종은 스스로 흙을 털고 일어난 왕이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통해서 스스로 학문 수양을 했다. 학문의 깊이는 인간성 형성에도 기여했다. 가족의 비극적 상처를 허물로 남기지 않았다. 개인의 비극적 사건을 원한으로 품거나 피해에 대한 보복의 정치를 하지 않았다. 오직 역사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당대의 왕으로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는 정치를 했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져 기업이 신규 채용을 까리고 있다. 그에 따라 청년 취업이 어렵다. 이 현실을 두고 청년들이 흙수저로 자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날 때 모두 금수저였다. 부모님이 금지옥엽으로 키우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자신의 태생을 흙에 비하한다면 부모님은 얼마나 슬프겠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부모님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더 없이 존귀한 존재다. 혹 지금 인생이 잘 안 풀린다면 금수저에 묻은 흙을 제대로 털어내지 못해서다. 흙을 제대로 털어내고 금수저가 되는 길. 그 몫은 나에게 있지 않을까.
교사는 매일 수업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을 가르친다. 미래사회에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고도의 지력과 창의성을 지닌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이러한 교육활동의 성패는 궁극적으로 교실 수업에 의해 좌우되며, 이는 교실에서 교사가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수업의 질에 달려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며 나름대로 갖은 아이디어를 내며 좋은 수업 방법 모색에 고민해 보지만 생각만큼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수업이다. 그간 교육부를 비롯하여 시·도교육청 그리고 연구나 시범학교에서까지 좋은 수업을 위한 수업개선을 외쳤지만 좀처럼 개선방안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교사의 수업이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맞물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우리의 서당식 1대1교육이 최고의 교육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도 많다. 수업방법 개선, 우리 교사들의 목표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반드시 노력하여 개선해 나가야 우리 교육의 미래가 있다. 먼저 학생들이 좋아하는 수업을 전개하자. 아무리 좋은 교육방법이라 하더라도 교육수요자인 학생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요즘학생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것들을 교수-학습에 연결시켜야 호기심을 불려올 수 있다. 다음으로는 교사의 좋은 수업 아이디어를 발굴하자. 수업에 필요한 아이디어는 여러 가지이다. 학생 학습동기 유발, 교수-학습 자료, 교사의 발문방법 등 기존의 방법과 자료에 대해 참신성을 가져야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학생들의 생각을 이끌어 내는 수업을 전개하자. 대개 교사들은 단위시간에 있어 학생들의 활동보다는 교사중심의 활동이 많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에 흥미를 잃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잠자기 일쑤다. 학생들에게 학습할 과제나 내용을 충분히 안내한 다음 학생 스스로 학습활동을 통해 탐구하여 찾거나 자신의 생각을 끌어내어 발표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모든 학생들의 수업의 주인이며 학습활동에 중심이 된다.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딜레마에 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딜레마는 교사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교육에서 교사의 가르침이 학생의 배움과 상호작용하고 엮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육과정의 복잡함, 시험 성적을 위해 요구되는 학습관행, 경쟁과 서열 중심의 사회적 문화 등 교육의 구조적 요인과 함께 결합된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의 난제를 교사들이 어떻게 극복하고 자기만의 교수방법을 개척하는냐가 더 큰 과제일 것이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를 위한 도덕경 이 책은 파멜라 메츠가 노자 도덕경 81장을 '배움'을 주제로 다시 풀어 쓴 것이다. 가르치는 일이 힘에 부칠 때, 욕심이 앞서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울 때, 성경을 읽듯 마음을 비울 수 있게 해 주는 가슴으로 읽는 책이다. 공교육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항상 있어 왔다. 교육개혁을 부르짖는 외침은 거창하다. 그럼에도 변화는 느리다. 느림이 정상이라고 무위의 가르침이 담긴 책이다. 배움의 길 위에서 답답한 가슴에 위로와 죽비를 들고 선 저자의 마음이 노자의 수레 위에서 손짓한다. 배움을 논하는 일자천금이 행간마다 튀어나와 느린 걸음으로 가자고 속삭인다. 가르침과 배움에 힘들어 하는 그대들에게 노자의 옷을 입은 작가의 속삭임을 소개해 올린다. 바탕에 뿌리내림 자기 뿌리를 아는 교사는 균형을 잃지 않고서 말썽꾸러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 바탕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은, 교사가 온종일 배움터를 떠나지 않고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러 유혹이 있어도 그는 갈등 속에서 오히려 고요하다. 교사가 어째서 이런 저런 논쟁 따위에 빠져들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을 바람에 날려 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뿌리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옴짝달싹 않고 굳어져 있다면 자신의 자기됨을 잃을 것이다. 조산원(助産員) 교사 슬기로운 교사 가르칠 때 학생들은 그가 있는 줄을 잘 모른다. 다음가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교사다. 그 다음가는 교사는 학생들이 무서워하는 교사다. 가장 덜 된 교사는 학생들이 미워하는 교사다. 교사가 학생들을 믿지 않으면 학생들도 그를 믿지 않는다. 배움의 싹이 틀 때 그것을 거들어 주는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진작부터 알던 바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다. 교사가 일을 다 마쳤을 때 학생들은 말한다. "대단하다! 우리가 해냈어." 자신을 알아라 그대가 남을 안다면 그대는 총명한 사람이다. 그대 자신을 안다면 현명한 사람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고 자기를 이기는 것은 지혜다. 그대가 만족할 줄 안다면 그대는 참으로 부유한 사람이다. 그대가 중심에 머물러 온몸으로 삶과 죽음을 껴안는다면 영원히 살 것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 특집 지난밤에 내린 봄비로 진충사 가는 길의 풍경은 갓 세수를 끝낸 아이의 얼굴처럼 해맑고 싱그럽다. 시원하게 뚫린 국도 29번과 77번을 달리다보니 오른편에 큼지막한 글씨로 ‘진충사’라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진충사로 접어드는 대요리의 고샅길이다. 아늑하게 펼쳐진 그 길을 800여 미터쯤 따라가다 보니 평화로운 마을길과 잘 어울리는 진충사가 나타났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은 없고 짙붉은 철쭉만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진충사(振忠祠)는 조선시대 명장이었던 정충신 장군(1576~1636)의 영정과 유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사당이다.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으며, 조선 인조 14년(1636) 8월에 왕명에 의해 건립된 사당이다. 그만큼 정충신 장군의 업적과 충성심을 높이 샀다는 증거일 것이다. 건물은 본당, 내삼문, 동재 겸 유물전시관, 서재, 외삼문, 내담장(길이 150m), 외담장(길이 80m)로 구성돼 있는데, 사당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에 팔짝지붕 겹처마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사적비 1기, 홍살문 등이 있다. 사당 내에는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비롯하여 투구, 갑옷 같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75년 정충신 장군의 투구를 도난당한 이후 현재는 진충사에 모셔져 있던 유품 다섯 점을 장군의 종손가로 이전하여 보관하고 있다. 진충사는 조선 인조 14년(1636)에 건립되었다가 영조 13년(1737)에 중수 된 건물로 그동안 몇 차례 보수와 이전이 있었다. 정조 24년(1800)에 정충신의 5세손인 곡성현감(谷城縣監) 정세홍에 의해 당진군 정미면 신시리로 이전되었다가 광무(光武)1년인 1897년 2월에 9세손 정재칠에 의해 지곡면 대요리 740번지 종손가 옆으로 다시 이건(移建)하여 73년 간 봉안해 오다가 1970년에 지금의 자리로 신축 이전하였다. 때문에 건물을 보는 순간 고전적인 느낌은 덜한 편이다. 사당 본당에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 씨가 쓴 ‘진충사’란 현판이 걸려 있다. ▲사진 왼쪽부터 정충신 장군의 갑옷과 초상화선조 9년인 1576년에 태어난 장군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무예가 뛰어났다고 한다. 자는 가행, 호는 만운, 본관은 광주이고 고려시대의 명장 ‘정지(鄭地)’의 후손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7세의 어린 나이로 광주목사 권율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적군의 동정을 정찰하고 또한 적장을 사살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장군은 어느 날 권율 장군의 심부름으로 장계를 가지고 의주 행재소에 있는 이항복을 찾아갔다. 이항복은 첫눈에 정충신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는 학문과 무예를 닦으라고 권유했다. 이항복은 정충신을 집으로 데려가 사서를 가르쳤고 그해 가을에 무과에 급제했다. 훗날 정충신은 이항복이 유배를 가게 되자 함께 따라가서 아버지처럼 모시며 은공을 갚았다고 한다. 인조 2년(1624)년에는 ‘이괄의 난’을 서울 길마재에서 전멸시켜 진무공신 1등이 되어 금남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당시 많은 공신들이 반군들의 몰수된 전답과 노비를 차지하려고 다투었으나 정충신 장군만이 오불관언하는 것을 보고 당시 장군의 상사였던 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 장만(張晩)이 임금에게 이렇게 상소를 올렸다. “전하, 이번 공신 가운데 오직 정충신만이 그 공적이 크면서도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사옵니다.” 이에 인조는 그 뜻을 가상히 여겨 반군의 총수였던 이괄이 소유했던 마힐산 국사봉 일대의 토지 약 45만평을 사패지로 하사하였다. 이로 인해 장군은 유택(幽宅)으로 국사봉을 택하였다. 장군은 생존 시에 아들 빙과 민을 대동하고 유택을 친히 잡아 놓고 아들들에게 ‘자신이 죽은 뒤에 반드시 이 자리에 장사지내도록 당부’한 곳이라고 전한다. 장군의 유언대로 사후에 이곳에 유택을 마련하고 진충사를 건립하게 되었다. 정묘호란 때에는 팔도부원수로서 청나라를 무찌르고, 1630년 평안북도에서 일어난 ‘유흥치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장군은 체구는 비록 작았으나 대범하고 청렴결백했으며 지혜와 안광이 샛별 같아서 무리들을 위압하는 조선시대의 명장이었다고 전한다. 정충신 장군의 인물됨을 나타내는 일화 한 토막이 있다. 정충신이 평안병사로 있을 때였다. 청나라와 우호 조약을 맺어야 하는데 청나라 사람들이 잔혹한 오랑캐라는 소문이 있어서 선뜻 사신으로 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정충신이 자진해서 청나라 사신으로 갔다. 청태조는 조선 사신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 보자마자 이렇게 일갈했다. “너희 나라에 아무리 사람이 없기로서니 너같이 작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단 말이냐?” 그러자 정충신이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조선에서는 예의를 갖추는 나라에는 대인(大人)을 사신으로 보내지만, 힘만 믿고 예의가 없는 나라에는 소인(小人)을 사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청태조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다시 물었다. “조선에서는 나를 도적이라고 한다던데 도대체 내가 무엇을 훔쳤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 정충신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천하를 훔치는 것보다 더 큰 도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청태조는 껄껄 웃으며 정충신을 정중히 상석으로 모셔 환대했다고 한다. 그의 사람됨을 단박에 알아본 것이다. 정충신은 무장이면서도 평소 꾸준히 저술에 몰두해 ‘만운집’, ‘금남집’, ‘백사북천일록’ 같은 명저를 남기기도 했다. 병자호란을 눈앞에 둔 1636년 5월 4일 한양 반송방(般松坊)에서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61세로 생을 마감했으니 아깝도다 시호를 충무(忠武)라 했다. 정충신 장군의 묘소는 진충사의 정 반대편에 있다. 진충사에서 800미터 정도 떨어진 마힐산 국사봉 중턱에 부인과 함께 나란히 쌍분으로 잠들어 있다. 2개의 봉분 중앙 전면에 묘비가 서있고 그 앞에 혼유석과 양옆으로 각종 석물이 세워져 있다. 부장품으로는 평상시 장군이 입던 갑주와 투구, 장검이 함께 묻혀있다. 장군은 자손들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작은 공은 이미 역사에 기록된 바이니 죽은 뒤에 문자로 공적을 찬양하거나 시호를 청하거나 비와 석물을 세우지 말고 다만 쓰던 그릇만 묻어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정말 그의 유언대로 무덤에는 공적비가 없다가 최근에서야 후손들이 뜻을 모아 세웠다. 매년 양력 4월 25일에 시민(市民)과 유림(儒林)이 모여 제향을 지내고 있다. 현지 교통 서산버스터미널에서 대산 행 시내버스를 이용 지곡 대요리 승강장에서 하차하여 진충사까지 걸으면 약 20분 정도가 소요됨. 고소고도로 1.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 → 운산 → 32번 국도 → 서산 → 지곡 → 대요리 → 진충사 2. 경부고속도로 천안I.C → 22번국도 → 예산(45번 국도) → 해미 → 서산 → 지곡 → 대요리 → 진충사
서산 서령고(교장 김동민)는 2016년 5월 25일(수) TBS 박은주 PD를 초청, 특강을 들었다. 박은주 피디는 TBS의 5분 다큐 ‘사람’이란 프로그램 기획자로 학생들에게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1970~1980년대 우리나라는 연평균 9%씩 경제가 성장했다.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대기업에 취업했다. 회사에 다니다가 결혼을 할 때가 되면 아파트 분양으로 결혼과 동시에 집 장만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의 나라의 대한민국은 그랬다. 이런 시간이 흘러 2000~2010년대 우리나라는 연평균 2~3%씩 경제가 성장한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못한 청년들은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전전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사회에 진입조차 못한 이들에게 결혼은 어불성설이다. 집 장만? 더더욱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이다. 이른바 'N포 세대'인 아들의 나라의 대한민국이다. 아버지의 나라와 아들의 나라는 같은 나라일까? 다른 나라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2016년도 아들들과 아버지들은 달라진 나라 대한민국을 살아내야만 한다. 저성장이 무엇인가를 이미 일본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저성장 시대 새로운 경제 문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은 이 책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에서 '한국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는 분석을 기반으로 사회 문제들의 해결책을 도출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오늘의 불안을 이기는 내일의 경제 패러다임'이 그것이다. 특히 저자는 성장, 소득, 일자리, 기술, 노후에 집중한다.저자는 독자들에게 양을 늘리는 성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화와 서비스는 대부분 충분히 크고 넓고 빠르다는 것이다. 성장은 여전히 중요하되 그 내용은 달라져야 하며 현 시대에 더 필요한 가치들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고속 성장기에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던 사회적 가치와 환경의 가치, 인권과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의 성장을 말한다. 소득에 대한 저자의 관점도 이와 비슷하다. 저자는 화폐로 환산되는 가치만을 따라 왔지만 아직도 누구도 제대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소득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 내의 노동, 자원봉사, 품앗이 같은 호혜활동, 합리적 토론 과정과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성, 다른 나라에 있는 것들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할 시점이다. 아들의 나라를 조금이라도 염려한다면 지금이라도 출발을 서둘러야 한다. 평생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저성장, 저출산, 인구고령화 시대의 확실한 대안이다. 이를 위해 평생 학습하고 능력을 키우고, 건강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하여야 한다.
분리불안을 겪는 아이 마음속에 들어가요 “엄마, 회사 안 가면 안 돼?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 “선우야, 안 되는 거 알잖아. 엄마 다녀올게. 할머니 말씀 잘 들어.” “흥, 엄마 미워!” 나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엄마는 나보다 회사가 더 좋은가 봐요. (5쪽) 이 책은 10여 년 전 1학년 담임을 했을 때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입학식 날부터 거의 한 달 동안 분리불안 속에 날마다 한 시간 울어대던 우리 반 여자 아이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필자의 경험이기도 하다. 연년생 남매를 키우며 출근하던 시절, 아침마다 눈물이 화장품이 되기 일쑤였다. 그 시절에는 육아휴직도 없던 시절이라 꼼짝없이 남의 손에만 의지해서 키운 남매에게 필자는 평생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 책은 일하는 엄마의 안타까운 시선이 또렷한 영상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일하는 엄마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입장을 절실하게 그리고 있다. 그림책이 주는 따스한 감성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서 엄마의 직장을 따라간 선우가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예쁜 그림 속에 가득 들어 있다. 필자는 이 책을 보는 내내 이제는 성인이 된 두 아이가 다시 어려져서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코끝이 시큰거렸다. 출근하는 엄마에게 선우처럼 껌딱지가 되고 싶었을 그 마음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출근하는 필자에게 매달리며, "내 몸이 작아져서 엄마 옷 속에 쏙 들어가서 따라가고 싶다" 던 그 목소리가 어제 일처럼 따라 나와 그리움으로 번져왔다.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그림책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그림이 담고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동화의 아름다움은 문자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엄마 손을 떠나 하루를 시작하는 이 땅의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 책이다. 일하는 엄마에게도, 일하는 아빠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이미 어른이 된 선생님에게도 아릿한 아픔과 공감을 불러올 책이 분명하다. 어린 마음을 이해하게 해 준 아름다운 동화이자 명랑하고 밝은 그림책을 보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 동화나 그림책은 어린 아이들만 보는 책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늘 느끼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참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아니,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는 것은 젊어지는 샘물을 마시는 일이다.
푸른 강물 위로 오월이 흐르는 강마을은 신록이 참으로 싱그럽습니다. 모심기를 위해 물 잡은 논에는 개구리 소리가 들리 고, 비라도 오면 청개구리가 먼저 알고 목청을 높입니다.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섭니다. 자연은 참 쉬지 않고 흘러갑니다. ‘자연(自然)’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입니다. 절로 절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태겠지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월의 신록이나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두가 어려운 때입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어 하고, 중년들은 직장에서 막판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노년층은 빈곤과 푸대접으로 모진 추위를 견뎌야합니다. 아, 오월은 신록은 너무나 아름답고 세월은 자연적으로 흘러가지만, 이 눈부신 꽃 잔치에 소외된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비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해가 나오듯이 겨울이 지나가면 봄은 반드시 오듯이 지금 우리의 삶이 팍팍해도 함께 서로를 배려하면서 같이 간다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어쩌면 일제강점기 앞과 뒤를 돌아보아도 한 발 재껴 디딜 곳조차 없던 시대에 이미륵 선생이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삼일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일제의 억압을 피해 독일 땅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공부하고 문단 생활과 강의를 하다가 향년 51세의 나이로 쓸쓸히 타향에서 잠든 분입니다. 교실 학급 문고를 정리하다 보니, 아주 오래된 문고판 책이 발견되었습니다. 전혜린의 번역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압록강은 흐른다]입니다. 저의 고등학교 시절, 전혜린의 수필을 읽으며 잠 못 드는 밤이 참 많았습니다. 언젠가 그녀의 글에 나오는 독일의 슈바빙을 꼭 가보리라. 그리고 회색 보도와 오렌지색 등이 있는 뮌헨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 시절의 벗처럼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읽었습니다. 오월의 신록처럼 싱그럽고 서정적인 글은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미륵의 유년시절부터 독일 유학에 이르기까지의 체험을 회상 형식으로 서술한 자전소설입니다. 근대화에서 식민지시대에 이르는 역사적인 변혁기를 배경으로 작가의 소년시절·가족관계·교우관계·학교생활을 비롯하여, 정신적이며 실제적인 관심사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사촌들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 한문 공부, 자연을 통하여 동양사상을 가르쳐준 아버지, 서양 학문으로 유도해준 친구들, 서울 유학과 식민지 학생으로서의 암울함, 3·1운동과 낙향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해(上海) 망명과 독일 유학, 고국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이 매우 서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자신의 성장 과정을 교체하는 서술 방법으로 전통과 변화, 동양과 서양의 가치기준이 혼합된 시대상황 속에서 동양적인 감성과 서양의 과학적인 이성을 지닌 하나의 인간으로 성숙하여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작가 개인의 성장 과정을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적·역사적인 배경에 신문명의 유입과 유럽 세계와의 접촉을 조명하고 있으며, 문체의 탁월함이 인정되어 한때 최우수 독문 소설로 선정된 바 있으며, 독일교과서에 실려 지속적으로 애독되고 있습니다. / 출처 : 한국민족문하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다시 읽는 이미륵의 글에서 어머니께서 미륵을 일제를 피해 도망을 보내며 하신 말씀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에게 진심을 담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자주 낙심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충실히 너의 길을 걸어갔다. 나는 너를 무척 믿고 있다. 용기를 내라!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고 또 결국에는 구라파에 갈 것이다. 이 에미 걱정은 말아라. 나는 네가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겠다. 세월은 그처럼 빨리 가니 비록 우리들이 다시 못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슬퍼 마라. 너는 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자! 내 애기야, 이젠 혼자 가거라.』 이미륵 선생은 다시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이미륵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울림은 5월 밤이 깊도록 저를 붙잡고 있습니다. 밤은 깊고 무학산에 무성한 아까시꽃의 향기는 바람을 타고 책 사이로 돌아다닙니다. 향기로운 봄밤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남은 것은 그가 생각한 대로 살았고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제자를 가르친 방법이 질문과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치도록 돕는 방법, 학습자의 내면에 있는 배움의 본능, 공부 본능을 자극한 덕분이다. 오늘날 감성교육으로 불리는 방법이다.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삶의 본능 속에 공부 본능을 지니고 태어난다. 선생님의 역할은 바로 학습자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공부 본능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그것은 위대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생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성립하는 것이 먼저다. 감정적으로 친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관계 질문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정적으로 마음을 터 놓게 되었을 때, 성찰하는 질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수업 시간의 정보 질문에도 활발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리하여지혜로운 학생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위대한 질문이 위대한 제자를 만든다 선생님의 좋은관계 질문하나가 한 학생의 마음에 폭풍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고, 수업 시간에 던진정보 질문 하나가 학생의전두엽에 뇌폭풍을 일으키는 순간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니 선생님의 좋은 질문은학생의 인생을 멋지게 꾸릴 수 있게 하는힘을 지닌다. 생각하는 학생으로 만드는 비결은 바로 선생님의 질문 수준에 달렸음을! 교사의 질문은 학생들을 진리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질문은 학생이 학생의 지혜를 깨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배움이 외부의 자극을 통해 닮아가는 것이라면, 깨침은 기존의 안정된 인식을 깨뜨리고 새로운 상태로 급격히 전환되는 것이다. -서근원 수업 어떻게 볼까 중에서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한 10가지 습관 1. 학생 입장에서 질문하라. 2. 교사가 질문을 독점하지 말라. 3. 학생의 질문을 다른 학생에게 연결하라. 4. 특정 학생을 지목하여 질문하라. 5. 특정 학생을 지목하여 질문했으면 최소한 7초는 기다려라. 6. 절대로 자문자답하지 말라. 7. 학생이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오답을 말해도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말라. 8. 질문을 한 후에는 경청하고 반응을 보이라. 9. 구조화된 질문을 하라. 10. 학습 단원의 특성, 학생들의 수준, 수업 맥락, 상황 등에 맞는 질문을 적절하게 사용하라. -질문이 살아있는 수업 중에서
오는 9월 28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청탁금지법이 교원에게 현재 적용되는 규정과 상충되고 사립 교원까지 포함돼 과잉입법이라는 비판이 또다시 제기됐다. 24일 국민권익위원회 주최로 열린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청탁금지법)’ 시행령 입법예고안 공청회에서는 법률 제정과정부터 논란이 됐던 사립학교 교원 포함 문제, 각각 3·5·10만원으로 정한 음식물·선물·경조사비 가액 기준 등에 대한 반론이 이어졌다. 이재완 한국교총 이사는 “법률에서 사립학교 교직원을 포함시켜 마치 촌지나 받는 비리의 온상인양 여겨지는 자체가 암담하다”며 “사립학교 교직원은 법적으로 엄연히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인데 처벌의 ‘필요’에 의해 지나치게 적용대상을 확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립학교 교직원과 법인 임직원 등 민간 영역까지 대상을 넓힌 것은 과잉 입법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금융이나 의료, 법조계 종사자들도 공적 업무에 종사하는데 유독 교육과 언론 분야를 지정한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현행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사립학교를 공공기관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데도 청탁금지법이 사립학교 교직원, 법인 임직원을 공직자 범주에 넣은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지난해 6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각종 관련 규정과 상충돼 혼란을 준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 이사는 “서울시교육청은 공무원행동강령보다 엄격한 촌지 근절 대책을 정해 10만원만 받아도 파면될 상황인데 도대체 어떤 기준을 따르라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청탁금지법은 직무 관련 여부를 불문하고 1회 100만원, 매 회계연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수수에는 형사처벌, 직무와 관련해 그 이하의 금품을 수수한 경우에는 과태료 부과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1만원만 받아도 주의·경고·감봉·견책, 10만원 이상은 파면·해임·강등·정직 등의 중징계를 받도록 했고, 부산시교육청은 촌지를 1만원만 받아도 무조건 형사고발하게 하는 등 제각각인 실정이다. 이 이사는 “요즘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이면 꽃 한송이도 안 받으려고 휴교를 할 정도인데 3만원 식사, 5만원 선물이라는 시행령 기준 자체도 무의미하다”며 “국민권익위는 이같은 현실을 세밀히 파악해 법령을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병무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정책연구원장도 “이미 공무원들은 공직자윤리법, 공무원행동강령 등에 따라 상당 부분 부패와 단절돼 있다”며 “대다수 공무원, 교원들과 조직 전체를 마치 뇌물수수자로 단정하는 듯 호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윤문영 기자 ymy@kfta.or.kr ⓒ 한교닷컴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회장단이 직접 190여개 분회 방문…6월부터 2차 방문 추진 어우렁한마당, 해외탐방 등 소속감 높일 ‘참여형’ 활동 마련 교권‧정책TF 구성…“할 말 하고 솔선하는 강한교총 만들 것” “다른 거 없습니다. 교총이 눈앞에, 피부로 와 닿아야 합니다. 회장단이 직접 전 분회를 찾아가 현장의 소리를 듣고 회원 유치에 솔선한다면 3000명대 회원도 임기 내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난 2월 취임한 고재문(제주한라대 교수) 제주교총 회장은 4개월째 학교 현장을 누비며 숨 가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회세 확장을 위해 ‘발로 뛰는 교총’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고 회장은 “지난 2년간 공무원연금 파동에 의한 명퇴 등으로 회원이 많이 빠졌다”면서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5월까지 전 분회 1차 방문을 반드시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제주교총은 초등교 120여개, 중‧고교 70여개, 대학 4개 분회를 두고 있다. 190여개에 이르는 학교분회를 고 회장과 4명의 부회장, 사무총장 등이 분담해 면대면 활동을 펴는 중이다. 고 회장은 수업이 없는 요일마다 학교를 찾아 지금까지 100여개 분회를 방문했다. 그는 “전화 통화로는 거리감을 좁힐 수 없다”며 “선생님들의 고충, 애로, 요구사항을 진심으로 듣고 힘을 보태달라 요청드렸더니 마음을 움직여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효과는 회원 수로 나타났다. 1월 2416명이던 회원 수는 4월 2546명까지 130명이 늘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분회 방문은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특히 고 회장은 “교수라 운신의 폭이 좀 더 넓은 만큼 여름방학을 이용해 모든 분회를 찾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교총은 현장 회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사업을 발굴, 추진함으로써 2단계 회세 확장에 나설 예정이다. 분회에 회원 가입활동만 요청할 게 아니라 ‘참여형 프로그램’을 적극 마련해 소속감을 높여 회원 유치로 연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국외 문화탐방, 명사 초청 교원연찬회, 제1회 ‘어우렁한마당’이 그 대표적 사업이다. 오래 가입하거나 회세 확장에 공로가 큰 회원 30여명과는 올 7월말 대만으로 문화탐방을 떠난다. 연찬회는 지난 10일 회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널리 알려진 오한진 박사가 ‘교원의 스트레스’를 주제로 강연한 데 이어 하반기에는 도올 김용옥 교수를 모시기로 했다. 고 회장은 “회원들이 직접 시기, 내용 결정에 참여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조금씩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10월 30일 한라체육관과 종목별 경기장에서 개최하는 제1회 어우렁한마당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1000여명의 회원과 가족이 한자리에서 제주어 축제, 자연문화유산 탐방, 축구‧배구 등의 경기를 펼치는 대규모 화합의 장이다. 이를 통해 교총의 위상과 존재감을 과시하고 결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계획이다. 제주교총은 앞으로 삼락회, 초‧중등 교장회, 참사랑 학부모회 등과도 주기적으로 만나 협력 관계를 돈독히 해 나갈 생각이다. 참사랑 학부모회는 초‧중‧고 전‧현직 학부모회 회장 100여명으로 구성된 단체다. 최근 제주교총이 개최한 스승의 날 기념식에서 등록과 안내 등을 돕는 등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7일에는 간담회를 갖고 어우렁한마당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김정돈 사무총장은 “분회 방문을 넘어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갈수록 떨어지는 교권, 명예,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칭 ‘교권‧정책 전담TF’를 구성하기로 하고 인선 작업에 들어갔다. 행정 경험이 풍부하고 식견을 갖춘 유‧초‧중등‧대학 회원 7~8명씩으로 꾸릴 예정이다. TF는 각종 정책 현안에 입장을 발표하는 등 즉각 대응하고 교권침해 사건에 대해 현장 방문과 지원에 나서게 된다. 고 회장은 “정책과 교권 대응 자체가 회세 확장과 직결된다”며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정책TF는 올 9월쯤 제기할 도교육청과의 단체교섭안을 실질적이고 강력한 내용으로 담아내는 중책도 맡게 된다. 제주교총의 새로운 걸음에 중앙교총의 적극적 지원도 당부했다. 김진선(태흥초등학교 교장) 부회장은 “지역의 정책‧교권 문제에 즉각 대응하고 대변하는 연계시스템이 구축돼야 현장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재문 회장은 회원들을 향해 “사무국이 먼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재정 투명성 확립에 나서겠다”며 “믿음으로 동참해 주신다면 강력한 제주교총을 함께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케쳐스(sketchers) 서산점(대표 김환성 34기)은 5월 24일(화) 서산 서령고를 방문, 카누부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 티셔츠와 운동화를 후원했다. 스케쳐스는 지난 해 서령고와 1사1교 결연을 맺고 서령고카누부를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5월 24일(화) 스케쳐스 김환성 대표가 서산 서령고 카누부를 방문, 티셔츠와 운동화를 기증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 1학년 아이들은 질문이 참 많다. 밥 먹는 시각이 언제인지 묻는 단순 질문부터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인지 묻는 질문까지 매우 다양하다. 시시콜콜 뭐든지 질문하길 좋아한다. 문제는 이렇게 질문을 잘 하는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입을 다물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궁금한 것도,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도 줄어든다는 뜻이다. 아니면 친구들에게 놀림 당할까 봐 묻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입을 다문다. 행여나 시시한 질문이라고 웃어버릴까 봐. 또는 선생님이 사소한 질문에 친절하게 응대해주지 않은 탓도 있으리라. 발표를 잘 하게 하려는 부모님의 열망들은 대단한데 질문을 하라고 하는 부모님은 드문 것 같다. 질문은 그 사람의 생각의 수준을 나타낸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가져온다. 생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사소한 일로 다툴 때도 시시콜콜하게 일일이 그 이유를 묻곤 한다. 무조건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보다, 왜 그랬는지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순서가 그 순간의 감정을 받아주는 일이다. 친절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해결되기 때문이다. 요즈음 유대인의 공부법인 하브루타 질문법이 대세다. 유대인의 노벨상 획득력이 바로 하브루타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1901년부터 2011년까지 노벨상을 받은 유대인은 185명이다. 이는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약 30%에 해당한다. 세계 인구 중 유대인의 비율이 0.25%임을 감안한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다른 민족보다 지능 지수가 월등히 높은 걸까? 영국 얼스터대 리처드 린 교수와 핀란드 헬싱키대 타투 반하넨 교수가 발표한 세계 185개국 평균 지능 지수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평균 지능지수는 94점으로 세계 45위라고 한다. 그에 비해 한국은 평균 지능지수가 106점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수상자는 단 1명뿐이다.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하브루타로 교육하라를 쓴 전성수는 질문을 강조하는 유대인의 교육법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경청과 익힘을 강조하는 동양 교육 문화의 바탕 위에 질문과 토론을 중시하는 서양 교육 문화를 접목시키는 학습이 되도록 해야 할 때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소통의 부재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사회 현상 역시 질문과 토론이 결여된 채 오랜 시간 누적된 상처들이 곪아 터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궁금한 점을 묻는 것을 따지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는 문화, 일 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유지하며 언제든지 개방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의 시작은 바로 교육의 힘이다. 가정에서부터 질문과 토론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일이 먼저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발언과 교직원의 발언이 존중되는 문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진보하다보면 사회 일반에 걸쳐 질문과 토론을 중시하고 대화와 타협을 넘어 공감하는 문화가 퍼질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금성초는 무지개 학교(혁신학교)다. 학교의 중요한 일들이 교직원 협의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학생들도 중요한 학사 일정에 동참하며 발언하고 협의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작게는 텃밭에 심는 채소의 종류부터 크게는 뒤뜰야영이나 운동회 종목, 테마형 수학여행에 이르기까지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다. 자주 모여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모두가 학교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퍼져서 동참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누구든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고 협의하고 토의하여 결정하므로 소외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까지 기다려주는 관리자와 선생님, 선배들, 학부모님들이 공동체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바람직한 사회를 향한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좋은 사회를 향한 알찬 씨앗을 기르는 곳이 학교다. 그 변화의 씨앗은 바로 질문하는 교실, 질문하는 학생과 선생님, 질문하는 학부모로부터 나온다. 인간은 날마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삶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새로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더불어 선생님이라면, '오늘 내 수업에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해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 '아이들의 삶을 묻는 관계 질문은 무엇인가?' '아이들이 나에게 원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은 서울의 상징이다. 우리나라 사람도 서울 나들이를 하면 꼭 들르는 곳이다. 우뚝 솟은 광화문을 보며 우리 민족이 극복해온 역사를 떠올린다. 외국인도 넓은 길에서 바라보는 광화문에 감탄을 한다. 북악산 기슭에 안겨 있는 궁궐의 문을 사진에 담기에 바쁘다. 광화문은 원래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었다. 태조 때 창건되어 정도전에 의해 사정문으로 불렀다. 그러다가 세종 때(1425년) 광화문으로 바꿨다. 광은 빛나고 밝고 크고 바르다는 뜻으로 ‘이 문으로 나가는 명령과 교서가 모두 바르고 크고 빛나서 만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광화문에는 ‘나라의 덕치와 문화가 천하 만방에 널리 미치게 하는 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요즘 이 광화문 현판이 논란이다. 6년 전 광복절에 사진 등 자료를 근거로 복원을 했다. 그런데 최근 다른 사진이 발견되어 현판 바탕과 글자 색상 문제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는 보도다. 이를 두고 치밀한 조사를 통한 문화재 원형 복원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런 논란은 결국 정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현판에 대한 명확한 자료만 있었다면 당연히 생기지 않았던 문제다. 반면 정확한 자료가 있는데도 제대로 복원되지 않은 문화재가 있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있는 앙부일구다. 이는 측우기, 혼천의와 나란히 서 있는데 세종의 애민정신이 깃들여있다. 세종은 백성이 시간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서 한자 대신 12간지에 해당하는 동물 그림으로 시각을 표시했다. 한 마디로 앙부일구는 백성들을 위한 시계였다. 세종은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한 임금이다. 한글 창제도 애민정신이 낳은 유산이다. 세종실록(1423년)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라고 말한 내용이 전한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천민들에게도 산후 휴가를 보내는 정책을 시행했다. 세종은 군왕으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을 했다. 앙부일구의 시계에 그림을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종이 백성과 소통을 시도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만든 것이다. 중세 왕조 사회에서 백성의 어려움을 읽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지배층을 중심으로 독점하고 있는 문자를 피지배층인 백성과 함께 하려는 시도도 의미가 있다. 이러한 시도가 결국은 훈민정음 창제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세종의 노력이 후손에게 기억되어야 한다. 앙부일구는 광장에서 지하로 연결되는 세종이야기 전시관에도 있다. 이곳은 세종대왕의 출생부터 세종이 이뤄낸 과학과 예술 군사 정책을 비롯하여 한글 창제 업적까지 전시를 하고 있다. 여기에 앙부일구를 복원해 놓았는데 역시 엉터리다. 동물 그림이 없다. 전시물에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문자판에는 한문 대신 12시(時)를 나타내는 12지신 동물의 그림을 그려 넣어 백성들이 시각을 쉽게 알 수 있게 배려했다.’라는 설명은 있지만, 정작 만들어놓은 해시계는 한자만 있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앞에 천문 기기 설치는 관광객을 위한 것이다. 지하 전시관에 각종 설치물도 관광과 교육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설치물은 세종 당시의 모습으로 정확히 복원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앙부일구에 시각 표시에 동물 그림을 복원하는 것은 과거의 유물을 그대로 복원하는 차원 이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이는 세종이 문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그림을 그려 소통하려 했던 정신적 유산까지 복원하는 길이다. 몇 년 전 숭례문이 불에 타고 복원 사업이 거국적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결과는 부실 복원이었다. 시간을 정하고 눈에 보이는 업적을 중요시 하다 보니 중요한 원형 복원이라는 정신을 놓쳤다. 문화재 복원이나 보수는 원형 보전이 생명이다. 현재 광화문에 있는 앙부일구는 역사와 세종의 정신을 왜곡하는 것으로 당연히 철거되어야 한다. 앙부일구를 세종실록 등의 기록을 이용해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안산시학습관 별망성 대동제 참관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경기지역대학 카페에서 별망성 대동제 소식(5.21)을 보았다. 방송대 대동제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신입생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한다. 대학에서는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학창시절의 축제가 기억이 생생히 남는다. 본인이 거기에 출연했다면 추억이 더욱 오래 간다. 아마도 지난 4월 경기지역대학 축제가 2학기로 연기되어 아쉬움이 컸다. 카페 대동제 홍보글에 댓글을 달아 제25대 안산․시흥 학생회 임원과 연결이 되었다. 방송대 8기 홍보단원온라인 리포터라는 임무를 띠고 안산 호수공원을 찾았다. 그것도 30도가 넘는 대낮 오후다. 행사 시작은 5시인데 2시까지 오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2시 경 행사장에 도착하니 임원진들이 행사 준비에 분주하다. 객석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천막이 있는 곳을 살펴보니 출연진 대기석, 무대 옆 학생회 본부석, 내빈석, 심사위원석이다. 잔디밭 객석엔 학과 푯말과 현수막이 붙어 있다. 너무 일찍 와서 취재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김영선 학생회장이 필자에게 임무를 부여한다. 사탕바구니를 건네주면 실무부회장과 함께 방송대 홍보활동을 다녀오란다. 헉, 이게 무엇일까? 바구니 속에는 올해 2학기 신․편입생 모집 안내가 사탕 두 개와 함께 포장되어 있다. 모집기간, 모집분야, 문의 전화가 나와 있다. 호수공원을 찾은 유치원 행사 참여 학부모를 대상으로 사탕을 건네주는데 실무부회장의 홍보활동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이런 활동을 많이 해 본 솜씨다. 그렇다. 안산시학습관 소속 학생회 임원진들은 지난 15일에도 커다란 일을 해냈다. 안산시 육상경기연맹 회장배 마라톤 대회에서 방송대 홍보에 앞장섰다. 참가자 수가 모두 1,500명인데 우리 대학 참가인원이 120명이다. 이 대회에 부스를 설치하고 커피 제공하면서 방송대 신․편입 안내를 하였다. 여기서 어깨띠와 홍보 사탕은 필수다. 서론이 길었다. 행사는 오후 5시 가까이 되어 식전공연 난타를 시작으로 행사의 막이 올랐다. 모인 인원은 무려 3백여 명이다. 내빈으로 학습관 관계자. 안산시장, 역대 회장과 동문회장, 경기지역 총학생회장 등도 개회식에 참석하여 축하 인사를 건넨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행사 시작 전 객석 좌우에서 출연팀의 연습장면이다. 마치 학예회 출연팀의 최종 리허설 장면이다. 동물 복장을 해서 땀띠가 난다고? 기온이 30도가 넘는다고? 자외선에 얼굴이 탄다고? 맹연습을 하는 이들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다. 프로그램을 보니 1부는 학과별 단체 댄스와 장기자랑이다. 2부는 개인 노래자랑이다. 맨 먼저 학과 회장들이 색색가발을 쓰고 ‘전국민 알파벳 댄스’를 선보인다. 학과 회장되려면 댄스는 기본기로 갖추어야 하나보다. 아니다. 학과 회장 정도 되려면 리더십과 열정은 몸에 배어있다. 솔선수범은 기본이다. 1부에서 인상적인 것은 출연진이 대규모라는 것. 교육학과의 댄스팀의 경우, 29명이 출연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연합팀이다. 시간도 부족한데 어떻게 모여서 어디에서 연습을 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출연진 복장은 여고생 복장으로 짧은 치마를 입었다. 성인으로 보이지 않고 앳된 여고생 같다. 혹시 해당 학과에서 출연한 사람이 적으면 학과 응원단이 뒷배경으로 학과 푯말을 들고 나와 백댄서 역할을 하니 출연자가 외롭지 않다. 방송대 재학생만 출연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 중 어린 자녀가 출연하여 대동제 분위기를 띄운다. 부모님을 팍팍 응원하는 것이다. 파격적인 복장도 있다. 여장을 한 남자 학우인데 과감한 노출로 박수를 많이 받았다. 방송대인들은 나이 불문이다. 나이를 먹었어도 청춘이다. 오늘 출연자 중 최고령자가 나왔는데 무려 76세이다. 바이올린 독주를 하는데 젊었을 때의 실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잔디밭 객석은 학과단위, 가족단위 소풍장소처럼 화기애애하다. 과를 나타내는 독특한 티셔츠 차림에 과 홍보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취사가 되지 않기에 도시락을 준비해 왔는데 식탁이 풍성하다. 같은 과가 좋긴 좋다. 필자의 저녁은 안산․시흥지역 관광학과 1학년 학우들이 챙겨준다. 족발, 상추, 고추조림, 고추튀김, 열무김치 등 풍성한 저녁상이다. 이들과는 과 MT에서 그리고 지난 출석수업 때 인사를 나누었다. 출석수업 시험도 함께 보았다. 1학년 과대표는 주업인 요트 손님맞이도 뒤로 미루고 대동제에 참가했다. 그 만치 우리 대학 행사에, 과 단합에 열정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별망성 대동제를 참관하면서 느낀 점 하나. 바로 방송대인의 자부심이다. 늦깎이 대학생이지만 국립 대학생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가정, 직장, 학교라는 세 곳에 속해 있는 신분이지만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기말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행사 참여에 소극적이지 않다. 무엇이든지 적극적이다. 출연진들의 장기자랑, 객석의 응원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둘째, 가족과 함께 하는 대동제라는 점이다. 이 행사에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많이 부모님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부모의 학업을 가족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것이다. 학문에 도전하는 향학열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손수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삶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행사 추진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안산․시흥 방송대인의 소속감과 자긍심 그리고 참여 열기다. 그리고 학생회 임원진, 학과회장, 과 대표들의 리더십과 솔선수범이다. 한 가지 제언도 해본다. 이 좋은 행사. 우리 방송대인만의 가족 축제에서 더 나아가 안산시민들이 함께 하는 대동제를 꿈꾸어 본다. 그러려면 장소 선정 등 여러 고려사항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안산․시흥지역 25대 학생회의 구호가 ‘함께 배우고 함께 나누고 함께 즐기자’다. 오늘 제20회 별망성 대동제 그 목표에 도달한 것 같다. 행사 준비에서 마무리까지 학생회 임원진, 학과 회방, 과대표들의 노고가 많았다. 김영선 회장에 의하면 오리엔테이션 다음으로 큰 행사가 대동제라고 한다. 안산․시흥 지역의 방송대인이 증가 요인의 중요한 것이 방송대 홍보와 알찬 행사 진행이라고 보는 것이다.